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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41주년 기념식 후 고 김경철의 어머니 임금단씨가 아들의 묘 앞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다.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41주년 기념식 후 고 김경철의 어머니 임금단씨가 아들의 묘 앞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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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불쌍한 놈아, 그라고 꿈에 한 번 와주라고 기도를 해도 어째 꿈에도 한 번 안 보이냐. 느그 딸은 안 보고 잡냐?"

국립5.18민주묘지 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기념탑을 지나면 곧장 '김경철의 묘'가 눈에 들어온다. 5.18민주화운동 41주년 기념식이 막 끝난 18일 오전 11시, 홀로 흰 소복을 입은 노년의 여성이 연신 묘비 옆 사진을 닦고 있었다. 김경철의 어머니 임금단씨였다.

김경철은 5.18 첫 사망자로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청각장애인이었던 그는 영문도 모른 채 공수부대의 곤봉과 군홧발에 무참히 짓밟혔고 스물넷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후두부 찰과상 및 열상, 좌안 상검부 열상, 우측 상지전박부 타박상, 좌견갑부 관절부 타박상, 전경골부, 둔부 및 대퇴부 타박상. 검시조서에 나온 그의 사인이 당시의 처참함을 대변하고 있다. 머리가 깨지고 눈이 튀어나오고 어깨와 허리가 부러진 채 100일 된 딸을 둔 김경철은 세상을 떠났다.

"결혼한 지 1년 6개월 만이었소. 딸 백일잔치하고 즈그 친구들 버스 태워주고 오다가 얼마나 맞아브렀는지. 아주 머리가 이렇게 벌어져블고 눈알이 빠져블고 온몸이 피로 물들어브렀당께요. 어따 말할 데가 없어서 1981년도부터 엄마들이 나서서 최루탄 속으로 경찰서 속으로... 그땐 우리를 사람 취급도 안 했어라. 짐승 취급했제. 그 고통을 어짜고 다 말하겄소. 그땐 참말로 하느님한테 욕도 많이 했습니다. 자식 잃은 우리한테 어찌 이라냐고요."

"광주는 전 세계 민주주의의 희망"          
 
18일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41주년 기념식 후 고 장재철의 어머니 김점례씨가 아들의 묘 앞에서 사진을 어루만지고 있다.
 18일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41주년 기념식 후 고 장재철의 어머니 김점례씨가 아들의 묘 앞에서 사진을 어루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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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년이 흘렀다. 세상은 더디지만 앞으로 나아갔다. 그럼에도 지금껏 아들의 묘 앞에서 눈물을 훔치는 임씨 같은 이들이 있고, 여전히 '오월 정신'을 인정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

우리들의 오월. 이번 5.18 41주년 기념식의 주제다. 대구 출신의 김부겸 국무총리는 기념사를 통해 "오월 광주가 외롭지 않았듯이 (코로나19 위기를 겪었던) 2020년 대구도 외롭지 않았다. 이곳에 분열과 갈등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광주가 대구에 의료진을 파견하고 오월의 어머니들이 대구시민과 의료진을 위해 도시락을 건넨 일화를 전하며 "이것이 오월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이번 기념식의 주제 '우리들의 오월'엔 '서로'의 정신이 담겨 있다. 김 총리는 이를 "국민통합"이라고 표현했다. 임씨의 뚫린 가슴을 조금이라도 더 메우고, 오월 정신의 왜곡이 민주주의 공동체를 망가뜨리는 일이란 걸 서로가 공유하자는 다짐이 '우리'와 '오월'이란 단어에 새겨져 있다.
 
김부겸 국무총리가 18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1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기념사하고 있다.
▲ 5.18 민주화운동 기념사 하는 김부겸 총리  김부겸 국무총리가 18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1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기념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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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식 후 마주한 두 장면이 기억에 남아 있다. 먼저 미얀마 청년 여럿이 오월 영령의 제단에 국화꽃을 올리는 모습이었다. 쿠데타, 저항, 죽음, 폭도라는 낙인 등 2021년 미얀마는 1980년 광주를 닮아 있다.

기념탑 가운데 놓인 부활을 상징하는 알을 바라보며 미얀마 청년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41년간 다듬어진, 그리고 앞으로도 진화할 오월 정신이 그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왔을까.

김 총리는 "지금도 광주에서는 군부독재에 맞서 싸우고 있는 미얀마 시민들을 응원하기 위해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지고 있다"며 "민주주의를 열망하며 투쟁하고 있는 전 세계 시민들에게도 광주는 희망이다. 비단 미얀마뿐 아니라 전 세계 어디에서든 부정과 불의, 민주주의를 짓밟는 세력에 저항하는 모든 시민들이 광주와 함께 반드시 승리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18일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41주년 기념식 후 미얀마 청년이 제단에 헌화를 하고 있다.
 18일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41주년 기념식 후 미얀마 청년이 제단에 헌화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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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청년들이 지난 자리를 노란 점퍼를 입은 이들이 채웠다. 세월호 유족들이었다. 세월호 유족과 5.18 유족들의 관계는 꾸준히 이어져왔다. 올해도 세월호 유족은 5월의 아픔을 잊지 않고 광주로 발걸음을 옮겼다. '4월'과 '5월'은 잊지 말자는 정서를 가슴 깊이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은아빠' 유경근씨는 페이스북에 "5.18 영령들의 명복을 빈다"며 "5.18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41년간 싸워오신 오월 어머님들과 광주전남 시민들께 깊은 존경과 연대의 인사를 드린다"라고 썼다.

미얀마 청년들과 세월호 유족들을 보며 다시 기념식 주제 '우리들의 오월'을 떠올려 본다. 또한 기념식 공연에서 연주된 전남대 출신 가수 김원중의 <바위섬>(1984년)의 가사를 되새겨본다.

파도가 부서지는 바위섬
인적 없던 이곳에
세상 사람들 하나 둘 모여들더니
어느 밤 폭풍우에 휘말려
모두 사라지고
남은 것은 바위섬과 흰파도라네
바위선 너는 내가 미워도
나는 너를 너무 사랑해
다시 태어나지 못해도 너를 사랑해
이제는 갈매기도 떠나고
아무도 없지만
나는 이곳 바위섬에 살고 싶어라
나는 이곳 바위섬에 살고 싶어라

태그:#5.18민주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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