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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은 내내 '코로나 수능'이라고 불렸다. 수험생은 수능 당일 긴장감에 코로나 감염 우려가 더해져 이중고를 겪었다. 입장 시 고열 체크, 책상 위 칸막이, 마스크 의무 착용, 매 시간 환기와 손 소독 등 지켜야 할 방역 수칙에 마음을 졸여야 했다.

재수생인 딸은 수능 고사장에 책상마다 칸막이를 설치한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당황했다. 책상 면적이 작아져 시험지를 한 번에 펼 수 없기 때문에, 지문이 한 페이지가 넘는 국어 시간을 가장 걱정했다. 만약 누군가 실수로 칸막이를 떨어트려 본능적으로 소리 나는 곳을 쳐다보면 부정 행위로 간주하는 것인지 궁금해했다. 남은 기간 익숙해지는 것이 좋겠다며 연습용으로 칸막이를 샀다.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당일인 3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개포고등학교에 마련된 수능 고사장에서 수험생들이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다.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당일인 3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개포고등학교에 마련된 수능 고사장에서 수험생들이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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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착용은 이미 피부와 같은 일상이 된 지 오래 되었다. 재수학원에 등록한 3월부터 딸은 학원 내에서 오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마스크를 써야했다. 마스크 끈 때문에 귀 뒤가 헐고, 입 주위에 접촉성 피부염이 생겼다. 나는 외출할 때만 잠깐씩 마스크를 써도 답답한데, 온종일 마스크 안에서 숨 쉬며 공부할 딸을 생각하니 안쓰러웠다.

예상보다 코로나 상황이 길어지면서 유럽에서 수능과 같은 시험을 치르지 않았다는 뉴스를 본 딸은 우리나라도 올해 수능이 실시되지 않으면 '자동 삼수'인가 겁을 먹기도 했다. 수능 날짜가 2주 미뤄졌고, 학원은 자주 휴원하고, 모의고사도 취소되는 등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 불안의 연속이었다.

2020년 '역병수능', 재수생도 온 가족도 1년 내내 방역모드

온 가족도 초비상이었다. 확진자 그래프의 높낮이와 상관없이 수험생 가족은 1년 내내 방역을 해야 했다. 한 집에 사는 외할머니는 2월부터 교회에 나가지 않고 온라인 예배를 봤다. 아빠도 어쩔 수 없는 회식에만 참여했다. 대학생 언니는 답답할 텐데도, 친구 만남을 자제하고 외출 삼갔다. 엄마인 나 역시 모임에 나가지 않았다.

코로나가 잠시 잦아들었을 때 조심스럽게 독서 모임에 참석했지만, 뒤풀이 장소에는 갔다가 그냥 나왔다. 식당에서 냉난방 시설로 비말이 멀리 전파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명절인 추석 때도 집에서 조용히 보냈다. 서울 근교 전원주택 사는 시부모님은 동네 대기업 연수원이 코로나 확진자 격리 시설로 사용되고 있으니 오지 말라고 당부했다.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다음날인 4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주차장에 수능 감독관을 위해 마련된 코로나19 선별진료소에서 검사가 진행되고 있다.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다음날인 4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주차장에 수능 감독관을 위해 마련된 코로나19 선별진료소에서 검사가 진행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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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신경 써서 잘 예방했다 생각했던 수능 열흘 전, 딸이 다니는 재수 학원 강사가 코로나 양성 확진을 받았다. 수업을 들은 딸도 가까운 보건소에 가서 검사를 받았다. "내 일 년 어떡하지?" 눈물이 핑 돌았다는 딸의 말에 나도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방에 식사를 넣어주고, 화장실로 따로 썼다. 집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이야기하면서 내내 가슴을 졸였다. 다행히 학원생 모두 음성 판정이 나왔다. 마스크 사용이 정말 중요하구나 한 번 더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수능은 인생의 수많은 문들 중 하나

지난 3일, '역병 수능'이라고까지 불린 수능일이 막상 지나니 매일 아침 차로 데려다 주면서 함께 들은 음악도 잠시 나눈 이야기도 아득하게 느껴진다.

재수생도 이렇게 힘든데, 한 살 아래인 고3 아이들은 얼마나 혼란스럽고 힘들까 우려하는 딸에게서 의젓함을 보았다. 아토피 피부염 때문에 마스크 착용을 힘들어 하거나, 평소 체온이 높아 늘 체온 검사에 걸리는 친구를 걱정하는 딸에게서 친구를 경쟁자로만 보지 않는 마음이 대견하기도 했다.

흔히 미디어에서 수능을 '인생의 첫 번째 관문'이라 표현한다. 나는 수능이, 인생을 걸어가면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문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수능의 문을 두드리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도 많다. 다른 문으로 지나갔다가, 되돌아와서 문을 여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 수능 결과에 너무 실망하지 않았으면 한다. 반드시 통과해야 할 첫 번째 문이 아니듯 마지막 문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까지 노력과 성실함으로 보낸 시간의 경험을 다른 문을 열 때 소중한 지혜의 자원으로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많은 사람이 코로나 블루로 불안과 공포, 우울과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성인의 문턱 안팎에 있는 수험생은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더 힘들었을 테다. 일 년간 학업 더불어 코로나와 싸우며 잘 버틴 수험생 모두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나저나 학원에서 연습용으로 썼던 칸막이를 이제 집에서는 무엇에 쓸고?

태그:#수능, #코로나19, #수험생, #방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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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으로 세상의 나뭇가지를 물어와 글쓰기로 중년의 빈 둥지를 채워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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