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일제 강점기 시대 독립운동가 또는 혁명가를 호명한다면, 어떤 이름을 부를 수 있을까? 대부분 남성 영웅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여성 독립운동가나 혁명가를 조명한 콘텐츠들이 발굴되기 시작하면서, 이제 선뜻 걸출한 여성 영웅의 이름을 당당히 호명할 수 있게 되었다. 기쁘고 자랑스럽다.

경의를 담아 그들 중 몇 분을 불러보고 싶다. 박헌영의 첫 번째 부인으로 회자되곤 하던 주세죽. 하지만 그가 누구의 아내가 아니라 혁명가로서, 세상이 금 그은 한계에 부딪히며 얼마나 끊임없이 굴기하며 격동기를 관통했는지, 우리는 <세 여자>를 통해 상상할 수 있다.

'조선의 콜론타이'로 불리었지만, 공산주의자라 금기시되던 허정숙의 면면도 소설은 생생히 복원해냈다. 또한 김원봉의 부인으로 더 알려졌던 박차정은 어땠는가? 무장 독립운동가였던 그가 남성의 영역으로 독점되어 상상되곤 하는 지형에서 어떻게 맹활약을 벌였는지를 영화 <암살>은 안옥윤을 통해 뜨겁게 재현해 냈다. 김금숙의 그래픽 노블 <시베리아의 딸 김 알렉산드라>로 멋지게 재구성된 조선인 최초의 볼셰비키 혁명가 김 알렉산드리아도 빼놓을 수 없다.

타워크레인에서 309일간 고공 농성을 벌인 한진중공업 노동자 김진숙이 실은, 조선 최초의 고공 농성자 강주룡으로부터 발원한 계보를 잇고 있었음을, 소설 <강주룡>이 보여주었다. 남성들로만 전유 되었던 역사의 공간이 여성 독립운동가와 혁명가들의 삶으로 채워지며 되살아나 심장을 둥둥둥 고동치게 했다.

이 영웅 중에 또 한 여성, 최영숙의 이름을 올려보고 싶다. 제14회 여성인권 영화제 상영작 <영숙>은 조선 최초의 여성 경제학자 최영숙을 짧지만, 인상 깊게 소환하고 있다.

그 이름, 최영숙을 불러보다
  
제14회 여성인권영화제 '피움' 상영작 애니메이션 <영숙>(2020, 라정인 감독).
 제14회 여성인권영화제 "피움" 상영작 애니메이션 <영숙>(2020, 라정인 감독).
ⓒ 피움 누리집 갈무리

관련사진보기

   
<영숙>은 라정인 감독이 만든 단편 애니메이션이다. 영숙은 친숙한 여성 이름이지만, 최초 여성 경제학자 '최영숙'은 잘 알려진 이름이 아니다. 내게도 낯설었는데, 그를 각인하게 된 계기는 2018년 출간된 책 <네 사랑 받기를 허락지 않는다>를 읽으면서였다.

이 책은 최영숙(1906~1932)의 짧은 일대기를 다루고 있었다. 조선 최초 고공농성자 강주룡의 경우 너무 짧은 생이어서 안타까웠는데 최영숙도 그러했고, 우연하게도 강주룡이 유명을 달리한 해와 같은 해에 그도 세상을 떠났다. 허망한 얘기지만, '그들이 좀 더 살아주었더라면' 하는 애석함을 떨치기 어렵다.
  
이화여고보(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1923년, 최영숙이 담대한 포부를 안고 중국 남경으로 건너간 여정은 여는 독립운동가나 혁명가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특이한 행보는 중국 남경 명성학교 수학(修學) 후 그가 스웨덴으로 유학을 간 것이었다. 사회주의를 탐미했던 소수의 식민지 유학생이 건너갔던 혁명의 나라 러시아도 먼 나라겠지만, 더구나 스웨덴이라는 낯선 나라를 택해 유학을 떠났다니, 놀라웠다. 얼마나 먼 길이었을까. 게다가 전공한 학문이 경제학이었다니, 경탄이 흘러나왔고 문득 궁금해졌다. 그는 왜 경제학을 공부하겠다고 마음먹은 걸까?
    
그가 스웨덴으로 떠난 계기를 유추할 때 주로 언급되는 고리가 '엘렌 케이'다. 엘렌 케이는 스웨덴의 사상가로서, 1920년대 한중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서양 사상가 중 하나로 꼽혔다. 그에 관한 글은 1920년대 이후 조선 잡지에 꾸준히 실리고 있었고, 이를 통해 최영숙이 엘렌 케이를 깊이 흠모하게 되었다고 유추된다.

하지만 당시 소개되던 엘렌 케이에 관한 글이 육아나 연애 위주로 다루어진 것을 보면, 그가 스웨덴으로 가 경제학을 공부하게 된 경위가 모두 설명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가 상당히 사회주의에 심취해 있었고, 변혁을 추동할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경제, 특히 여성의 노동에 집중했다는 점이 간과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중국 유학 후 한 자신의 생각을 흥사단을 통해 더욱 구체화했을 것이고, 이것이 스웨덴 유학을 결정한 이유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영숙>도 그가 경제학을 선택한 이유를 독립운동가 안창호와 연결시키고 있다. 안창호의 흥사단은 해외 젊은 유학생들에게 조선 독립을 독려하며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고, 중국에서 수학 중이던 최영숙이 흥사단의 일원으로 활동했던 점이 그와의 고리로 등장한다. 안창호가 독립과 더불어 조선의 미래를 담보할 중요한 화두로 교육과 식산을 중심에 둔 것은 부연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영화는 안창호의 '식산' 사상에 영향받은 최영숙이 경제를 중시하게 되었고, 특히 "소비자 의식을 일깨우고 조선 노동자를 위해 일하겠다"는 결심을 세우는 장면을 짧게 조명한다.

그가 조선으로 돌아와 "여성 문제나 경제학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는 인터뷰가 말해주듯이, 그는 여성과 경제 문제를 늘 염두에 두고 있었다. 경제학사로 어려운 공부를 마치고 귀국했지만, 애석하게도 조선에 신여성 경제학도를 필요로 하는 곳은 없었다. 야채 파는 가게를 열고 '조선 여성 소비자 조합'을 태동시키며 사회운동가로 날갯짓을 시작하려 했지만, 그는 비상하지 못한다. 갑자기 쓰러진 뒤 27세의 나이로 요절했기 때문이다.
 
애도되지 못한 죽음

  
제14회 여성인권영화제 '피움' 상영작 애니메이션 <영숙>(2020, 라정인 감독).
 제14회 여성인권영화제 "피움" 상영작 애니메이션 <영숙>(2020, 라정인 감독).
ⓒ 피움 누리집 갈무리

관련사진보기

 
영화는 죽음 이후 그가 신문 잡지 등에 회자되는 방식을 짧게 비춘다. 전도유망한 젊은이가 꿈을 펼치지 못하고 죽음에 이른 사연은 전혀 애도되지 못했고, 불온한 눈길을 전혀 감추지 않는 가십성 기사만이 부고의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이 장면은 앞선 1세대 신여성(김일엽, 나혜석, 김명순 등)이 당시 신문 잡지 등에서 어떻게 대상화되어 인간성을 훼손당했는지를 반추하게 한다.

특히 김명선의 경우, 공고한 남성 동맹에 의해 철저히 매도당하다 미쳐서 죽음에 이르게 될 정도로 그 피해가 심대했다. 김동인이 김명선을 빗대 쓴 <김연실전>은 그의 사생활을 대명천지에 폭력적으로 까발렸고, 악의적으로 왜곡 폭로되어 혐오당한 그는 문단과 세상에 조리돌림 당하고 퇴출되지 않았던가.

당시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혐오하는 방식은 최영숙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쓰러진 뒤 사생아를 사산하자 이를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사생활은 추문으로 재생산되었다. 이러한 저열한 방식은 식민지 남성들이 자기 학대에 이르는 가학적 버전이다.

그들에게 "훼손될 수 없는 조국이자 자연이며 언제라고 귀향할 수 있는 정결한 공간"이어야 할 여성이, 미혼의 몸으로 타국 남자의 아이를 임신하고 돌아왔다는 소문은 '환향녀'를 불러들여 열등한 식민지 남성성에 기름을 붓는다. 식민지 공간에서 기를 펴지 못하던 남성성은 공공의 적인 여성 혐오를 통해 공고한 연대감을 확인하며 하나 되는 우리를 연명하고 있던 셈이다.

영화 <영숙>에서는 안창호를 통해 최영숙이 대상화되는 방식을 다루지는 않지만, 우미영의 논고 <신여성 최영숙론>을 살펴보면, 그 방식 또한 신여성이 남성 동맹에 의해 어떻게 소비되고 대상화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이광수나 선우훈 등이 쓴 안창호 전기는, 최영숙이 안창호에게 청혼했다 거절당해 수치심을 안고 중국과 스웨덴으로 떠난 것으로 묘사하지만, 이는 전혀 확인된 사실이 아니었다. 의도적으로 왜곡된 전기는 여성의 유혹에도 굴하지 않는 독립운동가  안창호를 주조해내기 위해 당시 남성들이 어떻게 공조했는지를 증명한다. 여성은 "그의 도덕적인 인격성을 부각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되었던 것이다.
  
최영숙은 조선으로 귀국하기 전 인도에 몇 달 머물렀고 그곳에서 여성 운동가 사이지니 나이두와 교류한다. 또한 청년 마하드 젠나를 만나 사랑하게 되었고, 인도에서 결혼했다. 하지만 최영숙이 이 사실을 공적으로 알리지 않고 있다 사산을 하게 되고, 그 아이가 인도 청년의 아이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최영숙은 행실이 나쁜 '모던 걸'로 적극적으로 소비된다.

사산 후 갑작스럽게 사망한 그의 죽음에 대한 애도는 어느 글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으며, 오직 그와 인도 애인 사이의 추문만이 가십거리로 회자되었다. 지극히 사생활인 여성의 삶은, 공사를 막론하고 이를 혐오하려는 남성들의 동맹으로, 참으로 유구하게도 파괴되어 왔던 것이다.

발굴되지 않은 '최영숙들'을 기다리다
  
제14회 여성인권영화제 '피움' 상영작 애니메이션 <영숙>(2020, 라정인 감독).
 제14회 여성인권영화제 "피움" 상영작 애니메이션 <영숙>(2020, 라정인 감독).
ⓒ 피움 누리집 갈무리

관련사진보기

  
영화 <영숙>은 최영숙의 삶만큼이나 짧게 만들어졌다. 해서 최영숙에 대한 충분한 사유를 담지 못한 점이 아쉽지만, 이 짧은 영화가 격동의 시대를 살다간 또 다른 한 신여성을 길어 올리는 마중물로는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듯하다.

최영숙을 다룬 책 <네 사랑 받기를 허락지 않는다>도 이미 나와 있고, 연구자의 논문(우미영 <신여성 최영숙론>)도 그의 비가시화된 삶을 조명하고 있다. 이를 통해 요절한 최영숙의 비운 말고도, 그가 짧은 생애 동안 주체적 삶을 꾸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가가 더 밝혀지고 알려질 수 있기를 기대하고 싶다. 발굴되지 않은 많은 '최영숙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에.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 게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