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프로농구 용인 삼성생명이 '4위팀의 기적'을 일으키며 챔피언결정전 진출에 성공했다. 삼성생명은 3일 아산 이순신체육관에서 열린 'KB국민은행 2020-2021 여자프로농구' 우리은행과의 플레이오프 3차전서 64-47로 완승했다. 1차전서 석패하며 탈락 위기에 몰렸던 삼성생명은 2,3차전을 내리 가져가며 짜릿한 대역전극으로 1위팀을 무너뜨렸다. 
 
 3일 충남 아산 이순신체육관에서 열린 여자프로농구 플레이오프 3차전 우리은행과의 경기에서 승리한 삼성생명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3일 충남 아산 이순신체육관에서 열린 여자프로농구 플레이오프 3차전 우리은행과의 경기에서 승리한 삼성생명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여자프로농구 역사에 남을 순간이었다. 정규 리그 4위팀이 1위팀을 잡고 챔프전에 진출한 사례로는 지난 2001년 겨울리그 당시 우리은행의 전신인 한빛은행(현 우리은행)이 신세계를 잡는 이변 정도다(하지만 당시 한빛은행은 챔프전에서 바로 삼성생명에게 3-0으로 완패하며 우승에는 실패했다).

삼성생명은 지난 2018-19시즌에도 플레이오프 4강에서 당시 7년 연속 우승을 노리던 우리은행의 덜미를 잡은 바 있다. 공교롭게도 당시 챔프전 상대 역시 똑같은 청주 KB였다. 삼성생명은 KB에 3-0으로 완패하며 우승에는 실패했다. 2006년 겨울리그의 우승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정상에 오르지 못하며 만년 2인자라는 아쉬운 꼬리표를 떼어내지 못하고 있는 삼성생명으로서는 7일부터 5전 3선승제의 챔프전서 박지수가 버티는 KB라는 더 큰 산을 넘어야 한다.

한편으로 정규리그 1위팀 우리은행의 허무한 탈락은 많은 아쉬움도 남겼다. 우리은행은 외국인 선수 없이 치러진 이번 시즌에 정통 센터의 부재라는 약점 속에서도 특유의 끈끈한 조직력을 앞세워, 박지수가 버틴 KB를 따돌리고 2년 연속이자 통산 13번째 정규리그 1위를 이뤄냈다.

하지만 하필 올 시즌부터 플레이오프 체제가 바뀐 것이 우리은행에 치명타가 됐다. WKBL은 올 시즌부터 1위팀의 챔피언결정전 직행을 폐지하고 하위팀들과 플레이오프부터 동등한 단계를 거치도록 했다. 여자프로농구에서 4개 팀 체제의 포스트시즌은 2012-2013시즌 이후 8년 만이며, 1위-4위, 2위-3위의 PO 대진은 2011-2012시즌 이후 무려 9년 만이었다.

김정은-박지현 등 베테랑 선수들의 잇단 부상도 우리은행에 뼈아픈 악재였다. 위성우 감독은 플레이오프 미디어데이에서 '젊은 선수들의 큰 경기 경험 부족'을 약점으로 꼽았다. 정규시즌에는 선수들의 조직력과 위성우 감독의 용병술로 버텼지만, 사실 객관적 전력 면에서는 1위를 한 것이 신기하다는 평가를 들을 정도였다. 

더구나 플레이오프 상대는 삼성생명이었다. 우리은행은 정규시즌 22승(8패)을 거두며 5할 승률에 못 미친 삼성생명(14승16패)보다 월등하게 앞섰고, 상대 전적에서도 5승 1패로 압도했지만 플레이오프에서 이런 기록들은 모두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물론 플레이오프의 묘미는 시드가 낮은 팀이 높은 시드 팀을 잡을 수 있다는 데 있다. 단기전에서의 승부는 누구도 점치기 어렵다. 변칙적인 로테이션과 윤예빈이라는 히든 카드를 활용하여 1위팀을 잡아낸 삼성생명의 선전은 당연히 높이 평가받기에 충분하다.

문제는 장기레이스인 정규리그에서 최선을 다하여 1위를 차지한 팀에게는 아무런 어드밴티지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은행처럼 슈퍼스타에 의존하지 않고 조직력으로 승부하는 팀들은 각 팀들의 맞춤형 전술이 등장하고 집중견제가 높아지는 플레이오프에서 더 불리할 수밖에 구조다.

더구나 플레이오프는 3전 2선승제의 초단기전으로 한번 흐름이 꼬이면 어떤 강팀이라도 무너질 수 있다. 무려 30경기를 잘싸웠던 팀이 단 3경기에서 부진했다는 이유로 그동안의 성과가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는 모양새는 뭔가 문제가 있다. 이런 식이라면 굳이 플레이오프에 나갈 정도의 성적만 올리면 되기에 정규시즌에 최선을 다할 이유가 없다.

남자프로농구는 정규리그 1,2위팀에게 4강직행이라는 확실한 어드밴티지가 주어진다. 프로야구는 1위팀이 한국시리즈에 직행한다. 물론 NBA처럼 시드와 상관없이 동등하게 플레이오프 단계를 거치는 경우도 있지만 1위와 8위가 첫 라운드에서 만나는 것과, 1위와 4위가 만나는 것은 격이 다르다.

선수층이 훨씬 얇고 6개팀 중 무려 4개팀이나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며 각 팀의 장단점까지 속속들이 다 파악하고 있는 WKBL의 상황과 동등하게 비교하기는 힘들다. 하필 WKBL이 플레이오프 제도를 바꾸자마자 1위팀이 챔피언결정전도 나가지 못하고 탈락하는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굳이 PO 참가팀을 확대시킬 것이었다면 1위팀의 챔프전 직행권을 유지하고 하위시드팀들이 준PO-플레이오프를 거쳐 올라오게 하는 단계별 스텝업식 대진을 편성하든지, 아니면 현행과 같은 플레이오프 대진에서는 1, 2위팀에게 최소한 +1승을 먼저 주는 식으로 상위팀을 위한 어드밴티지를 마련했더라면 어땠을까.

4위의 기적이라는 플레오프다운 이변 뒤에는 정규리그의 가치가 퇴색되는 문제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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