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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16년 차 자취생이 된 나는 내 자취 인생의 절반을 서울시 노원구에서 보냈다. 노원은 소위 '학원가'라 불리는 학원 밀집 거리가 형성되어 있어 강남의 대치동 못지않게 학구열이 뜨거운 동네다. 나는 이십 대 후반에 노원구 상계동에 있는 작은 보습학원의 국어 강사로 일할 기회를 얻었고, 그때부터 쭉 노원에 터를 잡고 살게 되었다.

노원은 지하철 4호선과 7호선이 만나는 환승 지점인 데다가 백화점과 영화관이 있고, 그 주변으로 크고 작은 상점과 술집들이 즐비해서 유독 젊은 유동인구가 많은 동네다. 무엇보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세를 얻을 수 있는 오래된 임대 아파트들이 지하철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위치에 좌르륵 들어서 있다는 사실이, 가난한 자취생인 내게는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나는 상계 주공 5단지에서 4년, 다시 11단지에서 4년, 도합 8년을 노원구 주민으로 살았다.

노원구 라이프 8년차에 중랑구로... 다음은 
 
서울 동작구 일대 주택 모습.
 서울 동작구 일대 주택 모습.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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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단지에서 살 때는 엘리베이터 없는 5층 건물의 하필 5층 집이라 출퇴근 때마다 아침저녁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이 늘 고역이었다. 집은 방과 부엌, 화장실이 각각 하나씩 딸린 11평짜리 분리형 원룸 구조였는데, 보증금 4천5백만 원에 월세가 15만 원이었다. 하이힐은 엄두도 낼 수 없던 시절이었지만 직장까지 30분도 채 걸리지 않는 데다 월세가 저렴해서 사는 동안 큰 불만은 없었다.

그다음 이사를 간 11단지의 집은 18평 남짓한 크기에 방이 두 개였는데, 전세 보증금이 1억 2천이었다. 다달이 빠져나가는 월세를 줄여서 돈을 모아보고자 무리를 해서 얻은 집이었다. 물론 '부모님 찬스'가 없었다면 어려웠을 일이다.

자취 생활 시작 후 투룸은 처음이라 작은 방을 드레스룸으로 꾸며 놓으니 들여다볼 때마다 신바람이 났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지은 지 삼십 년도 더 된 낡은 임대 아파트만 골라서 이사 다니는 젊은 여자가 극히 드물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했다.

사실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서울에 직장을 둔 젊은 여자는 주로 화이트 풍의 세련된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널찍한 오피스텔이나 고층 아파트에서 혼자 산다. 호러물이 아닌 다음에야 엘리베이터도 없는 낡은 임대 아파트에 사는 주인공을 본 적이 없다.

화면 속 그녀들은 아침이면 커다란 창문으로 쏟아지는 햇살을 맞으며 잠에서 깨고, (창문이 큰 남향집은 비싸다) 깨끗하고 환한 부엌에서 (깨끗하고 환한 부엌도 비싸다) 갓 내린 향긋한 원두커피를 마신 후 집 앞 10분 거리에 있는 한강 변을 힘차게 달리며 (한강 변, 당연히 비싸다) 하루를 시작한다.

드라마나 영화가 아니라 <온 앤 오프>나 <나 혼자 산다>와 같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봐도 마찬가지다. 그녀들의 '평범한 삶'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절로 자괴감이 든다. 지금 나는 세상이 요구하는 그 '평범한 삶'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 걸까?

재작년에 나는 지금 사는 중랑구로 이사를 왔다. 전세 계약이 끝나갈 즈음 직장을 송파구 쪽으로 옮기게 되었기 때문이다. 경기도에 있는 본가에서 너무 멀어지지 않으면서도 직장과 조금 더 가까워지는 동네를 물색하다 보니 맞춤인 곳이 바로 여기였다. 서울치고 비교적 전세가가 저렴하다는 점도 선택의 이유 중 하나였다.

나는 발품을 팔며 몇 군데의 부동산을 돌아다닌 끝에 내가 원하던 조건에 딱 맞는 집을 발견했다. 지하철역까지 도보로 8분이 채 안 걸리는 신축 빌라의 5층이었다. 당연히 아직 비닐도 뜯지 않은 새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었다. 대로변에 위치해서 귀가 동선이 안전하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전에 살던 집보다 훨씬 좁으면서도 보증금이 6천만 원이나 더 비쌌지만, 나는 적금을 깨고 대출을 받아서 기어이 이사를 강행했다. 무엇보다 나도 한 번쯤은 친구들이 아무 때나 들이닥쳐도 부끄럽지 않을 깨끗하고 예쁜 '새집'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욕심이 컸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덧 2년이 지나 재계약 시기가 돌아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다시 이사를 준비 중이다. 출퇴근 편도 50분 거리를 40분 이내로 단축시키는 것이 이번 이사의 최종 목표이다. 또 '최소 15평 이상, 큰길 가까운 위치, 다용도실이 딸린 투룸 빌라나 혹은 다가구 주택, 가격은 최대 2억까지'가 내가 다음에 살고 싶은 집의 구체적 스펙이다.

그런데 내가 원한 스펙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이었는지를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부동산 앱을 켜고 '투룸 빌라 전세'에 들어가 매물 두어 군데만 클릭해보아도 서울시의 10평 남짓한 방 두 칸짜리 빌라 전세가가 '최소 2억 원 이상'이라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요 며칠 온종일 앱을 들여다보아도 마음에 드는 집을 좀처럼 찾을 수가 없었다. 내부가 깨끗하면 외관이 너무 지저분하고, 외관이 그럴싸하면 주변이 너무 외져서 늦은 시간에 퇴근하는 나로서는 도무지 감당할 자신이 없다. 그나마 봐줄 만하다 싶어 전화를 걸면 집주인이 전세자금 대출을 원치 않는단다. 결국, 최소 2억 5천은 손에 쥐고 있어야 내가 원하는 조건의 집들을 몇 군데나마 찜해 놓고 골라볼 수 있다는 얘기다.

2년 전 나는 영혼을 끌어모아야 했을까
 
불과 이 년 사이에 콩나물 자라듯 집값이 쑥쑥 올라버려서 이제는 15평도 안 되는 손바닥만 한 구형 빌라 전세가 2억 원을 호가하게 될 줄이야.
 불과 이 년 사이에 콩나물 자라듯 집값이 쑥쑥 올라버려서 이제는 15평도 안 되는 손바닥만 한 구형 빌라 전세가 2억 원을 호가하게 될 줄이야.
ⓒ elements.env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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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란해하던 와중에 친구 하나가 재작년쯤 경기도 의정부에 원룸 전세를 5천만 원에 얻었다는 말이 생각났다. 굳이 서울만 고집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쳤다. 그런데 의정부면 부모님이 계신 시골 본가까지 차로 1시간이 채 안 걸리는 거리다.

이참에 본가로 내려가 따뜻한 집밥을 얻어먹으며 서울로 출퇴근하는 방법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보증금을 빼서 대출금을 갚고 나면 구형 벤츠쯤은 뽑을 수 있을 텐데,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 집은 못 살망정 이참에 외제차 플렉스나 해봐? 생각이 여기까지 미쳤을 때 나도 모르게 풉, 하고 헛웃음이 터졌다.

몇 달 전, 집값이 부쩍 오른 아파트 명단에서 내가 살았던 노원구 주공 단지 일대가 거론되는 기사를 읽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돌이켜보면 2년 전 나는 영혼을 끌어모았어야 했다. 대출을 받고, 마이너스 통장를 개설하고, 카드 빚을 져서라도, 우주의 모든 기운을 모아 그 아파트를 샀어야 했다. 엄마에게 하소연했더니 엄마 하시는 말씀에 단박에 맥이 탁 풀려버렸다.

"누군 뭐 이렇게 될 줄 알았겠니?"

하긴 누군들 이렇게 될 줄 알았을까. 불과 이 년 사이에 콩나물 자라듯 집값이 쑥쑥 올라버려서 이제는 15평도 안 되는 손바닥만 한 구형 빌라 전세가 2억 원을 호가하게 될 줄이야. 그런데 좀 의문스럽긴 하다. 집값 잡겠다고 앞장서서 호언장담하던 높은 사람들도, 정말 몰랐을까? 일이 이렇게 될 줄. 요즘 LH 사태로 시끄러운 사정을 보아하니, 어쩐지 알고 있었을 것만 같아서 하는 말이다.

태그:#서울 집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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