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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접종을 위해 병원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나이가 지긋한 남성분이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 빨리 맞으려고 일찍 왔는데 시간이 돼야 맞을 수 있다면서 자신을 기다리게 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 말에 상대편에서 뭐라고 했는지 돌연 화를 내며 상스러운 말을 내뱉었다. 일순간 몸이 움츠러들었고 조심스레 자리를 옮겼다.

폭력은 힘이 세다. 약한 이들을 겁먹게 하고 복종하게 하니까. 하지만 상처를 내고 미움을 싹트게 한다. 상처와 미움이 쌓이면 증오가 되고 증오는 복수의 칼을 갈게 한다. 폭력은 그렇게 폭력을 부른다. 그래서 폭력은 우리를 멀어지게 한다. 누군가 폭력성을 드러내면 우리는 그를 경계하고 거리를 둔다. 반면 다정함은 어떤가. 다정함은 우리를 가깝게 해 준다. 다정한 말엔 저절로 귀를 기울이게 되고 애정 어린 행동에는 손을 내밀고 몸을 맡기고 싶어 지니까.
 
책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표지.
 책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표지.
ⓒ 디플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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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헤어와 버네사 우즈는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이민아 옮김, 박한선 감수)에서 우리가 다정함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진화해 왔음을, 다정한 종이 더 생존에 우세했음을 이야기한다. 낯선 침팬지에게 폭력적으로 반응하는 침팬지는 서로를 공격해 해를 가하고 이는 죽임으로 이어지기도 하는 반면, 낯선 보노보에게 더 우호적으로 행동하는 보노보는 친화력을 이용해 번식력과 생존력을 높여왔음을 보여준다.

보노보는 처음 보는 보노보에게 털을 쓰다듬으며 친근함을 표시하고 먹이를 나누어 주면서 스스럼없이 무리에 끼어 준다. 특히 친화력이 높은 암컷 보노보는 다정한 수컷을 더 선호하는 방식으로 수컷들에게도 다정함을 전파시키고, 서로 협력하고 보호하는 방식의 집단 분위기가 형성되도록 이끌었다. 
 
우리는 모르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살아가지만, 그들을 그냥 참고 견뎌주는 정도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서로 돕는다. 장기를 기증하는 큰 친절도, 누군가 길 건너는 것을 도와주는 작은 친절도. - 159쪽,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친근함, 이해 그리고 우호적 분위기

인간 또한 탁월한 친화력으로 지구 상에서 우위를 점하고 번성할 수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보살피며 '가족'이라는 집단을 이뤄 살아간다. 혈연관계로 맺어지지 않은 사회 속에서도 서로에게 크고 작은 친절을 베풀고, 협력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우리가 침팬지처럼 공격적 성향만 지녔다면 날마다 다툼이 끊이지 않았을 테지만, 우리는 대체로 보노보처럼 가까운 이들에게 친근함을 표현하면서 서로 돕고 이해하려 노력한다. 무엇보다 평온하고 우호적인 분위기를 선호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 몸에서 분비되는 옥시토신은 공감 능력을 상승시키고 타인의 감정을 더 정확하게 인식하도록 돕는다. 세로토닌의 분비는 두개골과 얼굴 형태의 변화에도 영향을 미쳐 '여성형' 얼굴로 진화하게 했다. 우리 눈의 하얀 공막은 눈 맞춤을 통해 타인과 의사소통을 하고 이해와 친화력을 높이는데 일조했다. 이렇듯 인간은 친화력을 선택하는 방향으로 진화했으며 유대와 협력, 긴밀한 의사소통을 발달시켜왔다.

하지만 우리의 탁월한 친화력은 극악무도한 잔인성으로 바뀌기도 한다. 아기를 분만할 때 엄마 몸에서 분비되는 옥시토신은 아기를 보호하게 하지만 누군가 아기를 위협한다고 느낄 때 분노를 솟구치게 만들기도 한다. 우리가 더 강렬하게 사랑하고 지키고 싶은 집단이 위협받을 때, 사람은 더 큰 폭력성을 드러낼 수 있다. 타자에게 친절한 "우리 종의 특성은 보노보와 일치하지만 사람의 경우 이 친절함은 특정 타인에게만 해당되고 그렇지 않은 타인에 대해서는 두려움과 공격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동한다"(187쪽)고 저자는 말한다. 즉 우리의 친절한 본성은 아이러니하게도 폭력과 잔인함으로 뒤바뀔 수 있는 잠재력 또한 지니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가르치지 않아도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선호하는 대신 다른 이들을 경계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만드는 편견을 갖기도 한다. 인간이더라도 자신과 조금 다른 모습, 익숙지 않은 타인에게 불편함을 느끼는 '불쾌한 골짜기'가 우리 안에 존재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불쾌한 골짜기'는 누군가를 '비인간화' 하는 편견을 만들고 '비인간화'한 대상에겐 무자비한 공격성을 드러내는 걸 용인한다. 이러한 공격성은 개인보다 집단으로 작용할 때 더 강력해진다. 따라서 우리의 어두운 본성을 길들이기 위해 기술의 발전을 선한 방향으로 이끄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적인 해법을 찾으려는 노력이 더 필요해 보인다.

타인을 비인간화하며 차별과 억압을 행했던 과거 사회 정치적 환경을 돌아보며 폭력적 저항보다 평화적인 노력이 동반될 때 내구력 있는 변화가 가능했음을 저자는 보여준다. 또한 이질적 집단간 접촉을 늘리는 것이 서로에 대한 친밀감을 상승시켜 주고 다른 집단, 낯선 타인에게 노출되는 빈도가 증가할수록 관용이 높아진다고 말한다.

사회 환경, 제도, 시스템이 관용을 베푸는 방향으로 작동될 때 그 안의 개인들도 관용을 베풀 수 있으며 "두려움 없이 낯선 타인을 만날 수 있고 무례하지 않게 반대 의견을 내고, 자신과 닮지 않은 사람들과도 친구가"(284쪽) 될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우리의 삶은 얼마나 많은 적을 정복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친구를 만들었느냐로 평가해야 함을. 그것이 우리 종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숨은 비결이다. - 300쪽,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우리가 지구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숨은 비결이 더 많은 친구를 만드는 능력이었다는 저자의 결론은 희망적이다.
 우리가 지구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숨은 비결이 더 많은 친구를 만드는 능력이었다는 저자의 결론은 희망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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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구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숨은 비결이 더 많은 친구를 만드는 능력이었다는 저자의 결론은 희망적이다. 환경오염과 기후 재난, 질병과 가난의 위협이라는 현실 속에서 위기가 심화되면  갈등과 분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걱정을 잠재우기 어렵다. 그런데 산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서로가 적이 되는 방식이 아니라 나누고 보살피며 손잡아주는 친구가 되는 방식이라고 이 책은 알려준다.

인간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 출생 후 빠르게 자립할 수 있는 다른 동물들에 비해 인간 아기는 수년 동안 엄마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며 인간은 무리를 지어 협력하며 살아갈 때 가장 창조적이고 생산적일 수 있다. 타인의 존재가 필수적인 우리가 서로의 곁에 머물 수 있는 비결은 다정함이라고 이 책은 말한다.

폭력은 서로를 멀어지게 하지만 다정함은 우리를 더 가깝게 해 준다. "서로가 서로를 보호하려는 연민의 감정이 없다면 인간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아죽 작은 인간들이 말할 때>)는 이근화 시인의 말처럼, 우리를 사람이게 하는 것은 타인의 고통에 손을 내밀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 마음을 기울이는 데 있다. 서로에게 친구가 되겠다는 이 마음이 우리를 위태로운 지구에서 살아남게 해 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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