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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보 한·미 방위비분담협상대사(오른쪽)와 도나 웰튼(Donna Welton) 미 국무부 방위비분담협상대표(정치군사국 선임보좌관)가 워싱턴D.C에서 열린 제9차 한미방위비협상에 앞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정은보 한·미 방위비분담협상대사(오른쪽)와 도나 웰튼(Donna Welton) 미 국무부 방위비분담협상대표(정치군사국 선임보좌관)가 워싱턴D.C에서 열린 제9차 한미방위비협상에 앞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 외교부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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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방위비분담금 특별협정(SMA)'가 타결됐다. 외교부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올 해 한국이 미국에 지불할 방위비 분담금은 전년 대비 13.9% 증가한 1조1833억 원이다. 2025년까지 전년도의 국방비 증가율을 적용해 지속적으로 증액한단다. 

문제점이 너무 많아 일일이 거론하기에 숨이 찰 지경이지만, 주요한 내용만 짚어본다.

우선 총액 기준으로 사상 유례없이 증액됐다. 트럼프 정부의 무리한 요구로 무협정 상태였던 2019년 수준으로 동결된 2020년 방위비 분담금 1조389억 원에 비해 1444억 원 증액됐다. 외교부는 2020년 국방비 증가율 7.4%와 한국인 근로자 인건비 증액분 6.5%를 추가로 더해주다 보니 예외적인 증가율이 나왔다고 해명했다.

인건비 증액분이란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에게 한국이 지불하는 인건비 배정 비율을 종전 75%에서 85%로 확대하며 추가로 지불하게 된 금액이라는 건데, 일본과 달리 총액 기준으로 방위비분담금을 지불하던 방식을 감안하면 인건비 증액분을 따로 떼어 인상해준다는 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인건비 증액분은 방위비분담금의 다른 구성요소인 군사건설비나 군수지원비와의 비율 조정을 통해 해결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외교부와 국방부의 당국자들조차 "예외적인 증가율이며 다소 과도한 수치인 것을 부인할 수 없다"고 말하는 이유다.

보다 큰 문제는 이후 방위비분담금 증액의 기준으로 국방비 증가율을 적용한다는 것이다. 트럼프 정부와의 협상 이전 한미가 합의한 방위비분담금 인상의 기준은 물가상승률과 연동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방위비분담금의 80% 이상이 군사건설비와 인건비로 구성됐다는 점에서 그나마 근거가 있었던데 반해 난데없는 기준의 설정이다. 최근 5년간 한국의 소비자물가가 평균 증가율이 1% 내외인데 비해 국방중기계획(2021~2025) 상의 국방비 증가율은 6.1%다. 결국 이전 협정시기에 비해 매년 5배 이상의 방위비분담금 인상을 합의해준 것이다. 이번 협정이 종료되는 2025년에는 1조5000억 원에 육박하는 방위비분담금을 미국에 주게 된다. 

국방비 늘면 방위비분담금도 증가... 이상한 협상
 
제11차 한미방위비협상으로 인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연도별 추이. 외교부 자료.
 제11차 한미방위비협상으로 인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연도별 추이. 외교부 자료.
ⓒ 외교부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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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은 더 있다. 동맹관계에서 방위비분담금과 국방비는 기본적으로 반비례관계라는 점이다. 동맹비용은 방위비분담금과 같이 주둔국에 비용을 지불하는 방식(비용분담, Cost Sharing)과 당사국의 국방비를 늘려 동맹 공동의 방위력을 증대시키는 방식(부담분담, Burden Sharing) 등으로 나눠 볼 수 있다.

그런데 부담분담이 늘면 비용분담은 줄게 마련이다. 미국이 한국과 같이 방위비분담금을 지불하지 않는 유럽의 동맹국들에게 자국의 국방비를 늘리라고 강요하는 이유다. 그런데 이번 협정은 이런 기본적인 동맹비용 부담의 원칙이 거꾸로 적용됐다.

한국이 국방비를 늘리는 것은 자체적인 방위력을 증대시키기 위한 것인데 그럴수록 미국에게 직접 주는 방위비분담금이 같이 늘어나는 기이한 상황이 초래됐다. 문재인 정부가 이명박·박근혜 정부보다 높은 국방비를 지출한 이유가 전작권도 환수하고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인다는 정책에 입각해 진행된 것임을 상기하면 외교부의 방위비분담금 증액 논리는 모순이다. 

왜? 

무엇보다 왜 올려줘야 하는지 근거가 없다. 2000년대 이후 방위비분담금 상승의 주 요인은 평택미군기지 건설로 인한 군사건설비의 증액이 주된 이유였다. 주한미군의 방위비분담금 불법 전용 사례로 사회적 논란이 있기도 했던 사안이다. 아래 표를 보면 평택미군기지 건설사업이 본격화되던 2000년대 후반 이후 10여 년의 기간 동안 방위비분담금 증가를 이끌었던 것이 군사건설비임을 알 수 있다. 비율도 대폭 늘어났다.

그러나 평택미군기지 건설사업이 종료단계에 있고, 수천억 원의 미사용금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왜' '무엇 때문에' 올려줘야 하는가. 언급했다시피 방위비분담금은 군사건설비, 군수지원비, 인건비로 지출항목이 정해져 있고 쓸 수 있는 한도는 정해져 있다.
 
2002년부터 2018년까지 한미 방위비분담금의 항목별 배정액과 비율 관련 자료를 취합해 정리한 표.
▲ 방위비분담금 항목별 배정액 및 비율(2002~18) 2002년부터 2018년까지 한미 방위비분담금의 항목별 배정액과 비율 관련 자료를 취합해 정리한 표.
ⓒ 박석진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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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당국자에 따르면, 트럼프 정부가 요구했던 전략무기 전개비용이나 사드 등 보완전력 운용비, 주한미군 순환배치 비용 등은 분담금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한다. 외교부의 발표자료 어디에도 한미동맹의 현안을 해결했다는 언급 외에 방위비분담금을 올려줘야 할 구체적인 이유는 찾아볼 수 없다.

만약 미국이 한국으로부터 받아낸 돈으로 평택미군기지 건설비용의 전용 사례처럼 방위비분담금의 용도와는 다른 곳, 주일미군의 운용비용, 주한미군의 한반도 외 활동 등에 사용할 의도라면 이는 전혀 다른 문제를 유발할 수도 있다.

이번 협상에서도 국회의 권한은 다시 무시됐다. 서명과 비준동의 절차가 남아 있으나 예년처럼 요식행위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9차 협상 때 제기됐던 방위비분담금 미집행금 문제, 비용 전용의 문제, 예산 심의 전에 국회에 제출하라는 등의 권고사항은 휴짓조각이 됐다.

오로지 바이든 미 행정부 출범 후 조기에 방위비분담금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정치적 판단과 미국의 일정만이 고려된 듯하다. 소수 진보정당을 제외하곤 거대 여당과 야당에게선 예전같은 문제제기조차도 보기 어렵다. 국회의 비준동의권을 활용해 이 불합리한 협정이 수정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난망한 이유다.

올려줘야 할 이유를 알 수 없는 협상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월 4일(현지시각) 워싱턴D.C. 국무부 청사에서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경청하는 가운데 외교정책에 관한 연설을 하고 있다.
▲ 취임 후 국무부 첫 방문해 연설하는 바이든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월 4일(현지시각) 워싱턴D.C. 국무부 청사에서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경청하는 가운데 외교정책에 관한 연설을 하고 있다.
ⓒ 워싱턴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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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 시절 방위비분담금 관련한 트럼프의 요구를 "동맹에 대한 갈취행위"라 비판했던 조 바이든은 대통령이 되자 트럼프가 막무가내로 밀어붙여놓은 협상의 레버리지를 최대한 활용하며 한국에게 얻을 수 있는 것을 다 얻어갔다. 기간만 5년으로 나눠졌을 뿐 트럼프가 실질적으로 의도했던 방위비분담금 50% 인상이 이뤄지게 된 것이다.

'미국 내 코로나 상황 등 현안 해결을 위해 공화당의 협조가 필요한 상황에서 한국과의 방위비분담금 협상을 양보하면 공화당을 설득하기 어려워 강경한 협상 태도를 보인 것'이라는 미 정가의 분석은 동맹을 중시한다는 바이든 정부가 이후 한국을 어떻게 대할지에 대한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가 무리한 미국의 요구를 수용한 데는 집권 말기 추진하려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재가동에 미국의 협조를 얻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주를 이룬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미국이 한국이 바라는 식의 대북공조에 나설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바이든 정부의 대북정책이 아직 리뷰 중이긴 하나 한반도 평화정세의 주요 견인차 역할을 했던 북미간 톱다운 방식의 정상회담은 기미가 보이지 않고 북에 대한 제재와 압박이 강화될 가능성이 커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일(현지시각),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하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서 한반도 종전선언과 관련된 질문에 "한국과 일본 같은 동맹파트너들이 안보증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확실히 해야 하며 미국의 안보자산이 고려됐는지도 분명히 해야 한다"라며 즉답을 피했다.

그의 말을 풀어보면, 지금은 종전선언 이야기 할 때가 아니며 동맹국들의 안보상황에 대한 평가가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종전선언을 통해 비핵화 및 한반도 평화의 모멘텀을 만들려는 문재인 정부의 구상과는 결을 달리하는 것이다.

동맹비용, 평화에 도움될 때 의미 있어 

필자가 누차 언급하는 내용이지만 동맹은 평화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한미동맹이 기여할 때 동맹을 위한 비용도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미국은 주한미군의 미사일 방어체계 사드를 배치하며 한중 간의 격렬한 안보 갈등을 유발했고, 어렵사리 시작된 한반도 평화정세는 북미간의 대화가 중단되며 멈췄다.

나아가 아시아의 대 중국 포위전략체인 쿼드를 구성하며 한국에 노골적인 참여를 요구하고 있다. 동맹이 평화를 가져오기보다 평화를 지체시키고 더 넓은 갈등의 늪으로 끌고가고 있지는 않은가. 제11차 한미 방위비분담금 특별협정 협상결과를 살펴보며 드는 의구심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박석진씨는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상임활동가입니다.


태그:#방위비분담금, #동맹비용, #한미동맹,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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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에 대한 감시와 비판적 제언'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Civilian Military Watch)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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