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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의 여파로 프리랜서 여행 가이드 일은 올해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대신 오전에는 한 기관에서 고객을 안내하고, 오후에는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투잡 생활을 한 지 벌써 반 년이 되어간다.

두 곳 모두 파트타임 직장이다. 코로나 재확산으로 언제 해고 통보를 받을지 모른다는 걱정으로 투잡 생활을 겨우 겨우 이어갔다. 한 개의 파트타임 잡과 함께 하루 한 나절은 음악 작업을 한다는 게 최근 몇 년 간 나의 철칙이었다. 실직의 공포로 본의 아니게 일벌레가 되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아직까지 해고 통보는 없다. 

언제 해고될지 모를 두려움때문에

덕분에 몸은 지쳐갔다. 일하는 시간은 평균 직장인과 같았지만, 결이 완전히 다른 두 가지 일을 매일 한다는 건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이는 음악을 하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등 창조적인 일을 여러 가지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내게 지금 하는 두 가지 일 모두 보람되고 때로는 재미나기도 했지만 결국 목적은 단 하나, 생계였다. 단기적으로는 여행 가이드, 장기적으로는 송라이터로 성공하고 싶다. 이런 꿈이 있는 내가 올해 얼마나 성장했는가를 따진다면 아주 부끄러운 점수가 벌써부터 예상된다. 코로나19 위기에 돈을 벌 수 있는 직장을 찾았고,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감사한 마음도 물론 있긴 하지만.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오전 직장에 바삐 출근하고, 일 끝나자마자 점심은 학원 근처에서 대충 때우고 또 한 번 출근하는 일상이 몇 달 간 반복되면서 나의 일상은 색깔을 잃어갔다. 집에 돌아오면 너무나 졸려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미디 작업은 무슨. 컴퓨터 켜기조차 싫었다. 허겁지겁 밥을 먹고 남편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 뒤, 신문을 보며 꾸벅꾸벅 졸다가 억지로 씻고 침대에 쓰러지는 생활의 연속. 가끔은 일이 내 인생을 갉아먹는 느낌이 들면서 주말이나 공휴일만 기다리는 '좀비'가 되었다. 
 
하루 커피 한 잔. 이렇게 무언가를 기대하고 기다리는 시간은 즐겁고, 희망찰 수밖에 없다.
 하루 커피 한 잔. 이렇게 무언가를 기대하고 기다리는 시간은 즐겁고, 희망찰 수밖에 없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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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점심 식사 후 피로를 덜고자 커피를 한 잔 하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고용의 불확실성이 계속되는 한 어차피 이 생활을 피할 수 없다면, 조금이라도 내 인생을 의미있게 색칠해보고 싶은 욕망이 생긴 것이다.

돌이켜보니 요즘 나의 생활은 커피 덕에 유지되고 있었다. 오후 두 시까지만 아메리카노를 단 돈 천 원에 파는 매장에서 한 잔 테이크아웃해 잠시나마 벤치에 앉아 마시는 순간 나는 쉬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 스트레스도 풀리고, 살짝 행복하기도 하다. 슬픈 사실은 나에게 허락된 커피는 하루 한 잔이란 점이다.

내가 정한 규칙인데, 인체 장기 중 한 군데에 가벼운 문제를 지녔기에 카페인 섭취를 줄이고자 하루 한 잔의 커피만을 마시고 있다. 그 때문에 더욱이 내게 커피를 마시는 시간은 정말로 소중하고, 항상 기다려진다.

일상에서 중장기적으로는 주말과 휴일이 기다려지지만, 매일 커피가 주는 기대감을 모두 더해보면 주말이나 휴일에 대한 기대를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맛집 방문보다도 훨씬.

이렇게 매일 한 잔의 커피가 소중하다보니, 왠지 한 잔 더 하고 싶은 날은 이 욕망을 참으며 다음 날이 오기를 기다리기도 한다. 그리고 다음 날 점심을 먹으면서도 식후 커피 한 잔 할 생각에 기분이 좋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고 하던가? 내게는 커피가 태양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다. 이렇게 무언가를 기대하고 기다리는 시간은 즐겁고, 희망찰 수밖에 없다. 이렇게 기다려지는 일을 더 많이 만들면 내 인생에 좀 더 활력이 생기지 않을까? 하루 한 잔의 커피라는 규칙은 건강상의 이유이기도 했으나, 결국은 매일 기다려지는 이벤트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참 잘 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릴 적 소풍 전날 밤, 잠 못 자고 기다렸던 것처럼 내 인생에도 이벤트를 만드는 것이다. 커피 한 잔처럼 좀 더 잦으면서도 소소한 이벤트. 특히나 우리에게 요즘 여행이란 특별한 이벤트는 금기시되어 있으니 좀 더 자잘하면서도 빈도 높은 기다림의 요소는 그나마 좋은 자극이 될 수 있겠다.

소소한 이벤트가 무료한 내 삶에 미치는 영향

커피 마시기처럼 내가 좀 더 본능적으로 좋아하는 일을 슬며시 적어보자면... 팟캐스트 듣기, 웃긴 영상 보기, 화제의 커뮤니티 글 읽기 등등이 있다. 나만 그럴 수도 있지만, 본능적으로 끌리는 일일수록 생산성과는 거리가 먼 경우가 많다. 물론 공부와 탐구가 취미인 사람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전혀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이렇게 좋아하는 일들에 할당 시간을 주면 어떨까? 팟캐스트를 시간이 날 때마다 습관적으로 듣던 나는 이를 좀 줄이고 싶었는데, 얼마 전부터 이동 시간에는 이어폰을 가방 안에 넣어두고, 가급적 두 가지 일과 관련한 연락 업무만을 집중해서 진행한다.

아니면 은행, 행정 등 집안일에 필요한 전화를 하거나, 그마저도 할 게 없으면 신문만 본다. 대신 6시에 학원 업무가 모두 끝나면 퇴근길에만 팟캐스트를 듣기로 했다. 업무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는 이 시간에 양쪽 귀에 나란히 이어폰을 꽂고 좋아하는 방송과 함께 낄낄 웃으며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이보다 더 가벼울 수가 없다!

말장난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요즘처럼 앞날을 알 수 없어 어떠한 모임이나 여행 같은 재미난 이벤트를 만들기도 힘든 시기에 짧게나마 무언가를 기대하는 마음이 생기는 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좋아하는 드라마가 있다면 방영 시간이 얼마나 기다려지는가! 그렇게 살짝 살짝 가슴 뛰는 일들을 하나, 둘 만들다보면 재미없었던 삶에 나름의 흥미 요소가 끼어들어가면서 웃을 일도 많아진다. 결과적으로 낭비하는 시간도 적어지니 일석이조다.

소셜 미디어, 게임, 가공식품 섭취 등 뭐든지 좋다. 내가 지나치게 좋아해서 중독돼있는 일이 뭐인지 곰곰이 생각해보고 시간이나 날짜를 정해 조금씩만 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것도, 코로나 블루를 극복하는 데 한몫 할 수 있을 것으로 나는 확신한다. 마치 다이어트의 치팅데이처럼...! 물론 좋아하는 일 자체가 아주 생산성있는 일이어서 시간 규정이 필요 없다면 가장 좋은 일이긴 하겠다.

태그:#코로나블루극복, #커피중독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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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만들기와 글 쓰기를 좋아하는 여행 가이드. 포토그래퍼 남편과 함께 온 세계를 다니며 사진 찍고, 음악 만들고, 글 써서 먹고 사는 게 평생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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