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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한 카페의 배훈천 사장님께 공개 편지를 올린 날, 종일 학교 교무실 전화가 불이 났다.  그의 주장을 반박하려다 공개한 학교 이름이 화근이 되었다.
 광주 한 카페의 배훈천 사장님께 공개 편지를 올린 날, 종일 학교 교무실 전화가 불이 났다. 그의 주장을 반박하려다 공개한 학교 이름이 화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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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광주 한 카페의 배훈천 사장님께 공개 편지를 올린 날, 종일 학교 교무실 전화가 불이 났다. 편지글 마지막에 학교 이름을 밝힌 게 화근이었다. 상대방이 가게의 이름까지 실명을 밝힌 마당에, 그의 주장을 반박하려면 학교 이름을 공개하는 게 마땅하다고 봤다. ( [관련 기사] 그땐 노무현 탓이라더니, 이젠 모든 게 문재인 탓? http://omn.kr/1tz8o )

오전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로 돌아오니 날 쳐다보는 동료 교사의 눈빛에 원망이 가득했다. 몇몇 분이 전화를 받았다가 영문도 모른 채 아침부터 욕설을 들었다며 마뜩잖아했다. 비슷한 통화가 몇 차례 반복되자 외부 전화는 당분간 받지 말라는 교감의 지시가 내려왔다고 했다.

"당신이 그 선생이야?"

나 역시 그때까진 이유를 몰라 어리둥절했다. 책상 위 전화기 화면엔 부재중 전화가 7통이 왔다는 메시지가 떠 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전화기는 울렸고, 화면에는 02로 시작하는 전화번호가 찍혔다. 수화기를 들자 다짜고짜 이렇게 물었다. "당신이 서부원 선생이야?"

"네"라고 대답한 게 내가 할 수 있는 말 전부였다. 그는 대꾸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차마 여기에 옮겨적을 수 없는 거친 욕설이 태반이라, 참다못해 통화 내용을 녹음해도 되겠느냐고 여쭸더니, 그는 "선생 주제에 까불지 마라"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수화기를 내려놓기가 무섭게 외부 전화가 계속 걸려왔다. 동료 교사들이 나를 대신해 두 시간 넘게 이런 전화를 응대해야 했다는 걸 생각하니 너무나 미안했다. 이후 생소한 휴대전화 번호와 032, 041, 053 등으로 시작되는 다른 지역 번호를 볼 때마다 호흡을 가다듬어야 했다.

'유탄'은 애꿎은 행정실 직원들과 학교장에게까지 떨어졌다. 행정실 직원들은 교무실에서 받지 않으니 대신 당겨 받은 것일 뿐인데 느닷없는 욕설을 들었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또 학교장은 소속 교사들 제대로 관리하라는 훈계까지 들어가며 봉변을 당한 모양이었다.

물론, 개중에는 공감한다며 격려와 응원을 보내준 전화도 있었다. 굳이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세 명 중 한 명 정도는 '아군'이었다. "선생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는 학생들이 부럽다"는 과분한 찬사까지 받았다. 부끄러웠지만, 적어도 그 순간엔 철없이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했다.

반론을 듣는 건 배움의 기회가 되지만, 언성을 높인 막무가내식 항의라면 배움은커녕 불쾌함만 남게 된다. 더욱이 아침부터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욕설은 인간에 대한 환멸감까지 느끼게 했다. 종일 "네, 네" 하고 말았지만, 마음 같아선 똑같은 욕설을 되돌려주고 싶었다.

동료 교사들의 지적
 
  
전화기 앞에서 연신 굽실거리는 모습이 안타까워 보였던지, 동료 교사들은 "토론을 벌여 설득될 사람이었다면 아침부터 그런 전화를 했겠어?"라며 위로를 건넸다.
 전화기 앞에서 연신 굽실거리는 모습이 안타까워 보였던지, 동료 교사들은 "토론을 벌여 설득될 사람이었다면 아침부터 그런 전화를 했겠어?"라며 위로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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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화기에 대고 그들과 언쟁을 벌일 순 없었다. 좋은 내용도 아닌데 통화가 길어지면 옆자리 동료 교사들에게 민폐인 데다, 다음 수업에 지장을 줄 수 있어서다. 무엇보다도 무시로 욕설을 내뱉으며 대꾸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그들이 내 말을 들어줄 리 만무하다는 생각에서다.

"바로 끊어버릴 일이지, 그따위 돼먹지 않은 사람들을 일일이 상대해줄 필요 없잖아.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그런 사람들과는 애초 말을 섞지 않는 게 상책이야. 토론을 벌여 설득될 사람이었다면 아침부터 그런 전화를 했겠어?"

전화기 앞에서 연신 굽실거리는 모습이 안타까워 보였던지, 동료 교사들이 위로 삼아 내게 건넨 말이다. 그들의 어처구니없는 주장에 동의하는 것도 아니고, 수화기에 대고 그들을 설득하려는 건 더더욱 아니다. 단지 그들의 분노를 일단 누그러뜨려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잖아도 귀청이 떨어질 것 같은데, 거기에 대고 따지려 든다면 그들의 언성이 더 높아질 게 뻔하다. 차라리 일단 사과를 표하든 맞장구를 쳐주든 화를 가라앉힌 뒤 메일 주소라도 받아 반박하는 글을 써 보내는 게 낫다는 게 지론이다. 분노는 이성과 태생적으로 상극이다.

"아이고, 성인군자 나셨네. 그런다고 그들의 생각이 바뀔 것 같아? 그들은 이미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사람들이야. 머리가 굳어진 그들을 논리적으로 설득하려는 건 부질없는 짓이야. 사람은 고쳐 쓰지 못한다는 옛말, 틀린 것 하나 없어."

언뜻 매몰차게 들리긴 해도, 동료 교사들의 지적은 옳다. 이번 일 말고도 항의성 민원 전화를 종종 받게 되는데, 그때마다 샌드백처럼 흠씬 두들겨 맞고 통화가 마무리되는 게 다반사였다. 상세한 답변을 드리겠다며 메일 주소를 여쭈면, 그럴 필요 없다고 되레 화를 내곤 한다.

한번은 간신히 메일 주소를 받은 뒤 장문의 답장을 보낸 적이 있다. 분량도 분량이지만, 글투를 고치고 다듬느라 적잖은 시간이 걸렸다. 일목요연하게 답변하려면, 통화 중에 항의 내용을 꼼꼼하게 메모하는 게 필수다. 소홀했다간 오해가 풀리기는커녕 갈등만 더 키울 수 있다.

그와 필담으로라도 토론을 벌일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있었다. 생각이 다를지언정 그의 주장에도 나름 합리적인 구석은 있을 거라 여겨서다. 온갖 정성을 다해 답변을 보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답장은 오지 않았다. 메일 창에는 '읽음'이라고 표시돼 있는데도 반응이 없었다.

같은 주소로 답변을 부탁한다며 다시 짤막한 메일을 보냈다. 주변에선 이런 내 방식의 '말 걸기'를 하나같이 '바보짓'이라 했다. 그럴 시간에 '자기편이나 더 살뜰히 챙기라'고 말했다. 그들을 설득하는 건 개신교 신자를 이슬람교로 개종시키는 것만큼 힘든 일이라고 비유했다.

포기는 빠를수록 좋다고도 했다. 애초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과 언쟁을 벌이기보다 뜻이 맞는 사람들과 의기투합하는 것이 백배 더 이롭다는 것이다. 나아가 우리 사회에서 찬반 토론은 주제와 상관없이 우격다짐의 말다툼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들과의 '교집합'을 찾아야 한다
   
서로 등을 돌린 채 평행선만 달리다 보면 그 끝은 파국이다. 대화와 토론이 사라지면, 상대방은 순식간에 적이 되고 만다. 공존해야 한다면, 그들과 만나기 위한 노력을 멈춰선 안 된다.
 서로 등을 돌린 채 평행선만 달리다 보면 그 끝은 파국이다. 대화와 토론이 사라지면, 상대방은 순식간에 적이 되고 만다. 공존해야 한다면, 그들과 만나기 위한 노력을 멈춰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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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그들과 대화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현실을 외면한 채 이상만 추구하는 헛똑똑이라는 조롱을 들으면서까지 매달리는 이유가 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라서다. 그들의 말마따나,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면, 교육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서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도 어디까지나 교육의 산물이다. 나이 기준을 확정하는 것도 우습다. 예컨대, 고쳐 쓸 수 있는 나이를 성년과 미성년의 경계인 만 19세로 규정할 수 있을까. 너무 어리다면 30세? 그도 아니라면, 생애 전환기라는 40세가 타당할까?

사람들은 가랑비에 옷 젖는 식으로 조금씩 변해간다. 식성도, 기호도, 가치관까지도 세월을 따라 시나브로 달라지고 굳어진다. 외딴 무인도에 홀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면, 배움과 경험을 통해 '사회적 동물'이 돼가는 것이다. 한자어인 인간(人間)도 사람들끼리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뜻 아닌가.

불구대천의 원수가 아닐진대, 어떻게든 그들과의 '교집합'을 찾아야 한다. 서로 등을 돌린 채 평행선만 달리다 보면 그 끝은 파국이다. 대화와 토론이 사라지면, 상대방은 순식간에 적이 되고 만다. 공존해야 한다면, 그들과 만나기 위한 노력을 멈춰선 안 된다.

광주의 한 카페 배훈천 사장님을 인터뷰한 기사를 봤다. 그 역시 며칠 동안 '버러지 같은 X'이라는 막말까지 들어야 했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인터뷰 기사에 실린 그의 해명이 여전히 황당하긴 해도, 그를 향한 맹목적 비난엔 반대한다. 대화의 끈이 끊어질까 두려워서다. ( [관련 기사] "문 정부 비판했다가 버러지 소리 들어... 불편함 느꼈다면 죄송" http://omn.kr/1u0ge )

물론 '기계적 중립'을 주장하려는 건 아니다. 여전히 그의 발언은 상식적이지 않고 편향돼 있다고 확신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입을 닫게 하는 건 우리 사회에 득이 될 게 없다. 어떻게든 말을 섞지 않으면 서로의 뇌리에는 '종북 좌빨'과 '수구 꼴통'이라는 증오만 남게 된다.

오늘도 그의 답장을 기다리고 있다. 그와 같은 곳을 바라보는 '동지'는 될 수 없을지라도, 적어도 함께 살아갈 '이웃'은 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의 생각을 읽다 보면, 아침부터 교무실에 전화를 걸어 온갖 욕설을 쏟아낸 이들의 마음까지도 헤아려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사족. 다짜고짜 "너 전교조지? 대깨문이지?"라며 퍼붓는 비난엔 끝내 참지 못하고 대들었다. 함부로 넘겨짚지 말라고 했더니, "오마이뉴스라는 이름이 증거"라고 쏘아붙였다. 심지어 어떤 분은 느닷없이 "북에 가라"며 언성을 높였다. 순간 어안이 벙벙했지만, 어디엔가 그 무엇이든 그들과의 '교집합'은 있으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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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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