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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와 김태년 원내대표가 2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제19차 온택트 의원총회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와 김태년 원내대표가 2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제19차 온택트 의원총회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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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 "저는 오늘 오전 최고위원회의의 동의를 얻어 후보 추천의 길을 열 수 있는 당헌 개정 여부를 전당원 투표에 부쳐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그 이후의 절차는 전당원 투표의 결과에 따라 진행하겠습니다." (29일, 정책의원총회)

더불어민주당이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궐위로 치러지는 내년 4월 서울·부산 보궐선거 후보를 내기 위해 전당원 투표를 실시하기로 전격 결정했다. 29일 이 대표의 발언이 있은 뒤 4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민주당 홈페이지엔 아래와 같은 내용의 공지가 올라왔다.
 
향후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 완수와 민주당의 정권재창출을 위해 2021년 보궐선거 승리는 매우 중요합니다. 당원 여러분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당헌 96조 2항>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하여 재·보궐선거를 실시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아니한다.
  <당헌 96조 2항 개정안>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하여 재·보궐선거를 실시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아니한다. 단, 전당원 투표로 달리 정할 수 있다.

<투표 문구>
더불어민주당은 당헌 96조 2항을 개정해 2021년 4월 보궐선거에 후보자를 추천하고자 합니다. 이에 찬성합니까?
 
민주당 내에선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인구 1000만, 350만의 대도시 서울·부산 선거를 포기할 수 없다는 인식이 파다했던 만큼 후보 공천은 기정사실화되고 있었다. 다만 "늦지 않게 책임 있는 결정을 하겠다"고만 해오던 이낙연 대표가 예정에 없던 최고위원회의까지 열어가며 밀어붙인 건 갑작스러웠다. 민주당은 당장 오는 31일부터 11월 1일까지 전당원 투표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일사천리다.

당헌은 정당의 헌법이건만
 
 더불어민주당이 29일 게시한 전당원 투표 공지.
 더불어민주당이 29일 게시한 전당원 투표 공지.
ⓒ 더불어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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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단 몇 시간 만에 개정될 위기에 처한 민주당 당헌 96조 2항, 소위 '무공천 당헌'은 문재인 대통령이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의 전신) 당 대표였던 지난 2015년 7월 당 혁신위원회가 혁신안으로 내놓은 내용이다. '추천하지 않을 수 있다'고만 돼있던 기존 당헌을 '추천하지 아니한다'는 강제 조항으로 바꾼 것이었다. 이번 서울·부산 보궐선거는 무공천 당헌이 적용될 수 있는 첫 번째 주요 선거였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지난 4월 오거돈 전 부산시장, 지난 7월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성폭력 사건으로 시장 자리를 비운 이후 이 무공천 당헌을 지키겠다는 아주 당연한 언약도 하지 않은 채 이리저리 피해왔다. 윤호중 전 사무총장은 오거돈 전 시장이 사퇴한 4월 23일 후보 공천에 대한 언론의 질문에 "부산 시민들께 반성하고 자숙할 시간을 가져야지, 지금은 재보궐 선거를 논의할 계제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민주당은 계속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7월 9일 박원순 전 시장 사망 이후 송갑석 전 대변인이 "지금은 아직 다음 선거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7월 15일)고 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일부 민주당 의원 중에는 무공천 당헌의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에 성폭력 사건은 해당되지 않는다는 주장까지 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이낙연 대표가 "서울과 부산은 저희 당 소속 시장의 잘못으로 보궐선거를 실시하게 됐다. 당헌에 따르면, 그 두 곳의 시장 보궐선거에 저희 당은 후보를 내기 어렵다"고 못박은 건 그나마 다행스럽다. 또 이 대표가 "특히 피해 여성께 마음을 다해 사과 드린다"라고 한 것도 성인지 감수성 부족으로 여러 차례 도마 위에 올랐던 과거 이해찬 지도부 때와 비교하면 평가할 만한 대목이다.

그러나 정당의 당헌은 국가로 치면 헌법에 해당한다. 자신들이 혁신안이라며 만든 당헌마저 한 번도 안 지키고 폐기처분 하는 정치 집단을 시민들이 신뢰할 수 있을까. 민주당에서 원칙을 강조하며 당헌대로 후보를 내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 이는 부산 친문 전재수 의원(부산 북강서갑)과 이재명 경기도지사 정도다. 그나마도 이재명 지사는 친문 극렬 지지자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무공천을 '주장'한 바가 없다"면서 이틀 만에 자신의 발언을 번복하기까지 했다(7월 22일).

총선 전 비례위성정당 논란 때도 전당원 투표로 말 바꿔
 
문재인 "우리의 시각 아닌 국민의 시각으로 바라봐야"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가 내놓은 혁신안을 놓고 지도부와 혁신위 간 갈등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한 문재인 대표가 최고위원들의 발언을 경청하며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날 문 대표는 혁신위가 제안한 혁신안에 대해 "혁신위에 전권을 주고 혁신위가 마련하는 혁신안을 반드시 실천하겠다고 국민들에게 약속했다"며 "우리의 시각이 아닌 국민의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2015년 7월 13일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당 혁신위가 제안한 혁신안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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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이 '전당원 투표'라는 요식 행위를 빌려 궁색하게 말을 바꾼 건 비단 이번뿐만이 아니다. 지난 총선 때 논란이 된 비례위성정당 창당이 대표적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개혁을 강행하며 비례위성정당을 만들 계획이 전혀 없다던 민주당은 지난 3월 8일 비례위성정당 참여에 대한 전당원 투표를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이해찬 전 대표가 "비례위성정당 창당은 선거법 개정 취지에 반한다. 위성정당이 아니라 위장정당이다"(1월 16일)이라고 일축한 지 불과 두 달도 채 안 된 시점이었다. 이낙연 대표는 당시 당의 위성정당 입장 변화엔 "몹시 민망하고 아름답지 않다"(3월 19일)라고 쓴소리를 한 바 있다.

이외에도 지난 2014년 4월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은 그 해 있었던 시군구 기초의원·기초자치단체장 등 기초 선거에 무공천하기로 했던 당론을 전당원 투표를 통해 뒤집고 결국 공천을 강행했다.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정당이 원칙과 철학 없이 상황의 유불리에 따라 입장을 바꾸면 국민들이 당을 어떻게 생각하겠나"라며 "전당원 투표 자체가 명분 쌓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당이 짊어질 정치적 책임을 당원에게 전가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치인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정치인들 스케줄을 보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꽉 차있을 정도로 숨가쁘게 사는데 국민들이 이를 잘 몰라 정치 불신이 크다"는 것이다. 아니다. 그들이 뱉은 말과 약속들이 또 언제 바뀔지 모르니 사람들이 정치를 못 믿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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