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넷플릭스 영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스틸 컷

넷플릭스 영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스틸 컷 ⓒ 넷플릭스



 
2차 세계 대전 당시 남태평양에서 자행된 학살을 경험한 '윌러드 러셀(빌 스카스가드)'. 그는 암에 걸린 아내를 구하기 위해 수많은 피를 십자가 앞에 희생 제물로 바치지만, 그의 기도는 응답받지 못한다. 사진작가인 '칼 헨더슨(제이슨 클라크)'은 히치하이킹을 하는 사람들을 붙잡아 자신의 사진과 살인의 모델로 삼는다. 

신의 힘으로 자신이 두려움을 모두 떨칠 수 있었다는 '로이 목사(해리 멜링)'는 아내를 죽이고 법을 피해 달아나고, 힘과 권위를 얻기 위해 목사가 된 '프레스턴(로버트 패틴슨)'은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자신의 지위를 남용한다. 

서로 아무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들은 이유는 모르겠지만 선량하면서도 본인이 생각하는 정의를 위해서는 폭력도 망설이지 않는 윌러드의 아들, '아빈(톰 홀랜드)'과 직간접적으로 엮이기 시작한다. 

톰 홀랜드, 로버트 패틴슨, 세바스찬 스탠, 빌 스카스가드 등 화려한 라인업으로 주목받은 넷플릭스의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장르 영화의 측면에서 볼 때 다소 실망스러운 작품이다. 배우들의 열연에 힘입은 순간적인 서프라이즈 외에 스릴러 영화로부터 기대할 만한 숨 막히는 긴장감을 크게 발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아빈의 가족과 프레스턴 목사, 사진작가 칼 헨더슨, 그리고 보안관 리 보데커가 중심이 된 여러 플롯을 중심으로 서로 다른 시간대에서 전개된다. 이는 과거와 미래의 사건을 충돌시키거나 관련 없는 인물들 간의 예상치 못한 만남을 통해 긴장감을 조성하려는 시도다.

하지만 "그저 우연이라는 사람도 있을 테고 신의 뜻이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이 돌아간 걸 보면 두 가지 다였지 싶다"라는, 마치 운명론을 언급하는 듯한 도입부 내레이션 때문에 작중 모든 사건은 예상 가능하며, 영화의 구조적인 특징과 스릴러다운 장점은 희미해진다. 

하지만 이 작품만의 독특한 분위기에 주목할 경우,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가 쉽사리 눈을 뗄 수 없는 영화인 것은 분명하다. 영화는 악마(devil)라는 단어가 포함된 제목을 통해 선악의 이분법적 구도를 강조하면서 다소 종교적인, 구체적으로는 기독교적 색채를 자아낸다. 이때 제목은 '과연 악마는 누구일까?' 그리고 '이 악마는 왜 없어지지 않는 걸까?'라는 두 개의 질문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이 질문들의 답을 알고 싶은 호기심은 스릴러 같지 않은 스릴러 영화의 스토리를 따라가는 동력으로 활용된다.

로이 목사와 윌러드의 이야기가 주로 나오는 초반부만 보면 두 질문에 대한 답은 의외로 쉽게 나오는 듯하다. 로이 목사는 신의 은총 덕분에 더 이상 거미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면서 거미 떼를 본인 몸에 부을 정도로 열성적인 신도다. 자신의 아내를 죽인 후에도 신이 그녀를 부활시킬 거라고 믿는 그의 모습은 성경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근본주의자들의 전형을 보여준다.

 
 영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스틸 컷

영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스틸 컷 ⓒ 넷플릭스


 
또한 자녀들을 포기하면서까지 종교에 매달린다는 점에서 로이 목사는 윌러드와도 겹쳐 보인다. 신의 뜻을 증명하겠다며 아내를 죽이는 로이 목사와 아내의 죽음이라는 절망스러운 순간 신에게 매달리면서 자살하는 윌은 그들의 맹신 때문에 각자의 자녀인 레노라와 아빈을 버린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이후 영화는 동떨어진 듯 보이는 과거와 미래를 연결시키는 연출을 통해 레노라가 목사와 사랑에 빠진 대가로 죽음을 맞이한 어머니의 전철을 따르고 아빈이 아버지인 윌러드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모습을 보여준다. 종교, 특히 광적인 신앙을 비극적인 삶의 근본 원인이자 제목 속 악마로 지목하는 것이다.

그러나 잠깐 언급만 되고 잠시 잊혔던 칼 헨더슨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종교가 악마일 것이라는 확신은 조금씩 힘을 잃는다. 자신의 쾌락을 위해서 사람들을 죽이고 그 순간을 사진으로 보관하는 그의 범죄 행각은 "칼의 사고방식에 따르면 오직 이 일만이 참된 종교였다"라는 내레이션대로 마치 예배처럼 정교하게 다듬어진 순서와 형식에 맞춰서 이루어진다. 그래서일까? 그의 범죄행각을 보다 보면 작중 맹목적으로 신을 찾는 광신도들만 악마라고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특히 그의 살인 행각이 로이 목사를 죽이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작중 악마는 종교보다 더 악랄하고 본질적인 존재일 수도 있겠다는 의심은 더욱 힘을 얻는다.

이러한 의심은 프레스턴 목사가 등장하면서 확신으로 변한다. 오로지 자신의 지위와 믿음을 과시하는데 몰두하는 그의 첫 설교를 들은 후 신실한 성도인 러셀의 할머니는 그가 목사로서 부적절하다고 비난한다. 실제로 "사람들이 자기 얘기에 귀 기울이고 자기 말 한마디에 매달리는 게 좋았다"는 이유로 목사가 된 그는 순진한 청소년 여성들을 유혹하고 성폭행한다. 이를 통해 영화는 교회나 종교 그 자체는 악마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프레스턴 목사는 종교의 전통과 가르침 그 자체보다는 개인이 종교를 어떻게 이해하고, 실천하는지에 따라 종교가 악마가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음을 명백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가 교회에서 설교하는 장면을 보면, 그를 정면에서 바라보던 구도는 점점 그를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며 그가 뒤에 걸린 십자가를 가리는 구도로 변한다. 마치 프레스턴 목사라는 한 개인이 신의 존재를 잠식해 들어가며 부정하는 것처럼.

이렇게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종교가 악마가 아니며, 종교라는 탈을 쓰고 그 가르침을 마음껏 비틀어서 이기적인 욕심을 채우는 개인들이 악마라고 지적한다. 더 나아가 꼭 종교의 외관을 갖지 않아도 마치 광신도들처럼 자신의 욕망을 핑계 삼아 비뚤어진 신념과 광기를 맹목적으로 쫓는 이들이야말로 악마라고 말한다. 이는 딱히 종교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악역인 '리 보데커(세바스찬 스탠)'가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보안관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모든 수단을 동원하며 발악하는 그의 등장은 궁극적으로 자신의 욕망만을 무조건적으로 쫓는 개인 때문에 로이 목사, 프레스턴 목사, 칼 헨더슨 같은 악마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을 암시한다.

이러한 메시지는 광신도 아버지로부터 피해를 입은 레노라와 아빈이 상반된 최후를 맞는 이유이기도 하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며 프레스턴 목사를 신뢰한 레노라는 진짜 악마의 존재가 무엇인지를 몰랐고, 그래서 어머니의 비극적인 삶을 반복한다. 반면에 아빈은 신과 교회를 믿지 않았다. 아버지의 자살을 목격한 뒤 그는 레노라와 달리 종교와 신에 대한 믿음으로 포장된 사람의 욕망과 광기가 초래할 문제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프레스턴 목사의 탐욕을, 칼 헨더슨의 잔혹한 범죄 행각을 빠르게 알아채고 그들을 처단할 수 있었다. 

영화는 악마들을 죽인 후에 자신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던 아버지로부터 드디어 벗어날 수 있음을 깨닫는 아빈의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결국 아빈처럼 종교와 정치의 탈을 쓴 악마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경계할 때 비로소 악마는 사라지고 반복되는 삶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 이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가 던진 두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할 수 있다. 

분명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의 장르적인 재미는 부족하다. 그래서 배우들의 열연과 매력에도 불구하고 2시간을 넘기는 러닝타임은 살짝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메시지는 한 번 들여볼 만한 이유로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영화는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악의 본질이 사실 종교가 아니라, 자신의 욕망과 광기를 정당화할 수 있는 수단이라면 종교뿐만 아니라 뭐든지 이용하는 개인들이 곧 악마라고 말한다. 코로나 시대를 겪으면서 신천지와 일부 개신교 교회들의 행태를 목격한 상황에서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의 메시지는 보다 의미심장하고 묵직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https://brunch.co.kr/@potter1113)에 게재한 글입니다.
영화리뷰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넷플릭스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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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읽는 하루, KinoDAY의 공간입니다. 서울대학교에서 종교학과 정치경제철학을 공부했고, 지금은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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