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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주중에는 작은 신생 외식 프랜차이즈 대표로 가맹사업을 운영하며, 주말에는 대형 외식 프랜차이즈의 배달 기사로 투잡을 하고 있습니다.[편집자말]
 악천후때도 배달은 멈추는 법이 없다.
 악천후때도 배달은 멈추는 법이 없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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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재난이 장기화하면서 외식업계에서는 배달 서비스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이러다 보니 각 언론사 뉴스에서도 '배달 업종'과 관련된 기사가 하루가 멀다하고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필수 노동자'라는 명칭으로 거론되면서, 요즘만큼 '배달'이라는 직종이 이렇게나 관심을 받은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수년 전 배달전문외식업 개업 후 처음으로 일어난 배달기사의 교통사고 - 다행히도 경미했던 - 수습을 위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우리 배달 기사에게 들었던 말은 이거였다. 

"배달이란 직업은 이 나라에서 가장 천한 직업이에요..."

당시 추돌은 운전자 측 과실이 컸다. 그가 일방적인 가해자였음에도 고급 외제차를 탄 그는 고압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언쟁이 길어지자 출동한 경찰도 피해자인 배달 기사보다는 가해자인 차주에게 우호적이었다. 

그때 그 현장 분위기가 나도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그는 배달외식업 초짜 사장인 나를 이해시키기 위해 차주와 경찰의 태도가 이 사회 전반에 깔린 '배달업' 종사자에 대한 괄시와 천대에 기인하고 있음을 설명한 것이다.

그 배달 기사도 한때 50평이 넘는 대형 초밥집을 운영했던 '사장'이었다. 이렇게 대중에게 배달업 종사자에 대한 인식은 거의 '바닥' 수준이다. 이 글은 쓰는 나 또한 이전에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별로 다르지 않았다.

비 오는 날, 배달기사에게 도로보다 더 위험한 곳

어느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사진을 하나 본 적이 있다. 폭우로 거의 종아리까지 빗물로 잠긴 주택가에서 한 손에 배달 음식을 들고 힘겹게 걸어가고 있는 배달기사의 모습이었다. 물론, 극단적인 장면이다. 그러나 이와 비슷한, 아찔하고 절망적인 경험이 내게도 수차례 있었다.

겨울철 블랙아이스(살얼음) 도로에 가로등이 켜지면 흡사 밤하늘의 별이 도로로 내려온 것 같이 반짝거린다. 이 환상적인 광경이 눈 앞에 펼쳐지면 배달기사들의 등골에는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도로가 아무리 빙판이라고 한들 한번 배달을 나가면 돌아갈 수가 없다. 그건 취소 사유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네 바퀴를 가진 차량도 쭉쭉 미끄러지는 도로에서 두 바퀴의 오토바이가 미끄러지지 않는 건 오로지 운에 달려 있었다. '오늘도 무사하길' 말이다. 

작년 겨울, 그 운이 나를 비껴갔다. 결국, 나도 다른 기사들처럼 블랙아이스 도로에서 나뒹굴었고 종아리의 피부가 심하게 찢어지는 상처를 입었다. 의사의 말처럼 그나마 골절과 같은 중상이 아님을 위안으로 삼았다.  
 
 비오는 날 주차장은 빙판과 다름없다.
 비오는 날 주차장은 빙판과 다름없다.
ⓒ 권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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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정말 위험한 장소는 도로가 아니다. 바로 아파트 지하 주차장이다. 방수 우레탄의 지하 주차장은 블랙아이스 도로만큼 미끄럽다. 경험 없는 기사들과 경험이 있음에도 시간에 쫓겨 방심한 기사들은 여지없이 미끄러지고 상처를 입는다. 참고로 최근 건설된 아파트들은 절대 지상으로 다닐 수 없다. 

배달기사들은 왜 도로 위의 무법자가 되나

이런 위험과 어려움, 그리고 그곳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으로 '배달대행'이란 사업은 몇 년 전만 해도 정식 사업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SKY' 출신이 뛰어들고 수십, 수백 억의 자본이 왔다 갔다 하는 그럴듯한 신종 사업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배달대행은 이십 대 이상의 청년과 중장년들이 하나의 생계수단으로써 선택하는 진짜 '직업'이 되었다.

필자는 재작년 잠시 배달대행을 경험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난 사장 또는 직원으로서 배달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한 건 한 건의 실적만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그 치열한 배달대행 기사의 어려움을 몸서리치게 경험했다.

화장실을 가기 어려운 직업상 여름에도 수분 섭취를 줄여야 했고 헬맷이 아무리 무겁고 더워도 1분 1초가 아쉬운 만큼 식사 시간 외에는 거의 벗을 수 없었다. 더 문제는 근무 중 내내 스마트폰에서 눈을 뗄 수 없으므로 - 업소의 콜(주문)을 봐야 한다 - 사고의 위험은 물론 목과 어깨에 엄청난 무리가 왔다.

대행기사는 본인의 능력만큼 수입이 결정되기 때문에 시간당 최소 4, 5건 이상은 배달 건을 처리해야 한다. 그렇게 못하면 중개수수료, 주유비, 밥값, 보험료, 오토바이 유지비(또는 리스비)를 제외하고 최저시급도 못 맞추게 된다. 그러니 기사들은 정말 필사적으로 '콜'을 잡았다. 10시간에서 12시간의 근무 중 내내, 잠시도 한눈을 팔 수 없다.

이런 상황이 배달기사들을 어쩔 수 없이 '도로의 무법자'로 만들었다. 난 이십여 년의 운전경력 동안 단 한 번의 교통위반이나 사고를 낸 적이 없었다. 그런 나도 '배달기사'를 하는 동안 교통법규 위반을 당연히(?) 감수해야 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이유가 면책권이 된다는 소리는 결코 아니다. 잘못은 분명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적어도 이 직종의 사람들을 이 사회에서 격리해야 할 혐오의 대상으로 취급하지는 말아 달라는 거다. 

'막장'이란 단어는 '갱도의 마지막'을 뜻하는 단어다. 그래서 가끔 오토바이로 배달하는 사람들을 '막장 인생'이라고 보는 듯한 사람들도 있다. 돈벌이의 '최후의 수단'으로 배달을 택했다는 점에서 언뜻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신들과 그리 다른 사람들도 아니다. 

취미였던 오토바이 덕분에 중견 회사에서 임원으로 은퇴하고 배달기사를 할 수 있었다는 육십 대 노신사, 운영하는 가게 매출 하락으로 배달대행을 병행하는 오십대 가장, 사업 부도로 생긴 빚을 갚기 위해 삼각김밥 하나로 버티는 사십대 가장, 취준생으로 돈벌이에 나선 삼십대.

또,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나선 학생, 얼마 전까지 '금녀의 직종'이었던 이 배달업에 용감하게 뛰어든 다부진 이십대 여성, 어린 시절 방황을 접고 머리까지 밀어버린 19살 소녀, 그리고 대한민국의 유별난 '교육비와 주거비'를 위해 투잡에 나선 나 같은 사람...

그들은 당신들과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물론 당신들보다는 조금 더 간절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배달기사의 사고 소식, 아내는 늘 채널을 돌린다 

며칠 전, 인천 을왕리에서 나와 같은 연배의 치킨집 사장님이 배달을 하다가 음주운전 차량 때문에 유명을 달리했다. 이 뉴스가 TV에 나올 때마다 내 아내는 채널을 돌렸다. 

수년 전 어느 날, 난 마지막 배달을 무사히 마치고 아내가 기다리는 가게로 달려가고 있었다. 가게를 코앞에 둔 왕복 8차로의 대형 교차로, 신호를 무시한 상대방 차량이 달려왔고, 난 아스팔트 위에 나뒹굴었다.

구급차에 실린 후 의식이 돌아왔을 때 내 옆에 아내가 있었다. 아내는 시간이 지나도 내가 돌아오지 않자 뭔가 불길한 느낌을 받았고, 마침 근처에서 사이렌 소리가 울리자 황급히 가게에서 뛰어나와 구급차를 보고 달렸다. 그리고 들것에 실리는 나를 발견했다. 

빗물이 종아리까지 차오르는 곳을 지나가야 하고, 블랙아이스가 펼쳐진 빙판 도로를 통과해야 하며, 정전으로 멈춰 선 삼사십 층의 고층아파트를 걸어 올라가야 하는, 일반인이라면 몇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이런 당황스러운 상황들을 매년 한두 번은 연례행사처럼 겪으면서, 그들은 오늘도 일터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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