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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페스트>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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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은 우리를 움츠러들게 한다. 코로나 19의 재확산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다시 강화되었다. 언제 어디서 우리를 공격할지 모르는 질병의 존재는 이 계절을 더욱 춥게 만든다. 추위는 날씨 탓만이 아닌 것 같다.

최근 한 여행사에서 내년 3월 이후 출발하는 해외 여행 상품의 예약 접수를 시작했다. 코로나 19의 맹공격을 받고 있는 요즘 누가 그런 데 관심을 가질까 싶었지만 예약 접수 사이트가 오픈되자 서버가 다운될 정도로 접속자가 폭주했다고 한다. 그동안 억눌렸던 여행에 대한 욕구를 일시적으로 폭발시킨 계기였을 수 있다.

하지만 해당 여행 상품의 광고 문구를 보자 예약을 하려고 몰렸던 사람들의 마음이 다르게 보였다. "희망을 예약하세요." 코로나 블루로 긴 시간 답답함을 느껴왔던 사람들은 희망의 씨앗이라도 심고 싶었던 게 아닐까.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에는 전염병의 창궐로 고립된 도시 오랑에서 각양각색의 인간군상이 삶을 헤쳐나가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페스트라는 질병이 등장하고 도시를 장악하자 질병과 사람, 삶을 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바뀌어 갔다. 전염병의 위협 앞에서 공공의 안전을 위해 개인의 행복은 희생되었고 일상생활의 제한으로 인간성과 삶의 본질은 해체되었다.

질병 초기, 불안과 공포가 난무하는 혼돈이 지나고, 사회적 대응 체계가 갖춰지자 사람들은 서서히 질병에 무감각 해졌다. 그렇기에 페스트와의 싸움은 질병을 넘어 자신과의 싸움이기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스스로를 무너뜨리려는 자기 안의 페스트를 마주해야 했다. 무지와 무관심, 절망과 태만, 이기심과 단절... 

책 속에는 카뮈 자신의 조각이라 할 수 있는 여러 인물들이 등장한다. 의사로서 공공의 건강을 위해 헌신하는 리외나 사형제도에 혐오감을 느끼고 신념의 실현을 위해 삶을 내던지는 타루, 신에 대한 믿음과 절대적 진리에 몰두하는 파눌루 신부 등 다양한 인물을 통해 카뮈는 '진정한 인간'의 의미를 묻는다.

그 중 소시민의 삶을 사는 그랑이 눈길을 끈다. 박봉과 격무에 시달리는 말단 공무원인 그의 처지는 암담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절망하지 않고 자신의 책무를 다하며 틈틈이 글을 쓴다. 글이라는 것도 거창한 게 아니다. 하나의 문장을 반복해서 쓰면서 뜻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가장 적절한 단어를 찾아내는 일이다. 그랑은 거기서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을 발견한다. 매일 반복하는 행위 속에서, 조금씩 나아지는 것에서 희망을 느낀다.

그랑은 자신의 처지가 어려움에도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보건대에 자원해 봉사한다. 그는 일상에서 길어 올린 소소한 기쁨으로 페스트라는 절망 속에서도 선량한 인간성을 지켜내고 타인을 위한 연대와 봉사의 실천으로 나아가 희망을 그려내는 것이다.

소설 속 서술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그랑과 같은 이들이 존재하는 한 '페스트'라는 질병이 도시를 완전히 잠식해버리지는 못할 거라 말하며 그를 '영웅'이라 칭한다. 카뮈는 그랑을 통해 희망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만이 자기 자신과 삶을 지킬 수 있음을 역설하고자 한 게 아닐까.

소설 속에 그려진 오랑이라는 도시에 코로나 19의 팬데믹 시대를 경험하는 현재를 포개어 볼 수 있다. 질병의 유행이 장기화되면서 불안과 공포보다 무관심과 절망이 팽배하고 냉담과 이기심이 누군가를 더 아프게 하고 있다. 추위와 함께 다시 시작된 코로나19의 맹공격은 질병과의 싸움에 재무장할 것을 촉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소설 속 그랑에게서 지금의 위기를 헤쳐 나갈 지혜를 얻을 수 있다. 매일의 성실함과 선의에서 비롯된 용기, 희망을 놓지 않는 열정으로 우리 또한 각자의 삶을 지켜낼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은, 사람은 저마다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이 세상 그 누구도 페스트 앞에서 무사하지 않으니까요.
(295쪽, <페스트> 알베르 카뮈, 유호식 옮김)
 
두 해 전 아이와 함께 떠났던 해외 여행에서의 사진이다. 언젠가 일상은 복구되고 예전처럼 여행이 가능해지는 때가 올 것이다. 다시 여행을 떠날 그날을 꿈꾸며 내일의 희망을 품어본다.오늘의 두근거림을 만들어본다.
 두 해 전 아이와 함께 떠났던 해외 여행에서의 사진이다. 언젠가 일상은 복구되고 예전처럼 여행이 가능해지는 때가 올 것이다. 다시 여행을 떠날 그날을 꿈꾸며 내일의 희망을 품어본다.오늘의 두근거림을 만들어본다.
ⓒ 김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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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과의 싸움이 결국 우리 자신과의 싸움임을, 인간성과 삶의 의미를 되찾기 위한 싸움임을 깨닫는 요즘이다. 방심하는 사이 코로나 19가 다시 기승을 부린다. 절망과 냉소에 자리를 빼앗기지 않게 마음의 온도를 뜨겁게 하면 좋겠다. '거리두기'를 철저히 실행하며 나와 타인의 안전에 대한 배려의 온도를 높여보자. 일상에 따뜻한 기운을 불어 넣어줄 소소한 기쁨을 만들면서 불확실의 어둠에 희망의 불을 밝히는 일도 필요할 것이다.

내년 3월 해외 여행을 예약하는 마음엔 이전처럼 여행이 가능해지길 바라는 간절함이 담겨 있다. 그 마음이 세상을 더 빠르게 원상복구 시키는 힘이 될지도 모르겠다. 각자의 마음 속에 내년 3월에 대한 계획을 세워보는 건 어떨까. 희망을 그리는 사람이 일상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https://blog.naver.com/coucou486


페스트 (무선)

알베르 카뮈 (지은이), 유호식 (옮긴이), 문학동네(2015)


태그:#알베르카뮈, #페스트, #코로나시대의희망, #매일의성실함, #선의의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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