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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방과 연간 500파운드가 필요하다.' 영국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는 자신의 책 <자기만의 방>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망원동에서 나만의 방을 꾸려가는 여성 사장님들을 만나봤습니다. 그들에겐 자기만의 방 그리고 무엇이 필요할까요.[편집자말]
'랜딩엠' 눈떡과 테이크아웃 포장용기
 "랜딩엠" 눈떡과 테이크아웃 포장용기
ⓒ 박혜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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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8시, 손님이 두 명만 남은 카페 안. 거리가 어두워지면서 손님들의 발걸음이 뜸해졌지만 카페 사장님은 오히려 더 분주해졌다. 미처 못한 설거지를 마치고, 큰 냄비에 떡을 쪘다. '칙칙' 소리를 내면서 떡이 쪄지는 동안 사장님의 남편이 카페에 도착했다. 떡 만드는 것을 돕기 위해 퇴근하자마자 카페에 온 것이다. 떡이 다 쪄지자 이들 부부는 본격적으로 떡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1시간 반이 흘러, 만든 떡을 냉동실에 넣어두고서야 작업이 끝났다. 앙금을 미리 만들어 둔 덕분에 오늘은 일이 유난히 일찍 끝났다는 그는 "보통은 10시에서 10시 반에 퇴근한다"고 말했다.

지난 5월 26일 방문한 카페, 랜딩엠의 풍경이다. 랜딩엠은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 위치한 카페로 지난 4월에 문을 열었다. 직접 만드는 아이스월병 떡이 가게의 상징이다. 이제 '사장님' 2개월차인 박혜성(36)씨는 식사를 했냐는 질문에 "먹는 와중에 손님이 올까봐 불안해서 집에 가서 늦은 저녁 식사를 한다"며 "하루에 한 끼를 먹는다"고 답했다. 식사도 못한 채 오전 10시 반에 출근해 오후 10시 반에 퇴근하는 일상이다. 카페를 열고난 후, 5월 5일 단 하루 온전히 쉬어봤다고 했다. 

하루 12시간을 꼬박 카페에 쏟아부으면서도 그는 "카페를 통해 사람들을 만나는 게 재밌다"고 말했다. 그는 원래 "인간관계가 힘들어" 7년 여를 다니던 디자인 회사를 그만뒀다고 한다. 그런데 불과 두 달여 만에 "사람들과의 만남이 카페를 지속하고 싶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말하게 됐다. 그 배경에는 "젊은 사람이 사업하는데 도와줘야 한다"며 손님을 올려 보내주는 근처 미용실 사장님, "되게 힘든 날 맥주 한 잔을 건네준" 건너편 사장님, "가게 강아지가 심심할까 산책 시켜줘도 되냐 묻는" 손님들이 있었다.

그는 떡을 나누는 것으로 보답한다. 60개 떡을 만들어 30~40개를 팔고 나머지는 거의 나눠드린다고했다. "취업 합격 전화를 받은 손님에게 선물로 떡을 잔뜩 싸드리"고, "회사에서 너무 힘들었다고 우는 분에게 위로의 떡을" 드렸다.

두 달 동안 '사람'을 쌓아나간 그는 현재 자신만의 취향대로 카페를 꾸며나가고 있다. 떡을 담아주는 접시 하나에도 그의 취향이 담겼다. "마음에 드는 접시를 찾기 위해 다 사다 보니 집에 접시가 잔뜩 쌓여있다"고 했다. 떡을 담아갈 수 있는 테이크아웃 포장용기에도 그의 손길이 닿았다. 그는 "회사를 다니면 마음대로 디자인할 수 있는 기회가 흔하지 않은데, 이건 내 마음대로 다 해봤다"라며 웃었다. "생각지 못했던 힘듦이 많아 과연 오래 버틸 수 있을까 싶다"면서도 자신의 카페에 대한 애정을 감추지 못하는 그와 지난 5월 7일, 5월 26일 두 차례에 걸쳐 얘기를 나눴다. 다음은 그와의 인터뷰 일문일답이다.

"인간관계가 힘들어 퇴사했는데, 내 카페 열고보니..."

- 창업하기 전에 어떤 일을 했나요?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7년 동안 일하면서 패키지 디자인(포장 디자인)을 했어요. 제가 디자인을 좋아해서 업무 자체는 잘 맞았는데 인간관계가 힘들었어요. 그 스트레스가 감당이 안돼서 결국 다른 디자인 회사로 이직했죠. 거기서도 인간관계로 힘들더라고요. 그러니까 '내가 문제인가?' 싶은 거예요. 그렇게 3개월 만에 이직한 회사도 그만두고, 제가 디자인한 제품을 온라인에서 판매했어요.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장사가 계속 안 되니까, 돈 문제를 떠나 자존감이 계속 떨어지더라고요. 남편도 디자인 일을 하거든요. 디자인은 제가 더 잘한다고 생각했는데(웃음) 막상 벌이가 없으니... '회사가 좋았다, 계속 회사 다닐 걸' 이런 생각도 했어요.(웃음)"

- 어떻게 카페 창업을 결심하게 됐나요?

"계속 우울해있는 상태로는 도저히 답이 안나오니까요. '나 새로운 일을 한 번 해볼래' 이렇게 마음을 먹었죠. 제가 남편 생일을 준비하면서 떡을 처음 만들어봤거든요. 제 친구들이 떡을 먹어보더니 이건 팔아야 된다고 하는 거예요.(웃음) 알아봤더니 음식을 팔려면 가게가 있어야 되더라고요. 그러면 이왕 하는 김에 떡만 팔기보다는 카페를 차려야겠다고 생각했죠. '망하면 어때. 난 아직 젊어' 이런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 왜 떡 이름이 눈떡인가요?

"하얀 눈을 뭉쳐서 만드는 느낌이 들어서 그렇게 이름 붙였어요. 이게 원래 인터넷에 검색하면 나오는 아이스월병 레시피였어요. 그걸 제 나름대로 변경하면서 만든 게 눈떡이죠. 원래 레시피는 아무래도 싼 재료들을 쓰거든요. 집에서 만들어 먹기는 괜찮은데 손님들한테 팔기는 부족한 맛이더라고요. 그래서 식용유 대신 버터를 넣었죠. 버터도 싼 버터를 넣으면 맛이 없어요. 비싼 버터를 쓰면 맛있다는 걸 알았는데 다시 싼 걸 쓸 수는 없더라고요. 남들이 보기에는 그냥 단가만 올라갔을지도 모르겠어요. 2000원 후반대에 팔고 있거든요. 그래도 저한테는 맛이 다른 게 느껴지니까요. 제가 먹었을 때 맛이 없는 걸 파는 건 손님들께 죄송해요.

맛 개발하는데 4~5개월 걸렸던 것 같아요. 쑥 맛이 제일 어려웠어요. 쑥을 많이 넣으면 쑥 비린내가 너무 나더라고요. 되게 간단한 것 같은데 그 비율을 찾기가 어려웠어요. 그리고 망원동은 젊은 친구들이 많이 오잖아요.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맛을 만드는데 오래 걸렸죠. 별 맛이 다 나왔었어요. 민트초코도 넣어보고 흑임자에 딸기잼도 넣어봤는데 맛없더라고요. 그렇게 많이 버렸어요.(웃음)"
 
'랜딩엠' 떡 담아주는 트레이
 "랜딩엠" 떡 담아주는 트레이
ⓒ 박혜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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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떡을 담아주는 트레이가 특이하더라고요.

"그거 찾는데 오래 걸렸어요. 딱 마음에 드는 접시가 잘 없더라고요. 그렇게 하나하나 다 사다 보니 집에 접시가 잔뜩 쌓여 있어요.(웃음) 결국 호텔에서 다과 서비스할 때 내어 주는 3단 유리 접시를 참고했죠. '여기에 주면 받는 사람도 기분이 좋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항상 '내가 받는다면 기분이 좋을까?'라는 질문이 기준이 되는 것 같아요. 테이크아웃 포장 용기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잘할 수 있는 게 디자인이잖아요. 회사를 다니면 제 마음대로 디자인할 수 있는 기회가 흔하지 않은데, 이건 제 마음대로 다 해보고 싶었어요."

- 보통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나요?

"11시 반 오픈이지만 10시 반에는 가게에 와요. 가게 오픈 준비를 하죠. 중간 중간에 앙금을 만드는데요. 쑥, 유자 등 재료를 비율대로 넣어서 앙금과 섞고, 그걸 동그랗게 만들어요. 그렇게 9가지 맛을 다 만드는 거예요. 그런데 아무래도 손님들 계실 때 떡을 찌기는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영업시간이 끝날 때쯤 떡을 쪄요. 그전에 우선 떡을 반죽해서 한 시간 동안 숙성을 해놓죠. 숙성된 떡을 찌고, 비닐에 넣어서 치대요. 그래야 떡이 좀 더 쫀득해지거든요. 그런 다음, 그램(g) 수에 맞춰서 떡을 원 모양으로 펴요. 거기에 앙금을 하나하나 싸서 도장틀로 찍으면 완성이에요. 이 과정이 3시간 반 정도 걸려요. 다음날 팔 떡을 다 만들어두고 가야 하니 보통 10시~10시 반 정도에 퇴근하죠. 원래 영업시간은 9시까지지만요."

- 그럼 언제 쉬시나요?

"온전히 쉬는 날이 없어요. 지금까지 5월 5일 하루 쉬어봤네요. 휴무일인 월요일에도 화요일 떡을 만들러 가게에 나와야 해요. 물론 냉동 보관이 가능하니까, 보관해둔 떡을 팔 수도 있지만, 그러면 아무래도 맛이 떨어지니까요. 웬만하면 전날 만든 떡을 팔고 있어요. 식사도 제대로 못해요. 식사 중에 손님이 오실까봐 불안해서 점심은 건너뛰거든요. 전날 팔다가 남은 떡이나 과자 같은 걸로 간단하게 때우고, 집에 가서 늦은 저녁 식사를 하죠. 하루에 한 끼 먹네요. 마흔 이후에는 체력이 유지 될까 싶어서 이 일 못할 거 같아요. 사실 2년도 버틸 수 있을까 싶어요.(웃음) 생각지 못했던 힘듦이 많아요. 장사하시는 분들 정말 대단하신 분들이더라고요. 요즘 확확 느껴요."

- 생각지 못했던 힘듦은 어떤 건가요?

"저는 떡 만드는 게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요. 대량으로 만들고, 사람들한테 평가를 받는 건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한 손님이 가게 와서 떡을 드셔보시고 '아 맛없어, 안먹을래'라고 하신 적이 있거든요. 그날 멘탈이 완전히 나갔어요. 사람마다 입맛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수익적으로도 불안해요. 처음엔 '망하면 어때'였는데 하다보니까 '망하면 안돼'가 되더라고요. 적어도 가게 낼 때 생긴 빚은 갚아야 하니까요. 지금 수익은 딱 임대료 내고, 재료비 맞추는 정도예요."

- 그 외에 고민되는 지점이 있나요?

"제가 서비스 떡을 많이 드려서요. 평일에 보통 60여개 정도의 떡을 만드는데 그 중 평균적으로 30~40개가 팔리거든요. 나머지는 거의 다 나눠드려요. 물론 오픈 기념으로 홍보 차원에서 드리는 것도 있지만, 별 다른 이유 없이 드릴 때가 많아요. 언제 한 번은 갑자기 어떤 손님 분이 전화를 받고 되게 좋아하시더라고요. 슬쩍 가서 '좋은 일 있으세요?' 여쭤보니 취업이 되셨대요. 얼마나 좋아요. 선물로 떡을 잔뜩 싸드렸죠. 어떤 분은 또 회사에서 너무 힘들어서 울었다고 하시길래 위로의 떡을 하나 드렸어요. 그런데 다들 받고 그냥 끝내지 않으시더라고요. 빵이나 과일 같은 걸 자꾸 사오세요. 나누는 재미가 있는 건데 만약 계속 수익이 안 나면 지금처럼 조금이라도 더 드리려고 하는 마음이 생길까 싶어서 고민이에요."

- 여러 힘듦이 있음에도 카페를 지속하고 싶게 하는 원동력은 뭘까요?

"맛있다고 해주시는 손님 분들이죠. 떡을 한 번 사갔던 손님들이 다시 떡을 사러 오시면 그때는 '내가 진짜 잘했구나' 싶어요. 몸은 너무 너무 힘들지만요. 제 결과물에 대한 인정이 좋은가봐요.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는 게 재밌어요. 온라인 판매를 할 때는 집에서 혼자서 일했고, 회사를 다닐 때도 만나는 사람들이 회사 사람들로 한정돼 있었거든요. 그런데 여기는 오시는 분들의 직업도 다르고, 성향도 달라요. 가게를 하면서 배려를 정말 많이 받아요. 오픈한 지 얼마 안 돼서 손님이 없었을 때에도 동네 사장님들이 다 도와주셨어요. 와서 음료 사주시고, 주위에 맛있다고 소문내주셨죠. 이 가게 바로 아래 미용실 사장님은 젊은 사람이 사업하는데 도와줘야 한다고, 가서 음료 사먹으라고 하면서 손님들을 올려보내주셨고요. 근처 네일샵 사장님도 본인 손님들을 다 여기로 보내주셨어요.

한 번은 건너편 술집 사장님이 오셔서 맥주를 한 잔 주셨거든요? 그날 되게 힘든 날이었는데 이거 맛있는 맥주라고, 나랑 짠하자고 하시니까 눈물이 나더라고요. 손님들도 고마운 분들이 많아요. 저희 가게 강아지 눈누가 심심해보이니까 산책 시켜줘도 괜찮겠냐고 물어봐주시는 분들도 있어요. 참 신기해요. 저한테는 카페가 만남의 장소예요. 저는 카페를 하면서 처음으로 사람 만나는 게 재미있어요."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 있는 '랜딩엠' 모습..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 있는 "랜딩엠" 모습..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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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나만의방 , #랜딩엠, #카페, #망원동, #여성 자영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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