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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장 모습(자료사진)
 결혼식장 모습(자료사진)
ⓒ 서울시청 시민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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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주요 국가 중에서 우리나라처럼 자녀에게 교육비는 물론 결혼 비용을 지원하는 나라가 또 있을까?

한국 보건사회 연구원(2018년)에서 기혼여성(15~49세)을 대상으로 "자녀에 대한 경제적 부양을 언제까지 책임지는 것이 적당한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대학 졸업 때까지(59.2%) 지원한다는 답변이 가장 높았다. 다음은 '취업할 때까지'(17.4%),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14.7%), 그리고 '혼인할 때까지(7.1%) 순이다.

2019년 통계청에 따르면 남자는 33.2세, 여자는 30.4세에 결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혼은 부모의 그늘을 벗어나 경제적 독립을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매우 중요한 인생 이벤트다.

하지만 결혼은 그들만의 이벤트로 끝나지 않는다. 통계에 나타난 것처럼, 자녀들이 결혼할 때까지 부모로서 경제적 책임이 있다고 느끼는 부모들이 적지 않아서다. 설령 경제적 도움을 주지 않는다고 해도, 부모로서 나 몰라라 할 순 없는 일이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아들이 내린 결단 

지난 10월 어느 날, 내년 5월에 있을 결혼 준비로 여념이 없는 아들이 저녁 식탁에서 이런 말을 했다. 

"아빠, 결혼 자금은 우리 두 사람이 해결할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게 가능하니? 할 수 있겠어?"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해야죠. 자금에 맞춰서 하면 돼요."
"너희 살 집은 어떻게 할 생각이니?"
"대출 받아야죠. 그것도 알아봤는데 우리가 할 수 있어요."
"… 그렇구나... 알았다"
"근데 아빠, 내후년쯤 학원을 오픈할 생각인데 그때 조금만 투자해 주시면 안 될까요?"
"그렇지 않아도 엄마가 말하더라. 그렇게 하자."
"네."


신혼부터 대출로 시작하는 아들이 안쓰럽지만 한편으로는 도와달라는 말을 할 법도 한데 자기들끼리 해보겠다는 생각이 기특했다. 그날 저녁, 고령의 아버님께 아들 결혼과 관련해서 진행 사항을 말씀드렸다. 그러자 대뜸 아이들 가전제품은 어떻게 할 건지 물으신다. 형편에 맞게 준비하겠다는 아들의 이야기를 전했더니, 또 이런 말씀을 하신다

"아범아! 손주 가전제품은 내가 하마"
"어휴, 아니에요. 한두 푼도 아니고 적어도 몇 백은 들 텐데, 애들이 힘들어하면 제가 할게요."
"아니다. 지금까지 할아비가 손주에게 해 준 것도 없는데, 얼마가 됐든 그거라도 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 그래."


할 말이 없었다. 평소 무뚝뚝하고 잔정이 없는 아버님이다. 58년 동안 아들로 살면서 이런 것이 아버지의 잔정이구나 느낀 기억이 전혀 없다. 그렇다고 괴팍하고 까다로운 분이란 말은 아니다. 열여덟 어린 나이에 혈혈단신 남쪽으로 내려온 실향민이라 그런지 생활력이 남다른 분이다.

피붙이 하나 없는 남쪽에서 버겁게 가정을 일군 탓에, 당신 외엔 아무도 믿지 않는다. 그 때문인지 주변엔 친구라고 할 만한 분이 없다. 술, 담배는 물론, 모든 잡기는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 당신을 위한 치장은 거리가 멀다. 하다 못해 밖에서 음식을 사 먹는 일도 가뭄에 콩이 날 만큼 극히 예외적인 분이다.

행동거지도 흠잡을 일이 없을 만큼 자기 관리가 철저하다. 인생 자체가 모범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 분이 바로 아버님이다. 그런 분이 손주를 위해 수백만 원의 가전제품을 사주겠다고 하시니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아들로 살아오면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아버님의 감춰졌던 마음 한쪽을 보는 듯했다.

아들에게 '월세'도 받았지만... 선뜻 투자 약속한 이유 

2011년이었다. 노후 준비 방편으로 살고 있던 낡은 주택을 허물고 그 자리에 다가구 주택을 지었다. 지층 주차장 안 쪽으로 근생 2종 공간을 하나 더 만들었는데, 아들은 그 공간을 자기가 쓰고 싶어 했다. 드럼 교습소를 운영할 생각이 있어서다.

아들은 대학에서 드럼을 전공했기 때문에 개인 레슨을 하면서 학원 강사로 활동 중이었는데, 마침 그 공간이 현실적 눈높이에 맞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물론 공짜는 아니었다. 보증금은 없지만 월세와 교습소에 들어가는 세금성 비용을 직접 해결하는 것을 골자로 임대차 계약서를 작성했다. 

아들에게 월세를 받는 것이 이상할 수도 있지만 다른 뜻은 없었다. 사회생활 시작부터 부모에게 기대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아내의 반대를 무릎 쓰고 밀어붙였다. 4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 다행히 아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주어진 환경에 맞게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빠르면 내년, 늦어도 후년에는 교습소를 청산하고 본격적으로 학원을 운영하는 것이 아들의 당면 목표다. 그러려면 입지가 좋은 도로변으로 나가야 하는데, 그때 일정 금액 투자를 요청한 것이다. 많이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부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내와 상의한 일도 있고 해서 흔쾌히 받아들였다.

지난 4년 동안 어려운 상황에서도 대상별, 단계별 교습 로직을 구축하고, 자기만의 차별성을 확보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 정국에서도 철저한 방역은 물론, 치밀하게 회원을 관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젠 조금 더 큰 곳으로 나갈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자녀들의 홀로서기를 마다할 부모는 없다. 독립은 새로운 출발을 뜻하지만, 그 이면엔 위험과 기회가 공존한다. 부모로서 자식의 독립을 응원하고 형편에 맞게 도울 수 있다면, 그보다 아름다운 그림은 없다. 그런 점에서 아버님은 손주의 결혼에 초점을 맞추었고, 아들은 내게 새로운 도전(학원 투자)에 도움을 요청한 셈이다. 

이 시대의 자녀들이 풀어야 할 미래는, 지금까지 겪었던 경험과는 사뭇 결이 다른 모습을 예고하고 있다. 속도와 창의력은 기본이고, 엄청나게 빨라진 변화의 주기를 선제적으로 읽어내고, 그에 맞게 대응하는 능력이 요구되는 시대를 살 것이다.

아무쪼록 다음 세대의 주역인 우리의 아들, 딸들이 세상과 맘껏 겨룰 수 있는 내일을 응원하자.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주눅 들지 않고 과감히 도전하는 독립 DNA를 장착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자. 그것이 부모가 자식을 위해 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녀를 정말 사랑한다면 말이다.

태그:#자녀 홀로서기 DNA, #부모의 책임범위?, #자녀를 위한 일방적 지원은 독약, #경제적 독립, #새로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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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후반전을 헤매지 않기 위한 ‘은퇴 살이 해법’을 고민합니다. 더하여 시회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하는 ‘인생살이 요모조모’를 말과 글로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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