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애비규환>에서 토일 역을 맡은 정수정.

영화 <애비규환>에서 토일 역을 맡은 정수정. ⓒ 에이치앤드

 

10년을 넘긴 나름 중견 아이돌 가수 출신 크리스탈이 첫 장편영화 개봉을 앞두고 본격적인 연기 인생 시동을 걸고 있다. 저예산 독립영화 <애비규환>에서 일단 저지르고 보는 당찬 성격의 토일 역을 맡은 그는 자신의 실제 모습과 캐릭터의 성격을 적절히 섞어가며 제법 안정적인 연기를 보였다.

5일 서울 삼청동의 모처에서 만난 정수정은 "저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부분이 있는 캐릭터"라면서 "자신을 백 퍼센트 믿고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하는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고 운을 뗐다. 

<애비규환>에서 토일은 과외 하던 학생과 연애하다 덜컥 임신하게 되고 부모에게 알리지 않은 채 결혼을 결정하는 등 말 그대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성격이다. 그렇다고 생각이 마냥 없다고 볼 수는 없다. 이 모든 건 그의 선택으로 미래 계획까지 세워놓고 부모님을 설득하기에 이른다. 나아가 유년 시절 자신을 떠난 친아빠를 찾아 무거운 몸을 이끌고 긴 여정을 떠나기도 한다. 현재 가족, 남자 친구의 가족과 더불어 자신이 찾은 아빠 사이에서 일종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모습이 영화에 잘 담겨 있다.

정수정의 깊었던 고민

"저도 제 성향과 성격이 있는지라 연습생 때도, 데뷔했을 때도 뭔가에 휘둘리진 않았다. 사람은 자기 의견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토일이는 그냥 의견을 얘기하는 정도가 아니라 일을 저질러 놓고 통보하는 식이잖나. 사실 촬영장에서 감독님에게 이해가 잘 안 간다고 말하기도 했다. 길게 설명도 해주셨고, 제가 대사를 할 때 뭔가 감독님이 생각한 톤이 아니면 돈가스를 생각하라고 하시더라. 

다른 게 있다면 저같으면 임신 5개월이 될 때까지 가족에게 숨기진 못할 것 같다. 토일이가 더 극단적이다(웃음). 다만 제가 토일이를 보고 생각했듯 관객분들도 영화를 보신 뒤 자기 자신을 믿고, 행동하는 모습을 생각해보셨으면 좋겠다." 


정수정이 언급한 돈까스는 일상성이라는 의미가 있었다. 가족이 깜짝 놀랄 행동을 하지만 토일에겐 그저 그런 선택이 돈가스를 먹듯 평범한 것이라는 뜻이었다. 첫 장편영화 속 캐릭터를 그는 감독을 많이 의지하며 이해해나갔다. 영화에 등장하는 의상과 소품도 함께 구입하러 다니거나 직접 가져오는 등 의견 교환도 활발했다고 한다.

"감독님과 또래이다 보니 대화도 쉽게 할 수 있는 것 같고, 공통점도 많았다. 첫 장편영화 데뷔라는 점도 같았고, 영화 취향과 음악 취향도 비슷했다. 촬영 후 좋은 친구가 생긴 느낌이더라. 감독님에게 왜 절 캐스팅했는지 물었는데 미팅했을 때 토일이를 더 풍부하게 표현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고 하더라.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인진 아직 듣지 못했다(웃음).

(토일의 부모 역을 맡은) 장혜진, 최덕문 선배님과도 가족처럼 지냈다. 현장에서 가장 많이 붙어있잖나. 실제 엄마 아빠처럼 일상 얘기와 고민도 얘기했다. 혜진 선배님도 엄마의 입장, 나아가 선배의 어머님 얘길 들려주시곤 했다. 그런 대화들이 연기할 때 많은 도움이 됐던 것 같다. 마음을 열어주신 거니 전 너무 감사했다." 


 
 <애비규환> 스틸컷

<애비규환> 스틸컷 ⓒ 리틀빅픽처스

 
영화가 어떻게 보면 토일이라는 인물의 정체성 찾기라는 점에서 정수정은 공감했다. 본인 역시 유년 시절을 미국에서 보낸 뒤 한국에 왔기에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지점이 있어 보였다. 그는 "자신을 믿으면서도 15년이 지난 뒤 친아빠를 찾아다닌 걸 보면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했던 것 같다"고 동의했다.

베테랑 아이돌 가수와 신인 연기자 사이에서

<애비규환>이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면서 생애 첫 영화제 경험을 하게 된 정수정은 당시 들뜨고 감사했던 소회를 전하기도 했다. 그만큼 어엿한 배우의 면모를 갖춰나가는 중이다. 물론 가수로 연예계에 데뷔한 이상 자신의 재능에 있어서 제한을 두지 않고 있었다. 언제든 가수 활동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특별히 가수 활동을 연기 활동과 구분하진 않는다. 물론 두 분야는 매우 다르긴 하지. 무대에선 카메라를 잡아먹어야 하고, 끼도 부려야 하는데 연기할 땐 날 것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하지만 무대 위의 3분이든 영화의 2시간이든 한 개인이 준비하는 시간은 비슷하다. 몇 개월을 연습하고 올인(all-in)하니까 말이다. 

가수든 배우든 하나에 굳이 묶이지 않아도 된다고 본다. 노래를 했었고 그걸 버릴 이유가 굳이 없다고 생각한다. 음악을 좋아하기에 둘 다 할 수 있지 않을까. 저 같은 상황의 사람들을 응원한다. 여전히 가수 출신 연기자에 대한 선입견은 있는 것 같은데 어쩔 수 없다. 최선을 다해서 좋은 연기를 보여야 받아들여 질 거다. 아직 구체적인 음악 활동 계획은 없지만 뭐가 됐든 재밌는 건 해보고 싶다. 작곡이나 프로듀싱? 능력이 될지 모르겠지만 노력해보겠다(웃음) 결국 타이밍이 중요한 것 같다." 
 
 영화 <애비규환>에서 토일 역을 맡은 정수정.

영화 <애비규환>에서 토일 역을 맡은 정수정. ⓒ 에이치앤드

 
생각이 있고 주관 또한 분명한 정수정은 종종 인상만 보고 차갑다는 얘길 듣곤 한다. 정작 본인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차가운 줄 알았는데 다르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며 "이미지에 대해 크게 마음에 두진 않는다. 그런 모습 또한 제 일부분"이라 속내를 드러냈다.

독립영화로 첫발을 뗀 그는 차기작 또한 재기발랄하다. 이계벽 감독의 차기작 <새콤달콤> 촬영을 마친 그는 "또 다른 제 모습을 보시게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좋은 작품이라면 역할과 규모를 가리지 않는다"며 그는 "독립영화를 너무 좋아하고 다큐멘터리도 좋아한다. 많이 꾸민 것보다 현실감 있는 작품이 끌린다"고 말했다. 정수정, 그가 한국 독립영화계에 활력소가 될 모습을 상상해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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