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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독일 수도 베를린에서 시민들이 거리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에 대한 당국의 철거명령에 항의하기 위해 미테구청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 13일 독일 수도 베를린에서 시민들이 거리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에 대한 당국의 철거명령에 항의하기 위해 미테구청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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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 미테구청(구청장 슈테판 폰 다셀, 녹색당 소속)의 철거 명령으로 한국과 독일 시민사회를 분노케했던 베를린시 평화의 소녀상이 당분간 한시름을 놓게 됐다. 13일 저녁(아래 독일 현지시각) 미테구청이 "논쟁 중인 '평화의 상'은 당분간 유지하며 행정법원의 기초 평가가 가능해질 때까지 판단을 유보하겠다"라고 입장을 바꿨다. 또한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을 세운 독일 현지 시민단체 '코리아협의회'에 공식적으로 협상을 제안했다.

코리아협의회는 "일단 한 고개는 넘은 셈이니 차근차근 준비할 생각"이라는 방침이다. 이는 지난 13일 기자와 인터뷰한 한정화 코리아협의회 대표가 한 말이다.

독일 내에서도 일어나는 비판여론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 철거 명령 사실이 알려진 뒤 독일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압박이 이어졌다. 그러자 미테구청은 '판단 유보'로 입장을 내놨다. 이는 14일 철거 예정 데드라인이 더 이상 적용되지 않음을 뜻한다. 앞으로 미테구가 먼저 철거명령을 취소하지 않으면 행정법원 판결은 2주에서 4주 내에 내려질 전망이다.

지난 9월 28일 유럽의 공공부지에 처음으로 설치돼 큰 환영을 받았던 이 소녀상은 일본 정부의 강력한 철거 요청을 받아들인 미테구청의 결정으로 한동안 존립이 위태로웠다. 소녀상 건립 당시 유럽 순방 중이던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은 1일 하이코 마스 독일 외교장관과 회담을 열었고, 6일 기자회견에서 소녀상 철거 요구를 했다는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평화의 소녀상 건립주체인 독일 현지 시민단체 코리아협의회(Korean Verband)가 철거 명령 사실을 알리자 독일 시민사회와 동포사회는 발빠르게 연대했다. 온라인 청원, 항의 이메일 보내기에 이어 13일 화요일 소녀상 앞과 미테구청 앞에서 항의 집회를 열기도 했다. 현지 언론 <타츠>의 보도에 의하면, 이 집회에 300여 명이 참가했다.
 
13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평화의 소녀상 철거명령 항의 집회. 참가자들은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에서 미테구청까지 행진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 집회엔 300여 명이 참가했다.
 13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평화의 소녀상 철거명령 항의 집회. 참가자들은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에서 미테구청까지 행진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 집회엔 300여 명이 참가했다.
ⓒ 클레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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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정치권도 소녀상 유지에 큰 목소리를 냈다. 미테구의 녹색당, 사민당과 좌파당은 슈테판 폰 다셀 구청장의 결정에 반기를 들며 평화의 소녀상 철거 명령을 철회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특히 녹색당은 '평화의 상' 유지를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하며 집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미테구청 녹색당 의원들은 "(이 철거 결정은) 명백하게 일본 정부와 독일 외무부의 압력 행사임이 분명하다"라며 "해당 구에 철거명령 철회요구를 어제(12일) 만장일치로 결정했다"라고 13일 공식입장을 내놨다. 좌파당도 성명서를 통해 "소녀상은 코리아협의회가 성폭력에 반대하는 메세지로 세운 것"이라며 "미테구청은 독일 외무부와 일본 우익정부로부터 엄청난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인데, 우리는 이런 협박에 굴복해서는 안된다"라고 주장했다. 

이 지역 사민당도 12일 "사민당 미테구는 평화상의 보존과 투명한 공론을 요구한다"는 제목의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우리는 독일과 일본의 우호적인 관계를 중요시 여기지만, 납득할만한 구체적인 이유를 제시하지 않은 채 허가를 취소한 결정에 반대한다"며 "여성에 대한 전시 성폭력이라는 주제와 관련된 공식기관의 결정은 투명해야 하는데 이번 경우에 그렇게 진행되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이 사안은 2015년 한일합의처럼 정부 관료만이 아니라 광범위한 시민사회 전반이 함께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며 공론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기자는 13일 집회를 마친 후 코리아협의회 한정화 대표를 만나 그 간의 상황과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스가, 정치적 세 과시하려는 제스처로 판단"
 
한정화 코리아협의회 대표가 코리아협의회 사무실이 있는 무언다언 전시관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한정화 코리아협의회 대표가 코리아협의회 사무실이 있는 무언다언 전시관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 클레어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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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후 불과 9일만에 철거명령이 내려졌다. 그런데 미태구청이 유보결정을 발표했다. 행정속도가 유난히 느린 독일에서 이렇게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건 드문 일 아닌가 생각한다.

"제막식 후 급하게 진행되는 상황 때문에 24시간 전화가 울린다. 지금 막 1000km 마라톤을 마친 기분이다."

- 슈테판 폰 다셀 구청장이 갑작스레 성급한 결정을 내렸던 이유는 전적으로 일본의 외교 압박이라고 보나. 

"보훔 루르대학의 일제 렌츠 전 사회학 교수는 10월 11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소녀상 승인 취소를 강하게 비난했다. 일본정부의 외교적 압박 이외에도, 베를린시가 소위 일본군 '위안부' 문제 및 전시 성폭력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고 분석했는데 저도 전적으로 동감한다."

- 일본이 이렇게 강력히 압박할 것이라고 예상했나. 

"일전에도 물론 일본은 독일 내 소녀상 설치를 막으려 노력했다. 프라이부르크시가 자매도시인 수원시와 함께 소녀상 건립을 추진했으나 무산됐고, 전시회에도 압박을 가했다. 

하지만 과거에는 현지 일본 영사나 대사를 활용해 조용히 처리하는 방식이었다. 이번에는 외무부장관까지 공식요청을 할 정도로 압박의 강도가 세졌다. 타이밍이 그의 유럽 방문 시기와 맞아 떨어지기도 했고, 새로운 수상(스가)이 정치적 세를 과시하려는 제스처로 판단한다. 하지만 이 논란 덕분에 평화의 소녀상에 대해 독일 사회에 더 알리는 홍보 효과가 생겼으니 아이러니하다."
  
- 과거사 청산의 모범이라 여겨지는 독일이 쉽게 일본의 압박에 무너지는 상황을 어떻게 보나.

"심지어 독일은 2019년 4월, 하이코 마스 외교부장관 주도 하에 유엔안전보장이사회(UNSC)에서 전시 성폭력을 종식시키자는 내용의 '결의안 2467'을 통과시켰다. 처음으로 성폭력 생존자에 초점을 맞췄고, 여성인권단체에 힘을 실어줬다고 평가된다. 독일 정부가 전쟁 성폭력 문제해결에 진정성이 있다면 '평화의 소녀상' 이슈에 지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테구청, 대화로 조율하자며 협상 제안... 예측 불가능 변수 있을 듯"
 
베를린 미테구 모아빗 지역에 세워진 소녀상. 주민들이 소녀상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 베를린 미테구 모아빗 지역에 세워진 소녀상. 주민들이 소녀상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 클레어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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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일 철거명령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현지 행정법에 의하면, 앞으로 어떤 절차를 거쳐 보존여부가 판가름 나는가.

"베를린 행정법원이 검토를 하게 된다. 하지만 법원에서 결정하기 전에 오늘(13일) 미테구청에서 대화로 조율하자면서 공식적으로 협상을 제안했다. 앞으로 예측할 수 없는 변수가 작용하리라 본다."

- 설치 지원 신청에서 비문이 누락됐다는 이유로 설치 허가를 번복한 미테구의 주장은 어떻게 보나.

"베를린시는 적법한 절차로 허가를 받은 시민단체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채 가해자인 일본 정부의 입장에 더 귀를 기울인 셈이다. 총 13쪽이나 되는 서류를 신청할 때 소녀상의 역사적 배경과 일본의 반응이 예상된다고 자세히 기재했다. 베를린 좌파당의 입장문도 우리가 신청서에 일본 우익의 압박을 상세히 서술했다고 확인해줬다.

또한, 이전에 소녀상 설치가 잘 됐는지를 확인해달라고 요청했는데 관심도 안 보였다. 철거 명령 후 변호사 서너 명에게 의뢰했는데, 신청서를 보더니 우리가 이길 승산이 높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구청장 소속 녹색당도... "전쟁범죄와 싸우는 이들에게 잘못된 신호"
 
13일 독일 베를린 미테구에서 열린 평화의 소녀상 철거 명령 항의집회. 사진은 미테구청 앞에서 철거 명령에 항의하는 발언을 하는 모습.
 13일 독일 베를린 미테구에서 열린 평화의 소녀상 철거 명령 항의집회. 사진은 미테구청 앞에서 철거 명령에 항의하는 발언을 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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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의 소녀상 설치 허가자는 독일 중앙 정부가 아닌 독일 지자체인데, 일본 정부의 압박은 베를린시의 명백한 자주권 침해뿐만 아니라 표현의 자유 침해라고 여겨진다. 이에 대한 독일 사회의 비판이 있나.

"라우라 노이게바우어 미테구 녹색당 대변인은 '녹색당은 예술 표현의 자유와 독립적인 기억 문화를 지지한다. 연방정부 외무부의 요청에 의해 평화의 상 설립허가를 취소하는 것은 전쟁범죄 피해자의 기억을 위해 싸우는 이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보낸다'고 말했다. 

아울러 '베를린은 나치 테러와 전쟁을 시작한 나라의 수도다. 우리가 외교·경제 이해관계를 고려해 우리만의 가치를 이 순간 저버린다면, 역사 청산을 했다는 우리 자신의 주장과 정면으로 모순되는 것 아닌가'라고 날카롭게 비판했다. 베를린조형예술인협회(Berufsverband bildender künstler*innen berlin e.V.)의 대변인도 '외국의 정치적 압박으로 이렇게 기념물의 승인이 취소되는 것은 스캔들이다'고 꼬집었다."

- 코리아협의회는 그간 일본군 '위안부' 이슈를 민족주의 틀에서 빼내어 반전평화 및 여성인권 운동으로 변화시켰다. 2009년 산하에 설립한 일본군위안부문제대책협의회(AG 'Trostfrauen')를 통해 운동 초창기부터 독일은 물론 필리핀, 베트남, 콩고, 수단, 일본 등 다양한 배경의 시민 및 단체들과 연대해오며 이 이슈를 알렸다. 유럽에서 처음으로 공공부지에 평화의 소녀상을 세우는 큰 성과를 거뒀는데, 성공의 배경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한국은 민주화과정에서 여성운동이 힘을 얻어 김학순 할머니의 공개증언을 지원할 수 있었고, 정의기억연대라는 전문적인 여성인권단체의 열정적인 활동으로 한국의 일본군 '위안부' 운동이 국제사회에서 주목을 받아왔다. 인도네시아만 해도 피해자들이 크게 목소리를 못내고 있다.

정의연은 나비기금을 통해 베트남·야지드·르완다 등의 피해자들을 지원해왔고, 유럽의회 결의안 채택을 이끌어냈다. 그간 정의연의 국제적 네트워크 형성과 무수한 영문자료 지원 등이 우리의 독일활동에 큰 힘이 됐다."

- 독일은 소녀상 설치에 관한한 유럽의 주전장이 돼왔다. 이렇게 매번 힘겨운 과정에도 불구하고 독일에 소녀상을 설치하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평화의 소녀상은 일본군 '위안부'라는 참혹한 역사를 소환해내는 교육적 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도 진행 중인 전시 성폭력에 대한 논의를 촉진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코리아협의회의 재정적 어려움 이외에, 앞으로의 난관은 무엇인가.

"오늘 슈테판 폰 다셀 미테구청장은 앞으로 구청뿐만 아니라 모든 관계자들의 입장을 세밀하게 검토하겠다고 했다. 코리아협의회와 일본의 이해관계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공정한 타협안을 원한다고 밝혔는데, 이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의문이다. 참 애매한 입장이다. 

이 논의에 참가할 주체들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결정할지 미지수다. 일본 측의 협상은 누가 대리할 것인가. 또한 우리 '독일 평화의 소녀상 연맹'도 다수의 여성인권단체·종교단체·시민단체가 함께하는데 어떻게 의견을 조율할지 모르겠다. 일단 한 고개는 넘은 셈이니 차근차근 준비할 생각이다.

[연대 관련 참고 사이트 바로가기(클릭)] https://trostfrauen.de/aufruf-friedensstatue/

태그:#베를린평화의소녀상, #코리아협의회, #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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