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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달 전, 새로운 머리 스타일에 덜컥 도전했다.
 석 달 전, 새로운 머리 스타일에 덜컥 도전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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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내내 긴 머리를 질끈 묶고 다녔다. 석 달 전 단골 미용실에서 한 파마가 영 마음에 안 든 탓이다. '히피 펌'이라는 것이 유행이라기에 덜컥 도전했더니, 정수리부터 덜 익은 라면 가닥처럼 빠글빠글한 것이 내게는 도무지 어울리지가 않았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머리를 묶고 다니면서부터 출근 준비시간이 확 줄었다는 사실이다. 머리를 감고 나서 그저 잘 말리기만 하면 그만이니 평소보다 이십 분은 더 여유가 생겼다. 덕분에 파마를 망친 것이 차라리 잘되었다 싶을 정도다.

그런데 얼마 전, 코로나 때문에 몇 달 만에 시골집에 내려갔더니 엄마가 단박에 머리 꼴이 그게 뭐냐고 쯧쯧 혀를 차신다. 요는 너무 길다는 것이다. 게다가 어린 애처럼 하나로 깡총 묶고 다니는 머리 모양도 마음에 안 드신단다.

"너도 내일 모래 마흔이다."

아니, 갑자기 나이 공격은 왜 하시는 거지? 억울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긴 생머리가 트레이드 마크인 탤런트 김사랑도 진작에 마흔이 넘었단 말로 대들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틀림없이 너는 김사랑이 아니라는 매우 객관적이고 냉정한 평가가 돌아올 것이 뻔했으므로 가만히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 주변 친구들도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일 이년 전부터 죄다 머리를 어깨가 닿을락 말락 한 길이로 싹둑 잘랐다. 그중에는 아이를 낳고 난 뒤 도무지 긴 머리를 간수할 엄두가 안 나더라는 친구도 있었고, 이제 마흔다섯이 된 친한 언니는 허리까지 내려오던 찰랑찰랑한 생머리가 어쩐지 '어려 보이려는 발악'처럼 느껴져 낯부끄러워 잘랐다고도 했다.

머리를 풀고 거울 앞에 섰다. '어려 보이려는 발악'이라는 말이 귓가를 맴돌아서다. 이제 나도 머리를 좀 더 단정하게 자르고, 옷도 좀 점잖은 것으로 신경 써서 차려입어야 하는 나이가 된 건가? 씁쓸해지려던 찰나에 문득 작년 이맘때 지하철에서 만났던 한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그 할아버지의 '동안 부심'

그날 나는 5호선으로 환승하기 위해 군자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옆자리에 앉은 할아버지 한 분이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마천행을 탈 것이라 하는 소리가 들렸다. 흘끔 보니 그 할아버지가 앉아 있는 방향이, 마천이 아닌 방화역 쪽이었다. 막 방화행 열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다급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할아버지, 그거 타지 마세요!"

할아버지는 반대 방향으로 돌아앉으시곤 몇 번이나 내게 고맙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것을 계기로 나는 할아버지와 나란히 앉아서 몇 마디를 더 나누게 되었다. 그런데 대화 도중에 할아버지께서 앞뒤 맥락과 전혀 상관없이,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게 아닌가?
 
"내가 나이가 올해 아흔넷이야! 그런데 아직 보청기도 안 낀다고."


내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어 보이면서 "세상에! 아흔넷이요? 진짜 그렇게 안 보이세요" 했더니, 할아버지는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껄껄껄 웃으신다. 잊고 있었던 아흔넷 할아버지의 '동안 부심'이 떠오르자 나도 모르게 픽 웃음이 났다. 사람 마음 다 거기서 거기지 뭐 별거 있나, 싶어서다.

이렇게 살아도 뭐 어때요

사실 우리는 요즘 '동안' 이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나만 해도 내심 마흔 대여섯쯤 되었겠다 짐작했던 대화 상대가 쉰이 훌쩍 넘었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고서 깜짝 놀란 적이 있는가 하면, 늘씬한 몸매로 미니스커트를 기가 막히게 소화하던 예순 넘은 선생님을 만난 적도 있다.

찌개에 넣을 호박 하나를 사더라도 유기농을 따지고, 각종 비타민에 루테인, 오메가3까지 그 많은 영양제를 꼬박꼬박 챙겨 먹는 21세기 현대인들이 그런 각고의 노력끝에 기대하는 건 아마 단순히 건강만은 아닐 것이다. 남들보다 서너 살이나마 어려 보이고 싶은 마음, 속절없이 흐르는 야속한 세월을 어떡하든 부여잡고 싶은 간절함! 그게 뭐 나쁜 건가?

생각해보니 어쩌면 세월의 흐름에 당당하게 역행하며 '나이답게'가 아니라 '나답게' 나이 드는 것을 선택하는 용기야말로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동안의 비결인지도 모르겠다.

삼십 년쯤 지나서 긴 은발을 휘날리며 새빨간 립스틱을 바를 수 있는 '힙한' 할머니가 되기 위해선 나도 지금부터 과감하고 솔직하게 그러니까 '나답게' 나이 드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 보아야겠다. 오늘도 긴 머리를 질끈 묶으며 드는 생각이다.

태그:#동안의 비결, #나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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