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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한 중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성평등 교육'을 하다.
 인천의 한 중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성평등 교육"을 하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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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현장의 백래시(backlash)가 거세지고 있음을 피부로 체감하는 요즘이다. 이날 교육은 인천의 한 중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성평등 교육'이었다. 한 반 인원수가 34명으로 다른 곳보다 훨씬 많은 데다가 남자 청소년이 20명이었다. 쉽지 않으리라 예상했고 실제로 쉽지 않았다.

프레젠테이션(PT)을 켜자마자 화면에 나타난 '여성가족부'(아래 여가부)라는 문구에 몇몇 청소년이 "저것 봐 여가부다"라고 외쳤고, 이후 부정적인 분위기가 조장되기 시작했다. 초장부터 분위기를 잡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함에 강의를 시작하자마자, 그 이야기를 꺼낸 청소년들에게 "여가부에 관심 많으신가 봐요?"라고 가볍게 질문을 던졌다.

학생들은 예상외의 질문과 친근한 말투에 다소 당황한듯했으나, 자신의 이야기를 부정적으로 여기지 않는 듯해서인지 이내 '셧다운제'(16세 미만의 청소년에게 심야의 인터넷 게임 제공을 제한하는 제도)와 관련한 정책을 이야기하며 부정적 의견을 피력했다. 당장 대응하기보다 셧다운제와 관련한 아쉬움을 어느 정도는 공감하고, 또 여가부의 다양한 활동과 성평등의 필요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다고 기약하며 강의를 시작했다.

"성차별은 어른들의 잘못" 학생의 말에 사과한 이유
  
 
리그 오브 레전드 속 여성 캐릭터
 리그 오브 레전드 속 여성 캐릭터
ⓒ 라이엇 게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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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고정관념 파트에서는 아무래도 남자 청소년들의 표정과 반응에 눈치를 살피며 이들이 관심 있어 할만한 게임, 콘텐츠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한때 조금이나마 게임을 했던 게 꽤 유용하게 느껴졌다. 예컨대 리그 오브 레전드에 나오는 캐릭터의 모습을 설명하면서 이야기할 때, 여성이 훨씬 더 많이 성적으로 대상화된다는 것을 쉽고 거부감 없게 전달할 수 있었다. 특히 게임 사용자들의 여성혐오 발언에 대해 이야기 할 때는 맨 뒤에 앉아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던 참여자들도 수긍할 수밖에 없는 눈치였다.

가사노동 시간에 대한 통계와 전공계열 성별, 비율 등에 대한 자료도 설득력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게 어떤 영향에 의한 것인지, 이것이 또다시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밝히면서, 여전히 우리 사회에 성별고정관념으로 인한 성차별이 남아있음을 이야기했다. 이 과정에서 한 남성 참여자가 "그럼 이것은 어른들의 잘못이네요"이라고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말투에는 악의가 아닌 결백 하고자 하는 욕구가 비쳤다.

나도 내심 성평등, 폭력예방교육을 받을 때면 드는 '죄책감'이 있다. 이러한 성차별적인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는 죄책감 그리고 그로 인한 특권과 가부장제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는 죄의식이다. 그래서 먼저 사과를 하고 이러한 사회와 어른들의 영향으로부터 계속해서 고민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게 성평등임을 이야기했다.

일견 "우리는 잘못 없어"와 같은 선 긋기로 그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들었지만, 청소년 참여자에게 불편함으로 거리를 두기보다는 교육자와 참여자가 같은 방향을 가는 사람임을 어필하는 게 우선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1교시가 끝난 후 찾아온 쉬는 시간도 전쟁이었다. 그래도 썩 인상이 나쁘지 않았는지 몇몇 남성 청소년이 와서 게임에 대해 물어보고, 여가부에 대한 이야기도 이어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왜 여가부는 있으나 남성가족부는 없는지에 대해 BLM(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 Black Lives Matter)과 흑인인권운동, 장애인권운동 등을 예시로 들며 설명하니 이에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쉬는 시간이 거의 끝나갈 즈음, 뒷자리에 앉아있던 친구들이 "보이루"하는 모습을 보였다. 때마침 2교시가 혐오표현에 대한 이야기인지라 해당 자리에 앉은 참여자를 대상으로 '보이루'가 무슨 뜻인지 물어보며 수업을 시작했다. 남성 청소년들은 힘껏 억울해하며 '보이루'는 '보겸 하이루'라는 뜻이라며 결백함을 주장했다.

"정말 그 뜻으로만 쓰이나요?"라고 묻자 곧 다른 친구들이 웃으며 '이상하게' 쓰는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유하'(유튜브 하이의 줄임말)처럼 '보이루' 역시 인사말로 쓰이고 있음을 잘 알고 있지만 지금 이곳에 보겸이 있는지, 보겸 동영상을 보고 있지 않던 상황에서 '보이루'가 누군가에게 어떻게 들릴 수 있는지 물어봤다.

분명 '일부'가 이상하게 쓰는 것이라고 했지만, 그런 쓰임이 단순히 '일부' 누군가의 의도를 넘어 사회적 영향으로 개인에게 어떻게 미칠 수 있는지, 이에 대해 고민하기 위해 '혐오표현'을 알아보겠다고 한 후 2교시를 열었다.

여성이 군대에 간다면 성평등한 사회가 될까

혐오표현을 이해하기 위해 '행간'을 읽는 것과 맥락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데, '조센징'만큼 쉽고 직관적인 방법은 없다. 물론 이게 우리 안의 민족주의를 자극하는지라 사용하고 싶지 않았지만, 중등 교육 수준에서 이만큼 적절한 예시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차별에 대한 공감 능력이 가까운 곳에서부터 출발하여 더 너르게 확산할 수 있다고 믿으며 혐오표현의 문제를 차근히 짚었다. 막바지에 성평등한 사회를 위한 실천에서 또다시 참여자들의 목소리가 봇물 터지듯 나왔다.

처음에는 뻔하게 "처벌을 강화한다", "성차별 발언하는 사람을 지적한다" 등의 이야기를 하다가, 뒤쪽에 앉아 있던 참여자의 "군대에 같이 가는 것"이라는 발언을 시작으로 '군대' 이야기가 터져 나왔다.

군대에 다녀왔는지, 군대는 어떤 곳인지, 군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 흥분한 참여자를 가라앉히며 군대에서 겪은 경험을 이야기했다. 우선 얼마나 비참하고 불행한 경험이었는지를 언급했다. 이어 군대에 같이 가는 것이 과연 성평등을 '위해' 필요한 것인지, 그 전에 군대에 왜 가야 하는 것인지, 그리고 왜 군대에 남성만 가게 된 것인지 등을 물었다.
 
모병제추진시민연대 회원들이 4월 30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징병제 폐지, 강제 예비군 훈련 폐지, 군 복무자에 대한 배상, 군 의문사 진상 규명 등을 촉구하고 있다.
 모병제추진시민연대 회원들이 4월 30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징병제 폐지, 강제 예비군 훈련 폐지, 군 복무자에 대한 배상, 군 의문사 진상 규명 등을 촉구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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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 대해서는 다들 국방의 의무를 이야기하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참여자들의 반응을 생각하며 "그렇다면 다른 나라는?", "적도 많고 전쟁도 많이 하는 미국은 어떻게 군대를 유지하는지", "모병제는 무엇인지"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물론 그게 완벽하고 나은 대안이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징병제의 나라에서 징병제 외 대안을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이들에게 다른 나라를 돌아보게 하는 것만으로, 자신들이 처음에 가지고 있던 불만이 얼마나 단편적이고 왜소한 고민이었는지 생각해볼 수 있게 되는 것 같았다.

이후 왜 남자만 가게 되었는지를 물었다. 그런 결정을 한 것은 과연 누구였을까? 많은 참여자가 그런 결정 역시 남성들의 결정이었음에 동의하면서, 이것이 결국 성별고정관념에 기인하고 있음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렇다면 결국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 다시 물었다. 한 참여자가 반사적으로 '군 가산점제'를 이야기 했다. 공무원이 될 생각이 없다는 청소년의 대답이었다. 이에 군 가산점제의 허점을 설명하며, 여기에서 불만을 이야기하는 남자 청소년에게 진짜로 필요한 것은 군 가산점제와 같은 기만이 아닌 안전하고 평등한 군대 문화 그리고 정당한 경제적 보상과 대우가 아니겠냐고 말하며 마무리했다.

나아질 수 있다는 가능성

남자 청소년에겐 분명 막연한 불만과 반발심이 있다. 하지만 그게 정말 성차별을 단단하게 뿌리 내리고 있어서 변하지 않는, 악의에 가득 찬 반발이라기보다 결국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이해받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된 반발심이다. 그리고 누구도 답해주지 않았기에, 자세히 이야기해준 적 없기에 그저 흔하게 돌아다니는 잘못된 정보를 무의식중에 보고 듣고 배운 언어들인 것이다. 그래서 한 꺼풀만 벗겨 보면 그 안에는 나아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 보인다.

강의가 끝난 후 한 참여자가 강의 안에 숨겨진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를 보고 거부반응을 보였다. 참여자의 "페미니스트 역겨워요"라는 말에 나는 "저 페미니스트인데 역겨워요?" 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멋쩍은 웃음과 함께 당황해했다.

참여자들과 한바탕 웃고 난 다음 '이런 교육이, 여러분의 고민과 불만을 해소해줄 수 있는 것이 페미니즘이고 페미니스트'라고 마지막으로 말하며 강의를 마쳤다. 당장 어떤 큰 의미를 남기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한 줌의 남성성을 휘두르다 웃음을 산 그 장면이 언젠가, 누군가에게는 기억에 남을 수 있겠지 생각했다. 고작 80분. 1년에 하루. 어쨌든 오늘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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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과 성평등 교육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남함페는 남성연대에 균열을 내고 함께 페미니즘을 공부, 실천하기 위한 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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