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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이 지난달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부친의 세종시 논 구입 과정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이 지난달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부친의 세종시 논 구입 과정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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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직 사퇴 강수... 윤희숙 다운 되치기, 신의 한 수 되나> (JTBC)
<윤희숙의 파격 승부수, 차기 대선 태풍의 눈으로> (이데일리)
<"한국 정치에 죽비" "더 크게 쓰일 것"… 윤희숙에 격려 쏟아져> (조선일보)
<윤희숙이 실천한 베버의 책임정치> (중앙일보)
<윤희숙 의원직 사퇴... 더 크게 쓰일 것, 전근대적 연좌제> (MBN)


8월 25일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의 '의원직 사퇴' 기자회견 직후 쏟아져 나온 언론보도들이다. "정치인의 품격"부터 "신의 한 수", "태풍의 눈"까지. 부친이 귀농을 위해 세종시 땅을 매입했다는 취지의 윤희숙 의원의 짧고 굵은 해명에 보수·경제지들이 들썩였다.

머니투데이는 <참을 수 없는 윤희숙의 분노, 왜 의원직 사퇴까지> 기사에서 "참을 수 없는 윤희숙의 분노… 왜 의원직 사퇴까지 고민하나"라며 '대신' 화를 내주는 이색적인 풍경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들 보수·경제지들의 논조를 선도한다고해도 무방한 이른바 '조중동'은 일제히 8월 26일자 사설을 통해 '윤희숙 엄호'에 나섰다. 조선일보는 <윤희숙 의원이 보여준 염치와 상식>을, 중앙일보는 <부동산 투기 의원들 부끄럽게 한 윤희숙의 사퇴>를, 동아일보는 <"정치인 도덕성 평가 포기 안돼"… 의원직 사퇴 선언한 윤희숙>을 사설 제목으로 뽑았다. 이를 두고 민주당 김두관 대선경선 후보는 이런 일침을 날렸다.

"(언론의 윤석열 전 검찰총장 띄워주기에 이어) 그런데 이제 '新 윤비어천가'가 등장했습니다. 이번 찬양과 경배의 대상은 윤석열이 아니라 윤희숙입니다." - 8월 26일 김두관 민주당 대선 예비후보 페이스북글 중

'신 윤비어천가'의 유통기한
 
지난달 26일 <조선> <중앙> <동아>가 게재한 윤희숙 의원 사퇴 관련 사설
 지난달 26일 <조선> <중앙> <동아>가 게재한 윤희숙 의원 사퇴 관련 사설
ⓒ 조선·중앙·동아 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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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나는 임차인이다"는 국회 연설로 파장을 일으키며 일약 '부동산 저격수'로 떠올랐던 윤희숙 의원. 보수언론이 그를 주목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신 윤비어천가'의 유통기한은 그리 길지 않았다.

우선 이 반전 드라마의 전개 과정을 짧게 짚어 보자. 8월 23일 국민권익위원회가 국민의힘 부동산 전수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후 의혹 인사 12명에 윤 의원이 포함됐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24일 하루 설왕설래가 오갔다. 25일 윤 의원이 기자회견을 자청, 전격적으로 의원직 사퇴를 선언했다.

이후 펼쳐진 것이 바로 언론들의 '윤희숙 찬가'였다. 이 과정에서 우파 경제철학의 거두이자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으로 유명한 막스 베버까지 소환됐다. 조중동에 이어 경향신문마저 <윤희숙의 의원직 사퇴 선언이 정치권에 던진 파장>이란 사설에서 "신선하다"는 평가를 내렸을 정도다.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권익위는 윤 의원 부친의 세종시 땅과 관련해 농지법과 주민등록법을 위반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런 가운데 언론이 쏟아낸 '윤비어천가'는 실제 위반 내용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봤는지 의구심이 들만큼 신속하고 과장된 평가가 아닐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반전이 일었다. 25일 오후부터 일부 언론과 민주당에서 하나둘 의혹을 제기했다. 민주당 김두관 의원은 26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윤 의원 부친이 2016년 세종시 스마트 국가산업단지 인근에 3300평의 땅을 매입했는데 윤 의원이 그때까지 KDI에 근무하고 있었고, 스마트 국가산단 용역 연구기관이 KDI"라며 부친 농지땅 투기 의혹과 윤 의원의 연루 의혹을 제기했다. 이외에도 윤 의원이 세종시에 보유했던 아파트가 특별공급 제도로 받은 것이고, 그가 해당 아파트를 팔면서 시세차익을 얻었다는 의혹도 민주당 의원들에 의해 불거졌다. 

여당의 공세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앞서 권익위의 민주당 전수조사 당시 모친 땅투기 의혹으로 결국 탈당할 수밖에 없었던 양이원영 의원은 기자회견까지 자청하며 윤 의원을 비판하고 나섰다. 그 결과, 27일 윤 의원이 2차 기자회견에 나서기 전까지 쏟아졌던 상찬이 관망세로 바뀌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문제는 논조와 기사량이었다. '윤비어천가'에 불렀던 언론들의 잣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분노의 2차 회견... 태도 지적 보수경제지는 전무

우선 기자회견. "정치의 품격"을 보여줬다던 1차 기자회견과 달리 2차 기자회견에서 윤 의원은 말 그대로 분노를 쏟아냈고, 미처 다 옮기기 버거운 거친 언사를 숨기지 않았다. 부친의 친필 편지를 읽어 내려가며 울먹인 반면, 의혹에 대한 해명은 구체적이고 명확하지 못했다. 기자회견의 절반 가까운 시간을 민주당 인사들과 이재명 경기지사, 방송인 김어준씨를 비난하는데 할애했다. 적반하장이란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한 보수·경제지들의 평가는 어땠을까. '기계적 균형'이 횡행했고, 따옴표 저널리즘이 재등장했다. 앞서 '윤비어천가'를 부른 언론들은 대부분 민주당 인사들을 비난한 '윤희숙의 입'에 초점을 맞췄다. 윤 의원의 태도를 지적하는 보수·경제지들은 전무하다시피 했다.

정부여당 인사들이었다면 뒤덮였을 '내로남불'과 '위선' 프레임도 크게 작동하지 않았다. 검증 자체도 요지부동이었다. 윤 의원의 1차 회견 이후 세종시 땅 현지 취재에 나서며 적극적으로 검증에 임한 매체는 CBS 노컷뉴스, YTN, 한국일보, 오마이뉴스 등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특히 조중동은 검증의 검자도 꺼내지 않았다. 다만 타 매체를 통해 불거진 의혹을 건조하게 보도하는데 그쳤다. 한껏 상찬을 보냈던 윤 의원에게 국민적 눈높이와 맞지 않은 의혹이 줄줄이 불거졌으니 자신들의 논조를 손바닥 뒤집듯 바꾸기도 힘든 노릇이었을까. 

적반하장 기자회견의 결과 
 
윤희숙 의원 사퇴 관련 조선일보 8월 26일자 보도
 윤희숙 의원 사퇴 관련 조선일보 8월 26일자 보도
ⓒ 조선일보 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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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안정보시스템은 국민 누구나 볼 수 있는 정보이고, 여러 언론에서도 이미 의원직 사퇴 선언 전에 사퇴서를 제출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이쯤 되면, 여당의원이나 TBS나 아예 마음먹고 조직적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있다고 봐야겠지요. 정작 본인들이 언론환경을 혼탁하게 만들고 있으면서 '고의적, 악의적 허위보도에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언론재갈법 홍위병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31일 윤희숙 의원 페이스북글)

윤 의원은 여전히 당당하다. 이날 윤 의원은 tbs라디오 <신장개업> 방송을 거론하며 '허위사실 엄중처벌하자며, 언론 악용해 허위사실 뿌려대는 블랙코메디'란 제목의 글을 페이스북에 게재했다. 그는 8월 25일 본인이 이미 국회에 사퇴서를 제출했는데도 불구하고 "민주당 국회의원과 교통방송 진행자가 언론중재법에 대해 실컷 떠든 후, 제가 의원직 사퇴서를 아직 제출하지 않았다는 허위사실을 말하고 사퇴쇼라며 비웃은 후 헤드라인으로까지 뽑아놨다"고 비판했다.

2차 기자회견 당시 국민의힘이 의뢰했던 권익위 조사 자체를 '부당한 탄압' 프레임으로 만들고 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강행' 등 정부여당 비판에만 열을 올렸던 논조의 연장선상이라 할 수 있었다. 아울러 지난달 28일에도 윤 의원은 "작년 7월 30일 5분 연설 시점까지 제가 2주택자였다가 연설로 유명해진 후 아파트를 서둘러 팔았다는 내용은 고의적인 허위 보도"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보수·경제지는 윤 의원의 2차 기자회견 직후 신중 모드에 돌입했다. 같은 날 조선일보 등 일부 언론이 법무부의 '황제 의전' 논란에 '올인'하며 시선을 돌리는 등 국회의원 부동산 전수조사를 둘러싼 검증 자체를 기피하는 분위기마저 감지된다. 윤 의원 사퇴안 국회 처리를 둘러싼 '민주당 vs. 국민의힘' 책임론 공방이 이어질 뿐 앞서 제기된 의혹을 검증하려는 움직임은 일절 포착되지 않는다. 그야말로 '선택적 보도'가 아닐 수 없다. 이쯤 되면, 보수경제지를 등에 업은 윤 의원이 이긴 게임이라고 봐야 할까.

태그:#윤희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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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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