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주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7> 스틸 컷

영화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7> 스틸 컷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넷플릭스는 가끔 아주 잘 만든 작품을 선물처럼 던져 주는데 최근에 올라온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7>도 그런 경우다. 이 영화는 베트남전 반전운동과 68년 반란의 불길 속에 있던 미국의 분위기를 느끼게 해준다. 영화는 1968년 시카고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반전시위를 위해 모였던 7명의 활동가들이 그 후 재판을 받는 과정을 그린다. 
 
시카고 전당대회는 미국 역사에서도 중요한 분기점이 되는 사건이었다. 민주당 주정부와 경찰은 여기에 모인 시위대를 무자비한 폭력을 사용해 짓밟았고, 그것은 민주당에 미련을 가지고 있던 미국의 학생들과 활동가들을 급진화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이 사건의 파장과 상징성이 컸기에 그해 연말에 권력을 잡은 공화당 닉슨 정부의 법무부는 이들 7명을 일종의 '소요죄'로 기소하고 처벌하라는 지시를 검찰에 내린다.
 
이 지시에 따라 검찰은 이 활동가들을 정부의 폭력적 전복을 음모한 위험천만한 집단으로 몰아가면서 마녀사냥한다. 경찰이 반전운동가로 위장해 침투시켰던 프락치들이 수집한 정보와 증언들이 그것에 이용된다. 사법부는 이것을 충실하게 집행한다. 이 과정은 '미국에는 민사재판과 형사재판만 있는 게 아니라 그 위에 정치재판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게 된다.
 
그 밖에도 영화는 역사를 돌아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민주사회를위한학생연합, 청년국제당, 반전 시민단체, 흑표범당 등의 운동 단체들이 서로 다른 노선과 방향 속에 갈등하면서도 어떻게 같이 싸우고 또 탄압받았는가의 장면들은 운동에서 연대의 의미를 보여 준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7명에 억지로 끼워넣어진 흑표범당의 지도자 바비 실이 재판 과정에서 당하는 야만적인 처우다. 바비 실은 재판정에서 그야말로 폭력으로 짓밟히고, 그를 돕던 흑표범당의 전설적 지도자 프레드 햄프턴 또한 비극적 상황에 처한다.
 
영화는 흑백의 기록영상을 중간 중간 삽입해서 당시의 분위기나 경찰의 폭력성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 준다. 권위적인 재판부를 비웃고 조롱하는 활동가들의 용기는 아주 재미있고, 마지막에 재판받던 활동가들을 대표한 최후진술에서 베트남전에서 사망한 모든 병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는 장면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이 영화를 보다보면 미국에서 민주당 문제가 역시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베트남전을 처음에 수행한 것은 민주당의 린든 존슨 정부였다. 시위대가 공화당 전당대회가 아니라 민주당 전당대회로 간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당시 반전운동은 전쟁 반대를 말하던 민주당의 케네디나 매카시 후보에게 기대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결국 민주당 후보가 된 것은 전쟁을 지지하던 험프리이고, 대통령이 된 것은 공화당의 닉슨이며, 닉슨은 전쟁을 업그레이드했다. 좌파 활동가 8명을 표적 기소하고 처벌하려 한 것도 닉슨 정부였고, 반면에 재판정에 나와서 활동가들을 방어하는 증언을 한 것은 민주당 정부 때 법무장관이었다. 68년 반란이 퇴조하고 나서 이 활동가들의 일부가 나중에 민주당으로 가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아론 소킨 감독이 미국 대선을 얼마 앞둔 지금 <더 트라이얼 시카고7>를 만들어서 개봉한 것도 우연은 아닌 것 같다. 미국 대중음악계의 거장인 스티브 원더가 최근 신곡을 발표해서 증오와 불의에 맞선 저항을 호소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일 것이다.
 
사실 지금 조 바이든도 아마 그 자체로 보면 결코 진보적 대안으로 보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반대편에 트럼프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는 찍어야 하는 후보로 보여지고 있다. 미국에서 얼마 전 있었던 사전투표는 4년 전보다 몇 배나 높은 참가율을 보이며 몇 시간씩 줄을 서서 투표했다는 뉴스는 참 인상적이다.
 
아마도 '더 이상 난민이 국경을 넘다가 죽어가지 않고, 더 이상 여성이 모욕당하지 않고, 더 이상 백인우월주의 선동가가 대통령이라고 설치는 꼴을 보고 싶지 않고...' 등등의 심정인 수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이들을 단지 민주당에 환상을 가지고 기대하는 한심한 이들 취급할 수는 없다. 이들의 심정과 위기의식을 이해하고 공감한다.
 
무엇보다 민주당이나 바이든보다는, 이들 스스로의 용기와 행동이 대선불복의 쿠테타까지도 공개 예고한 트럼프에 맞설 진정한 힘일 것이다. 지금, 볼리비아 민중은 미국이 후원한 우익과 군부의 쿠데타를 1년만에 바로잡고 있다. 타이 민중은 역사상 최초로 군주제에 맞서는 세손가락 항쟁을 발전시키고 있다. 이제 미국 민중이 곧 다시 그것을 이어받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아론 소킨 미국 대선 6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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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보다 사람이 목적이 되는 다른 세상을 꿈꾸며 함께 배우고 토론하고 행동하길 원하며 <다른세상을향한연대>의 실행위원입니다. 더 많은 글들은 여기서 봐 주세요. http://anotherworld.kr/ 페이스북 계정 https://www.facebook.com/profile.php?id=100001746737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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