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가 1초 만에 사라졌다."
"'포도알'(빈 자리가 보라색으로 표시되는 것을 포도에 비유한 것)은 구경도 못했다."


유명 배우, 아이돌 가수의 공연 티켓 예매가 열리는 날이면 SNS, 온라인 팬 커뮤니티 등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얘기들이다. 그렇다면 과연 1초 만에 사라진 표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인기 공연의 표를 구하는 것은 당연하게도 하늘의 별따기다. 특히 코로나19 방역 지침에 따른 좌석간 거리두기 시행으로 인해 관객이 예매할 수 있는 좌석 수는 더욱 감소한 상황이다. 당초 두 칸 띄워앉기에서 1월 31일 동반자 외 한 칸 띄우기로 방역수칙이 조정되면서, 전체 좌석의 2/3가량을 예매할 수 있게 됐지만 인기 연예인이 출연하는 공연의 경우 여전히 경쟁이 치열하다.
 
 티켓베이에서 비싼 값에 거래되고 있는 공연 티켓들

티켓베이에서 비싼 값에 거래되고 있는 공연 티켓들 ⓒ 티켓베이

 
그러나 팬들은 어떤 방법을 써서든 좋아하는 스타가 나오는 공연의 표를 구하고 싶은 마음이다. 문제는 이 점을 파고드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지난 3일 티켓 중개 플랫폼 '티켓베이'에는 연극 <얼음> 티켓을 50만 원에 판매한다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오는 14일 오후에 공연되는 <얼음>에는 최근 주가를 높이고 있는 배우 김선호가 출연한다. R석 기준 <얼음>의 티켓 가격은 6만 원이지만, 판매자는 그 10배에 가까운 가격에 티켓을 판매하고 있다.

이 외에도 티켓베이에는 배우 조승우가 출연하는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 옥주현이 출연하는 뮤지컬 <위키드>, 엄기준이 출연하는 <몬테크리스토>, 가수 규현이 출연하는 <팬텀> 등 여러 연극 뮤지컬 공연들의 표들이 다수 올라와 있다. 대부분 원래 표보다 2배 이상 비싼 가격을 책정해놨다. 

유명 아이돌 콘서트나 야구경기에 프리미엄 붙여 판매

이렇게 표값을 올리는 이들의 상당수는 '리셀러'(상품을 웃돈을 받고 되팔아 수익을 올리는 사람)라고 불리는 전문 암표상들이다. 이들은 '매크로'라는 불법 프로그램을 사용해 일반 이용자보다 훨씬 빠른 시간에 표를 선점하고 이를 비싼 값에 되팔아 수익을 올린다. 꽤 오래전부터 팬들은 이러한 암표상들 때문에 정작 진짜 공연을 보고 싶은 사람들이 정상적으로 예매하지 못한다고 하소연을 했지만, 이를 근절하는 것은 쉽지 않다. 

게다가 최근 티켓베이, 중고나라를 비롯한 온라인 사이트들은 이러한 거래를 방관하며 일부 거래된 표에 대해 수수료를 챙기고 있다. 특히 최근 팬들 사이에서 성토의 대상이 되는 곳은 티켓베이다. 유명 아이돌의 콘서트 티켓이나, 인기 야구 팀의 한국시리즈 경기의 경우 적게는 10배, 많게는 50배 이상 비싼 '프리미엄'이 붙는다. 최근 코로나19의 여파로 인해 비대면 콘서트가 확산되고 스포츠 경기 역시 무관중으로 진행되다 보니 공연이 지속되고 있는 연극, 뮤지컬 티켓의 암표 거래가 점차 많아지는 추세다. 

암표 혹은 플미표(프리미엄 티켓)에 대한 팬들의 원성이 자자함에도 표를 팔려는 판매자와 이를 사고 싶어 하는 일부 팬들이 티켓베이로 몰리는 이유는 하나다. 수수료 10%를 내는 대신 거래 안전을 보장하기 때문.

티켓베이 홈페이지 맨 아래에는 "티켓베이는 통신판매 중개자이며, 통신판매의 당사자가 아닙니다. 따라서 티켓베이는 상품 거래정보 및 거래에 대하여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라는 안내 문구가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티켓베이는 현장에서 암표인 게 발각돼 입장을 못할까봐 우려하는 구매자들을 위해 '입장 안심 서비스'까지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새로 도입된 '입장 안심 서비스'는 표값 전체의 10%를 추가로 지불하는 대신, 현장에서 입장을 거부 당할 경우 티켓베이로부터 티켓 결제 금액을 전액 보상받을 수 있는 서비스다. 50만 원짜리 암표를 구매할 때 5만 원을 추가로 결제하면, 입장을 거부당하더라도 50만 원을 돌려받을 수 있는 셈. 거래가 무사히 성사될 경우 티켓베이는 기본 수수료 10%에 더해 총 표값의 20%를 수수료로 챙긴다. 이는 티켓베이측이 단순히 거래 중개만 하는 업체라고 주장함에도 팬들 사이에서 티켓베이에 대한 원성이 높아지는 이유기도 하다. 

대리 구매까지... 더욱 교묘해지는 방법
 
 연극 <얼음> 포스터

연극 <얼음> 포스터 ⓒ 파크컴퍼니


공연 제작사들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적지 않은 제작사들이 '정식 예매처가 아닌 곳에서 표를 구매할 경우 입장을 거부 당할 수 있다'고 경고하지만, 이를 구분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입장 전에 신분증을 확인하고 예매자 성명과 대조하는 등 단속을 강화하고 있으나 최근엔 리셀러들이 구매자의 아이디로 직접 로그인해서 티켓을 대리 구매해주기까지 하는 등 수법이 더욱 교묘해지고 있다.

한 공연 관계자는 지난 3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저희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체크를 하고 있다"면서도 "공식 예매처가 아닌 곳에서 비싸게 티켓을 팔아도 이를 제재할 법 조항이 없다"고 호소했다.

"요즘은 팬분들이 '리셀러'를 제보해주시기도 한다. 직접 구매하는 척 해서 판매자의 정보와 좌석을 확인하고 제보하는 식이다. 그러면 저희가 1차로 확인을 거쳐서 소명을 요청한다. 소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면 예매를 취소 조치한다. 공연이 연이어 매진되면서 암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고 저희도 대비를 하고는 있지만 법 규제가 없어서 (근절이) 쉽지 않다."

최근 몇 년 사이 진화한 암표를 처벌할 마땅한 법 조항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경범죄 처벌법 제3조 2항 4호에 따르면 "흥행장, 경기장, 역, 나루터, 정류장 등에서 웃돈을 받고 티켓을 되판" 경우에만 처벌할 수 있다. 온라인을 통한 불법 판매 행위는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예매처에서도 역시 이를 잡기는 쉽지 않다고 말한다. 인터파크티켓 관계자는 같은날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독자적으로 개발한 매크로 방지 프로그램을 적용하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 차단하지는 못하고 있다. 매크로로 접속한다고 해도 트래픽 면에서는 차이가 나지 않는다"라며 "단지 사이트에 접근하는 속도가 일반 접속자에 비해 엄청 빠르다. 사후적으로 아이피 분석을 할 수는 있지만 이를 구분하는데 너무 많은 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수사기관의 의뢰가 있을 때만 협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팬들, '플미표 사지 말자' 캠페인 벌이지만...

팬들 사이에서는 티켓베이 등지에서 '프리미엄 티켓을 사지 말자'고 자체적으로 캠페인을 벌이기도 한다. 그러나 좌석은 한정돼 있고 좋아하는 스타를 볼 수 있는 기회 역시 많지 않아, 보고 싶은 팬들의 지갑은 열릴 수밖에 없다.

티켓베이를 통해 암표를 구매해 본 적이 있다는 A씨는 "판매자를 직접 만나서 표를 넘겨 받은 다음, 티켓베이 사이트에서 표 수령했다는 확인 버튼을 누르면 판매자한테 돈이 입금되는 시스템이었다. 안심예매니 신분증 검사니 뭐니 해도, 결국 업자들은 다 뚫는다. 결국 진짜 공연을 보고 싶은 사람들만 손해를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티켓베이에서 입장 안심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해도, 암표는 구매자들을 불안에 떨게 만든다. A씨는 "(암표를 샀을 때는) 공연장 입장할 때까지 불안하더라. 가짜 표로 사기치는 사람도 있으니까. 프리미엄 표를 사서 들어갔는데 중복 판매된 자리여서 공연을 못봤다는 흉흉한 소문도 돈다"고 토로했다.
 
 뮤지컬 <맨오브라만차> 포스터

뮤지컬 <맨오브라만차> 포스터 ⓒ 오디컴퍼니


이러한 암표 문화를 어떻게 근절할 수 있을까. 낡은 경범죄 처벌법부터 손을 대야 할까. 고려대학교 정보보호대학원 김승주 교수는 "법과 제도의 문제가 아니다"라는 대답을 내놓았다. 지난 4일 오후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그는 "결국 (공연) 제작사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암표 얘기를 할 때 '제도 개선'이 우선이라고들 한다. 그런데 법이 없는 게 아니다. 영업방해 등 다른 법으로도 충분히 처벌할 수 있다. 제도가 없어서 암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데는 동의하지 못한다. 결국 제작사가 움직여야 한다. 결국은 암표 때문에, 공연을 보고 싶은 팬들이 손해를 보는 것이니까. 소속사가 적극 나서서 '걸리기만 하면 일벌백계하겠다'든가, 공동으로 암표를 방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든다든가. 결국 시간과 비용이 드니까 안 하는 것 아닌가. 암표를 방치하는 제작사가 문제라는 여론이 형성되는 게 중요한 거지, 법을 바꾼다고 될 일이 아니다."

한편 티켓베이는 6일 <오마이뉴스>에 "실제 100만 원 이상의 고가거래 비중은 0.6% 수준이며 전체 거래의 48%는 정가 또는 정가 이하로 거래되고 있다. 터무니 없는 가격의 티켓은 거래가 되지 않으며 합리적인 가격으로 등록된 티켓의 거래성사율이 높다"라며 "티켓베이가 오히려 개인간 거래의 불투명성에서 비롯하는 사기행위 등 각종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입장을 서면으로 전했다. 

암표 거래 보호라는 오명에 대해서는 '2차 티켓' 거래 양성화를 통해 프리미엄(웃돈)을 오히려 낮출 수 있다고도 주장했다.

"경제학자들은 암표거래를 당연한 시장의 흐름에 의한 행위라고 주장한다. 티켓을 사놓고 가지 못해 사표가 되는 경우가 35%에 달하는데 이럴 때 암표는 사표 방지의 순기능 역할도 한다. 무작정 금지하는 것은 암표를 더욱 음성화시킬 뿐이다. 국내의 온라인 티켓 거래 사기사건은 대부분 안전망이 없는 중고 커뮤니티와 SNS를 중심으로 매년 늘어나고 있다. 오히려 2차 티켓거래를 양성화한다면 가격경쟁을 통해 프리미엄이 낮아질 수 있으며 많은 거래를 하는 사람들에게 정당한 세금을 부과하는 등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어 "온라인을 통한 불법 암표상을 규제하기 위해서는 1차 티켓 판매자(예매처)가 불법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것을 막아야 하는 원초적인 문제가 있음에도, 티켓베이가 불법 암표 거래를 방관하거나 보호한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티켓베이도 자정적 노력 차원에서 매크로 사용자로 추정되는 회원들의 이용을 제한하는 정책을 검토 중이며 정가 이하 티켓 거래를 권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리셀러 암표 프리미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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