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2015년 9월, 시진핑 중국 주석(왼쪽)과 조 바이든 당시 부통령이 메릴랜드 주 앤드류스 공군 기지에 도착해 활주로 위를 걷는 모습. (AP/ Carolyn Kaster)
 지난 2015년 9월, 시진핑 중국 주석(왼쪽)과 조 바이든 당시 부통령이 메릴랜드 주 앤드류스 공군 기지에 도착해 활주로 위를 걷는 모습. (AP/ Carolyn Kaster)
ⓒ 연합뉴스/AP

관련사진보기

 
타이완해협(대만해협)의 긴장이 점차 고조되고 있다. 미국 역시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트럼프와 바이든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상당히 자극했다. 당시 미국은 '홍콩 인권법'(2019년 11월) '위구르 인권정책법' 및 '티베트 정책과 지원법(2019년 12월) 등을 제정함으로써 신장·위구르·티베트·홍콩에 대한 중국의 정책적 기조를 정면으로 건드렸다.

트럼프는 대통령직을 수행하기 전부터 중국을 자극해왔다. 2016년 11월 8일에 당선된 그는 같은 해 12월 2일 차이잉원 타이완 총통과 전화 통화를 해 타이완을 국가로 인정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조 바이든 대통령도 별반 다르지 않다. 미국 시각으로 올해 1월 20일의 대통령 취임식에 샤오메이친 미국 주재 타이베이경제문화대표처 대표를 초청했다. 국교가 단절돼 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주미타이완대사는 아니지만 실질적으로는 같은 역할을 하는 샤오메이친을 초청한 것. 타이완을 실질적인 국가로 대우하겠다는 메시지를 띄운 것이다.

긴장감

이 같은 상징적 조처 말고도 중국의 신경을 자극하는 일들이 많았다. 3월 25일에는 타이완과 미국이 해경 분야의 협력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했고, 28일에는 존 헤네시닐랜드 팔라우 주재 미국대사가 팔라우 대통령과 함께 타이완을 방문했다. 1979년 단교 이래 미국대사가 타이완을 방문한 건 처음이었다.

군사적 긴장도 고조되고 있다. 중국 공군기들이 타이완 방공식별구역을 침범하는 일이 1월 23일·24일·26일과 2월 6일·13일 등에 있었고, 미국의 이지스 구축함인 존매케인함과 미사일 구축함인 커티스윌버호가 타이완해협을 통과하는 일이 2월 4일·24일과 4월 7일 등에 있었다. 미 해군 무인정찰기가 타이완 서남부 공역에 진입하는 일이 2월 6일에 있었다.

타이완이 고고도 대공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를 쏜 일이 4월 22일에 벌어졌다. 6월 26일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에서는 중국이 타이완해협과 동중국해를 감시하는 공군부대에 최신예 스텔스 전투기 '젠-20'을 배치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유사한 사례를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양안의 긴장감은 정치적으로뿐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명확히 고조되고 있다.

중국-대만 사이 변곡점엔 미국이 있었다
  
구글 지도로 본 중국과 대만.
 구글 지도로 본 중국과 대만.
ⓒ 구글지도 갈무리

관련사진보기

 
국민당 정권이 타이완으로 밀려나 두 정권이 양안을 사이에 두고 대립하게 된 1949년 이후로 양쪽 정권은 똑같이 중국대륙에 대한 지배권을 주장했다. 양쪽 공히 자신들의 관점에서 '하나의 중국'을 외쳤다. 2009년에 <아태연구> 제16권 제2호에 실린 경희대 이원봉·임규섭 교수의 논문 '대만의 국가정체성과 양안관계'는 이렇게 설명한다.

"1949년 대만으로 천도한 국민당 정부의 국가정체성은 '하나의 중국'이 주축이 되었다. 당시 대만의 중화민국 정부의 정치적 정통성은 반공복국(反共復國) 정책의 견지를 통한 중국 본토의 중국공산당 정권의 전복이었다."

타이완 역시 만만치 않은 저력을 갖고 있지만, 이 나라가 중국공산당의 지배영역을 빼앗아 복국에 성공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런데도 국민당 정권이 이런 주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대륙을 빼앗긴 것으로 인한 상실감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세계 냉전질서로 인해 조성된 정치환경 때문이었다. 미국이 타이완을 지탱해주는 구도가 그런 상황을 낳은 것이다.

타이완이 중국통일을 외치던 시절에는 양안간 교류도 불가능했다. 교류의 물꼬가 트인 건 1979년부터다. 베트남전쟁에서 밀리게 된 미국이 중국과의 협력으로 아시아·태평양 패권을 유지하겠다는 전략을 수립하면서 변화가 생겼다.

아시아 강대국과의 협력 없이 이 지역 패권을 유지하기 힘들어진 미국은 중국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일련의 작업을 벌였다. 1969년에는 핵확산금지조약(NPT)의 예외 조항을 통해 중국의 핵 보유를 인정하고, 1971년에는 타이완이 갖고 있던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자리의 중국 몫을 대륙 중국에 넘겼다. 1978년 12월에는 타이완과 단교하고 1979년 1월에는 중국과 수교했다.

미국이 타이완을 위축시킨 상황은 양안관계의 변화를 초래했다. 타이완과 중국이 종전의 강경한 태도에서 한 발씩 물러남에 따라 양안간 교류가 가능해졌다. 중국은 종전의 무력통일 원칙보다는 평화통일 원칙을 내세우고, 타이완은 반공복국보다는 현상 유지로 가닥을 잡아가게 됐다. 이는 양쪽 국가가 교류·협력을 통해 현실적 이익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만들었다.

이 상황이 유지된 데는 1979년 이후 미국이 취한 '전략적 모호성'도 크게 기여했다. 위 논문은 "미국은 기본적으로 중국식의 통일 논리와 대만식의 독립 논리를 모두 반대하면서 형식적으로 '대만은 중국의 불가분한 일부분'이라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하고 실질적으로는 대만의 자주·독립적 존재를 인정하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왔다"라고 분석한다.

중국식 민족주의 탈피를 꿈꾼 타이완

세력균형이 유지되는 속에서 양안은 1992년에 하나의 중국 원칙에 상호 합의하는 '92공식'을 도출한다. 속뜻은 다를지라도 '우리는 하나다'라는 인식의 합치를 이뤄낸 것이다. 92공식에서 양국은 하나의 중국을 대표하는 정부가 어느 쪽인지는 각자의 해석에 맡기기로 했다. 지속적인 교류·협력 속에서 양국이 상호 공존을 인정하는 방향을 설정한 것이다.

하지만 리덩후이 총통의 재임 중이던 1995년부터 양안관계는 예전처럼 악화되기 시작했다. 자주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타이완에서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개인 자격이기는 하지만, 미국이 리덩후이의 미국 방문 비자를 발급하는 일도 있었다. 이 때문에 타이완해협의 긴장은 다시 고조됐고, 중국이 미사일 발사 훈련 등을 통해 긴장을 고조시키는 양상이 눈에 띄게 강해졌다.

리덩후이는 국민당 주석 출신의 총통이고 국민당은 대륙 지향적 의식을 갖고 있는데도 1990년대 중반부터 국민당 정권이 대만의 독자노선을 추구한 것은, 1990년을 전후한 세계적 탈냉전의 영향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냉전질서의 현저한 와해로 인해 세계 곳곳에서 국가권력이 상대적으로 약해지고 대중의 힘이 이전보다 강해졌다. 이는 중국식 민족주의로부터 탈피하려는 타이완 대중의 욕구를 강화시켰다. 이것이 1995년의 변화를 설명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또 양안을 하나의 중국으로 묶어주던 미국의 전략적 모호성이 냉전 해체와 미국의 영향력 약화로 힘을 잃게 된 데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예전처럼 조정 능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된 미국이 타이완 대중의 자주노선에 동조하는 경향을 보인 게 양안관계 악화에 영향을 끼쳤다.

오늘날의 양안 상황은 기본적으로 1995년 이후에 형성된 토양 위에서 전개되고 있다. 2008년에 국민당 출신의 마잉주 총통이 당선된 후로 양안관계가 일시적으로 개선되기는 했다. 하지만 독자노선에 대한 타이완인들의 열망이 점차 견고해져 양안관계가 점차 악화되는 흐름을 보인다. 민진당 출신의 차이잉원 총통이 2016년에 이어 2020년에도 당선된 건 타이완의 반중국 혹은 독자노선이 상당한 기반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 역시 점점 더 단호해지고 있다. 시진핑 시대 들어 G2의 단계에 돌입한 중국은 더욱 더 과감하게 타이완을 대하고 있다. 2020년 <국제·지역연구> 제29권 제4호에 실린 지은주 고려대 연구교수의 논문 '시진핑 집권 이후의 중국의 대만정책과 양안관계'는 "시진핑 집권기 중국은 대만에 대해 효과적인 압박을 가할 수 있는 군사력과 경제력을 가지고 있으며, 대만과 경제교역을 위한 충분한 매력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군사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타이완을 제압하거나 유인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시진핑은 타이완 내부의 여러 세력을 상대로 맞춤형 정책도 펼치고 있다. 위 논문은 이렇게 설명한다.

"국민당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마잉주 집권 시기에는 양안 교류를 통한 혜택을 확대하였으며, 고위급 정치회담을 성사시켜 양안 최초의 정상회담이 이루어졌다."

"민진당에 대해서는 경계와 강경을 유지하고 있다."

"대만 주민에 대한 전략은 그 지원의 대상과 내용이 확대되면서 점차 중요성을 더해가고 있다. (중략) 시진핑 집권 이후에는 중소기업·청년·사회보장계층으로 대상이 대폭 확대되었고, 지원의 내용 또한 심화되었다."


한국은? 
 
2017년 7월 11일, 중국의 항공모함 '랴오닝'이 11일 홍콩을 떠나고 있는 모습. 대만 국방부는 '랴오닝' 항모 전단이 2017년 7월 12일 새벽 대만 방공식별구역(ADIZ)에 진입한 뒤 대만해협 중간선을 따라 북서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며 전단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 중국 "랴오닝" 항모 전단, 대만해협 거쳐 귀환  2017년 7월 11일, 중국의 항공모함 "랴오닝"이 11일 홍콩을 떠나고 있는 모습. 대만 국방부는 "랴오닝" 항모 전단이 2017년 7월 12일 새벽 대만 방공식별구역(ADIZ)에 진입한 뒤 대만해협 중간선을 따라 북서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며 전단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현재는 과거와 달리 미국이 양안 대결을 부추기는 역할을 하고 있다.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면서 현상유지에 주력하던 예전의 미국이 아니다. '하나의 중국'을 흔들고 타이완을 지원하는 식으로 양안의 위기를 증폭시키는 모양새다.

미국은 타이완과 중국의 관계 악화를 부추길 뿐 아니라, 매케인함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군사적 방법으로 중국을 직접 자극한다. 미국은 작심한 모습으로 중국을 적대하고 타이완을 편들고 있다. 기존의 세계 최강국이 신흥 강대국을 이런 식으로 자극하면 패권전쟁의 발생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설상가상으로 일본까지 미국·타이완을 편들면서 양안관계에 개입하고 있다. 제국주의 일본의 침략을 받은 경험 때문에 일본에 대한 증오심이 이만저만이 아닌 중국인들을 한층 더 자극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일본의 개입은 긴장을 더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미·중이 양안에서 전쟁이라도 벌인다면? 한국도 심대한 영향을 피할 수 없을 듯하다. 이미 그 가능성이 제시된 바 있다. 

지난 5월 폴 라카메라 주한미군사령관 후보자는 미 상원 군사위원회 인준청문회 서면답변에서 "미군의 글로벌 역할과 한국군의 점점 커지는 국제적 범위를 감안할 때 한반도를 넘어선 동맹 협력의 기회가 생겨나고 있다"며 "주한미군은 인도태평양사령관에게 역외 비상상황과 역내 위협에 대한 대응을 지원할 선택지를 만드는, 다양한 능력을 제공할 독특한 위치에 있다"고 밝혔다. 타이완해협에서 미중간 물리적 갈등이 촉발된다면 한국이 연루될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 

게다가 휴전선 이북으로는 쉽게 갈 수 없어 사실상 섬나라나 마찬가지인 한국 기업들은 타이완해협에서 문제가 터지면 해상을 통한 외부세계와의 교역에서 지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지금 양안 관계가 낙관을 기대하기 힘든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태그:#양안관계 , #타이완해협, #대만해협, #하나의 중국, #미중관계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