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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국무위원장 방명록 작성 돕는 김여정 2018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27일 오전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 김 위원장 동생인 김여정 부부장이 준비해온 펜을 전달하고 있다.
▲ 김정은 국무위원장 방명록 작성 돕는 김여정 2018년 4월 27일 2018 남북정상회 당시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는 모습. 김 위원장 동생인 김여정 부부장이 준비해온 펜을 전달하고 있다.
ⓒ 한국공동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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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연이어 보도되고 있다. 1월 초로 예정돼 있는 노동당 제8차 당대회에서 김여정의 입지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관측도 제기된다. 

김여정은 노동당 제1부부장과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을 훨씬 뛰어넘는 위치에 이미 도달했다. 그가 행사하는 권한이 그의 실질적 위상을 증명하고 있다.

지난해 3월 3일에는 김여정 명의의 대남 담화가 나왔다. 담화에서 그는 "불에 놀라면 부지깽이만 보아도 놀란다고 하였다"며 "어제 진행된 인민군 전선 포병들의 화력전투훈련에 대한 남조선 청와대의 반응이 그렇다"고 한 뒤 '나는'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나는 남측도 합동군사연습을 꽤 즐기는 편으로 알고 있으며 첨단 군사장비를 사오는데도 열을 올리는 등 꼴보기 싫은 놀음은 다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같은 달 22일엔 김여정 명의로 대미 담화도 발표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내 코로나19 방역과 관련된 협력 의사를 밝혔다는 점 등을 언급한 뒤 그는 '개인적인 생각'을 거론했다.

그는 "개인적인 생각을 말한다면 두 수뇌들 사이의 친서가 아니라 두 나라 사이에 력학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평형이 유지되고 공정성이 보장되여야 두 나라 관계와 그를 위한 대화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식 담화에 '나는' '개인적인 생각을 말한다면'
 
 북측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10일 오후 강원도 강릉 관동하키센터에서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대 스위스 관전을 마치고 자리를 떠나고 있다.
 북측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사진은 2018년 2월 10일 오후 강원도 강릉 관동하키센터에서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대 스위스 관전을 마치고 자리를 떠나고 있는 모습.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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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 1인의 권위가 절대적인 북한 체제에서, 김여정은 '나는' '개인적인 생각을 말한다면'과 같은 표현을 공식 문건에 사용했다. 이는 김정은의 신임이 매우 두터움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지위가 김정은으로부터 어느 정도 독립돼 있음을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

최고 권력이 동일 혈통에서 2대나 3대째 승계되면, 그 가문은 남다른 정치적·사회적 지위를 갖게 된다. 이런 경우에는 공식적인 정권 핵심부와 더불어 지도자의 가족이나 친인척이 권력 분배에 간여할 여지가 넓어진다. 그래서 김일성 가문 사람들이 김정은의 건강이나 자녀 나이 등을 고려해 김여정에게도 힘을 실어준 결과로 '나는' '개인적인 생각' 같은 표현이 나왔을 가능성도 있다.

김여정은 김정은과의 공식 동행을 통해서도 위상을 드러낸다. 2019년 8월에는 초대형 방사포 시험발사 현장에서 김정은을 수행했고, 2020년 3월에는 전술유도무기 시범사격 현장에서 김정은을 수행했다. 정치국 후보위원이나 노동당 제1부부장 같은 공식 직함과 관계없이 이미 2인자 지위를 확보했음을 보여주는 징표다.

그런데 그의 2인자 지위가 곧바로 후계자 지위로 연결되는 건 아니다. 2인자에 더해 후계자 지위까지 확보했는지를 판단할 때는 두 가지 선례를 참고할 만하다.

그동안 북한이 후계자를 띄운 방식

북한은 세습이 사실상 두 번이나 일어났지만 '공식적'으로는 세습이 용인되지 않는 국가다. 북한 헌법과 노동당 규약 내에서 김일성·김정일이 특별한 위상을 차지한 것은 사실이지만, 북한은 공식적으로 인민공화국의 국체를 띠고 있다. 2019년 8월 개정된 북한 헌법 제4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권은 로동자, 농민, 군인, 지식인을 비롯한 근로인민에게 있다"고 선언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일어난 두 차례 권력 승계는 그런 구도를 반영했다. '법적으로 세습 불허, 사실상 세습 허용'이라는 이 구도에 맞게 김일성의 권력이 김정일에게 승계되고 김정일의 권력이 김정은에게 승계됐다.

세습이 법적으로 허용되는 국가에서는 후계자에게 태자나 세자 같은 지위를 부여한다. 이런 지위를 받은 후계자들은 국정에 개입하지 않고 공부나 자기수양에만 전념해도 된다. 이런 유형의 후계자들은 실질적 권력을 행사하지 않는 경우가 잦다. 세습이 인정되는 국가에서는 그렇게 하고도 후계자 지위를 안정시킬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은 그런 방법으로는 후계자 지위를 안정시키기 힘들다. '내 후계자로 인정한다'는 지도자의 언명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법적인 후계자 지위가 없기 때문에, 그런 언명만 갖고는 지도자의 사후에 후계자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그래서 북한이 그동안 사용해온 방식은 후계자에게 실질적 국가권력의 상당부분이 넘어갔음을 명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누구도 되돌리기 힘들 정도로 후계자의 양 어깨에 실질적 권력을 얹어주는 방식을 사용했다.

남한에서 박정희 유신체제가 등장한 1972년 4사분기에 북한에서는 김일성 유일체제가 확립됐다. 그런 뒤에 북에서는 김정일을 후계자로 만드는 작업이 전개됐다. 1972년 10월에는 김정일이 노동당 중앙위원이 되고 1973년 7월에는 당 중앙위원회 부장이 됐다. 같은 해 9월엔 중앙위원회 비서국 비서가 됐다. 그리고 1974년 2월 중앙위원회 정치위원이 되면서 '김심'이 김정일에게 있음이 확인됐다.

하지만 그것은 내부적인 후계자 공인에 그쳤다. 북한은 그후 6년간 김정일의 존재를 국제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그때문에 1974년 11월 남한에서는 도쿄 국제의원연맹(IPU) 총회에 김정일이 참석했다는 오보까지 나왔다. 1974년 11월 18일 치 <경향신문> 기사 '북괴 김정일 동경에'는 김정일이 이종혁이란 가명으로 총회에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기사 사진 속의 이종혁은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외교관 리종혁과 비슷했다. 리종혁이 IPU 총회에 참석했을 가능성이 높은데도, 당시에는 김정일의 얼굴이 알려지지 않아 오보가 나왔다.

북이 김정일 후계 작업을 내부적으로뿐 아니라 대외적으로도 명시한 시점은 1980년 10월 제6차 당대회 때였다. 김정일의 얼굴이 남한과 국제사회에 알려진 것은 이때부터다. 이 해에 김정일은 묵직한 포스트를 받았다. 그는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 노동당 비서국 비서, 노동당 군사위원회 군사위원이었다.

이종석 통일부장관이 쓴 <북한의 역사 2>는 "조선노동당 총비서인 수령 김일성을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정치국·비서국·군사위원회라는 당내 3대 권력기구에 모두 선출된 것"이라며 "당시 김정일의 당 중앙위원회 공식 서열은 김일성·김일·오진우에 이은 4위였지만, 실질적으로는 그가 2인자임이 확실했다"라고 짚었다.

1974년에는 정치위원에 임명되면서 '김심'의 향방이 확인됐고, 1980년에는 노동당 3대 기구 지도부에 진입함에 따라 국가권력의 상당부분이 김정일에게 넘어갔다는 점이 확인됐다. 김정일이 군사위원 직까지 차지하면서 그의 후계자 지위는 국내외적으로 공고해졌다.

국가권력을 넘기는 방식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7일 오전 8시30분 과로로 열차에서 사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9일 보도했다. 사진은 지난 9월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노농적위대 열병식 모습. 김 위원장과 김정은이 열병식을 지켜보고 있다. 2011.12.19
 2011년 9월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노농적위대 열병식 모습. 김정일-김정은 부자가 열병식을 지켜보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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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이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인 2009년부터 김정은 후계 작업이 진행될 때도 유사 현상이 나타났다. 그해 1월 후계자로 지명된 김정은은 2010년 9월 인민군 대장과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되면서 명확한 후계자 지위에 올랐다. 군사권을 비롯한 국가권력 상당부분을 김정은에게 넘기는 방법으로 지위를 명백히 했던 것이다.

1980년에 김정일이 차지한 포스트보다 2010년에 김정은이 차지한 포스트가 훨씬 묵직했던 것은 상황의 긴급성이 각기 달랐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1980년의 김일성 건강과 2010년의 김정일 건강이 확연히 달랐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이 같은 두 가지 선례는 김정은의 후계자를 공식화할 때도 되풀이 될 수 있다. 김정은의 권력이 새로운 인물에게 넘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인사 조치가 그 신호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현재의 김여정은 2인자 지위는 분명히 확보했지만, 1980년 김정일이나 2010년 김정은에는 아직 근접하지 못했다. 1974년 김정일에도 접근했다고 보기 힘들다. 국가권력의 상당부분이 김여정에게 넘어가고 있다는 증표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현재 지위는 2인자일 뿐, 후계자는 아니다. 

현재는 2인자일 뿐
 
김여정, 김일성 사망 25주기 중앙추모대회서 주석단 착석 조선중앙TV는 8일 평양체육관에서 이날 열린 김일성 주석 사망 25주기 중앙추모대회를 녹화중계했다. 사진은 중앙TV가 공개한 것으로 김여정 당 제1부부장(가운데)이 리수용 부위원장(왼쪽), 최휘 부위원장(오른쪽)과 함께 주석단에 앉아있다.
 2019년 7월 8일 조선중앙TV가 방영한 김일성 주석 사망 25주기 중앙추모대회 당시 모습. 김여정 당 제1부부장(가운데)이 리수용 부위원장(왼쪽), 최휘 부위원장(오른쪽)과 함께 주석단에 앉아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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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김여정이 2인자에 이어 후계자 지위에 도달할 경우에도, 영속적인 지위일지 아니면 한시적인 지위일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서도 선례들이 있기 때문이다.

1974년에 김정일의 후계자 지위가 내부적으로 확정되기 직전까지는, 김일성 동생인 김영주가 후계자가 될지 모른다는 관측이 많았다. 1974년 2월 16일 치 <동아일보> 기사 '김일성 후계로 부각'은 김영주가 부총리에 임명된 사실을 보도하면서 "김일성이 실제(實弟)인 김영주를 이 자리에 앉힌 것은 김영주에게 노동당과 행정부의 실권을 모두 장악시켜 그의 후계자로 삼으려는 저의를 드러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렇게까지 주목을 받았던 김영주는 그해에 김정일이 후계자로 내정되면서 자연스럽게 2선으로 밀려났다.

김정일 집권기에는 동생 김경희가 한때 주목을 받았다. 김정일이 "김경희는 곧 나이고, 김경희의 말은 곧 나의 말이다"라고 발언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졌을 정도다. 하지만 김경희의 지위는 노동당 경공업부장 이상으로 올라가지 못했다.

김일성과 김정일이 자기 자녀에게 권력을 넘기기 전에 형제들에게 힘을 실어준 적이 있었다는 선례가 김정은-김여정 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향후 김여정이 후계자가 된다 해도, 김정은이 살아 있는 한 한시적인 것이 될 가능성이 있다. 

김정은 정권 하에서 김여정의 존재를 더욱 더 부각시키는 요인 중 하나는 김정은의 자녀가 아직 장성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따라서 자녀가 장성하게 되면 김여정의 위상에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생길 수도 있다.

설령 김여정이 후계자가 된다 해도 그가 피델 카스트로의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처럼 될지 아니면, 일시적인 후계자로 그칠지를 판단해야 한다. 한시적인 후계자에 그친다면, 한국의 국무총리나 미국의 부통령처럼 최고지도자의 유고 및 궐위에 대비하는 대타일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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