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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가 8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서울지방국토관리청에 마련된 청문회 준비 사무실에 출근하고 있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가 8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서울지방국토관리청에 마련된 청문회 준비 사무실에 출근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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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창흠 후보자의 사과는 그냥 장관이 되고 싶다는 말로 들렸다."

20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에서 '구의역 김군의 죽음을 모욕한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즉각 사퇴하라' 기자회견을 주도한 '청년전태일' 대표 김종민씨가 21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한 말이다. 김 대표는 "땜질식으로 그때만 벗어나면 된다는 생각으로 말한 것 아니겠냐"고 꼬집었다.

변 후보자는 2016년 6월 30일 SH(서울주택도시공사) 사장 시절 내부 회의에서 "구의역 사고를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 때문에 사람이 죽은 것이고, 이게 시정 전체를 다 흔든 것이다", "위탁업체 직원이 실수로 죽은 거다. 사실 아무것도 아닌데 걔(김군)가 조금만 신경 썼으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될 수 있었는데 이만큼 됐다"라는 발언을 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변 후보자는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2019년 4월에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장에 임명됐다. 지난 4일 문재인 대통령은 신임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로 그를 임명했다. 

변 후보자는 자신의 과거 발언이 논란이 되자 18일 'SH 사장 재직 시 발언에 관한 사과의 말씀'이라는 제목의 사과문을 내 "4년 전 SH 사장 재직 시 제 발언으로 인해 국민 여러분들께 심려를 끼치게 되어 죄송하게 생각한다. 특히 저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입으신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라고 밝혔다. 
 
스크린도어 수리작업 도중 사망한 19세 청년 비정규직노동자를 추모하는 시민들이 2016년 5월 31일 오후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사고현장에 국화꽃을 놓거나, 추모쪽지를 붙이며 고인을 추모하고 근본적인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스크린도어 수리작업 도중 사망한 19세 청년 비정규직노동자를 추모하는 시민들이 2016년 5월 31일 오후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사고현장에 국화꽃을 놓거나, 추모쪽지를 붙이며 고인을 추모하고 근본적인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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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는 2016년 5월 28일 서울메트로 하청업체 직원이던 19살 김군이 구의역 내선순환 9-4 승강장에서 스크린도어를 홀로 정비하던 중 열차에 치여 목숨을 잃은 사건을 말한다. 김군은 2인 1조로 일해야 했으나 비용절감 등의 이유로 혼자 일하다 사망했다.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일해야 했던 김군은 당시 140만 원대의 월급을 받았다.

김군의 사망 이후 김종민 대표 등 청년들은 자발적으로 구의역 현장을 찾아 국화꽃을 놓고 '친구야 너의 잘못이 아니야'라는 포스트잇을 붙이며 전국적인 추모 열기를 이어갔다. 하지만 사고 한 달이 막 지났을 때 변창흠 후보자가 위와 같은 발언을 공식석상에서 했던 것이다.

"사자명예훼손으로 고발하자는 말도 나와"

이날 김종민 대표는 <오마이뉴스>와의 전화에서 날선 목소리로 "서울교통공사의 감독기관이 바로 국토교통부이다. 그가 장관으로 임명되는 것은 그곳에서 일했던 김군과 동료들, 함께 싸웠던 청년들이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 "변 후보자는 자신의 발언에 대해 책임지고 자진사퇴해야 한다"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그러면서 김 대표는 "하루에도 일곱 명의 노동자가 퇴근하지 못하고 산재로 사망하는 현실에서, 청와대가 이런 반노동적인 인식을 가진 후보자를 장관으로 내정하는 것은 정부 역시 반노동적인 인식을 유지하겠다는 뜻 아니겠나. 문 대통령은 임명을 철회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변 후보자는 이러한 사퇴 요구에도 불구하고 "당시 발언은 소홀한 안전관리로 인한 사고가 미치는 사회적 파장을 강조하려는 취지였다"라고 21일 국회 국무위원후보자 인사청문회 서면답변서에 밝혔다.
 
스크린도어 수리작업 도중 사망한 19세 청년 비정규직노동자를 추모하는 시민들이 2016년 5월 31일 오후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사고현장에 국화꽃을 놓거나, 추모쪽지를 붙이며 고인을 추모하고 근본적인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스크린도어 수리작업 도중 사망한 19세 청년 비정규직노동자를 추모하는 시민들이 2016년 5월 31일 오후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사고현장에 국화꽃을 놓거나, 추모쪽지를 붙이며 고인을 추모하고 근본적인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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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는 "김군의 동료들로부터 변 후보자를 사자명예훼손으로 고발하자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무엇보다 유가족이 본명을 쓰지 말라고 부탁한 건 '잊힌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말이었는데, 2020년 변 후보자로 인해 김군의 이야기가 회자되게 함으로써 유가족에게도 다시 한 번 아픔을 주고 있다"라고 밝혔다.

문제는 2016년 김군 사망 이후에도 지하철과 철도 등에서 일하다 사망하는 노동자들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2019년 10월 경부선 밀양역 인근에서 작업 중이던 한국철도공사 직원 장아무개씨가 열차에 치여 목숨을 잃었다. 사망한 장씨는 열차가 다니는 낮 시간대에 선로 유지·보수 작업을 하다 열차가 다가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사고를 당했다. 앞서 2018년에는 태백선 연당역 인근에서도 피뢰기 교체 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전철주에서 떨어져 사망했다. 2017년에는 노동자 5명이, 2016년에는 6명이, 2015년에는 7명이 철도와 지하철에서 일하다 목숨을 잃었다.

"막말 당사자 임명 철회하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힘 쏟아라"

김 대표는 "과연 변 후보자가 SH공사 사장 시절 구의역과 관련된 발언만 했겠냐"면서 "그가 속한 건설업은 산업재해로 가장 많은 노동자들이 죽어나가는 현장이다. 기본적으로 노동에 대한 인식이 없으니 구의역 김군에 대한 망언도 공식석상에서 한 것이다. 사석에선 얼마나 더 심한 말을 했을지 가늠이 안 된다. 이런 사람을 지명한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김 대표는 "정부는 지금 하루에도 7명씩 죽어나가는 노동자와 유가족들, 동료의 고통에 대해 먼저 헤아려야 한다"면서 "지금은 막말 당사자인 변창흠 후보자의 임명을 철회하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힘을 쏟아야 할 때"라고 재차 강조했다. 

김 대표 말대로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최근 공개한 '2020년 9월 말 산업재해 발생현황' 통계에 따르면, 지난 1~9월 사망 재해로 목숨을 잃은 건설업 노동자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오히려 31명 늘어난 435명을 기록했다. 한 달에 40여 명이 현장에서 정부 기록대로 떨어짐, 넘어짐, 깔림, 무너짐, 끼임, 베임, 찔림, 잘림 등의 사고를 당해 죽어나간 셈이다.
 
나흘째 단식 농성 중인 고 김용균 노동자 어머니 김미숙씨, 고 이한빛 PD 아버지 이용관씨,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가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 농성장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곡기를 끊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연내 제정을 촉구하는 이유를 들었다.
 나흘째 단식 농성 중인 고 김용균 노동자 어머니 김미숙씨, 고 이한빛 PD 아버지 이용관씨,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가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 농성장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곡기를 끊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연내 제정을 촉구하는 이유를 들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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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정치권도 변 후보자 임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여당인 민주당 이원욱 의원은 21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변 후보자가 지난 18일 사과문은 냈지만 김군의 동료 등은 후보자의 자진사퇴를 촉구하고 있다"면서 "변 후보자는 유가족과 동료들을 찾아뵙고 사과하는 게 도리라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21일 서면 입장문에서 "말은 그 사람의 인성과 인격을 나타낸다. 특히나 변 후보의 막말에는 국민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그의 정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면서 "대통령과 여당에 촉구한다. 변 후보 같은 인물이 국회 인사청문회장에 서는 것 자체가 국민적 모독이라는 성난 민심에 귀를 기울이길 바란다. 국민적 분노와 짜증을 유발하는 불량 후보를 당장 지명 철회하는 것이 상식에 맞을 것"이라고 밝혔다.

변창흠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는 오는 23일 열린다.

태그:#변창흠, #구의역, #김군, #김종민, #전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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