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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라면 누구나 법안을 제안할 수 있도록 도입한 국회 '국민동의청원'. 실제로 해보니 문턱은 높고 또 좁았습니다. 국민동의청원이 그 이름값을 할 수 있도록 시민단체들이 제도의 문제점을 공론화하고 개선 방안을 제안합니다.[편집자말]
고 김용균씨 모친 김미숙씨가 11일 오전 국회 본청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을 시작한 모습.
 고 김용균씨 모친 김미숙씨가 11일 오전 국회 본청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을 시작한 모습.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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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 명이 동의하고도, 농성하고 단식해야만 청원 성사?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관한 청원이 지난 9월 22일 무려 10만 명 동의를 받아 국회에 제출됐습니다. 그러나 두 달 넘도록 소관위원회 계류 중이던 청원은 결국 12월 9일 정기회기 내 처리가 무산됐고, 아들의 2주기에도 참석하지 못한 고(故)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와 고(故) 이한빛 PD의 아버지 등 산재·재난참사 피해자들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연내 처리를 촉구하며 무기한 단식 농성에 들어갔습니다.

[관련 기사] 
[인터뷰] "산재벌금, 기업한테는 껌값... 단식이라도 해야 했다" http://omn.kr/1qzto
[취중진담] 중대재해법이 "기업죽이기법"이라는 의원들께 http://omn.kr/1r1m2

대한민국 헌법은 제26조에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기관에 문서로 청원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국회의 국민동의청원은 청원법과 국회법,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직접 소통을 목적으로 하는 도구에 불과한 청와대의 국민청원과 다른, 명실상부한 국가 제도로서 권위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회가 국민의 청원권 보장제도로서 국민동의청원 제도를 시작한 2020년 1월 10일 이래, 청원접수-소관위원회 심사-본회의 의결까지 청원처리 절차를 순조롭게 거쳐, 사실상 성사를 의미하는 '대안반영폐기' 결과를 통지받은 청원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국민 10만 명 동의를 받아 제출한 청원들이더라도 국회 노숙 농성, 단식 등 제도 밖 투쟁이 마치 필수 절차인 양 뒤잇지 않으면 해당 법안은 두 달이고 석 달이고 계속 계류 중이기 십상입니다. 실제 텔레그램 성범죄 관련 청원 2건을 제외하곤 많은 법안들이 대부분 이렇게 장기간 계류 중이며, 그마저도 지난 20대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됐습니다. 

국회 청원이 국민의 청원할 권리를 제한한다? 
  
국회국민동의청원 온라인 홈페이지.
 국회국민동의청원 온라인 홈페이지.
ⓒ 홈페이지화면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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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이렇게 폐기된 청원 외에도,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를 통해 30일 동안 10만 명 국민 동의를 받지 못해 아예 '미성립된 청원'은 현재 148건으로 '성립된 청원'의 10배가 넘습니다. 이 가운데는 법무부가 '헌법상 평등의 원칙을 실현하는 최초의 기본법'이라고 제정이유를 밝힌 '차별금지법제정안', '포괄적 차별금지법 입법 촉구에 관한 청원'도 포함돼 있습니다.

문제는 또 있습니다. 국민 10만 명의 동의진행 과정으로도 진입하지 못하고 진입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진짜 직접 청원이 필요하나 소외된 청원(자)들은 더 많을 거라는 점입니다. 이는 국회 청원 중 문서로 제출이 가능한 것은 의원소개 청원뿐으로, 오히려 직접민주주의 제도로 기능하는 국민동의청원의 경우는 홈페이지를 통해서 즉 온라인을 통해서만 가능하도록 설계돼 있기 때문입니다.

국회 국민동의청원은 국민들의 보편적인 접근이 가능한 문서, 현장 서명 등 오프라인 서명이 불가능하게 돼 있습니다. 지방자치단체 주민조례청구 제도에서 (오프라인의) 서명을 기본으로 하고 (온라인) 전자서명을 "전자서명을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청구한 조례안에 대해서만 전자서명을 할 수 있도록"한 것과는 매우 대비됩니다.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는 "SNS 등으로 공유된 청원에 찬성하거나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에 공개된 청원에 동의하기 위해서는 국회 홈페이지 통합회원으로 가입하거나 휴대폰 인증 또는 아이핀(I-PIN) 인증을 통한 본인확인을 해야 한다"고 안내합니다. 아이핀 인증 또한 휴대폰으로 주로 하고 있으니, 이는 어떤 방법으로든 청원에 동의하기 위해서는 휴대폰, 그중에서도 스마트폰을 통한 본인확인을 거쳐야 한다는 말이 됩니다.

'국내 거주+스마트폰 사용자'만 가능한 국회 청원... 디지털 소외계층은 '배제'

결국 '국내에 거주하는, 본인 명의의 스마트폰 소유자'만이 국회 국민동의청원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대한민국 국회의 국민동의청원에 재외의 국민, 스마트폰 비소유자, 디지털 소외계층, 시각장애인 등은 아예 참여가 불가능합니다.

청원 홈페이지에서는 또 "모바일 화면에서 팝업이 차단돼 있는 경우 본인인증 창이 열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팝업이 차단되어 있다는 알림이 나오는 경우에는 클릭해서 바로 해제할 수 있지만, 사용하는 스마트폰 종류에 따라 알림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으니 아래의 방법을 참고하여 팝업차단을 해제해주시기 바랍니다"라면서 아이폰과 안드로이드 기기에 따라 본인인증 창이 열리지 않을 경우를 위한 긴 설명을 붙여놨습니다.

그 탓에 청원을 국회에 제출하려는 단체들은 시민들에게 청원의 내용보다 어떻게 오류 없이, 까다로운 본인인증을 거쳐 온라인으로 서명할 수 있는지 방법을 알리는 데에 더 많은 역량을 투입해야 했습니다.

실제로 4.16연대는, 내용보다도 '국회 국민동의청원 본인인증이 안 될 경우 참여방법' '세월호참사 국민동의청원 동참하기' '국민동의청원 동영상 보고 따라하기-아이폰용/안드로이드폰용' '국회 10만 국민동의청원-QR코드 쉬운 참여' 등 별도의 서명 방법 안내를 계속해 공지해야 했습니다.
  
4.16연대가 국민동의청원을 어떻게 오류 없이, 까다로운 본인인증을 거쳐 온라인으로 서명할 수 있는지를 알리기 위해 제작한 홍보물들
▲ 4.16연대의 <국민동의청원 동영상 보고 따라하기-아이폰용/안드로이드폰용> 공지 4.16연대가 국민동의청원을 어떻게 오류 없이, 까다로운 본인인증을 거쳐 온라인으로 서명할 수 있는지를 알리기 위해 제작한 홍보물들
ⓒ 이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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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본인인증만으로 본인확인을 하는 데 따른 문제는 또 있습니다.

'조례의 제정‧개정‧폐지 청구 등의 서식에 관한 규칙'에서 볼 수 있듯이, 일반적인 동의서명 과정에서 유효 서명임을 확인하기 위해 요구되는 정보는 성명, 생년월일, 주소, 서명 연원일, 이 네 가지입니다. 그런데 국민동의청원은 여기에 불필요한 성별 정보, 휴대전화번호 등 개인정보를 강제로 제출해야 합니다. 중요한 개인정보 누출 위험뿐만 아니라, 본인확인에서 성별 정보를 취급하는 문제 등 인권침해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는 보다 근저의, 국민동의청원과 같은 민주주의 제도와 그 기술도구적 집행수단을 관료의 편의주의와 산업주의, 시장논리로 통제해 청원권·청구권 등은 물론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심대한 문제로 볼 수 있습니다.

또 이는 지난 5월 본회의를 통과한, 기존 공인인증서 제도를 폐지하고 사설인증서 활성화로 '국민들에게 다양하고 편리한 전자서명수단을 제공하는 등 인터넷 이용환경을 개선하는 데 중점'을 둔 전자서명법의 취지와도 배치됩니다. 이는 국회 청원이 국내 통신사를 통한 사설 휴대폰인증만을 국회의 유일한 공식인증 방법으로 채택해, 국민들의 다양하고 편리한 서명 방법들을 배제했기 때문입니다.

국회 국민동의청원, 실제 국민입법 가능성 높이나?

국회 국민동의청원은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를 통하여 30일 동안 10만 명 국민의 동의를 받아 제출할 수 있습니다. 지방자치법에서 조례의 제정·개정·폐지 청구의 (동의)서명 기간을 시·도의 경우 청구서 제출, 청구 취지 공표로부터 6개월 이내로, 시·군·구는 3개월 이내로 규정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됩니다. 독일은 4주간 5만 명 동의 시 청원위원회 공개회의 논의 의무를 부과하고 있고, 영국은 기간 제한 없이 10만 명 이상 동의하면 자동으로 본회의에 상정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재외국민·스마트폰 비소유자·시각 장애인·디지털 취약계층 등이 아니더라도, '30일 내 10만 명'이라는 청원접수 요건을 갖추기는 쉽지 않습니다. 특정 지역·계층·직업·조직에 한정되지 않는 다수 공익적 사안의 경우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특히 청소년, 어린이 등 정치적 소외계층과 빈곤, 장애인, 노약자 등 사회경제적 취약계층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사안일수록 30일 내 10만 명의 동의를 얻어 청원으로 성립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서명인 수로만 청원접수 요건을 규정한 국민동의청원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제기됩니다.

국회 국민동의청원은 법적 근거가 없는 청와대 국민청원과 달리, 국회법에 도입 근거를 두고 청원법의 적용을 받아 운영합니다. 청원이 성립(접수)되면 소관위원회에 회부되고 심사, 본회의 상정 및 표결까지 진행할 수 있어 입법(법 제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그런데 국회법 125조 5항의 "소관위원회는 청원이 회부된 날부터 90일 이내에 심사결과를 국회의장에게 보고해야 한다. 다만, 특별한 사유로 인하여 그 기간 이내에 심사를 마치지 못하였을 때에는 60일의 범위에서 한 차례만 심사기간을 연장할 수 있고, 장기간 심사를 필요로 하는 청원으로서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위원회의 의결로 심사기간의 추가연장을 요구할 수 있다"는 규정을 보면, 사실상 위원회의 '심사기간 무기한 연장 가능성'도 높아, 실제 입법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모든 국민이 청원할 수 있게, 국회 온라인 청원제도를 바꿉시다
 
지난 12월 5일, 세월호참사 가족들이 올해 국회 마지막 본회의 12월 9일 전까지 <사회적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개정안>, <박근혜 대통령기록물 공개 결의> 청원 원안 그대로 처리할 것을 요구하는 농성을 진행했습니다.
▲ 세월호참사 관련 국민동의청원 입법 촉구 국회 농성 지난 12월 5일, 세월호참사 가족들이 올해 국회 마지막 본회의 12월 9일 전까지 <사회적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개정안>, <박근혜 대통령기록물 공개 결의> 청원 원안 그대로 처리할 것을 요구하는 농성을 진행했습니다.
ⓒ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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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국회 국민동의청원 제도개선을 위해 시민사회단체가 TF를 구성했습니다.

이렇게 제한적인 본인인증, 까다로운 국민동의청원 문턱을 넘지 못한 '포괄적 차별금지법 입법 촉구에 관한 청원', 10만 명 동의를 얻고도 추운 겨울 노숙 농성을 통해서야 가까스로 처리된 '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 개정안', 그렇지 못한 '4.16세월호참사 관련 박근혜 전대통령 기록물 공개 결의에 관한 청원'과 연내 처리하기 위해 아직도 단식농성 중인 '안전한 일터와 사회를 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관한 청원' 등에 참여한 단체들입니다.

어느 국민의 권리도 배제하지 않는, 모든 국민이 청원할 수 있는 국회 국민동의청원, 국회 온라인 청원이 청원다운 청원이 될 수 있도록. <오마이뉴스>를 통해 이의 공론화 작업을 시작합니다.

태그:#국회청원, #국민동의청원, #청원권, #세월호참사, #4.16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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