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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닝턴 기자가 70년 전 찍은 당시 사진(위)과 현재 모습(아래)을 비교한 결과 정면으로 보이는 산은 산내초등학교 방향의 보문산 옆 강바위산-마경산 자락과 동일했다. 위닝턴 기자의 사진 속 도로 왼쪽 구덩이는 골령골에서 가장 긴 200m짜리 유해매장 구덩이가 있는 제2 학살지(위 아래 붉은 네모안)로 확인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진 속 유해매장추정지 대부분이 2차선 포장도로에 포함됐다.
 위닝턴 기자가 70년 전 찍은 당시 사진(위)과 현재 모습(아래)을 비교한 결과 정면으로 보이는 산은 산내초등학교 방향의 보문산 옆 강바위산-마경산 자락과 동일했다. 위닝턴 기자의 사진 속 도로 왼쪽 구덩이는 골령골에서 가장 긴 200m짜리 유해매장 구덩이가 있는 제2 학살지(위 아래 붉은 네모안)로 확인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진 속 유해매장추정지 대부분이 2차선 포장도로에 포함됐다.
ⓒ 심규상/데이빗 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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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대전 골령골 민간인 학살과 관련한 새로운 사진들이 추가로 공개됐다. <오마이뉴스>는 앨런 위닝턴(Alan Winnington·1910~1983) 기자가 70년 전 골령골에서 촬영한 민간인희생자 암매장 구덩이의 사진을 현재 모습과 비교해 보았다. 희생자 매장 추정지를 보다 정확하게 짚어보기 위해서다(관련기사 : 흙 위로 삐져나온 사람 발... 민간인학살 직후 사진 찾았다).

대전 동구청(구청장 황인호)은 영국 셰필드 대학에 직원(데이빗 밀러 국제특보)을 파견해 한국전쟁 당시 골령골 현장을 찾았던 영국 <데일리 워커> 위닝턴 기자가 찍은 암매장지 사진 여러 장을 확보했다. 위닝턴 기자는 <데일리 워커>의 편집자이자 특파원으로 활동했으며,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전쟁상황과 그 영향을 보도하기 위해 한국으로 들어와 대전 산내 학살에 대한 기사를 타전했다.

이중 유독 눈길을 끄는 것은 골짜기 봉우리 모양과 산세가 뚜렷한 현장 사진이다. 소하천과 도로 모양도 잘 드러나 있다. 이 사진에는 유해 매장지로 보이는 구덩이 모습도 담겨 있어 보다 정확한 매장 추정지를 확인하는 데 필요한 귀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발굴 사진] 골짜기 봉우리 모양과 산세를 보면 지금의 대전 동구 낭월동 골령골의 모습과 동일하다. <오마이뉴스>가 골령골 1학살지와 2학살지로 이름 붙인 곳이 대부분 화면에 들어 있다. 멀리 대전 보문산 자락이 보인다. 1950년 7월 또는 8월, 대전을 점령한 북한군과 함께 골령골 현장을 방문한 영국 <데일리 워커>의 앨런 위닝턴 기자가 찍었다.
 [발굴 사진] 골짜기 봉우리 모양과 산세를 보면 지금의 대전 동구 낭월동 골령골의 모습과 동일하다. <오마이뉴스>가 골령골 1학살지와 2학살지로 이름 붙인 곳이 대부분 화면에 들어 있다. 멀리 대전 보문산 자락이 보인다. 1950년 7월 또는 8월, 대전을 점령한 북한군과 함께 골령골 현장을 방문한 영국 <데일리 워커>의 앨런 위닝턴 기자가 찍었다.
ⓒ 데이빗 밀러 대전동구청 국제협력특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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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닝턴 기자가 찍은 당시 사진과 현재 모습을 비교한 결과 정면으로 보이는 산은 산내초등학교 방향의 대전 보문산 옆 강바위산-마경산 자락과 동일했다. 희생자가 묻힌 구덩이에서 지금의 곤룡터널을 등지고 산내초등학교 방향으로 앵글을 맞춘 것이다. 위닝턴 기자의 사진 속 도로 왼쪽 구덩이는 골령골에서 가장 긴 200m짜리 유해매장 구덩이가 있는 제2 학살지(위 아래 붉은 네모안)로 확인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진 속 유해매장추정지 대부분이 2차선 포장도로에 포함됐다.
 위닝턴 기자가 찍은 당시 사진과 현재 모습을 비교한 결과 정면으로 보이는 산은 산내초등학교 방향의 대전 보문산 옆 강바위산-마경산 자락과 동일했다. 희생자가 묻힌 구덩이에서 지금의 곤룡터널을 등지고 산내초등학교 방향으로 앵글을 맞춘 것이다. 위닝턴 기자의 사진 속 도로 왼쪽 구덩이는 골령골에서 가장 긴 200m짜리 유해매장 구덩이가 있는 제2 학살지(위 아래 붉은 네모안)로 확인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진 속 유해매장추정지 대부분이 2차선 포장도로에 포함됐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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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가 현재 골령골에서 유해를 발굴 중인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단장 박선주, 아래 공동조사단)과 함께 16일 위닝턴 기자 사진과 현재 모습을 비교한 결과, 정면으로 보이는 산은 산내초등학교 방향의 대전 보문산 자락과 동일했다. 희생자가 묻힌 구덩이에서 지금의 곤룡터널을 등지고 산내초등학교 방향으로 앵글을 맞춘 것이다.

위닝턴 기자의 사진 속 도로 왼쪽 구덩이는 골령골에서 가장 긴 200m짜리 유해매장 구덩이가 있는 제2 학살지로 확인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진 속 유해매장추정지 대부분이 2차선 포장도로에 포함됐다. 이는 '1990대 도로공사 당시 유해가 쏟아져 나와 공사 관계자들이 트럭으로 싣고 나갔다'는 마을 주민들의 증언과 일치한다.

박선주 조사단장은 "당시 도로 위치와 모양 등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귀한 사진"이라며 "대부분의 유해가 공사 도중 유실된 것으로 보이지만 이후 사진을 토대로 지금의 도로 주변에 대한 시굴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전 동구청은 산내 골령골 학살 사건을 보도한 위닝턴 기자의 자료를 받기 위해 셰필드 대학 측과 자료 제공 및 상호 파트너십 구축 방안 등을 협의해 왔다. 이를 위해 데이빗 밀러 국제특보가 셰필드 대학을 방문 중이다. 데이빗 밀러 국제특보는 방문 기간 중 위닝턴이 남긴 주요 자료를 확인해 오는 12월, 동구청 주최 관련 전시자료로 활용할 예정이다.

대전 골령골에서는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6월 말부터 7월 중순까지 국민보도연맹원과 대전형무소 수감 정치범 등 최소 4000명, 최대 7000명이 군경에 의해 희생됐다.

태그:#위닝턴, #대전 동구청, #골령골, #민간인희생지, #한국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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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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