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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군사법원법 개정안이 통과되고 있다.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군사법원법 개정안이 통과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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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31일 국회 본회의에서 군사법원법 개정안이 재적의원 227명 중 찬성 135명, 반대 63명, 기권 29명으로 통과됐다.

개정안에는 성범죄와 사망사건 관련 범죄, 입대 전 범죄에 대해 1심부터 민간 수사기관과 법원이 수사·재판하도록 하는 내용과 함께 일선 부대 지휘관에게 형 감경권을 부여했던 '관할관 확인조치권' 제도와 법조인이 아닌 일반 장교가 재판관을 맡는 '심판관' 제도를 폐지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는 군 내 '제 식구 감싸기'의 원인으로 지목돼 온 것들이다.

소속 의원 전부가 반대한 정의당? 이유가 있었다

이와 같은 군 개혁적 개정안에 대해 소속 의원 전부가 반대한 정당이 있다. 바로 정의당이다. 개혁과 진보를 내세운 정의당의 성격상 이해하기 힘든 선택으로 보였다. 그런데 자초지종을 살펴보니 이번 개정안을 반대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상시 군사법원의 폐지'가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6월 7일, 문재인 대통령은 공군 부사관 성추행 사망사건을 계기로 병영문화의 근본적인 개선을 위한 민관군 합동위원회 설치를 지시했다. 이에 따라 6월 28일, 총 80여 명의 위원을 위촉하며 민·관·군 합동위원회가 출범했다.

문 대통령의 지시로 탄생한 합동위는 8월 26일 평시 군사법원을 폐지하는 내용의 권고안을 의결했다. 비록 의결 과정에서 군 당국의 구태의연하고 미온적인 태도에 실망한 12명의 민간위원이 사퇴했다. 성범죄 등 비(非)군사 범죄만 민간 법원으로 이양하는 이번 개정안보다는 훨씬 근본적인 개혁안이라 볼 수 있지만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노무현도 박근혜도 폐지하고자 한 평시 군사법원  

사실 평시 군사법원 폐지의 연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노무현 정부는 기존 사법개혁 실패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행정부와 사법부 사이에 존재하던 간극과 갈등이라 판단한 후, 사법부와 행정부의 공조 체계를 통해 개혁을 완수하려 했다.

이를 위해 2004년 12월 15일, 대통령 산하에 사법제도 개혁추진위원회를 설치해 2006년 12월 활동을 마무리할 때까지 개혁방안 13개와 법률안 25개를 정부 입법안으로 국회에 제출했다. 개혁방안 4개와 법률안 12개는 입법에 실패했는데 이중 6개의 법률안이 군 사법제도에 관련된 것이었다.

당시 사법제도 개혁추진위원회는 보통군사법원의 폐지와 국민참여재판, 심판관 제도 폐지 혹은 심판관 자격 확대, 민간판사 재판장 참여, 평시 관할관 폐지 등의 군 사법제도 개혁안을 내놨으나 군 고위 간부와 지휘관들 및 국방부의 반발로 결국 무산됐다. 이중 몇몇 개혁안은 이번 개정안을 통해 실현되었으나 보통군사법원은 여전히 남아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때도 평시 군사법원 폐지 권고가 있었다. 2014년 4월 7일 28사단 윤 일병 폭행사망사건, 2014년 6월 21일 22사단 임 병장 총기난사 사건 등이 연이어 발생하자 국회는 2014년 11월 1일 군 인권 개선 및 병영문화혁신 특별위원회를 설치해 군사법원 폐지를 권고했다.

하지만 국방부장관은 혁신특위가 내놓은 과제 가운데 군사법원 폐지안은 시기상조라며 거부했다. 국방부장관은 혁신특위에 참여한 새정치민주연합 윤후덕, 정성호 의원뿐 아니라 새누리당 김용남 의원과 정병국 위원장으로부터도 질타를 받아야만 했다.

이후에도 2017년 설치된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원회,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의 개헌안 역시 평시 군사법원 폐지를 외쳤으나 결국 이번 개정안에서마저도 평시 군사법원의 폐지를 끝내 이루지 못했다.

전체 사건 중 군사범죄는 극소수... 안보 위험 높은 대만도 2013년 폐지

형사정책연구원이 지난해 발간한 <군사법원 연감>에 따르면 2019년 기준 보통군사법원에 접수되는 연간 사건 수는 총 2839건이다. 이 가운데 군 기밀 누설, 군무이탈, 군용물 관련 죄 등 군사범죄는 전체의 8.0%(228건)에 불과했다. 나머지 92%는 군인이 저지른 일반 형사범죄다. 항소심 격인 고등군사법원의 경우에도 전체(443건)의 13.8%(61건)만 군사범죄였다. 이처럼 군사법원 접수 사건의 대부분이 군인의 일반 형사범죄에 불과하다면 군사법원이 존재해야 할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세계적으로도 평시 군사법원을 유지하는 국가는 소수다. 북한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해야 한다고? 2018년까지 징병제를 운영하고 최근 들어 중국의 무력위협이 심해진 대만도 군사법원을 2013년 폐지했다. 홍중추 하사가 영내 가혹행위 끝에 숨진 사건 이 계기가 됐다. 처음 폐지 논의가 나온 2005년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군대에서 목숨을 잃었는가? 이제는 한국도 군사법원을 폐지할 때가 왔다.
 
정의당 배진교 원내대표가 지난 8월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정의당 배진교 원내대표가 지난 8월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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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1일 이은주 정의당 의원은 국회 본회의에서 이번 개정안에 반대의 목소리를 내며 2014년 군 내 가혹행위로 사망한 윤 일병의 어머니가 쓴 호소문을 낭독했다.
 
다른 가혹행위 등 인권침해 사건도 피해자가 사망해야만 민간법원으로 이관할 겁니까? 대체 왜 군사법원 하나를 없애지 못해 이렇게 돌아갑니까? 언제까지 피해자들이 죽음으로 호소해야 합니까? 도대체 국회의원은 뭐 하는 것이며 그동안의 국방부 장관의 사과와 대통령의 엄벌의지는 어디로 실종한 겁니까? 결국, 말잔치에 불과했던 겁니까?
 
노무현 전 대통령때부터 지금까지 군 사법제도 개혁의 핵심이자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지시한 합동위의 권고인 상시 군사법원 폐지는 결국 이번 개정안에서는 이뤄지지 못했다.

오랜 기간의 군 사법제도 개혁 논의와 더 이상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애타는 마음을 호소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고려해서라도 국회는 9월 정기국회에서 평시 군사법원 폐지를 포함한 개정안을 재논의해서 의결하길 바란다. 그것이야말로 윤 일병과 최근의 해·공군 성폭력 사망자 등 희생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애도라고 생각한다.

태그:#군사법원법 개정안, #군사법원 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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