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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중앙통신은 1월 10일, 전날 열린 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당 중앙위원회 사업총화 토론과 당 중앙검사위원회 사업총화, 당 규약 개정이 이뤄졌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당 대표증을 들고 의결 중인 김정은 당 위원장과 박봉주 당 부위원장(왼쪽부터), 리병철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최룡해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 김덕훈 내각총리, 박정천 군 총참모장.
ⓒ 노동신문 홈페이지 캡처	관련사진보기

 
조선노동당 제8차 당대회 5일 차인 지난 1월 9일의 당규약 개정 때 총비서뿐 아니라 '제1비서'도 함께 신설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노동당 규약 제26조에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는 해당 시기 당 앞에 나서는 중요한 문제들을 토의·결정하며,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과 정치국 상무위원회를 선거하며 당중앙위원회 제1비서·비서들을 선거하고 비서국을 조직하며 당중앙군사위원회를 조직하고 당중앙검사위원회를 선거한다"는 문장과 더불어 "당중앙위원회 제1비서는 조선로동당 총비서의 대리인이다"라는 문장이 들어갔다고 한다.

노동당 제1비서는 북한 지도부의 여느 구성원과 달리 총비서 권한을 대행할 수 있는 독특한 지위다. 직무대행 권한을 일시적이 아니라 상시적으로 수행하는 자리다. 단순히 1인자 밑에 있는 2인자 정도가 아니라 1인자를 상시적으로 대리하는 직책이다. 2인자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자리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제1비서를 총비서의 지명이 아닌 중앙위원회의 선거로 뽑도록 했다. 독자적인 민주적 정통성을 갖추도록 한 것.

김정은 총비서도 2012년부터 4년간 제1비서 직함을 사용했다. 하지만 그때의 제1비서는 최고지도자였고, 이번의 제1비서는 최고지도자의 대리인이다. 새로운 타이틀이 노동당에 등장한 것이다.

색다른 일 

이 같은 변화는 그간 김정은이 보여준 모습을 감안하면 상당히 색다른 일이다. 2인자에 대한 그의 태도를 고려하면 꽤 의미 있는 일이라고 평할 수 있다.

북한 언론에서는 2인자에 관한 보도가 나오기 힘들다. 그러므로 북한 지도부나 고위층은 자신들이 목격하는 상황과 한미일 언론에 나오는 2인자 보도를 비교·대조하면서 2인자 문제에 대한 관념을 형성할 수밖에 없다. 2인자로 거론됐거나 그 물망에 올랐던 인물들은 김여정 이외에도 여럿이다. 장성택과 최룡해·김영철·황병서 등도 이 범주에 포함된다.

그런데 속칭 '2인자'들이 잘 된 일은 아직까진 없었다. 그런 사람들은 위신이 깎이거나, 정치적 부침을 겪거나, 참혹한 최후를 겪었다.

김정은 고모부인 장성택은 한때 정권 2인자로 불렸지만, 장인인 김정일의 사망 2주기를 5일 앞둔 2013년 12월 12일 처형됐다. 김여정은 지난 1월 5일의 제8차 당대회 개회 이전만 해도 외부 언론들에 의해 후계자 물망에 올랐지만, 당대회를 거치면서 오히려 강등되고 말았다.

최룡해·김영철·황병서 등도 2인자로 거론된 뒤에 안 좋은 일을 겪었다. 2017년 4월 <북한>에 실린 문순보 자유민주연구원 안보전략연구실장의 기고문 '김정은의 용인술과 북한 엘리트의 동요'는 이렇게 말한다.
 

최룡해는 김정은 집권 초기 총정치국장 자리에 오르며 2인자 소리를 듣기도 했으나 2014년 5월 황병서에게 밀려났고, 2015년 11월에는 숙청돼서 혁명화 조치를 받고 지방 농장으로 3개월 동안 좌천당했다가 복귀한 바 있다.

김영철 통일전선부장 또한 지난해(2016년) 7월 지방 농장에서 혁명화 조치를 겪었다.

북한에서 2인자(2017년 연초 기준) 위상을 지니고 있는 총정치국장 황병서조차도 자신의 의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낮은 자세로 꿇어앉아 왼손으론 입을 가리며 김정은에게 공손하게 말을 건네는 모습이 보도되기도 했다.

 
김정은에게 과도한 공손함을 보였던 황병서도 지금은 2인자로 거론되지 않는다. 그런데 1949년생인 황병서가 공개 장소에서 보여준 모습은 그의 자발성에도 기인했겠지만 무엇보다 김정은이 허용하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북한 내부에서든 외부에서든 2인자로 거론되는 인물이 그런 모습을 연출할 수 있는 분위기를 묵인했다는 건 권력 문제에 대한 김정은의 인식을 보여주는 장면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그처럼 2인자로 거론됐던 사람들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는 사례가 많았다는 것은 2인자에 대한 김정은(혹은 최측근들의) 인식을 반영하는 것일 수 있다. 김정은 정권은 2인자가 살아남기 힘든 환경 속에서 구축돼 있다고도 분석할 수 있다.

2인자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던 김정은 정권의 지난 날을 감안할 때, 제1비서 자리 신설은 독특한 일이다. 단순한 2인자의 위상을 훨씬 뛰어넘어 최고지도자의 대리인 위상을 갖는 자리를 만든 건 그간의 모습과는 대조를 이루는 일이다.

그동안 북한은 노동당규약과 헌법을 수시로 바꾸면서 정치 시스템을 정세변화에 유연하게 적응시켜왔다. 이를 감안하면, 이번 제1비서직 신설은 후계구도를 위한 측면도 있겠지만 당면한 현실에 대한 대응 측면을 보다 강하게 보인다고 해석해도 무방하다.

'보이지 않는 코로나'와의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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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은 4월 6일 수도 평양에서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참석한 가운데 "당 최말단" 세포비서 대회를 개최했다고 7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사진은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세포비서대회에서 개회사를 하는 모습.
ⓒ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지금 북한은 전혀 새로운 환경에 처해 있다. 지난 70년간 북한을 압박한 미국의 대북 제재에 더해 '코로나 19의 대북 제재'까지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 물론 코로나 19 확진자는 보고되지 않았지만, 코로나로 인해 종전보다 훨씬 힘든 경제적 난관에 직면해 있는 건 사실이다.

최근 북한 언론에서는 기층 민중에 대한 당 지도부의 접근 노력이 많이 보도되고 있다. 이들에 대한 김정은의 관심도 꽤 높아 보인다.

일례로 그는 4월 7일 당 기층 조직 리더들의 회합인 세포비서대회 폐회사를 통해 고난의 행군을 언급했다. 또 같은 달 29일엔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 제10차 대회에 보낸 서한에서 15년짜리 경제 로드맵을 강조했다.

이런 활동들과 더불어 민중의 정치사상을 단속하기 위한 움직임이 북한 언론에 자주 포착된다는 것은, 코로나로 인한 경제사정 악화가 북한 민심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같은 현상은 북한 정권이 볼 때 새로운 위협이다. '보이는 미국'의 대북 제제에 맞서 국민 단결을 이루는 데 익숙한 북한 정권으로서는 '보이지 않는 코로나'가 미국 못지 않게 북한을 제재하는 지금 상황에 대해 당혹감을 품을 수밖에 없다.

또 코로나 사태 와중에 세계 주요 국가의 지도자들이 잇달아 낙마하는 현상도 김정은이 볼 때는 위험한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미 낙마한 도널드 트럼프나 아베 신조 외에도 러시아·인도·브라질 같은 대국의 지도자들도 리더십 위기를 겪고 있다. 러시아의 경우, 외형상으로는 야권 지도자 나발니에 대한 탄압 때문에 반(反)푸틴 정서가 확산됐지만, 그런 정서가 쉽사리 형성될 수 있었던 데는 코로나 19로 인한 민심이반이 적지 않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코로나로 인해 북한이 경제적 난관에 처할 뿐 아니라 세계 주요 국가의 리더십이 함께 동요하는 현상도 제1비서 신설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있다.

정치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김정은?

총비서 대리인인 제1비서가 선출돼 있는 상태에서 경제 문제나 대미관계에서 중대한 패착이 일어난다면, 제1비서가 일차적 책임을 지는 일이 자연스럽게 된다. 제1비서 신설로 인해 총비서의 실무 장악력은 당연히 떨어지겠지만, 총비서가 정치적 책임으로부터 상당 부분 자유로워질 수 있게 된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 상황에서 김정은 정권이 예측불허 상황을 돌파하는 데 이 자리가 적지 않게 기여할 가능성이 있다.

2인자에게 결코 우호적이지 않은 김정은 정권이 김정은의 복제판이나 다름없는 제1비서를 신설한 데는 그 같은 정치적 고려도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미증유의 위기 상황 앞에서 김정은을 보호하기 위해 제2, 제3의 김정은을 복제해둘 가능성을 열어뒀다는 점에서 제1비서직 신설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