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9.03 06:33최종 업데이트 21.09.03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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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를 쓰고 프랑스 파리의 거리를 지나가는 행인들 ⓒ 연합뉴스

 
지구촌 북반구는 가을을 향해 가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두번째 가을을 맞은 지금 세계 주요 언론들은 '위드 코로나'를 말하기 시작한다. 말 그대로 코로나바이러스를 우리의 일상으로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 조건은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백신 접종을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경우에 따라 모든 국민이 정기적으로 백신을 접종해야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엄청난 재정 지출과 인명 피해를 감수하며 코로나 종식을 외쳤지만, 어쩌면 이제 정말로 코로나와 함께 살기를 받아들여야 하는지도 모른다.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정상적 일상이 되기 위해서는 백신의 효능이 확실해야 한다. 다행히 백신의 효과는 분명해 보인다. 변이 바이러스의 출몰에도 불구하고 중증으로의 전이를 현저히 낮추고 사망률을 줄여주고 있다. 백신에 신뢰를 주는 만큼 제약회사들도 앞으로 공공성과 관련해 더 수긍할 수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그것이 위드 코로나의 최소 조건이다. 

해악과의 공존은 이처럼 사회 안정과 공공성의 보장이 가능할 때 용인이 된다. 그럴 때 시민들은 적당한 긴장과 함께 일상을 만들어 가게 된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투자와 구상을 할 수 있다. 이렇게 세상은 흐르고 삶은 계속 된다.

서유럽의 위드 코로나

코로나19로 큰 피해를 입은 서유럽의 대부분 국가들은 이제 위드 코로나를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1년여 동안 한산했던 공항들이 서서히 사람들로 채워지고 카페와 식당들도 정상 영업을 시작하고 있다.

영국은 여전히 1일 신규 확진자 규모가 2만~4만 사이를 오가지만 7월부터 대부분의 코로나 대응 빗장을 풀었다. 제한조치 해제 발표 당시보다 이후의 상황이 조금 더 호전된 결과는 정부 당국의 자신감을 부추기고 있다.

직장들은 점차적으로 재택근무에서 정상출근으로 이행 중이고 대부분의 서비스업도 정상화됐다. 공중보건 시스템에 여력이 생기면서 단순 양성 판정은 자택 격리를 유도하고 중증 환자는 공공 의료체계가 맡고 있다.
 

프랑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델타 변이 확산으로 비상인 가운데 25일(현지시간) 수도 파리의 한 영화관 앞에 코로나19 백신 증명서 제시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프랑스는 지난 21일부터 박물관과 영화관·극장 등 50명 이상이 모이는 문화·여가 시설을 이용할 때 백신 접종을 완료했다는 보건 증명서를 제시하도록 강제했다. 다음 달 중에는 이 조치가 확대돼 장거리를 이동하는 버스, 기차, 비행기 등을 이용할 때도 '백신 여권'을 제시해야 한다. 2021.7.25 ⓒ 연합뉴스


영국과 달리 1만 명 이하의 신규 확진자 규모에서 7월 중순 갑자기 다시 2만~4만 수준으로 뛰어오른 프랑스도 백신 접종 독려와 함께 대부분의 제한 조치가 해제됐다. 공공장소에서의 백신 여권 의무화 조치가 일부의 반발을 사고 있지만 국민 다수는 찬성하고 있고, 상당수의 식당, 카페는 백신 여권 소지 여부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는 않은 모습이다.

이렇게 코로나가 일상으로 들어오고 심각한 해악만 선별적 통제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프랑스의 수도 파리(Paris)는 미래의 환경을 겨냥한 새로운 실험에 들어갔다. 마치 코로나19가 없던 시절의 모습처럼.

프랑스의 전격 시행 : 파리의 사실상 모든 도로에서

지난 월요일(8월 30일)부터 파리 시내의 대부분 도로에서 모든 자동차에 대해 시속 30킬로미터 제한 규정이 전격 실시됐다. 파리를 둘러싼 외곽 순환도로(페리페리크)와 일부 주요도로를 제외하고 사실상 시내의 모든 도로에 해당되는 조치다.

시속 30킬로미터 이하 주행이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운전자들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도 어린이 보호구역 등 이면도로에서는 시속 30킬로미터 제한 속도가 시행중이지만, 30킬로 미만을 유지하려면 운전 중 대부분의 시간 동안 오른발을 브레이크 위에 대기상태로 둬야 할 정도다.

이렇게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조치를 전격 실시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파리 시민들의 적극 지지가 한 몫 했다. 파리 시내 주행 30킬로 제한조치는 원래 지방선거에 출마한 녹색당 후보의 공약이었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재임에 도전한 사회당 출신 파리 시장 안 이달고(Anne Hidalgo) 후보는 이 정책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였고 녹색당은 이를 수용했다.
 

안 이달고 파리시장이 2020년 6월 28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프랑스 시선거 2차 투표에서 승리한 뒤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 연합뉴스


이 공약을 내 건 이달고 시장은 2020년 6월 재선됐으며, 1년 반 집중 검토 끝에 이를 파리 시내에서 전격적으로 실시했다. 파리 시 당국은 59%의 파리 시민이 이 정책에 찬성하고 있다고 공식 홈페이지에 밝히고 있고, 대부분의 여론조사도 비슷하게 나온다.

시행 첫날 기자가 직접 파리 시내를 운전해 봤지만 커다란 변화를 느끼지는 못했다. 서울보다 도시 규모가 작고 좁은 도로가 많은 영향도 있다. 카메라가 없는 곳에서는 위반하는 차량도 꽤 있다. 어쨌든 30킬로미터 제한속도를 지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정책은 시행됐고 다수의 여론은 호의적이다. 이렇게 혁명적 조치를 시행하는 파리 행정당국의 목적은 무엇일까. 안 이달고 파리시장은 2014년 그의 첫 당선과 함께 파리를 자동차보다 보행자 중심의 도시로 탈바꿈할 것을 약속했다. 그리고 하나둘 시행에 들어갔다.

지난해 재선 후엔 본격적으로 보행자 중심의 녹색도시 파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시속 30킬로미터 이하로 자동차를 운전한다면 차라리 자전거나 마이크로 모빌리티(전기 동력의 1인 교통수단)가 나을 수도 있다. 좀 먼 거리는 지하철로 이동하면 된다.
 

9월 2일 프랑스 파리 시내 ⓒ 임상훈


삶을 계속하기 위해

이달고 시장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파리 시내에서 자동차 이용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다. 도로 역시 점차적으로 차선을 줄이고 자전거 길을 늘리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시속 30킬로미터 이하로 주행할 경우 교통사고 사망률은 현격하게 떨어진다.

저속으로 달릴 경우 공해는 더 심해진다는 반론도 있지만, 파리 시의 공식 입장은 반대다. 공해는 줄 것이라고 시 당국은 밝히고 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파리 시내에서 점차적으로 자동차가 사라진다면 공해가 줄어드는 것은 명백한 일이다.

코로나19를 겪으며 우리는 화석 연료 사용량을 많이 줄였다. 그리고 그 결과는 바로 나타났다. 노력만 하면 자연은 곧바로 반응한다는 사실을 얻은 게 코로나 정국의 큰 수확이었다. 파리 시는 이제 공해가 없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 정주행하고 있다.

2024년 파리에서 하계 올림픽이 열린다. 그때쯤이면 코로나19도 어떤 식으로든 종식이 될 것이다. 박멸이 될 수도, 위드 코로나가 될 수도 있다. 일상을 되찾고 삶의 여유를 즐기기 위해 어떤 식으로든 인간은 방법을 찾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열릴 미래를 위해 인류는 현재의 실망에 머무르지는 않을 것이다.

이란의 영화감독 아바스 키아로스타미는 1991년 자신의 대표 3부작 가운데 두 번째 작품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를 내놓는다. 1990년 실제 이란에서 있었던 대규모 지진 사태를 모티프로 만든 영화다. 인간은 그들 앞의 비극과 삶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희망의 미래를 그린다. 그렇게 삶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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