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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노동운동이란 악다구니, 쓸데없는 고집, 바닥에 모여 앉은 붉은 띠, 길을 차지한 천막, 분노에 찬 플래카드, 대자보, 음울한 민중가요, 소음, 교통체증이다. 

어떤 이에게 노동운동은 최소한의 양심, 일하는 자의 권리, 가족을 지키는 행동, 오염된 권력에 맞서는 태도, 동지의 죽음을 기리는 법, 다음 세대를 위한 의무, 자기 긍지다.

사람들은 어느 쪽 수식어에 더 익숙할까. 나는 명백히 전자였다. 그들은 길에서 시끄러웠고 뉴스에서 제압됐다. 종종 높은 곳에 올라가거나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 뉴스를 보는 어른들은 말했다.

'잘렸으면 나와야지', '다른 데 가면 되지', '능력이 없으니 쫓겨난 거지'

난 무심히 들었고 주어진 상황에 순응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라 여겼다. 싸움엔 에너지가 든다. 시간을 잡아먹고 욕을 먹는다. 누가 내 편에 서줄지, 해결될지도 미지수다. 당장 다음 달 생계비는 어쩌지? 딸린 식구라도 있으면 더 문제 아닌가? 저들이 왜 힘든 길을 가는지 몰랐다. 알려 하지 않았다.
    
지난 8월 29일 <한겨레>에 실린 은유 작가의 인터뷰 <잊힌 노동자들 잊지 않으려 "나의 복직은 시대의 복직">를 읽었고, 오래 머물렀다. 잊고 있던 이름, 김진숙(현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 크레인, 고공농성, 희망버스로만 요약해놓았던 한 사람의 삶이 아프도록 생생히 와 닿았다.

때마침 지난 10월 11일 국제노동인권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그림자들의 섬>을 상영했다. 부산의 끄트머리 섬, 영도에서 인간이 개미만 하게 보이는 초대형 배가 만들어지고 있다. 육중한 철판을 자르고 잇는 작업은 도시의 노동과는 너무도 멀고 다르다. 이 고된 일을 하던 사람들이 해직되어 회사와 싸우고 있다. 어떤 사람들일까?

기쁨도 잠시, 참혹했던 실상
   
 “어이구, 또 하나 깨졌네.” 저게 내 죽음일 수 있는데 어떻게 저리 말할 수 있나 싶었다. 근데 저게 내 죽음이라 생각하면 일을 못한다, 무서워서. 남의 죽음으로 얘기해야 탱크 안에도 들어갈 수 있다.
 “어이구, 또 하나 깨졌네.” 저게 내 죽음일 수 있는데 어떻게 저리 말할 수 있나 싶었다. 근데 저게 내 죽음이라 생각하면 일을 못한다, 무서워서. 남의 죽음으로 얘기해야 탱크 안에도 들어갈 수 있다.
ⓒ (주)시네마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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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을린 살갗, 주름진 입매, 알아듣기 힘든 사투리, 흔들리는 눈동자. 작업복을 입은 낯선 사람들의 인터뷰로 시작한다.

"그때 한진중공업이 부산에서 제일 번듯한 직장이었어요."
"합격하고선 나도 안정적으로 살 수 있겠다 기대했죠."
"내가 대기업에 입사했구나. 와, 엄청난 설렘. 자부심!"


그들의 입사시절 사진이 나온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수줍은 미소를 띤, 면티가 헐렁하도록 여윈 몸이 안쓰럽고 귀엽다.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보러 다니던 23살의 나와 닮았다. 불안하고 겁났겠지. 그래도 내일은, 다음 달엔, 내년엔 나아지리라 애써 낙관하며 출근했겠지. 왜 모르겠나. 잘해보고 싶은 마음, 대단한 곳에서 우쭐하고픈 마음, 돈 벌어서 집안에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을.

안타깝게도 실상은 참혹했다.

"작업장 아래가 온통 똥 밭이었어요. 그걸 치우래요. 화장실이 엄청 멀었고 구더기가 끓고 있으니 다 거기에 볼일을 봤던 거예요."
"도시락을 쏟아놓는데 뚜껑엔 쥐 발자국, 안을 보면 쥐똥..."
"대들면 불이익이 바로 돌아왔죠. 직장(반장)한테 양주라도 갖다줘야 성과급을 받을 수 있고..."


1980년대의 '열악한 환경'이 어느 정도일지, 힘들어 봐야 대체 얼마만큼일지 나는 가늠할 수 없었다. 밥을 안 먹이고 일을 시킬 줄은, 일터에 화장실이 없을 줄은, 사람이 사람을 때리는 데다 급료까지 빼앗을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김진숙의 표현에 의하면 "노예의 역사"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지켜지지 않았던 환경. 그런 작업 현장에서 사람이 떨어지고 다치고 죽어나갈 때마다 아저씨들은 "어, 또 하나 깨졌네"했다고, 그게 처음엔 이상했는데 그래야 아저씨들도 죽음의 공포를 잊고 일할 수 있었다고 화면 속 김진숙은 증언한다. 

1937년 '조선중공업주식회사'로 문을 연 한진중공업은 1960년 노동조합이 결성되지만 26년간 어용노조로만 존재한다. 투표 과정을 생략한 '자체 선출' 의원들은 공고문 한 장으로 자리를 이어갔고 회비는 쏠쏠히 탕진했다.

"옆에서 일하던 아저씨가 죽었는데 '본인이 옷을 많이 껴입어 부주의로 죽었다'라는 목격자 진술서에 지장을 찍으래요. 찍었어요. 그날 퇴근길에 그 아저씨(산재사고로 고인이 되신)네 아이들이 길목에 나와 있는데, 그 애들을 보는 순간 내가 큰 잘못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이런 죽음이 없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게 민주노조에 대한 첫 생각이었습니다."

도시락 투쟁과 시작된 그의 첫 노조 활동

1981년 입사한 김진숙은 야학에서 근로기준법을 공부하고 1986년 2월 이정식, 박영제와 함께 대의원선거에 출마해 당선된다. 그러나 <대의원 회의에 다녀와서>라는 유인물을 배포해 그간의 비리를 고발하자 검은 보자기에 씌워 대공분실에 끌려간다. 끔찍한 고문을 당하고 돌아와 받은 해고 통보. 25살, 입사 5년 차의 일이었다.
  
 열악했던 사내식당 모습. 민주노조의 첫 활동은 도시락투쟁이었다.
 열악했던 사내식당 모습. 민주노조의 첫 활동은 도시락투쟁이었다.
ⓒ (주)시네마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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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은 도시락 투쟁으로 본격 노조활동에 앞장선다. 사람들의 가장 큰 불만이 밥이었다. 울분이 터지듯 들끓던 움직임은 3일간의 파업으로 발전한다. 이후 식당과 화장실이 지어졌고 임금인상, 월차 수당을 요구할 수 있게 됐다. 차츰 인명사고가 줄었고 위험작업에는 작업중지권을 행사하게 되었다. 부서이동, 대기발령, 수배와 수감생활이 뒤따르는 지난한 과정이었다. 허나 노조의 성장보다 정부와 회사의 탄압이 더 세고 빨랐다.

영화는 빠르게 전개된다. 2002년 3월, 인력체질개선이라는 명목으로 650명이 해고된다. 파업을 이끌던 김주익 노조위원장은 크레인에 오른 129일 만에 목숨을 끊고, 13일 뒤 곽재규 조합원도 같은 선택을 한다. '불법시위는 원칙대로 대처'하라는 대통령 연설에 이어 전경차에 매달린 노동자가 마구 짓밟히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발길에 차이면서도 끝내 손을 놓지 않는다. 때리는 자와 맞는 자를 바라보는 시간 동안 나는 잠시 숨을 멈췄다.

한때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던 고 노무현 대통령은 왜 불법시위라 단정했을까. 왜 이 시위를 하게 됐고, 왜 이런 식으로밖에 할 수 없는지 누구보다 잘 아셨을 것 같은데. 

"앞으로 전과 다른 모습으로 교섭하겠습니다." 사람 둘을 잃고서야 사측의 태도가 달라진다. 복지회관과 추모공원을 지어주고 노동자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듯하다. 회사는 부유해진다. 유럽의 배를 만들고 필리핀에 조선소를 건립하는 화려한 세월을 보내는 와중 또다시 날아든 대량해고. 400명이 일자리를 잃는다. 조선강국, 물류강국, 수출강국. 기업이 가진 수많은 '최초' 타이틀. 대통령의 표창과 훈장. 누구의 목숨을 대가로 이룩한 것인가. 2011년 1월, 김진숙은 신변을 정리하고 크레인에 오른다.

"그거밖에 할 수 없어서, 그거라도 해야 해서 올라갔어요. 129일만 버텨보자 생각했죠. 그래야 주익씨를 만나도 면목이 설 테니."

그는 309일 만에 걸어 내려올 수 있었다.

"309일 동안 한시도 잊지 못한 이름이 김주익, 곽재규였습니다. 오늘부터 새로운 시작, 새로운 출발입니다.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309일 만에 크레인에서 내려오는 김진숙. 웃음이 해맑다.
 309일 만에 크레인에서 내려오는 김진숙. 웃음이 해맑다.
ⓒ (주)시네마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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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후 재고용, 휴직기간 내 천만 원을 지급하기로 한 합의사항은 158억 손해배상청구와 복수노조 출범으로 대체된다. 도심 속 천막. 김진숙이 외친 '웃으며 끝까지 함께 투쟁!'과 '조남호는 약속을 이행하라'는 플래카드가 적막 속에 비를 맞고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천막을 치고 세상에 알리는 일입니다."

다시 오랜 시간 대치 끝에 사측은 새로운 입사교육을 받게 해주겠다 공언하지만, 조합원들의 출근 첫날엔 '무기한 휴직'이 기다리고 있다. 상습적이고 악질적인 기만.

암전. 곡소리. 한 편의 다큐멘터리에 너무 많은 장례식이 나온다. 고인명(故人名) 최강서. 당시 진보정의당 고 노회찬 대표가 보낸 조화가 보인다. 해고-파업-약속-번복-재파업의 띠가 지겹게 돌고 돈다. 그 잔인한 바퀴 속에 사람이 짓뭉개진다. 나로선 결코 알 수 없는 내막이었다. 채널은 돌리고 시위대는 외면하면 그만이다.  

김진숙의 복직투쟁, 남은 시간 단 두 달

피해자의 잘못이라 치부하면 편하다. 세계는 정의로울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 또한 그렇다. 나는 얼마나 함부로 판단하고 살았는지. 나는 왜 누구의 억울함은 있을 법 하다 생각해왔는지. 일개 근로자인 나는 어쩌다 자본가의 입장에 서 있었는지! 길은 이어지고 삶은 연결된다. 내가 편한 건 누군가가 불편한 덕이다. 직장에서 겪는 불합리함은 법에 호소할 수 있고 직원은 단결하여 시정을 요청할 수 있다. 이것은 나만큼이나 어리고 여렸던 사람들이 온몸으로 버텨온 역사임을 이제 안다.

영상에서 김진숙은 숨이 넘어가게 울고 해맑게 웃는다. 그가 울 땐 나도 울었지만 웃음은 의아했다. 저 사람이 웃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 영화가 끝나자 관객의 질문이 쏟아졌다. 객석 50인 중 두 자리를 빼곤 대부분 20~30대. 질문의 수준도 상당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하청노동자의 고민. 정의와 공정의 문제. 역대 대통령의 선택에 대한 의문 등 행사가 끝나고도 김정근 감독과 은유 작가는 관객의 질문을 받느라 빠져나오지 못한다.

이들에게 노동 문제는 남의 일이 아니며 지금의 처우는 그냥 이룩된 것이 아님이 자명하다. 어제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려는 의심과 연대가 있음을 알기에 김진숙은 웃을 수 있나 보다.

"그 옛날 저의 해고가 부당하다고 말씀하셨던 문재인 대통령님, 저의 해고는 여전히 부당합니까?"

35년 해고노동자 김진숙의 복직투쟁은 현재 진행 중이며 그는 올해가 정년(60세)이다. 달력이 두 장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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