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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세대주택과 아파트가 섞여 있는 서울 강북지역 주택가.
 다세대주택과 아파트가 섞여 있는 서울 강북지역 주택가.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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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수 대구가톨릭대학 교수가 쓴 지난 10일자 칼럼 "문재인 정부 추락에 '프레임' 있다"는 집값 폭등 원인에 대한 통찰력을 담고 있는 글이라 평가된다. 전 교수가 문재인 정부의 집값 정책 실패의 원인을 '부동산 투기에 대한 인식 부족'과 '임대주택등록제 확대'로 진단한 데 적극 동의한다.

큰 맥락에 동의하면서도 반론을 제기하려는 것은 전 교수가 '프레임'을 말하기 때문이다. 프레임이란 말 그대로 '큰 틀'이다. 집값 정책의 방향을 제시하는 기준이 되는 프레임을 잘못 설정하면 개별 집값 정책의 잘못보다 그 부정적 효과가 훨씬 더 클 수밖에 없다.

전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집값 정책 프레임을 "투기 광풍과 부동산값 폭등은 소수 투기꾼의 준동에 기인한다고 보는 인식 틀"로 규정했다. 그 근거로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의 "집값 급등은 실수요자보다는 투기세력 때문"이라는 발언과 문재인 대통령의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겠다"는 선언을 제시했다.

전 교수는 이 같은 프레임이 작용한 결과, 문재인 정부가 투기꾼으로 간주한 다주택자와 규제지역에 초점을 맞춘 핀셋대책으로 일관했고 문제를 악화시켜 왔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누구든 경제여건에 따라 실수요자도 투기꾼도 될 수 있음을 인정하고, 가격을 기준으로 해서 부동산 정책을 펼쳐야 한다"며 "가격이 아닌 보유주택의 수와 유형에 따라 차등 과세한다든지, 소득과 연령을 기준으로 자꾸 예외를 만들면 세제는 누더기가 되고 경제적 왜곡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일리 있는 지적이지만 전 교수의 주장은 '정부가 투기세력에게 불이익을 주려는 생각을 바꿔야 올바른 집값 정책이 수립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이는 집값 폭등과 투기세력의 인과 관계를 잘못 인식한 것이고 자칫 잘못하면 투기세력에게 면죄부를 주는 정책을 낳을 우려가 있다.  

집값 폭등의 원인은 투기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제20회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제20회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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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집값 폭등의 원인을 투기로 규정한 것은 맞는 진단이었고, '투기와의 전쟁'을 선언한 것은 올바른 방향 설정이었다. 그렇다면 왜 문재인 정부에서 집값 정책이 처참한 실패로 귀결되었을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지난 6년여 집값 폭등 경로를 되짚어보아야 한다.

부동산정보원이 발표하는 아파트 실거래가지수를 보면 서울아파트 가격이 본격 상승하는 시점이 2014년 8월이다. 이후 2년간 서울아파트 가격은 16%나 상승했다.

박근혜 정부의 집값 정책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최경환의 "빚내서 집사라" 정책이다. 최경환이 부총리에 취임한 2014년 5월 직후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연속해서 4차례 인하했고, 은행들은 공격적으로 가계대출을 확대했다. 2013년 55조원 증가했던 가계대출이 2015년과 2016년에는 각각 113조원과 132조원으로 가히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최경환은 또 대출 확대보다 더 강력한 집값 부양정책을 시행했다. 주택임대사업자들에게 세금을 거의 안 내도록 해준 것이다. 재산세 100% 감면, 양도세 100% 감면, 종부세 0원, 임대소득 60% 감면 후 산정한 세액을 또 75% 감면 등 지구상에 유래가 없을 정도의 세금특혜를 임대사업자들에게 베풀었다.

사상 최저 금리로 대출을 확대하고, 임대사업자들에게 엄청난 세금 특혜를 제공함으로써 주택투기수요를 부추기는 정책을 시행한 것이다. 정부 정책에 호응하여 대출을 받아서 주택 사재기에 돌입하는 사람이 증가했고, 집값은 서울을 필두로 본격 상승에 돌입했다. 바야흐로 '주택투기 시대'가 개막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2017년 6월 김현미 전 장관이 취임식에서 "집값 급등은 실수요자보다는 투기세력 때문"이라고 발언한 것은 정확한 진단이었다. 이 발언에 상응하는 정책을 시행했다면 주택 투기는 막을 내리고 집값은 하락으로 전환했을 것이다.

그러나 김 전 장관을 비롯한 문재인 정부가 취한 행동은 이 발언과 완전 딴판이었다. 최경환이 시행한 집값 부양의 핵심수단 두 가지, 즉 사상 최저금리 정책과 임대사업자 세금특혜 정책을 계승했다.

최경환의 집값 부양책에 호응하여 기준금리를 공격적으로 인하한 이주열 한은총재를 연임시켰고, 2017년 12월에는 임대사업자들에게 세금특혜를 더 확대하는 '임대주택등록 활성화방안'을 발표했다. 금리는 2014년보다 더 낮아졌고 임대사업자 세금특혜는 더 늘었으니, 투기세력에게 '빚내서 집사는' 투기를 계속하라고 강력하게 권유한 셈이다. 문재인 정부는 말로만 투기세력을 응징하겠다고 했을 뿐, 실제로는 투기를 적극 조장했던 것이다.

말 따로, 행동 따로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부동산특별위원회 위원장이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부동산특위 1차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부동산특별위원회 위원장이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부동산특위 1차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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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수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이 2020년 신년사에서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겠다'라고 선언한" 것도 "투기세력을 집값 폭등의 범인으로 간주하는 프레임이 반영된 듯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투기와의 전쟁"은 구두 선언에 그쳤고, 한 번도 실행된 적이 없다.

투기세력이란 거주 목적이 아니라 이익을 목적으로 주택에 투자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다주택자의 대부분은 이런 투기세력의 범주에 포함된다. 주택을 100채 소유한 다주택자는 2채 소유자보다 더 먼저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할 대상이다.

며칠 전 김부겸 총리후보자 청문회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윤덕 의원은 "2만7787명이 56만5970채의 주택을 소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2만7787명이야말로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할 대상이라는 데 추호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만약 이들이 소유한 주택을 매도하도록 한다면 3기 신도시 두 배 물량의 주택이 시장에 공급될 것이다.

김윤덕 의원은 이들 모두가 임대사업자로 등록하어 '종부세 0원'과 '양도세 100% 감면'을 포함한 엄청난 세금특혜를 누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통령이 선언한 투기와의 전쟁은 말뿐이었고, 실제로는 투기세력에게 엄청난 세금특혜를 베품으로써 투기를 조장했던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집값 정책이 실패한 것은 '프레임'의 문제가 아니라 말과 행동이 따로 놀았기 때문이다. 말로만 "집값 급등이 투기세력 때문"이라거나 "투기와의 전쟁" 운운하면서 투기세력을 적으로 삼는 듯한 발언을 자주했지만, 실제로는 투기세력과 제대로 전쟁을 한 적이 없다.

물론 집값 대책을 발표하면서 일부 다주택자들에게 세제상 불이익을 주기도 했지만 주택투기의 가장 큰 원동력인 초저금리와 세금 특혜를 유지하고 확대한 것은 최악의 선택이 되고말았다.

태그:#투기세력, #투기와의 전쟁, #집값폭등, #집값부양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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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균경제연구소 소장으로 집없는 사람과 청년들에게 극심한 고통을 안기는 집값 폭등을 해결하기 위한 글쓰기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네이버 카페 <집값정상화 시민행동>에서 무주택 국민과 함께 집값하락 정책의 시행을 위한 운동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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