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5.20 11:29최종 업데이트 21.05.20 11:29
  • 본문듣기

다세대주택과 아파트가 섞여 있는 서울 강북지역 주택가. ⓒ 권우성


대한민국의 많은 국민들은 아파트 장만을 일생의 목표로 살아간다. 내 집에서 이사 다닐 걱정 없이 살고 싶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아파트가 투자가치 있는 자산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는 주거의 다양성을 저해하는 반면, 획일적인 구조와 유사한 면적이 오히려 자산으로서는 장점으로 작용한다. 부동산 고유의 특성인 개별성이 희석되는 대신, 가격의 변동이 쉽게 포착되고 비교가 용이하고 환가성이 커서 투자 자산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의 베이비부머 세대들은 가계 자산의 대부분을 부동산, 특히 아파트의 형태로 보유하고 있다.


이들은 아파트에 대한 강고한 믿음을 토대로 2030 자녀세대에게도 아파트 투자를 권하고, '엄마아빠 찬스'를 통하여 매수를 돕기도 한다. 또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아파트를 증여하는 등의 방법으로 아파트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대물림하고 있다. 현재 KB국민은행 통계에 따르면 서울의 평균 아파트 가격은 지난 4월 기준으로 11억원을 돌파했다. 지난 2017년 3월 6억17만원에서 4년만에 거의 2배 가까이 폭등했으니 이만한 수익률을 주는 투자 자산이 또 있을까? 

기획부동산의 땅 쪼개기와 비슷한 아파트 거래

아파트라는 주거 수단의 소유와 이용 형태를 법제화한 것은 1984년에 신규 제정된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다. 이 법률의 제정으로 아파트와 같은 구분소유건물의 소유·이용 관계가 명확히 규정됨으로써 관리가 편리해졌다. 뿐만 아니라 건설사업자의 입장에서도 수익성을 극대화할 수 있게 돼 아파트가 상품성 있는 투자자산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됐다.  

아파트는 토지 위에 고층건물을 올리는 방법으로 이용밀도를 높여서 수익성을 높였다. 이와 함께 수십 내지 수백 채로 쪼개서 각 호별 독립적인 소유권을 인정하고, 자유로운 거래가 가능하게 하여 구매 수요자의 접근성 또한 높였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 주식이 1주에 200만원일 때는 매수하기가 어려웠으나, 주식 분할로 1주가 5만원이 되면 매수 장벽이 낮아지는 것과 비슷한 원리이다.

200억원짜리 토지와 건물을 구매할 수 있는 수요자를 찾는 것보다는 2억원짜리 아파트를 구매할 수 있는 수요자 100명을 찾는 것이 훨씬 더 쉽다. 투입 원가 2억원보다 25% 정도 높은 가격인 2억5000만원으로 가격을 책정하더라도, 수요자는 향후 가격이 더 상승할 것이라는 약간의 기대감만 있어도 쉽게 매수에 나선다.  

기획부동산의 투기수법인 지분 쪼개기 또한 원리는 비슷하다. 개발이 불가능하여 쓸모 없는 광대한 면적의 임야를 헐값에 사들인 후에 공유지분을 쪼갠다. 수만 평을 평당 3만원에 사들여 100~150평 규모로 쪼개서 평당 20만~30만원 정도에 되파는 것이다. 쪼개진 땅의 가격은 서민들이 쌈짓돈으로 갖고 있을 만한 3000만원에서 5000만원 정도가 되도록 맞춘다. 땅의 사용가치와는 무관하게 매수자가 지불할 만한 수준으로 가격이 책정되는 것이다. 여기에 온갖 개발호재, 도로 개설 계획, 신도시 건설 등의 이유를 들어가며 투자가치가 큰 것처럼 현혹하는 게 기획부동산의 수법이다. 

아파트와 같은 구분소유건물도 토지를 가장 수익성 높은 방향으로, 사고 팔기 쉬운 상태로 만드는 최고의 방법이다. 여기에 불안과 투기 심리라는 약간의 양념만 더해지면 가격은 무섭게 올라간다. 게다가 금융기관의 담보대출이 더해지면 구매자의 지불능력까지 높아진다. 레버리지라는 이름으로 상품 판매자는 구매자의 미래 소득까지 당겨온 높은 가격으로 물건을 판매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레버리지는 투자자에게 유용한 투자 수단이 될 수도 있지만, 사실 판매자에게 유용한 마케팅 수단이다. '이거 사, 돈이 없어? 그럼 빌려줄게.' 

실거래가를 추종하는 부동산 가치 평가의 위험성
 

서울 강남구 압구정 현대아파트. ⓒ 권우성


지난 4월 압구정동 아파트의 1개 호가 80억원에 매매되었다. 이 아파트는 지난해 10월 67억원에 거래되었는데, 6개월 만에 13억원이 올랐다. 실거래가가 80억원이 되는 순간 같은 면적의 집주인들은 모두 자기 아파트가 80억원이라고 생각한다. 매도호가는 80억원 플러스 알파가 되고, 이 동네 부동산중개업소들은 이 아파트의 시세를 80억 이상이라 부르게 된다. 

여기서 던져야할 질문이 있다. 실거래가는 부동산의 시장가치와 동일한 개념일까? 80억의 매매가격이 이 아파트의 시장가치이며, 공시가격 현실화의 목표가 되어야 하는가?

만약 몇몇 투기세력이 특정 목적을 가지고 특정 지역에서 높은 실거래가를 만들어내면, 그들을 따라 몰려다니는 투기세력들은 덩달아 매수를 한다. 한두 건의 높은 실거래가가 나타나면 기존의 소유자들은 매물을 거둬들이고 호가를 높이게 된다. 실수요자들은 불안감을 못이기고 이보다 높은 가격으로 추격 매수에 나선다.

상승한 매매가격을 기준으로 은행의 담보대출이 이루어지고, 이 가격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가 기준이 된다. 또 공시가격 또한 공시지가 현실화라는 이름으로 상승한 가격을 뒤따라간다. 사실상 투기가격이 '시장가격'이라는 이름으로 교묘하게 바뀌어 정부와 은행, 공공기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해주는 셈이 되는 것이다. 

아파트의 경우에는 이런 식으로 실거래가를 뒤따라가는 게 부동산의 시장가치 평가의 기준처럼 인식되고 있다. 실거래가만 반영하는 평가 방식의 허점을 보완하기 위해 필요한 제도가 감정평가인데, 감정평가를 한들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감정평가방법을 규정하고 있는 감정평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아파트와 같은 구분소유건물은 대상 물건과 유사성이 있는 물건의 거래사례와 비교해 감정가를 산정하는 '거래사례비교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강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2년까지만 해도 감정평가에 관한 규칙은 구분소유건물에 대하여 거래사례비교법 또는 수익환원법, 원가법을 다양하게 적용하도록 하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이명박 정부 말기인 2013년 1월 1일 개정 법률이 시행되면서 구분건물은 거래사례비교법만을 적용해 감정평가하도록 했다. 중요한 변화임에도 당시 법개정 이유는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았다. 

동일 단지 한두 건의 거래가격을 모든 아파트 호수의 시장가치로 인정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 지난 2월 더불어민주당 천준호 의원실에 따르면, 실거래가 신고제에 따라 서울 등 아파트 단지에서 매매된 것으로 신고됐다가 취소한 아파트 거래 2건 중 1건은 당시 역대 최고가 거래였다고 한다. 투기세력들이 아파트 가격을 올리기 위해 최고가 거래를 꾸민 후 취소한 사례로 의심된다. 이처럼 부동산의 가치를 거래가격만을 반영해 산정하도록 하고 있는 상황에서 실거래가 신고제도는 투기세력들이 가격을 올리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 

공시지가 현실화가 놓쳐서는 안되는 것들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부동산특별위원회 위원장이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부동산특위 1차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감정평가의 기본적인 평가방법과 평가원리상, 부동산 가치는 '감정평가 3방식'에 따라 산출돼야 한다. 감정평가 3방식은 투입원가를 기준으로 하는 원가방식, 매매 및 임대사례를 기준으로 하는 비교방식, 부동산이 창출하는 수익을 기준으로 하는 수익방식 등 세 가지다. 실거래가 뿐만 아니라 임대료나 투입원가를 기준으로 부동산의 가격을 산출하고, 개별 부동산의 특성에 따른 합리성을 검토하여 감정평가액을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건설업자들에게 큰 이윤을 남기기 쉽고, 투기가 유발되기 쉬운 구분소유건물일수록 오히려 더 엄격하게 감정평가 3방식을 적용하여 분양가와 대출기준 금액을 제시해줄 필요가 있다. 적절한 검증수단이 없는 실거래가격은 시장을 교란하는 투기세력이나 수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건설업자들이 끝없이 높아지는 아파트 가격과 높은 분양가를 합리화하는 근거가 될 뿐이다. 

부동산의 보유세 부담을 점차적으로 강화하고, 사용 목적 외의 과도한 부동산 보유에 대한 부담을 늘려서 부동산 가격을 하향안정시켜야 한다는 정책 목표에 동의한다. 하지만 공시지가 현실화라는 이름으로 공시가격이 시장의 투기가격을 뒤따라가는 것은 제고할 필요가 있다.

공시가격 산정 시 실거래가가 아니라 감정평가 3방식에 따라 원가와 사용가치가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보유세 강화는 재산세와 종부세를 점진적으로 올리는 정공법으로 풀어야 한다. 공시가격은 시세를 추종하는 게 아니라 부동산의 적정가격 형성과 조세 형평성 등의 정책 목표를 담아내고, 부동산 투기로 인하여 시장이 과열되는 것을 억제하는 데 역할을 할 수 있는 공적인 가격으로 제시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