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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가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의 임명 부적격성, 코로나19 백신 확보 등 현안 관련 발언을 하고 있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가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의 임명 부적격성, 코로나19 백신 확보 등 현안 관련 발언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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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을 중심으로 '백신 접종' 문제에 대한 공방전이 이어지고 있다. 야당과 보수언론은 '백신 접종'이 늦고, 물량 확보가 다른 나라보다 부족하다는 이유로 정부·여당을 연일 질타하고 있다. 반면 정부여당은 '안전성'이 우선이라며, 백신을 '정치화'하지 말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공방은 백신에 대한 여론이 양분되도록 만들었다. <오마이뉴스>는 22일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코로나19 백신 접종 주안점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안전성'과 '긴급성'(빠른 접종) 중 무엇을 우선하냐는 질문에 민주당 지지층은 82.5%가 '안전성 우선' 의견에, 국민의힘 지지층은 84.4%가 '긴급성 우선' 의견에 공감했다. 또한 문재인 대통령 국정운영 긍정 평가층은 82.4%가 '안전성'을, 부정 평가층은 78.5%가 '긴급성'이 우선이라고 답했다. (관련기사 : 코로나19 백신 접종, '빨리' 54.9% - '안전히' 41.1% http://omn.kr/1r3sb)

전체 여론조사 결과가 '긴급성' 54.9% - '안전성' 41.1%로 나타났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지지 정당이나 국정 지지에 따라 너무나도 다른 응답이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빠른 접종'과 '안전성 확보' 둘 다 백신 접종에서 중요한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진영별로 의견이 판이하게 갈리게 된 것일까?

아스트라제네카를 선택한 정부의 전략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개발사인 아스트라제네카와 백신 계약 체결을 완료했다.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개발사인 아스트라제네카와 백신 계약 체결을 완료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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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화이자 백신 접종을 시작한 미국·캐나다·영국, 그리고 27일부터 접종 예정인 EU와 달리 한국은 2~3월에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도입을 시작으로 백신 접종이 이뤄질 예정이다. 미국 FDA의 사용을 승인 받은 화이자 백신은 3분기, 모더나 백신은 내년 안에 도입될 예정이다.

상대적으로 백신 접종이 늦어지는 이유는 정부가 아스트로제네카 백신을 중심으로 접종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다. 정부는 6월에 범 정부 차원 백신도입 TF를 구성하고 7월부터 백신 선구매 협상에 나서기 시작했는데, 당시에 여러가지 면에서 장점이 많은 아스트라제네카가 가장 빨리 상용화될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먼저 가격이 모더나나 화이자 백신에 비해 싼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냉장 유통이 가능해서 운송이나 보관에도 용이하다. 처음 상용화되는 mRNA 백신이 아니라, 바이러스벡터 백신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전성도 높다. SK바이오사이언스에서 위탁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국내 조달도 가능했으며, 3상시험 역시 가장 빠르게 들어갔다.

백신 TF 위원인 남재환 가톨릭대 의생명과학과 교수도 지난 8일 정부 브리핑에서 "국가에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먼저 구매한 것은 전략적으로 옳은 결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도입은 암초에 부딪혔다. 백신 부작용에 대한 해명이 늦어져 미국 FDA에서 7주 동안이나 임상 재개를 승인하지 않았고, 화이자·모더나 백신에 비해 임상3상 최종 결과 발표는 물론 FDA 승인도 늦어지고 있다. 영국 의료건강제품규제국(MHRA)은 이달 말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사용 승인할 것으로 보이지만, 미국은 그보다 조금 더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결국 아스트라제네카 백신만을 믿고 있던 것이 전략적으로 아쉬운 선택이 된 셈이다.

물량 확보 문제도 있다. 외국은 인구 전체 또는 인구의 2~6배까지 백신 물량을 확보했다. 하지만 정부는 전체 인구 5183만 명에 못 미치는 4600만 명분(23일 얀센과 계약하면서 200만 명 분 추가)만 선구매했을 뿐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집단면역 형성을 위해 필요한 60~70% 접종에는 충분한 양이며, 아직 임상결과가 없어 18세 미만은 접종하지 못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물량 문제'는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아스트라제네카처럼 백신 구입은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최대한 많이 확보해놔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지 않겠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선구매를 위한 체계나 예산 등이 부족할뿐더러, 공무원들이 백신의 수요가 안맞을 경우 징계나 정치권의 질타가 이어질 것을 우려해 적극적으로 선구매에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임진왜란 때 선조와 같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가 24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가 24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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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백신 도입이 늦어지자 야당과 보수 언론은 연일 정부를 상대로 맹공을 퍼붓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 내용들이 오히려 도입될 백신에 대한 신뢰성을 낮추거나, 백신 계약을 압박해 '더 나쁜 조건'에서 계약을 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일례로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은 21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해 "아직 FDA 승인도 안 났고 임상 3상도 통과가 안 됐습니다. 그 상태에서 위험하더라도 우리나라 식약처에서 그걸 인정을 해서 하겠다고 그러면 국민들이 모르모트입니까? 실험 도구가 되는 건가요?"라고 말했다.

물론 정부의 백신 확보 문제를 비판하기 위한 발언이었지만, 앞으로 장차 들여올 백신에 대한 신뢰를 낮춘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해 이상원 중앙방역대책본부 역학조사분석단장은 "저명한 의학잡지 <란셋>에서 평가가 완료된 보고서가 있다. 안전성에는 문제가 없지만 처음에 절반 정도의 용량을 투입하고 표준용량을 투입했을 때 왜 더 효과가 높았는지 여기에 대한 임상자료를 좀 더 지속적으로 분석해야 된다는 의견이다"라고 밝혔다. <란셋>은 지난 8일 아스트라제네카 임상 3상시험 결과에 대한 동료평가(피어 리뷰) 결과, '안전하고 효과적이다'라고 평했다.

<한국경제>의 '백신 확보 늦다…해외 코로나 종식 때 우린 거리두기할 판'(12.15), '조선일보'의 '[윤평중 칼럼] 백신 전쟁 참패한 文 정권, 정당성 잃었다'(12.18) 등 비판을 넘어서 불안감을 과도하게 가중시키는 보도도 쏟아졌다.

또한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3일 기자회견에서 백신 확보 문제를 두고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하며 "임진왜란 때 백성을 버리고 의주로 피난 간 선조나 서울을 사수하겠다고 방송하고는 혼자서 남쪽으로 간 이승만 같다"라고 발언한 것,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4일 비대위 회의에서 "선진국과 격차가 벌어지며 '백신 후진국'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불안감이 국민들 사이에 팽배하고 있다"라고 발언한 것은 백신을 과도하게 정쟁화시킨 대목이다.

일관성 없는 정부와 여당의 대응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5부요인 초청 간담회'에서 노정희 중앙선거관리위원장 발언을 듣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5부요인 초청 간담회"에서 노정희 중앙선거관리위원장 발언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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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백신의 정치화'에 대한 정부여당의 대응 역시 미흡했다. 무엇보다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한 것이 문제다. 한 쪽에서는 '늦었다'고 이야기하고, 한 쪽에서는 '괜찮다'고 말하고 있다.

지난 20일 정세균 국무총리가 백신 확보에 한국 정부가 뒤늦게 대응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정 총리는 KBS1 TV <일요진단>에 출연해 "정부가 백신 TF를 가동한 지난 7월에는 국내 확진자 수가 100명 수준이어서 백신에 대한 의존도를 높일 생각을 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라며 "미국 등은 계약사에 백신 개발비를 미리 댔다. 제약사들도 이런 나라들과 차등을 둘 수밖에 없다. 그래서 백신 계약이 조금 늦어진 것"이라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지난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5부요인 간담회에서 "백신을 생산한 나라에서 많은 재정 지원과 행정 지원을 해서 백신을 개발했기 때문에 그쪽 나라에서 먼저 접종이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불가피한 일"이라며 "우리도 특별히 늦지 않게 국민들께 백신 접종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렇게 믿고 있고, 또 준비를 잘 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사실상 대통령과 총리가 백신 접종이 늦었다는 것을 인정한 발언이다. 나아가 대통령은 '빠른 접종'을 약속했다. 그런데 정작 총리가 본부장인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는 다른 이야기가 나왔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전략기획반장은 23일 코로나19 브리핑에서 "최근 우리 사회에 백신을 세계 최초로 맞아야 하는 것처럼 1등 경쟁을 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어 방역당국으로서 상당한 우려를 표한다"면서 "먼저 접종하는 국가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한두 달 관찰할 기회를 가질 수 있어 굉장히 다행스럽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앞서 대통령과 총리와는 결이 다른 '자화자찬'식의 발언이었다.

"백신은 과학의 문제...정부의 일관된 메시지 중요"
 
영국이 세계 최초로 화이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의 일반 접종을 시작한 8일(현지시간) 런던의 한 병원 백신센터에서 백신 접종이 진행되고 있다.
▲ 영국서 세계 첫 화이자 코로나19 백신 일반 접종 시작 영국이 세계 최초로 화이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의 일반 접종을 시작한 8일(현지시간) 런던의 한 병원 백신센터에서 백신 접종이 진행되고 있다.
ⓒ 런던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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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백신 접종을 정치의 문제로 바라보면 안 된다고 지적한다. 정재훈 가천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백신은 과학의 문제다. 정부는 백신의 효과와 안전성에 대해 일관된 메시지를 주는게 중요하다"면서 "안전하고 효과적인 백신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감수할 수 있는 부작용보다 크다"라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정부는 비판은 비판대로 감수하되, 백신은 효과적이고 안전하다는 메시지를 계속 강조해야 한다"라고 말한 뒤 "언론 역시 '우리가 백신 접종을 두고 논쟁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보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언론과 정치인들이 잘못했다. 백신은 정치가 아니라 과학이다. 지금 프레임 자체가 정치화되어서 전문가들이 과학적인 사실에 기반해서 이야기하는 것도 어렵게 됐다"라고 호소했다.

이어 그는 "정부가 아무것도 안 한 게 아닌데, 결과론적인 이야기만 하고 있다. 격렬한 비난들은 결국 백신 회사와의 계약을 불리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라고 우려를 표했다.

태그:#코로나19, #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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