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3.17 12:24최종 업데이트 21.03.17 12:24
  • 본문듣기

커피 만들어주는 3세대 로봇카페 비트3X. ⓒ 연합뉴스


정부 재정적자가 급증한다. 세입은 정체되었으나 쓸 곳은 많다. 기존에 존재했던 세금이 늘지 않는다면, 아예 새로운 세목을 신설하는 것은 어떨까? 4차 산업혁명을 앞둔 로봇세 얘기가 아니다. 바로 남북전쟁 직후의 미국 소득세 도입 얘기다. 

우리나라는 물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세금 비중 1위는 소득세다. 그런데 의외로 소득세의 역사는 짧다. 미국은 남북전쟁 직후인 19세기 말(1861년)에 처음 소득세를 도입했다. 상위 3% 고소득자에 3% 세율을 부과하는 제한적 형태로 출발했다. 그마저도 10여년 뒤에는 폐지되었다가 소득세가 제대로 자리를 잡은 것은 20세기 이후다.


프랑스도 20세기 제1차 세계대전 때 소득세를 걷기 시작했고, 그나마 영국은 1798년으로 역사가 길다. 그러나 이것도 나폴레옹과의 전쟁 준비 때문에 만들었다고 한다. 소득세는 전쟁과 같은 급변기에 도입되었던 예외적 세금이었다. 

창문세의 실패

소득세 도입 이전에는 재산세나 특정 물품의 거래세 또는 관세가 주된 세수입이었다. 이는 세원 파악의 기술적인 한계 때문만은 아니다. 산업 구조적 이유가 있다. 과거에는 농지 등 재산을 보유해야 소득이 발생했다. 세원 파악이 쉬운 재산에만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러나 산업과 상거래가 발전하니 변변찮은 재산도 없는 고소득자가 출연했다. 산업구조 변화로 재산세보다 소득세가 중요해졌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이 나온다. 산업구조가 다시 바뀐다는 얘기다. 과거 토지 같은 재산보유보다 산업노동이 더 중요해져 왔다면, 지금은 노동보다 로봇과 같은 기술보유가 더 중요해졌다. 특히, 로봇이 노동자의 일자리를 뺏는다니 로봇세가 소득세만큼 정당한 역사의 발전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혹시 창문세를 들어보았을까? 지금은 생소한, 역사 속에서 사라진 세금이다. 1696년 영국에서 고급 주택에 많은 세금을 부과하고자 도입됐다. 시가나 공시가격을 정하기 어려운 과거라면(지금도 단독주택이나 상가의 가격 산정은 여전히 어렵다) 단순히 창문 개수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어떨까? 얼핏 생각해 보면 합리적인 것처럼 보인다. 상식적으로 고급 주택에 창문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상식은 세금이 부과되면서 깨지기 시작했다. 세금을 창문 개수에 따라 부과하니 건물에서 창문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창문세를 시행하던 시기 런던에는 창문을 막는 것이 유행이었다고 한다. 탈세 같은 절세 방식일까? 아니면 절세 같은 탈세 방식일까?  창문을 영구적으로 막으면 절세고, 세금조사 때만 막으면 탈세일까? 예나 지금이나 탈세와 절세를 넘나드는 방식은 지속할 수밖에 없다. 아무튼 안개 낀 런던에 창문도 부족한 집에서 사느라 많은 사람이 우울증을 호소했다고 한다.

로봇세는 소득세처럼 새로운 산업혁명에 걸맞은 세목일까? 아니면 창문세처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밖에 없는 설익은 아이디어일 뿐일까? 

로봇세를 둘러싼 우려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시민사회가 제안하는 2021 세법 개정안 토론회'에서 박용대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일단, 과세대상인 로봇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 팔다리가 달린 휴머노이드만 로봇일까? 아니면 인간을 닮지 않은 기계는 로봇이 아닐까? 형체조차 없는 인공지능(AI)는 어떨까?

미국의 미래학자 커츠와일(Kurzweil)에 따르면 AI의 3가지 발달 단계가 있다고 한다. 제1단계는 인간이 로봇보다 우위에 있는 시점이다. 결국 1단계의 로봇은 사실상 생산성 향상을 위한 기계 설비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제2단계는 로봇에 탑재된 AI가 인간과 구별할 수 없는 정도의 사고능력을 가졌을 때다.  조세재정연구원 홍범교 박사에 따르면 인간과 같이 독자적인 판단과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기계를 말한다(홍범교 2018, 기술발전과 미래조세체계-로봇세를 중심으로). 이러한 기계는 전자인격을 부여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법적 인격을 가진 법인도 소득세를 내는 것처럼(법인세) 전자인격을 부여한 로봇도 소득세(로봇세)를 낼 수도 있다. 

제3단계는 로봇이 인간의 지성을 초월한 특이점 이후 단계다. 현재 인간 지성이 이루어낸 조세체계를 인간보다 우월한 지성에 적용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니 3단계 로봇세는 논의할 단계가 아니다.

물론 현재 로봇의 발전단계는 1단계다. 즉, 생산성 향상을 위한 일체의 기계설비가 1단계 로봇에 해당한다. 생산설비에 세금을 부과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현재는 R&D 세액공제, 투자세액공제, 또는 투자비용에 따른 세금을 줄여주는 가속상각 제도가 존재한다.

현실적인 로봇세 실현 방안

그럼 사실상 로봇인 설비투자에 세제 혜택을 주면서 로봇세를 부과하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브레이크와 악셀을 동시에 밟는 행위라는 의미다. 결국, 현재의 로봇세는 로봇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과도한 투자세액공제의 혜택을 없애거나 줄이는 것이 결국 로봇세의 현실 가능한 실현 방법일 수밖에 없다.

새로운 산업에 맞춰 새로운 논의를 하는 것은 매우 필요한 일이다. 경상대 김공회 교수에 따르면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실업(unemployment)이라는 단어가 수록된 것은 19세기 말이라고 한다. 실업이라는 것은 자본주의 산업사회가 발명한 독특한 형태라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농경사회에서 비자발적 실업이라는 것은 존재하기 어렵다. 10명이 할 일을 9명이 할 수도 있고 11명이 할 수도 있다. 잡초 하나를 덜 뽑거나 더 뽑으면 된다. 그런 의미에서 4차 산업혁명 이후의 사회를 상상하고 새로운 논의를 하는 것 자체는 바람직할 수 있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라는 표현이 있다. '과연 누가 방울을 달 것인가?'는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어떻게 방울을 달 것인지가 문제의 핵심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하나 둘 씩 늘어가고 있다. 다만 어떻게 달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과세대상은 무엇이고, 과표는 무엇이고, 세율은 어떻게 할지를 구체적으로 정하자. 그리고 로봇세를 실행하고자 한다면, 현재 존재하는 투자세액공제부터 없애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