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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기장군에 위치한 고리원전. 사진은 고리1호기(오른쪽)와 고리2호기 모습.
 부산 기장군에 위치한 고리원전. 사진은 고리1호기(오른쪽)와 고리2호기 모습.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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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원자력발전(아래 원전)의 절반 이상이 가동을 멈췄다. 9일 한국수력원자력의 누리집에 따르면, 우리나라 원전 총 24기 가운데 13기가 '정지'됐다. 태풍의 영향으로 7호기가, 계획예방정비에 따라 6호기가 멈춘 것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태풍 영향으로 부산 기장 고리원자력발전소(고리원전)의 고리 2~4호기와 신고리 1~2, 경주 월성원자력발전소(월성원전)의 월성 2~3호기 등이 셧다운(Shutdown) 됐다. 경북 울진 한울원자력발전소(한울원전)의 한빛 1호기, 6호기와 월성원전 4호기, 전남 영광 한빛원자력발전소(한빛원전)의 한빛 3~5호기 등은 계획예방정비로 발전 설비가 정지됐다.

우리나라 원전의 절반 이상인 13기가 가동을 멈췄으나, 전력 공급에는 지장이 없다. 전력거래소의 실시간 전력수급 현황에 따르면, 9일 오전 10시 30분 기준 전력예비율은 28%이다. 전력예비율은 낮을수록 전력 공급량이 모자라고 높을수록 남아돈다는 것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전력예비율이 10% 이상이면 전력수급이 '안정적이다'라고 표현한다. 28%이면 넉넉한 수준이다.

원전은 우리나라 전체 발전량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e-나라지표(국정모니터링시스템)에 공개된 에너지원별 발전량 현황에 따르면, 원전의 발전량(2019년 기준)은 145,910GW로 전체 발전량 비중은 25.9%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발전량 중 큰 몫을 담당하는 원전의 절반 이상이 가동을 멈췄는데, 왜 전력수급에는 문제가 없을까?

9일, 이헌석 정의당 생태에너지본부장과 전화 인터뷰했다. 그는 환경단체 '에너지정의행동'의 대표 출신으로, 약 20년간 에너지 운동을 하다가 지난해 정의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보수언론과 친원전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원전이 줄어든다고 해서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사태)'이 일어난다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전력예비율 28%, 대한민국 전력수급 문제 없다
  
 
정의당 이헌석 생태에너지본부장(왼쪽 두번째)이 3월 10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정의당 기후에너지 공약 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정의당 이헌석 생태에너지본부장(왼쪽 두번째)이 3월 10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정의당 기후에너지 공약 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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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일 기준, 우리나라 원전 절반 이상이 태풍의 영향과 계획예방정비 등으로 정지된 상태다. 전력수급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아닌가?
"예년에는 태풍이 온 뒤에 폭염이 와서 전력수요가 높았는데, 이번에는 날씨가 서늘해지면서 전력 수요가 낮다. 전력거래소에서 공개한 현재(10시 35분 기준) 전력 예비율이 28%로 전력수급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온다. 만약 예년과 같이 8월 중순에 태풍이 오고, 전력수요가 높았다면 전력수급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번엔 운이 좋았다."

- 전력예비율이란 무엇인가?
"쉽게 말하면, 언제라도 발전소를 가동해 전기를 공급할 수 있게 대기하고 있는 전력을 말한다. 전력 예비율이 28%라면, 전력수요가 늘어나도 전력 수급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새벽 시간대에는 전력 예비율이 40~50%까지 상승하기도 한다. 다만 낮과 밤의 전력 사용량이 커 예비율의 차이가 크고, 계절에 따라서도 격차가 벌어진다."

- 국내와 해외의 전력예비율은 차이가 있나?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다. 우리나라는 과거 적정 전력예비율이 15%로 잡았는데 최근 민간 발전사업자가 늘어나면서, 정부는 전력예비율을 22%로 설정하고 있다. 이렇게 전력예비율을 올린 이유는 공기업 발전소(한국서부발전 등)의 경우 재정 여건이 충분해 발전소를 추가 건설하는데 차질이 없으나, 민간 발전사업자는 경제 상황에 따라 발전소 건설 기간 등이 늘어나는 등 전력수급에 영향을 끼칠 수 있어서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전력거래소의 전력예비율을 살펴보면 전력수요가 가장 높은 피크(하루 중 오후 2~5시) 때도 전력수급에는 문제가 없었다.

일본은 한때 전력예비율이 30~40%대를 유지했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민간 발전사업자가 많다. 그래서 지난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한 뒤 모든 원전이 가동을 멈추었는데도 대규모 정전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다. 원전을 가동하지 않고 석탄발전 등 다른 발전소만 가동해도 전력수요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나라마다 다르지만 유럽의 전력예비율은 대게 10~20%이다. 하지만 유럽은 전력예비율이란 게 큰 의미가 없다. 만약 해당 나라의 전력이 부족하면, 옆 나라에서 사 오면 되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는 주변 나라와 전력이 연결돼 있지 않기 때문에 '에너지 섬' 국가이다. 자체적으로 전력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선 전력예비율이 중요하다."

- 우리나라의 전력예비율은 적정한가?
"정부가 설정한 적정 전력예비율 22%는 과하다. 하루 중 피크 시간대(오후 2~5시)에 전력을 원활하기 공급하기 위해 이렇게 설정했다. 하지만 하루 중 3시간가량 전력수요가 높을 때를 위해 다수의 발전소를 스탠바이(대기) 해야 할까. 또, 몇 시간을 위해 발전소를 추가 건설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정부가 전력예비율을 10%대 후반대로 낮추면, 현재 멈추어선 원전 6기를 더는 가동하지 않아도 된다. 현재 원전 13기가 정지 상태인데도 전력 수급에는 문제가 없지 않나."

태풍이 남긴 교훈, 원전은 더욱 위험해질 것이다
  
- 보수언론과 친원전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원활한 전력 공급을 위해선 원전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수언론과 친원전 전문가들은 원전이 줄어든다면 당장이라도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사태)'이 일어날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과 다르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한국은 현재 전력이 넉넉하다. 그리고 올여름 연이은 태풍 피해로 드러난 사실은 원전이 재난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기상청은 앞으로는 더 강력한 태풍이 한반도에 상륙한다고 한다. 기후위기에 원전은 대안(에너지)이 아니다."

- 지난 2011년 9월 15일, 전남 영광 한빛 2호기와 경북 울진 한울 2, 4호기 등 총 원전 3호기가 정지하면서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했다. 이번 사고와 차이는 무엇인가?
"당시 상황을 잘 살펴봐야 한다. 추석 연휴가 끝난 뒤였는데도 더웠다. 그래서 전력수요가 높았는데, 각 원전이 계획대로 정비에 들어갔다. 그러면서 전력수급에 차질을 빚게 됐고, 지역별로 공급하던 전기를 차단하는 순환정전이 발생한 것이다. 전체 전력수급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반면 이 사고로 원전의 문제점도 드러났다. 원전은 석탄발전과 달리 한 번 사고가 발생해 가동을 멈추면, 다시 가동하기까지 약 일주일에서 열흘이 걸린다. 위험한 '핵물질'을 다뤄 발전을 하다 보니 안전규제가 많다. 그래서 사고가 발생하면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승인도 받아야 하는 등 절차가 길다. 비유하자면, 원전은 몸집(시설용량)은 큰데, 둔한 사람과 같다. 사고 발생 시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한다."

- 환경단체와 원자력 전문가 등 탈원전 측은 연이은 태풍의 영향으로 원전이 정지되면서 블랙아웃이 발생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전력수급에 문제가 없다는 점에 비추면, 과한 표현 아닌가?
"최근에 전기학회에서 나온 전력망과 관련된 연구가 있다. 핵심은 원전에 공급되는 전기가 순간에 끊기면, 그로 인한 연쇄작용으로 블랙아웃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20명 남짓한 사람들이 그물처럼 줄을 팽팽하게 잡아당기고 있다고 치자. 그런데 갑자기 한 개의 줄이 끊어졌다. 끊어진 줄을 들고 있던 사람들이 휘청하면 옆 사람도 휘청한다. 여러 개가 한 번에 끊어지면 어떨까? 여러 사람이 휘청하고, 그 옆에 있던 사람도 영향을 받을 것이다. 이렇게 원전에 공급되는 전력망이 일순간에 문제가 발생하면 블랙아웃이 발생할 수 있다.

태풍 마이삭(MAYSAK)에 고리원전이 차례로 정지된 사고가 이렇다. 다행히 신고리 1~2호기와 고리 3~4호기가 2시가량 시차를 두고 사고가 발생해 블랙아웃은 안 됐다. 하지만 만약 한꺼번에 전기공급이 차단됐다면 블랙아웃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

- 이미 가동 중인 원전으로 전력수급에 문제가 없다면, 현재 건설 중인 신고리 5~6호기도 필요 없는 거 아닌가?
"맞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발전소 가동 순서대로라면 (신고리 5~6호기가 완공되면)무조건 가동한다. 정부는 발전단가가 낮은 핵발전소(원전)→석탄발전→LNG 가스발전 등의 순으로 발전소를 가동한다. 이 발전단가가 적절한지에 대한 논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현재 순서는 그렇다.

이렇다 보니 핵발전소와 석탄발전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가동을 멈추지 않는다. 핵발전소와 석탄발전을 가동했는데도 전력공급이 부족하면 LNG 가스발전을 가동한다. 따라서 전력공급 측면에서 본다면, 신고리 5~6호기의 필요성은 낮으나 건설하면 무조건 가동한다.

그래서 '환경급전'이란 말이 등장한 것이다. 에너지원을 경제성만 따지지 말고, 온실가스와 미세먼지를 비롯한 환경적 요소 등 종합적으로 반영해 전기를 공급해야 한다는 뜻이다. 정부는 신규 원전은 추가로 건설하지 않고, 노후 원전은 폐쇄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필요하지 않은 에너지원이면, 건설비용이 들어갔다는 이유만으로 가동해선 안 된다. 대만과 오스트리아는 건설이 거의 완료된 원전을 가동하지 않았다. 위험한 에너지가 아니라 안전한 에너지로 '에너지 전환'을 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정부의 방침대로 노후원전을 폐쇄하는 것도 방법이겠으나 건설 중이거나 건설이 완료된 원전을 가동하지 않는 것도 방법이다."

- 지금까지 한 말을 종합하면, 전력수급 계획을 잘 세우면 다수 호기의 원전을 가동하지 않고, 신규 원전도 건설할 필요가 없다. 
"당연하다. 더 나아가 전력수요관리까지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올해는 전력수요가 감소했지만, 최근 추세를 살펴보면 전력 수요는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정부가 전력 수요를 낮추는 정책을 펼친다면, 다수 호기의 원전을 가동하지 않아도 되고 추가로 건설할 필요도 없다.

우리나라 전기는 절반 이상 산업에 사용된다. 가장 전력 수요가 높은 8월 중순에 기업들이 직원들에게 휴가를 주거나 재택근무를 하게 한다면, 전력 수요가 확 떨어질 것이다. 이건 코로나19 여파로 기업들이 재택근무를 하면서 증명됐다.

시민들이 폭염일 때는 재택근무를 하거나 휴가를 떠날 수 있게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도 중요하다. 요즘은 여름철에 많은 기업이 직원들에게 '쿨비즈룩'을 권하지만, 아직도 많은 회사가 그렇지 못하다. 그리고 한 공간에 많은 사람이 모여 있으면, 더위 체감지수도 올라가 에어컨을 더 틀 게 된다. 기후 위기에 걸맞은 전력 수요관리 정책이 필요하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보수진영은 원전과 관련한 정보에 대해 거짓을 알면서도 가짜뉴스를 만들어 퍼트리면서 진짜 우리 사회가 중요하게 논의해야 할 사항을 놓치게 한다. 지금은 가짜뉴스와 펙트체크(사실확인)에 에너지를 소모할 때가 아니다.

이번 태풍으로 원전 8기(고리 1~4호기, 신고리 1~2호기, 월성 2~3호기)가 영향을 받았다. 앞으로는 더 강력한 태풍이 온다고 한다. 그러면 지금보다 더 원전은 위험에 노출될 것이다. 지금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과연 기후위기 시대에 어떤 것을 에너지원으로 삼아야 하는 지다. 올여름 파국은 면했지만, 다음번엔 심각한 파국을 맞을지도 모른다. 그게 올여름 연이은 태풍이 남긴 교훈이다."

태그:#원전사고, #고리원전, #월성원전, #전력수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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