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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우리말 천태만상'은 세종국어문화원과 오마이뉴스가 함께합니다.[편집자말]
종로구청 도시디자인과 임종률 과장
 종로구청 도시디자인과 임종률 과장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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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우면 채워지죠."

서울 종로구청 도시디자인과 임종률 과장의 이 말은 의외였다. 

지난 24일 종로구청에서 만난 임 과장은 고층 건물들로 빽빽한 도심 한복판에서 '비움'을 역설했다. 도시디자인과에는 도시비우기팀도 있다. 군 초소 등 사용하지 않고 쓸모없는 구조물을 들어내거나, 도로에 난립한 통신주와 신호등주 등을 하나로 묶어세워 도심에 한 뼘 여백을 만드는 작업이다. 종로구는 2013년부터 2020년까지 무려 2만8000여 건을 비웠다. 

비움과 채움

그의 또 다른 일은 '채움'이다. 옥외광고물 정비사업. 관내 식품위생업소만 해도 9000여 개이다. 이들이 평균 3~4개 간판을 내걸었다고 가정하면 3만여 개이다. 간판 10여 개를 내건 업소도 있다. 이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사업체와 건물들도 간판을 걸었기에 그 수효를 셀 수조차 없다. 이중 불법 간판을 정리하고, '1업체 1간판' 거리를 조성하는 사업이 채움이다.

가령, 아래 사진을 보면 간판 개선 사업의 효과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2020 창신·숭인 간판이 아름다운 거리 조성사업 전(왼쪽)·후(오른쪽) 모습
 2020 창신·숭인 간판이 아름다운 거리 조성사업 전(왼쪽)·후(오른쪽) 모습
ⓒ 종로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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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종로구가 진행한 창신·숭인동의 간판개선사업 시행 전후 모습이다. 비우고 새롭게 채우는 '아름다운 거리 조성사업'이다. 동대문 1번 출구에서 낙산어린이공원, 동묘역에서 동망봉터널 총 2.6km 구간에 난립했던 488개 업소의 간판 중 425개 간판이 위와 같이 새롭게 탈바꿈했다. 원래 간판이 난립했던 벽면에 도색 작업까지 하면서 우중충했던 도로가 밝아졌다.
   
인사동 '스타벅스'는 간판이 다르다
     
스타벅스 경복궁역 점의 한글 간판.
 스타벅스 경복궁역 점의 한글 간판.
ⓒ 스타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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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천태만상 기획진이 주목했던 건 이중 종로구의 '한글 간판'이었다. 

"종로구 혜화동의 편의점 CU의 간판은 '씨유'라고 적혀있습니다. 경복궁역 아이스크림 판매점인 'BR'의 간판은 '배스킨라빈스'라고 크게 적혀 있죠. 창신·숭인동의 'EDIYA COFFEE' 간판은 '이디야커피', 인사동과 경복궁의 'Starbucks'는 '스타벅스'입니다." 

임 과장은 "간판 개선 사업을 통해 프랜차이즈 업소의 영문 간판을 한글화한 것"이라면서 "이처럼 어쩔 수 없이 상품과 상호명이 영어인 경우는 한글 표기로 바꿨다"고 말했다. 

건물 표기도 바뀌었다. 과거 'Microsoft' 사에서는 종로구의 옥외광고 심의(권고)를 통해 옆에 '마이크로소프트'라는 한글 표기를 붙였다. 'SHILLASTAY' 건물에도 '신라스테이'라는 한글 표기가 생겼다. 'Bread talk'라는 간판은 '빵 이야기', 베트남어로 쓰인 '베트남 분짜' 간판은 '하노이 생활 맥주'라는 한글 간판으로 대체됐다. 

종로구가 지난 2008년부터 진행한 간판 개선 사업으로 바뀐 간판은 총 1337개이다. 업소당 최대 300만 원의 지원금을 주며 업주들을 어렵사리 설득해서 얻은, 작은 개가였다. 서울시에서 보조한 시비를 포함해 총 28억여 원이 투입됐다. 수십만 개에 달하는 종로구 간판 중 극히 일부분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공공 영역의 이런 노력은 민간으로 확산됐다.

"최근 종로구청이 '서울시 좋은 간판 공모전'에서 4년 연속으로 자치구 중 가장 많은 상을 받았습니다."

이날 임 과장과 함께 만난 유영준 광고물관리팀장의 말이다. 올해에는 서울시 좋은 간판 부문 총 11점 중 최우수상과 특별상 3점을 포함해 총 4점을 수상했다. 작년에도 대상과 최우수상, 특별상 등 3개 부분을 수상했다. 특히 이들 수상작 대부분은 우리말 간판이다. 종로구의 '한글 간판' 정책이 민간으로 확산되면서 이룬 성과이기도 했다. 

종로구의 특별한 '한글사랑' 조례

임 과장이 이날 보여준 서울시와 종로구가 각각 시행한 좋은 간판 수상 작품을 보니 거리의 품격도 바뀌었을 것 같았다. 가령 아래와 같은 것들이다. 

 
2020 종로구 좋은간판 선정작품
 2020 종로구 좋은간판 선정작품
ⓒ 종로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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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에 이런 한글 간판이 들어설 수 있는 데에는 '한글사랑 조례'도 한몫했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옥외광고물법에 따라 한글 병기 규정을 명시한 조례를 채택하고 있다. 이 조례에는 '외국문자 표기가 전체 표기 내용의 80% 이상을 초과하는 광고물'을 심의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전체 표기 면적의 20% 이상을 한글로 사용하도록 유도하는 차원이다.

다른 구에서는 대체로 이 규정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지 않지만, 종로구는 한발 더 나아갔다. 2010년에 '한글사랑' 조례를 제정해 제 9조(광고물 등 한글표시)에 다음과 같이 명시했다. 

"옥외광고물 또는 게시시설에 표시하는 문자는 어문규범에 맞게 한글로 표시함을 원칙으로 하되, 외국 문자로 표시할 경우에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한글과 함께 써야 한다."

제 12조(예산의 지원)에서는 "구청장은 한글 및 순우리말 사용을 장려하기 위하여 건물주, 광고주, 옥외광고업자 또는 광고물 등을 설치하거나 표시하려는 자에게 정비에 소요되는 예산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지원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간판 전체 면적 50% 이상을 한글로

임 과장은 "다른 지자체에서는 한글 표시면적을 20%로 규정하고 있는데, 우리 구는 간판개선사업을 진행하면서 '1업소 1간판', 한글표기 50% 이상을 권고하고 있다"면서 "전국에서 처음으로 한글사랑 조례도 만들어서 시행하고 있고, 매월 1회씩 열리는 옥외광고물 심의위원회에서도 한글 표기를 주요 심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한글 간판은 어떤 장점이 있을까? 임 과장은 "북촌과 서촌, 세종마을 등의 문화유산들과 한글은 기본적으로 친숙하다"면서 "어려운 외국어보다 알기 쉬울 뿐만 아니라 눈에 잘 띄고, 정서적인 공감을 이룰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한편 지난 2019년 서울시가 의뢰해 한글문화연대가 12개 자치구 7252개 간판을 대상으로 조사한 한글표기 실태에 따르면, 한글 간판은 61.3%(4442개), 외국문자 간판은 23.5%(1704개), 병기 간판은 15.2%(1102개)로 나타났다. 한글문화연대는 2017년에도 같은 조사를 벌였는데, 두 조사를 합치면 외국문자 간판은 20.1%(3057개)였다. 외국문자 간판이 증가추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추세에 반하는 종로구의 각별한 한글사랑, 그 이유는 뭘까? 

"세종대왕이 태어난 곳이 통인동 일대의 세종마을이고, 경복궁 주변과 북촌 한옥마을, 인사동길이 위치한 종로는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한국의 대표적인 관광명소이죠."

그는 "한글 간판은 우리나라의 자부심인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면서 거리의 품격도 높일 수 있다"며 "어느 나라에 온 것인지도 모를 거리에 한글을 입히면 지역 상권에도 보탬이 된다"고 강조했다. 

간판은 가게의 얼굴이고, 거리는 도시의 품격이다. 알 수 없는 외국어가 난무한 도심을 하나씩 비우면서 우리의 한글로 채워나가는 종로구의 오랜 시도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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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들과 함께 상식적인 사회를 만들고 싶은 오마이뉴스 기자입니다. 10만인클럽에 가입해서 응원해주세요^^ http://omn.kr/acj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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