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트워프전 출전한 손흥민

앤트워프전 출전한 손흥민 ⓒ 로이터/연합뉴스

 
토트넘의 플랜B는 뼈아픈 실패로 돌아갔다. 중요한 경기는 경기대로 지고, 지친 주전들을 제대로 쉬게 하지도 못했다. 토트넘은 30일(이하 한국 시간) 벨기에 앤트워프 보사윌 스타디온에서 열린 2020-2021 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 J조 조별리그 2차전에서 로얄 앤트워프(벨기에)에 0-1로 뜻밖의 일격을 당했다.

지난 27일 번리와의 리그 경기 후 3일 만에 다시 경기를 치르게 된 토트넘은 앤트워프전에서 로테이션을 대거 가동했다. 절정의 활약을 보이고 있던 손흥민과 해리 케인은 이날 벤치에서 대기했다. 이적생 가레스 베일과 비니시우스 그리고 그동안 전력에서 배제됐던 델레 알리와 베르흐베인 등이 모처럼 선발로 나섰다.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토트넘으로서는 객관적인 전력 차가 나는 앤트워프를 상대로 주전들에게 휴식을 부여하면서 로테이션 멤버들의 경기력을 끌어올린다는 두 마리 토끼를 노렸다.

하지만 경기는 모리뉴 감독의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그동안 출전기회를 많이 얻지 못하면서 경기력이 떨어진 토트넘의 1.5군 멤버들은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 모습이었고 경기 내내 호흡도 맞지 않았다. 토트넘은 결국 전반 29분 앤트워프 공격수 리오르 라파엘로프에게 선제골을 맞고 0-1로 끌려가자, 후반들어 손흥민과 케인 등 주전들을 다시 이른 시간에 대거 투입해야했다.

하지만 주전들이 들어간 이후에도 경기흐름은 나아지지 않았다. 철저하게 준비하고 나온 앤트워프 수비진을 상대로 토트넘은 인상적인 공격 기회를 거의 잡지 못했다. 토트넘은 경기 내내 7개의 슈팅(유효 슈팅 2회)을 시도하는 데 그쳤으며 그나마 후반 들어서는 아예 유효 슈팅이 전무했다. 그나마 간간이 나오는 찬스도 몸을 사리지 않는 앤트워프 수비수들의 육탄 방어와 협력 수비에 번번이 막혔다. 결국 토트넘은 만회골을 넣지 못하고 그대로 패배를 당했다.

토트넘은 이로서 에버턴과의 EPL 개막전 패배 이후 올 시즌 두 번째 패배를 당하며, 최근 공식 경기 10연속 무패 행진(7승3무)도 중단됐다. 유로파리그 예선에서 첫 패를 당한 토트넘은 조별리그에서도 2위로 떨어졌다. AC밀란(이탈리아), 레알 소시에다드(스페인) 등 빅 리그 강팀들을 피해 앤트워프-루도고레츠(불가리아)-LASK(오스트리아) 등 약팀들과 한 조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았던 토트넘이기에 더욱 실망스럽다.

일부 주전들이 빠지고 로테이션을 가동했다는 것이 이날 패배의 변명이 되기는 어렵다. 오히려 이 경기는 그동안 무패행진에 가려진 토트넘의 불안요소를 다시 한 번 일깨워준 경기에 가까웠다.

토트넘은 지난 번리전에서도 수비라인을 내리고 조직적인 수비와 역습을 구사하는 팀을 상대로 크게 고전한 바 있다. 경기 후반 세트피스 상황에서 손흥민과 케인의 극적인 합작골이 터지기 전까지는 토트넘이 승리를 장담하기 힘든 흐름이었다. 또한 이는 번리전만의 문제가 아니라 올 시즌 토트넘이 무패 행진을 달리던 기간에도 대부분의 경기에서 마찬가지였다.

크리스티안 에릭센이 이적한 이후, 토트넘은 지공 상황이나 상대가 라인을 깊숙이 내렸을 때 볼을 안정적으로 점유하면서 패스로 수비를 허물 수 있는 플레이메이커 유형의 선수가 없다. 대신 케인이 2선까지 내려와 패스를 뿌려주고 손흥민의 폭발적인 스피드를 활용한 공간침투로 득점을 만들어내는 게 토트넘의 새로운 주 공격패턴으로 자리잡았다. 토트넘의 초반 선전은 선수단 전체의 고른 힘이라기보다는 손흥민-케인이라는 특급 선수들의 '결정력'에 의존한 바가 컸다. 실제로 앤트워프전에서 'K·S' 콤비가 침묵하자 토트넘 공격의 역동성은 눈에 띄게 떨어졌다.

로테이션이 안정적으로 가동되려면 주전과 비주전간의 기량 격차를 줄여야 한다. 토트넘은 올 시즌 대대적인 전력보강으로 지난 시즌보다 두터운 선수층을 구축했지만, 손흥민과 케인 정도를 제외하면 선수들의 경기력은 들쑥날쑥한 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풀백 벤 데이비스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임대로 영입한 세르히오 레길론이 가세하며 왼쪽 수비 주전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 중인 데이비스는 컨디션이 좋은 날엔 엄청난 경기력을 보여주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오히려 집중력을 잃고 어이없는 실수로 팀을 위기로 몰아넣기 일쑤다. 앤트워프전에서 데이비스는 전반 자기 진영에서 안이한 볼처리로 음보카니에게 볼을 빼앗기며 실점의 위기를 자초했고 이 골은 그대로 결승골이 됐다.

델레 알리와 에릭 라멜라의 성장이 정체된 것도 아쉽다. 모리뉴 체제에서 입지가 급격히 위축된 알리는 모처럼 선발 출장한 앤트워프전에서도 전반 45분 만에 비니시우스-로 셀소-베르흐베인 등과 한꺼번에 교체당하는 굴욕을 겪을만큼 존재감이 없었다. 라멜라는 후반까지 자리를 지켰으나 지나치게 볼을 끄는 습관과 느린 패스타이밍으로 오히려 팀의 공격템포만 떨어뜨렸다.

가장 큰 우려는 역시 가레스 베일이 좀처럼 팀에 녹아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7년 만에 토트넘으로 돌아온 베일은 올 시즌 가장 기대를 모았던 선수다. 일각에서는 손흥민-케인과 함께 'K·B·S'조합으로 불리우며 역대급 공격 트리오의 탄생을 예고하는 듯 했다.

하지만 베일은 복귀전이었던 웨스트햄(3-3)과의 리그 경기에서 교체 출전했으나 결정적인 득점 기회를 놓치며 팀의 뼈아픈 무승부에 지분을 차지한 데다, 한 수 아래로 꼽힌 앤트워프전에서도 특유의 스피드와 공간 침투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실전감각이 떨어진 모습만 확인했다. 박스 안으로 치고 들어가는 예리한 움직임은 없었고, 먼 거리에서 날린 중거리 슈팅 2개는 모두 골문을 크게 벗어났다. 이런 경기력으로는 손흥민-케인과 함께 공존은 고사하고, 백업 멤버로도 활용을 장담하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모리뉴 감독도 경기 후 팀의 패배에 큰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토트넘은 불과 이틀 후 토트넘은 브라이튼과 리그 경기를 펼친다. 다시 루도고레츠와 유로파리그 조별예선, 웨스트브롬과 리그 경기들이 3일 간격으로 기다리고 있다. 뼈아픈 패배도 모자라 주전들의 체력부담, 플랜B에 대한 고민까지 여러 가지 부담을 안게 된 모리뉴 감독의 머릿속이 많이 복잡해질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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