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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후 4시 37분께 경기 군포시 산본동 25층짜리 아파트 12층에서 불이 나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당국에 의해 30여분만에 꺼졌다.
 1일 오후 4시 37분께 경기 군포시 산본동 25층짜리 아파트 12층에서 불이 나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당국에 의해 30여분만에 꺼졌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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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경기도 군포시의 한 아파트 12층에서 인테리어 공사 중 불이 나 작업자 두 명이 숨지고 옥상으로 대피를 시도하던 주민 세 명이 죽거나 크게 다치는 참사가 있었다. 이번 사고는 최근의 대단지 아파트 화재로는 보기 드물게 인명피해가 많았는데 그 과정을 살펴보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던 안타까운 사고였음을 알 수 있다.

우선 아이러니하지만 꼭 챙겨 보아야 할 부분이 있다. 옥상으로 대피하려고 한 주민은 모두 사망하거나 중상을 입었고 집 안에서 구조대가 올 때까지 기다린 주민은 모두 생존한 것이다. 구조대가 올 때까지 기다린 사람들 중에는 심지어 화재가 발생한 호실의 바로 위층에 살던 분들도 있었다고 한다. 이번 사고를 통해 현관문이 계단실과 바로 맞닿아 있는 예전에 건축된 아파트 주민들은 불이 났을 때 연기가 가득 차 있는 계단으로 섣불리 대피를 시도하기보다는 집안에서 소방 구조대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 현명한 방법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리는 공간과 계단실이 방화문으로 분리되어 있는 요즈음 아파트들은 화재시에 그 방화문만 제대로 닫혀 있다면 층수에 상관없이 계단으로 대피하는 것이 옳을 테지만 말이다.

이와 관련하여 현재 소방청에서 벌이고 있는 '불나면 대피먼저' 캠페인을 '우리 집 불나면 대피먼저'로 그 대상을 한정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위험물 사업장 등 공적 책임이 일부 강조되는 곳에서는 화재 확산을 막기 위해 진화를 우선하여야 할 필요가 있을 수 있겠고 이번 화재에서 볼 수 있듯이 아파트 화재에서 불이 난 곳보다 위층 세대의 경우 연기가 가득 차 있는 복도로 대피를 시도하는 것이 오히려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 화재에서 불이 난 아파트 세대와 현관문을 마주한 바로 옆 세대로 20여 분 만에 불이 옮겨붙은 것을 보면 화재 세대에서 현관문을 열어 둔 채 공사를 하다가 그대로 대피를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든다. 집에 불이 나 서둘러 대피하다 보면 출입문을 닫을 경황이 없는 게 보통이겠지만 화재 시 출입문을 닫고 대피하는 작은 행동이 피해를 줄이고 이웃의 생명을 살릴 수도 있다는 걸 기억할 필요가 있다.

공황에 빠진 대피자도 알기 쉽게 비상구 표시 달아야

그런데 이 글의 요점은 다른 데에 있다. 옥상으로 대피를 시도하신 분들이 돌아가신 과정이다. 화재가 난 아파트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맨 꼭대기 층에 엘리베이터 기계실이 있다. 옥상으로 나가는 비상구는 이 엘리베이터 기계실 바로 아래층에 있는데 이 옥상 비상구의 상단 높이가 150cm 정도밖에 되지 않고 문턱도 높아 다 큰 어른이 이 문을 통과하려면 머리를 수그리고 다리를 들어 웅크려 지나가야 하는 쪽문이다.

물론 여느 비상구처럼 문 위쪽 천장 가까이에는 비상구 유도등이 붙어 있었지만 불이 나 복도 상부에 연기가 가득 차 있고 대피자가 정신적 공황에 빠진 상황에서는 비상구라고 인식하기 어려워 보인다. 결론적으로 당시 옥상으로의 화재 대피를 시도한 주민 세 명 모두가 이 옥상 비상구를 지나쳐서 문이 잠겨져 있는 엘리베이터 기계실 앞에 질식되어 쓰러져 있었다.
  
이와 관련하여 제안을 하나 하고 싶다. 비상구에는 천장 가까이 설치하는 유도등에 더해 문에다가도 큼지막하게 비상구임을 알리는 표지판을 붙여 놓는 것이 어떨까? 노랑과 연두 형광색 빗금을 번갈아서 네모난 테두리를 두르고 그 안에다 문을 향해 달려 나가는 녹색의 사람 그림(비상구 그림문자)을 꽉 차도록 그려 넣는 것이다. 이렇게 해 놓으면 지금보다는 화재 대피자가 비상구를 찾기 쉬워지지 않을까? 아무리 공황에 빠진 대피자라 하더라도 도저히 지나칠 수 없을 만큼 시인성 좋게 비상구 표지를 만들어 놓았다면 이번 같은 안타까운 사고는 없지 않았을까?
 
시인성이 강화된 비상출구의 예.
 시인성이 강화된 비상출구의 예.
ⓒ 경기도소방재난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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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구 문 전체에 유도표지를 적용하였다.
▲ 시인성이 강화된 비상출구의 예 (스웨덴 지하철역) 비상구 문 전체에 유도표지를 적용하였다.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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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지금껏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음에도 잘 바뀌지 않는 부분이 있다. 비상구 유도등과 유도표지에 쓰이는 화살표의 크기가 작아 대피 방향에 대한 시인성이 떨어지고 비상구 바로 위의 유도등에는 화살표가 아예 없이 사람이 뛰어가는 그림만 있어 출구를 바로 앞에 두고도 그림 속의 사람이 뛰어가는 쪽으로 대피했다는 웃지 못할 경험담이 생겨난다.

또한 피난 유도등에는 녹색만을 쓰도록 하고 있다. 이는 어두운 곳에서의 시인성이 좋고 대피자의 흥분을 가라앉혀 침착한 대피를 유도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녹색은 화재 등 상황에서의 시인성은 높을지라도 평상시 시인성이 떨어진다. 평상시 비상구의 존재와 위치를 건물 사용자에게 각인시키려면 녹색 이상을 사용해야 한다. 빨간색은 위험, 정지 등을 의미하여 피난 표지에는 부적합하다고 하니 노랑, 주황 등의 형광색을 적절히 이용하여 비상구에 대한 평상시 시인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높이 최소 150cm' 비상구 규정도 수정해야

또한 현행 다중이용업소법 시행규칙에서 최소 150cm 이상으로 되어 있는 비상구의 높이(세로길이)를 일반 성인이 몸을 굽히지 않아도 통과할 수 있는 일반 출입문 규격으로 강화하여야 하며 비상구 문턱의 높이도 재난 대피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높이 상한을 규제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 잠시 비상구에 대해서 좀더 알아보고자 한다. 비상구의 설치 기원은 1883년 영국 선더랜드의 빅토리아홀 화재 시에 건물의 1층 출구가 잠겨있어 초등학생 180명이 사망하면서 처음 법제화되었다. 이후 1911년 미국도 같은 원인으로 공장노동자 146명이 숨지자 비상구의 설치를 법제화하기 시작한다. 이때의 비상구는 'Emergency Exit'으로 말 그대로 '비상시에 사용하는 출구'의 개념이었으나 이를 일본에서 '비상구'로 번역하였고 다시 이를 우리나라도 그대로 도입하면서 이 개념이 '비상 전용 출구'인지 '일반 출입구'인지가 헷갈리게 되었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다른 선진국들도 다중이 이용하는 시설에는 화재 시 신속한 건물 밖 대피를 위해 이 '비상출구'를 반드시 설치하도록 하고 있으나 이 중 많은 나라들은 우리나라와 달리 이 비상출구를 평상시에는 쓰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문에다가 큼지막한 경고판을 붙여 놓아 문을 열면 알람이 울린다는 것과 평상시 사용하다 적발되면 벌금이 부과된다는 사실을 알린다. 또한 문에는 별도의 자물쇠장치 없어 건물 안에서 누구나 문을 열고 나올 수 있으나 건물 밖에서는 문 손잡이가 없어 들어 올 수 없는 말 그대로 비상출구의 역할을 한다.

2019년 개봉한 우리 영화 <엑시트>에서 독성가스가 점점 건물 위층으로 차오르자 울분에 찬 남자 주인공의 대사가 생각난다. "왜 이 동네 사람들은 옥상문을 죄다 잠가두는 거야?" 과거 경찰에서는 방범을 위하여 평상시 옥상문을 잠궈 두라고 지도하고 소방에서는 화재 대피를 위해 열어두라고 하면서 서로 충돌하였다. 이에 대한 타협으로 소방에서는 평상시에는 잠겨 있지만 화재가 감지되면 잠금장치가 풀리는 비상문을 옥상에 설치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화재 시의 작동성능을 100% 신뢰하기 어렵고 화재가 아닌 다른 재난 시에도 옥상 대피가 필요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소방청에서 국가 화재안전기준 등 관련 법령을 개정하여 비상구 유도등, 유도표지의 시인성 개선과 함께 비상구 규격을 확대하고 기존의 '비상구' 중 일부를 규모와 용도를 따져 '비상(전용)출구'로만 사용하도록 법제화한다면 이번 군포 아파트 화재와 같은 안타까운 사고는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태그:#군포 아파트 화재, #비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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