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보리스 존슨 영국총리
 보리스 존슨 영국총리
ⓒ 김종철

관련사진보기


5월 6일 영국 지방 선거를 앞두고 "존 루이스(John Lewis) 악몽"이란 말이 연일 화제다. 존 루이스란 1864년 런던 옥스포드가에 세워진 백화점 이름으로, 이 백화점은 런던의 해롯(Harrods)만큼은 아니지만 전국에 지점을 둔 '상당히 고급' 백화점이고 가장 영국적인 백화점으로서 영국인에게 사랑받고 있다.

보리스 존슨 수상 커플의 표현인 "존 루이스 악몽"은 현재 보수당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는 수상 관저 인테리어 비용 스캔들의 출발점이다. 보리스 존슨과 약혼녀 캐리 시몬즈는 전임 테레사 메이 총리가 존 루이스 백화점 가구 및 커튼으로 꾸민 관저 인테리어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이들은 '너무 평범한, 너무 흔해 빠진' 것이란 부정적인 맥락에서 관저를 "존 루이스 악몽"으로 표현했고, 결국 2020년에 상당한 예산을 들여 새로 단장했다.

단순히 마음에 들지 않는 인테리어를 가리켰던 보리스 존슨의  "존 루이스 악몽"은 정치적 악몽이 됐다. 문제가 터진 곳은 인테리어 비용중 일부인 5만8000파운드(약 9000만 원)의 출처였다. 영국에서 부자 리스트 51번째에 올라가 있는 데이비드 브라운로우가 지불했다는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면서 정치 기부 및 자금법에 저촉되자 존슨 수상은 자비로 고쳤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존슨 수상의 최측근인 도미니크 커밍스가 존슨이 '선물'을 받았음을 사실상 인정, "비윤리적이고, 어리석고, 아마도 불법인" 행위라고 비난했고 조사 위원회에 나가 증언할 의향도 있다고 밝혔다.

노동당은 이것이 존슨 수상의 비윤리성, 공공연히 자행되는 보수당의 정실인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면서 비판했다. 선거위원회 역시 관련 보수당 의원들에게 정치 자금에 관한 모든 자료를 넘길 것을 요구, 축소 은폐할 경우 형사법의 적용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한 상태다. 보수당 일부 의원은 스캔들이 사실로 판명될 경우 존슨 수상이 자진 사퇴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영국 사회가 불쾌한 진짜 이유

정치 자금 문제와는 별도로 영국 사회가 "존 루이스 악몽"을 불쾌하게 여기는 이유는 뿌리 깊이 남아 있는 영국 사회의 계층성에 있다. 이튼과 옥스포드를 거친 전형적인 상류층 엘리트지만, 보리스 존슨은 흐트러진 머리 스타일, 다소 코믹스러운 행동, 거친 속어, 런던 시장 재직시 자전거 출퇴근 등 친근한 이미지로 대중에게 호소해 왔다. 하지만, 이 발언은 보리스 존슨의 계층성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보리스 존슨과는 반대로, 존 루이스는 시장 경제 내에서 이익을 추구하지만 사회적 불평등을 개선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자 노력하는 기업이다.

예를 들면, 존 루이스의 소유권은 직원 전체에 있다. 학계에서 존 루이스 모델 (John Lewis model)로 언급되는 이 독특한 소유권은 기업 이름에서 드러난다. 이 회사의 공식 명칭은 존 루이스 파트너쉽(John Lewis Partnership)으로, 계열사인 백화점은 '존 루이스와 파트너들 (John Lewis & Partners)'이다. 이 기업이 운영하는 영국 '최고급' 수퍼마켓인 웨이트로스는 '웨이트로스와 파트너들(Waitrose & Partners)'이다. 여기 등장하는 동업자(파트너)는 기업의 모든 직원을 가리키는 어휘로, 이 회사가 고용주와 고용인이라는 전형적인 노사 관계 공식을 따르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고용인-소유권(employee-ownership)은 "산업 민주주의"를 추구했던 창업2세대 존 스피던 루이스(John Spedan Lewis, 1885~1963)의 뜻이었다. 그는 1차대전 무렵부터 부친이 창립한 백화점 경영에 참가하는데, 창업자 아버지, 자신 그리고 남동생, 셋이 받는 월급이 전직원 300명의 월급과 맞먹는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불공평을 시정하기에는 경영 경험도 짧고 기업내 결정권이 없었던 시기였다. '이상적인 기업이란 무엇일까'를 고민하면서 경력을 쌓는 데 주력했다. 

"산업 민주주의"는 1920년대 말 루이스가 도달한 결과였다. 경쟁이 심한 산업 속에서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상업적 효율성를 발휘하면서도 민주주의적인 기업 구조를 의미한다. 그는 회사 전직원과 "이익, 정보, 권력"을 공유했을 때 이 이상을 실현할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창립자인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자신이 기업을 물려받으면서 그는 자신의 생각을 실천으로 옮겼다. 대공황이 시작되는 1929년, 그는 회사 소유권을 전직원들과 공유하는 형태로 전환, 회사 이름을 '존 루이스와 파트너들(John Lewis & Partners)' 로 바꿨다. 그리고 "고용인들은 없다. 모든 노동자들은 우리 기업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동등한 파트너"라고 선언했다.

존 루이스는 산업 민주주의라는 목표에 맞춰 회사 헌법까지 만들었다. 몇 번의 개정이 있었지만, 지금도 회사 헌법이 존재한다. 

'권력 공유'에 대한 원칙이 제시돼 있는 부분을 보면, 권력은 직원 위원회, 이사회, 회사 대표가 행사할 수 있다. 직원 위원회는 국회와 비슷한 것으로, 모든 직원이 보통 선거로 뽑은 지역별 대표들이 모인다. 권력 행사의 세 주체들은 고유의 기능과 더불어 서로 견제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지식 공유'의 원칙을 실현하기 위해서 존 루이스는 1918년 영국 최초로 회사 운영 정책을 소개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장으로 사내 공보를 발행했다. 이 전통은 지금까지 내려와 몇 년 전에는 발간 100주년을 기념했다.

'이익 공유'의 원칙에는 같은 보너스 비율을 적용한다. 예를 들어 10%의 보너스를 지급한다고 하면, 말단 직원부터 회사 대표까지 자기 월급의 10%를 보너스로 받을 뿐이다. 직원들에 비해 턱없이 많은 보너스를 받는 임원진이 존재하지 않기때문에 존 루이스는 2008년 보너스 스캔들(당시 금융 위기로 직원들은 실업 위기에 놓였지만 임원진은 여전히 거액의 보너스를 받았던 사건)과도 무관했다. 

최종적으로 루이스는 이 원칙을 직원들(파트너) 동의 없이는 바꿀 수 없도록 명문화했다. 그리고 이 모든 작업을 1950년대까지 완성한 후 1955년 은퇴, 1963년에 사망, 평소 그의 바람대로 바다에 묻혔다.

이런 기업을 '악몽'이라 표현한 게 악몽
 
사회적 불평등을 개선하고 책임 경영을 실천한 영국의 사업가 존 루이스.
 사회적 불평등을 개선하고 책임 경영을 실천한 영국의 사업가 존 루이스.
ⓒ 위키커먼스

관련사진보기

  
최상류층에서 태어나 자신의 소득이 부당하게 많다고 자발적으로 각성한 후 그 깨달음을 산업 민주주의로 구체화시킨 루이스의 생각은 지금도 계승된다.

그 한 예가 수퍼마켓 웨이트로스가 추진하는 "지역 문제(Community Matters)"라는 기부 프로그램이다. 2008년에 시작했는데, 약 330개 정도의 매장이 각자 매 달 1000파운드(약 160만 원)씩 지역 사회에 기부한다.

독특한 것은 기부 방식으로, "돈은 우리가 낸다. 하지만 그 돈이 어디에 쓰일지는 지역 주민, 당신들이 투표로 정하라"다. 기부금이 필요한 지역 단체나 지역 행사들은 분야와 규모에 상관없이 웨이트로스 프로그램에 지원서를 제출한다. 회사는 수퍼마켓 매장 안에 있는 세 개로 분할된 플라스틱 통에 매월 초 모금 행사 이름을 붙여 놓는다. 고객들은 계산 후 초록색 토큰을 받고, 세 가지 행사 중 도와주고 싶은 프로그램에 토큰을 넣는다. 한 달간 모인 토큰 수를 집계하여 주민들의 지지를 가장 많이 얻은 쪽에게 1000파운드를 기부한다.

각 매장별 한 달 160만 원 기부가 부담스러운 액수는 아니겠지만, 10년간 영국 전국 매장이 지역 사회에 기부한 액수가 총 3000만 파운드(약 500억 원)이 넘었다고 한다. 최근 온라인 쇼핑이 생기면서는 '전국' 단위의 이슈에도 이 프로그램을 적용, 3개월간 온라인 투표를 모아 2만5000파운드(약 4500만 원)씩 기부한다.

신경제 재단 (The New Economics Foundation)의 토니 그린햄은 존 루이스 회사를 다음과 같이 평한다.

"성공적인 경제란, 사적 이익이 궁극적으로 보다 넓은 공공의 이익과 부합하는 것이다. 존 루이스같은 회사는 이것이 상업적 성공과 병행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기업을 "악몽"이라고 표현한 보리스 존슨에게 여론이 호의적일 수는 없다. 보리스 존슨이 "나는 존 루이스를 사랑한다"고 정정했지만, 지방선거를 며칠 앞둔 지금 노동당과의 지지율 격차는 점점 줄어드는 모양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20년대와 대화할 수 있는 역사를 나누고 싶은 역사학도입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