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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여행은 언감생심, 국내 여행조차도 꺼려지는 요즘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아까운 계절을 '집콕'으로만 보낼 순 없죠. 가벼운 가방 하나 둘러메고, 그동안 몰랐던 우리 동네의 숨겨진 명소와 '핫플레이스'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전국 방방곡곡 살고 있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큰마음 먹지 않고도 당장 가볼 수 있는, 우리 동네의 보석 같은 장소들을 소개합니다.[편집자말]
"들깨 바심(타작) 다 했남?"
"올해는 틀렸어. 소용 읍써. 장마에 다 녹아 버리고 남은 게 있기나하간디."
"부소산에 한번 가야지?"
(띵동! 붉은 물이 들고 있는 부소산 산책길 사진이 날아온다.)
"얼라...! 벌써 물이 들고 있나보네. 이따가 만나..."


부여 부소산은 단풍 명소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부소산으로 연결되는 키워드 속에 단풍은 없다. 부소산은 부여 원주민들만의 단풍 핫 플레이스이다. 다시 말하면 부여 부소산은 원주민들만 찾는다는 숨은 맛집 같은, 원주민들만 아는 단풍 명소이다.

부여 원주민들의 단풍 핫 플레이스  
 
단풍 터널 부소산 입구의 단풍터널
▲ 단풍 터널 부소산 입구의 단풍터널
ⓒ 오창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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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이 곱게 물드는 가을철에 부소산에 가면 관광객들이 아닌 원주민들이 더 많다. 전국에 소문 난 단풍 명소를 찾아 사람들이 물결처럼 밀려다니는 동안 원주민들은 불이 붙은 듯 화려하진 않지만 신비로운 색감의 가을이 머물고 있는 부소산을 찾는다.

이맘때 쯤, 부여 사람들의 사회관계망 서비스에서 가장 활발하게 오가는 사진이 바로 부소산의 단풍이다. 이렇게 해서 만난 부여 사람들이 동네 뒷산에 오르듯 살짝 다녀가는 곳이 부소산이다.
 
부소산성 입구 부소산성 입구에서부터 노오란 가을을 만난다
▲ 부소산성 입구 부소산성 입구에서부터 노오란 가을을 만난다
ⓒ 오창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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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부소산은 부여 사람들만의 단풍 성지이며 힙한 장소이다. 단시간에 가을을 충분히 즐길 수 있고 큰맘을 먹지 않아도 다녀 올 수 있는 가벼운 거리에 있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외부 관광객들에게 양보하느라 잘 가지 않다가도 단풍철에는 꼭 들러서 사진을 찍고 지인들에게 퍼 나른다. 좋은 구경에서 인증샷은 필수이며 '추천'과 '좋아요'가 따라다니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진 한 장이 부여 사람들을 단풍으로 뭉치게 한다. 나도 여러 장의 이런 사진들을 받고나서 부소산을 찾았다.

"오매! 오매! 환장하것네. 이런 그림을 어디서 본디야!"
"얼릉 사진부터 찍으랑게. 단톡방에 올려달라고 난리여."


어쩐지 부여 여인들 같이 보이는 여인들이었다. 부소산의 단풍 비경은 이렇게 소문이 났다.

"이게 워쩐 일이여. 여기서 또 만나네. 스마트폰 사진을 보고 왔는감?"
"원판(매우) 지금이 좋잖여유. 때를 놓치면 1년을 기다려야 하니께 지금 와야쥬."


가을이 지나가는 부소산에서는 이런 소리가 종종 들린다. 부여 사람들의 사회관계망 서비스가 한 일이었다.

길을 잃을 것만 같은 단풍 길  
 
부소산 군창지 앞  부소산 군창지 앞 풍경.
▲ 부소산 군창지 앞  부소산 군창지 앞 풍경.
ⓒ 오창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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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소산 입구부터 물감을 쏟아놓은 것 같은 단풍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노란 가을과 붉은 가을이 손을 잡고 사람들을 홀리고 있었다. 오직 신만이 만들어 낼 것 같은 색감에 매혹당해 길을 잃을 것 같다.

신은 색을 만들고 인간은 색을 해석하는 곳이 부소산의 가을이다. 인간이 만든 것들은 세월의 흐름 속에 식상하고 지루해진다. 자연의 창조물들은 항상 같은 색으로 보아도 감탄사가 나온다.

붉은 혹은 불그스름한, 불그레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색감이 동원되어도 모자란다. 오랜 세월 단풍나무들이 혼자서 화를 냈다가 삭였다가 하면서 어질고 모진 붉은 색을 만들어냈다. 세월에 발효된 나뭇잎들이 부소산 숲길에 머물러 있다.

가을에는 부소산에 얽힌 모든 역사는 잠시 뒤로 물러나게 된다. 백제의 유물들처럼 화려하지도 누추하지도 않은 동화 같은 가을이 내려와 있는 부소산을 걷기만 해도 모자라지 않은 여행이 된다.

가을에는 백제의 유적지는 덤으로 구경해도 용서가 된다. 그동안 관광객들이 가을에 부소산을 찾았다면 관광 주최 측의 랜덤으로 걸린 것일 것이다. 의도하지 않은 곳에서 멋진 가을을 만나는 곳이 부소산 여행이다.

"산행의 고수들은 단풍이 너무 붉게 물든 산 보다 여러 색깔이 조화롭게 섞인 초가을의 단풍을 좋아하지요. 역시 부소산은 초가을의 단풍이 가장 낭만적이죠. 단풍철에는 부소산을 두고 다른 곳에는 절대 안 갑니다."

전국의 100대 명산을 다섯 번 쯤 등산을 했다는 산행 전문가의 조언은 과연 틀린 말이 아니었다. 부소산은 엄밀히 말하면 산이라고 하기보다는 산성에 가깝다. 높지 않고 완만한 길을 따라 산 둘레를 한 바퀴 돌게 되는 코스이다.

천 년 전, 백제인들이 걷고 즐겼던 숲
  
부소산 단풍길 부소산 단풍 산책길
▲ 부소산 단풍길 부소산 단풍 산책길
ⓒ 오창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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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강이 자연스런 경계가 되어 천연 요새 역할을 하기도 한다. 전쟁 때는 군사적 요충지로 평화 시에는 왕궁의 정원처럼 활용했던 곳이 부소산의 실체이다. 공식적으로는 왕궁의 위치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짐작이 가는 곳이 부소산 일대이다.

서서히 물이 들어가는 부소산을 걷다보면 사비 백제 시대 왕궁의 후원을 산책하는 기분이 든다. 꽃 잎 같았던 백제 궁녀들이 왕궁의 뒤뜰을 거닐며 속삭이는 소리가 바스락거리는 낙엽 밟는 소리로 들리는 것 같다. 실제로 발굴이 되는 유물들과 유적들이 백제의 왕족들과 귀족들만이 즐겼던 비밀의 정원으로 추측되는 것들이다.

천 년 전, 백제인들이 걷고 즐겼던 왕궁의 비밀의 숲을 오늘을 사는 우리도 걷고 있다. 천년의 숲 곳곳에 왕가의 품격과 권위가 느껴지는 누각들도 마련되어 있다. 다리가 아프면 쉬어도 되고 떨어지는 낙엽의 숨결을 느껴도 좋다.
 
부소산 영일루 부소산 영일루 앞 단풍 숲
▲ 부소산 영일루 부소산 영일루 앞 단풍 숲
ⓒ 오창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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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 전에도 백제 왕족의 핫 플레이스였으며 천년 후에도 백제인들의 단풍 핫 플레이스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부여 원주민이 알려주는 부소산 사용설명서에 따른 코스는 이렇다. 백마강에서 유람선을 타지 말고 부소산 관광 주차장을 이용해 정문으로 입장하는 코스를 택한다. 그 다음에는 발길이 닿는 대로 불길처럼 번지는 단풍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부소산은 사회적 거리 두기가 일상화 되고 있는 시기와 맞물려 호젓하고 아늑하게 가을의 정취를 즐기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찾아오기에는 좋은 곳이다. 원주민들은 무료입장이지만 요즘 조금씩 유료입장객들이 늘어가고 있다고 한다. 원주민들의 사회관계망 속의 소문 때문일 것이다.
 
천년의 숲. 백제 왕족의 후원다운 기품이 느껴지는 단풍 숲
▲ 천년의 숲. 백제 왕족의 후원다운 기품이 느껴지는 단풍 숲
ⓒ 오창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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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소산의 단풍이 낙엽이 되어 다 떨어지는 날까지 부여 사람들의 사회관계망의 단풍 사진 퍼 나르기는 이어진다. 하루에도 몇 장씩 단풍 사진을 받다가 가을걷이를 팽개치고 불현듯 가을 산책을 나서는 곳이 부소산이다.

가을 햇살까지 유난히 좋은 날이 이어지고 있다. 햇살의 한 허리를 베어다가 가방에 담아가고 싶은 날이다. 오늘도 부소산에서 보내 온 단풍 사진들로 스마트폰 울림소리가 채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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