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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
저 하늘 저 산 아래 아득한 천 리
언제나 외로워라 타향에서 우는 몸
꿈에 본 내 고향이 마냥 그리워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 트로트 열풍이 아니라도 해마다 명절이면 '꿈에 본 내 고향'을 노래하는 건 북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만이 아닙니다. 코로나19 이후 실향민 못지않게 꿈에 본 내 고향을 노래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14년. 응우웬반수가 외국인 고용허가제로 입국하여 한국에서 보낸 세월입니다. 처음 고용허가제 근로계약 3년 만기 후 출국했다가 한국어시험을 보고 두 번째 입국했습니다. 재입국 후 근로계약이 만기됐을 때 사측에서 성실근로자로 추천하여 4년 10개월을 더 일했습니다. 일하던 공장에 같은 연배인 동향 친구가 있어서 서로 의지하며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일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3월 한국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폭증할 즈음 응우웬반수는 친구와 함께 귀국을 목적으로 같은 날 퇴사했습니다. 그런데 귀국 예정일을 며칠 앞두고 한국발 국제선 착륙을 불허한다는 베트남 정부의 발표는 청천벽력 같았습니다.

잠시 머물려던 계획은 반년을 넘기고...

졸지에 출국을 미룰 수밖에 없게 된 응우웬반수는 친구와 함께 입국 금지가 풀릴 때까지 이주노동자 쉼터에서 지내기로 했습니다. 잠시 머물려던 계획은 벌써 반년이 넘고 말았습니다. 조만간 귀국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 달리 한국발 항공편 입국 금지는 좀처럼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귀국 희망자가 넘치는 관계로 국적 항공사가 뜰 때마다 항공권 좌석을 추첨으로 배정하던 주한베트남대사관으로부터 9월 중순에 출국 일정이 잡혔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응우웬반수의 귀국 가방.
 응우웬반수의 귀국 가방.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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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여나 추석 전에 출국할 수 있을까 기대하며 항공권 배정을 같이 기다리던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도 잠시였습니다. 출국 예정일을 하루 앞두고 항공권이 취소됐다는 연락을 받은 탓이었습니다. 

"대사관에서 나이 많은 사람과 아픈 사람을 먼저 보내고, 나머지는 추첨해서 보내요. 급하게 귀국해야 할 사람이 생겨서 그런 건지 항공편이 결항된 건지도 알려주지 않았어요. 아무리 그래도 출국하려고 준비를 다 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서운한 기색을 감추지 않는 응우웬반수는 지난 3월에 항공권이 취소되었을 때만 해도 마음 편하게 며칠 쉬면서 기다리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4월이 되어서도 국제선 운항 재개 소식이 들리지 않자 당장 생활비라도 벌어야 할 형편이 되었고,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출국에 앞서 가족에게 송금하고 공항에서 선물 사려고 남겨두었던 돈이 바닥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응우웬반수는 친구와 함께 예전 일했던 회사에 출국 일정이 잡힐 때까지 일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회사에서는 근로계약이 끝난 사람을 고용했다가 단속에 걸리면 양측 다 손해라면서 거절했습니다.

곧 귀국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고문으로 버틴 6개월 동안 응우웬반수는 일당제 노동도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체류 기간이 만료된 상태에서 코로나19로 출국 유예를 받긴 했지만, 취업 허가를 받은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농촌 계절노동자 신청이라도 하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습니다.

법무부는 코로나19 이후 입국제한으로 이주노동자 확보가 힘든 농어촌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취업기간 만료 후 항공편 중단 등으로 출국하지 못한 이주노동자들을 계절노동자로 채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다만, 계절노동을 신청할 수 있는 사람은 2020년 4월 14일~8월 31일 사이에 체류기간이 만료되어 출국 유예를 받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응우웬반수는 체류기간 만료일이 3월이라 신청 대상이 안 됩니다. 응우웬반수와 그 친구는 자신들처럼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일도 못 하게 하는 한국 정부가 원망스럽다고 합니다.

반년 넘게 발이 묶인 응우웬반수를 견디게 한 것은 가족이었습니다. 5년 전에 이주노동자로 한국에 있던 고향 여자를 만나 결혼했고, 곧바로 아이가 생겼습니다. 출산하고 귀국한 부인은 하노이에서 화장품 가게를 운영하면서 이주노동 경험을 살려 한국어강사 일도 하고 있습니다.

응우웬반수는 "베트남에선 추석에 아이들에게 선물을 사줘요"라며 추석에 귀국하지 못하는 신세를 못내 한탄하고 있습니다. '꿈에 본 내 고향'은 북을 고향으로 둔 실향민만이 하는 노래가 아닙니다. 코로나19 시대에 출국하고 싶어도 못하는 응우웬반수의 노래가 되었고, 코리안 드림은 악몽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그래도 추석 앞두고 베트남행 항로가 열렸다는 소식에 귀가 쫑긋해졌습니다. 

일손 없다는 사장님, 갑자기 밥값 달라고 하네요

"빈자리 없는데요."
"알았어요. 있다가 갈게요."
"......"


자리가 없다는데, 눌러앉을 기세입니다.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묻더니 며칠 눌러앉을 작정을 했는지 누군가와 채팅을 합니다. 예전에 이주노동자 쉼터를 이용했던 사람 소개로 왔다는데, 마치 오래 있었던 사람처럼 낯가림이 없고 서글서글합니다. 코로나 때문에 이용 인원 제한을 하는 이주노동자 쉼터를 찾은 두엉은 자리가 없다는 데도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묻지도 않았는데 어디서 무슨 일을 했었고, 한국에 온 지 얼마나 됐으며, 왜 쉼터에 왔는지 조잘조잘 이야기합니다. 심각한 이야기도 별일 아닌 듯이 이야기하는 두엉은 캄보디아에서 온 농업 이주노동자입니다.
 
 두엉이 일했던 농장.
 두엉이 일했던 농장.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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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에서 일했어요. 시금치, 청경채, 부추, 상추... 야채 다 했어요. 많이 했어요."
"어딜 가나 환영받았겠네요."
"네? 뭐요? 환영?"
"일 잘하니까 사장님이 좋아하시겠다고요. 그런데 왜 농장 그만뒀어요?"
"사장님 돈 없어요. 계속 일하라고 해요."
"월급 안 줘요?"
"아뇨, 쪼끔. 호호."
"아, 네. 월급 다 못 주니까 사장님이 그냥 나가라고 해요?"
"아니요. 밥값, 집값 주라고 해요. 저도 돈 없어요. 호호호."


지난 8월 태풍 때 비닐하우스 파손으로 일이 없어지면서 문제가 시작되었습니다. 두엉은 퇴직하겠다고 했지만 농장주는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만두겠다는 말에 사장은 역정을 내며 그동안 무상으로 제공했던 밥값, 집값을 요구했습니다. 근로계약서에 숙식비 공제이라고 돼 있으니 밀린 월급보다 돌려받을 돈이 많다는 게 농장주 주장이었습니다.

그동안 숙박비를 공제하지 않았다면 농장주가 선의를 베푼 것은 맞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고용안정과 사원 복지를 위해 무료로 제공했던 비용은 법적으로 따져도 돌려받지 못합니다. 농장주는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그만두려면 돈 내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이주노동자 입국이 제한되면서 재직 중인 이주노동자 이직을 허락할 경우 다음 작물 재배에 필요한 인력 확보에 비상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두엉이 농장주 형편을 모를 리 없습니다. 그렇다고 돈 벌러 왔는데 월급도 제대로 못 받으면서 시간을 축낼 수 없는 노릇입니다. 두엉은 농장주의 억지를 뒤로하고 이번 추석에 음성에 있는 친구를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같이 입국한 고향 친구는 농촌식당을 운영하는 농장주가 사람을 찾는다고 했습니다.

"식당에서 일하게요?"
"아니요. 친구하고 맛있는 거 먹으려고요. 호호."


두엉은 실직 중인데도 꿋꿋하고 참 밝습니다. 구직 활동보다 그동안 못 만났던 친구를 만나 맛있는 걸 먹겠다는 말은 어쩌면 외로움이 가득하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말이 통하는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다 보면 그나마 덜해질 테니까요.

다른 사람 일에 바쁜 엄마, 추석에는 제발...
 
 이주노동자들의 추석 나들이.
 이주노동자들의 추석 나들이.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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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때 뭐해요?"
"엄마가 말 안 해요."
"아니, 가을이 뭐하냐고?"
"엄마랑 있을 거예요."


올해 중학생이 된 가을이는 엄마를 졸졸 쫓아다니는 걸 당연하게 여깁니다. 엄마를 귀찮게 하기 위해서 그런 게 아닙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한국어가 서툰 엄마를 돕기 위해서입니다. 결혼이주여성인 엄마는 이십 년 가까이 한국에 살았지만 한국어가 여전히 어색합니다. 엄마는 주위에 필리핀 사람들이 어려운 일을 겪으면 말이 서툰데도 팔 걷어붙이고 도와주려고 합니다. 그래서 엄마는 직장 일이 없을 때도 늘 바쁩니다. 그럴 때마다 가을이는 엄마 곁에서 통역을 자처합니다. 놀이동산이 코앞에 있지만 갈 엄두를 못 내는 이유입니다.

가을 부모님은 둘 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결혼했습니다. 주위에서는 출산이 어려울 거라 했지만 부모님은 갖은 노력을 했습니다. 그 결과 보란 듯이 가을이가 태어났습니다. 작년 겨울에 아빠는 중학생이 되면 공부 때문에 외가에 갈 시간도 없을 거라면서 엄마와 필리핀에 갔다 오라고 했습니다. 그랬던 아빠가 크리스마스 때 조경 작업을 하다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가을이는 아빠가 돌아가시고 난 후, 코로나가 기승을 부린 탓도 있지만 중학교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고자 하는 기대를 접었습니다. 대신 엄마 걱정에 가슴을 졸입니다. 엄마는 실직과 임금체불 등으로 필리핀 이주노동자들이 도움을 청할 때마다 나섰다가 한국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 일이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가을은 "도와달라는 사람들을 외면하면 안 된다"라는 엄마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말도 잘 하지 못하면서 나서는 엄마를 보면 답답하기도 합니다.

엄마는 이번 추석에 전셋집을 알아본다고 했습니다. 둘이 살기에 적당한 집을 찾아본다는 핑계지만 가을이 엄마 속내를 모를 리 없습니다. 아빠 돌아가시고 썰렁한 집이 싫다는 엄마는 허전한 마음 때문인지 예전보다 더 필리핀 공동체 사람들을 자주 만나고 그 사람들이 털어놓는 하소연에 귀 기울이는 걸 좋아합니다. 그런 까닭에 엄마는 이번 추석에도 언제나처럼 바쁠 겁니다. 가을은 외치고 싶습니다.

"아무리 다른 사람 일에 바빠도 이번 추석에는 제발......."

어른스럽긴 해도 아직은 엄마에게 어리광 부리고 싶은 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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