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이 글에는 영화 <지옥에서 온 전언>의 결말이 담겨 있습니다. 
 
 영화 <지옥에서 온 전언> 스틸 컷

영화 <지옥에서 온 전언> 스틸 컷 ⓒ 넷플릭스

 
LA에 거주 중인 여동생 '비앙카(시봉길레 믈람보)'로부터의 모든 연락이 두절되자 '제이콥 킹(채드윅 보스먼)은 직접 미국으로 건너가 그녀의 행방을 살피기 시작한다. 우연히 알게 된 '켈리(테레사 팔머)'의 도움을 받으면서 제이콥은 마약과 섹스로 가득한 LA의 추잡한 이면을 마주하고, 그의 행보가 거슬린 영화 제작자 '프레스턴(알프레도 몰리나)'과 치과 의사인 '엔트워스(루크 에반스)'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그를 집으로 되돌려 보내려 한다. 그러나 숱한 협박과 폭력을 만나면서 제이콥은 결심한다. 여동생의 진실을 완전히 알아내기 전까지 추락한 천사들의 도시가 되어버린 LA를 떠나지 않기로.

미국 현지 시간으로 2020년 8월 28일, 영화배우 채드윅 보스먼이 대장암으로 사망했다는 갑작스러운 소식이 전해졌다. 이에 할리우드 스타들을 비롯한 셀럽들은 물론, 수많은 영화팬들도 그의 죽음을 추모하고 있다. 이러한 추모 행렬은 지난 몇 년간 그의 행보가 큰 감동을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실제로 그는 '블랙 팬서' 뿐만 아니라 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 선수인 재키 로빈슨부터 흑인 최초로 미 대법관 자리에 오른 서굿 마셜, 그리고 < Da 5 블러드 >에서의 노먼 분대장까지 인종과 소수자에 대한 차별에 저항할 수 있는 영화와 배역을 고집해왔다.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지옥에서 온 전언(Message from the King)>에서도 그의 신념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옥에서 온 전언>은 다양한 사회적, 역사적 레퍼런스를 러닝타임 곳곳에 배치해 흑백 차별에 반대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예를 들어 제이콥이 입국 심사를 받는 첫 장면은 흑인들을 짓누르는 편견과 차별의 스테레오 타입을 소개하고 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문제가 될 것이 없는 제이콥의 답변에 대해 백인 심사관은 계속해서 꼬투리를 잡는다.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전무한 상황인데도 아프리카에서 온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은 그가 가난하고 확신하며 여동생을 핑계로 불법 이민 온 것이 아니냐고 추궁한다. 이때 카메라는 무례하고 몰상식한 질문들에  가능한 차분하고 절제된 태도로 답변하는 제이콥의 표정을 클로즈업하면서 그의 이야기가 편견에 맞서 싸우는 영화가 될 것임을 암시한다.

흑백차별에 반대하는 메시지는 다양한 형태로 제시된다. 제이콥이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이라는 설정은 백인과 흑인을 사회 모든 분야에서 구분하는 철저히 구분하는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의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살아가기 어려웠다가 잠시 봄에 행복해지고, 다시 더욱 상황이 안 좋아지는 것이 LA에서의 삶이라고 자조하는 켈리의 말에 깊이 공감하는 제이콥의 모습은 미국의 역사 안에서 지속되고 또 악화되는 흑백 차별을 상기시킨다. 이를 뒷받침하려는 듯 영화는 조지 플로이드 사건과 뒤이은 위스콘신 흑인 총격 사건으로 거듭 논란이 되는 미국 경찰의 과격한 진압 및 대처 방식을 빠뜨리지 않고 등장시킨다.  
 
 영화 <지옥에서 온 전언> 스틸 컷

영화 <지옥에서 온 전언> 스틸 컷 ⓒ 넷플릭스

 
더 나아가 영화는 LA라는 배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흑백차별의 범주를 넘어서는 주제들도 무대 위에 올린다. 제이콥의 조력자 중 하나인 한인 마트 운영자 모자의 등장이 대표적인 예시다. 지금껏 할리우드 영화들이 주로 중국 혹은 일본 출신 이민자들을 주인공의 조력자로 등장시킨 것을 고려할 때 한인 조력자의 등장에는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고 추측할 수 있는데, 이 경우는 LA 흑인 폭동을 염두에 둔 설정으로 볼 수 있다.

1991년 한국인을 대상으로 강도짓을 벌이던 로드니 킹의 체포로부터 촉발된 LA 폭동 당시 한인 타운은 전체 피해액의 절반인 약 3억 5천만 달러의 피해를 입었다. 사건 이전부터 존재했던 흑인과 한인들 간의 갈등은 원인들 중 하나였으며, 그 이후 한인과 흑인 사회는 상호 교류를 넓히면서 관계 개선을 해온 바 있다. 작중 제이콥의 성이 킹이라는 점이나 그를 대하는 태도가 상반된 어머니와 아들의 모습은 이러한 소수 인종 간의 역사와 관계 변화를 담은 대목이다.

또한 LA가 할리우드의 도시인만큼 작중 영화 및 드라마 제작자 '프레스턴'의 존재는 할리우드의 비윤리성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칼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는 잘 나가는 스타 제작자이지만, 성매매에 가담하고 소아 성애를 위해 인신매매도 거리낌 없이 저지르는 인물이다. 이러한 설정은 입양딸과 관련된 논란으로 인해 소아 성애자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우디 앨런 감독, 남성 미성년자를 성추행했다는 혐의를 받은 배우 케빈 스페이시와 브라이언 싱어 감독, 최근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에 제기한 제명 철회 소송에서 패소한 아동 성범죄자로만 폴린스키 감독 등을 떠올리게 한다.

이처럼 인종 및 소수자 차별과 관련된 역사적 사건과 사회적 현실을 적절하게 모아 담은 <지옥에서 온 전언>이지만, 정작 스토리가 진행되는 동안에 영화의 주제의식은 큰 임팩트를 남기지 못한다. 영화 완성도가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실종된 여동생을 찾는 과정을 영화는 다소 안이하게 풀어낸다. 실제로 여동생의 지인을 만나 용의자 한 명에 대한 단서를 얻고, 용의자를 패준 다음 새로운 단서를 얻는 과정의 반복이 전부인 초반부는 큰 흥미를 끌기 어렵다.

스토리텔링의 가장 중요한 동력 중 하나인 여동생이 실종된 이유 또한 초반부터 대략 짐작할 수 있다 보니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은 큰 반전이나 충격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이에 더해 중심 플롯 중 하나인 켈리와 제이콥 간의 신뢰와 협력 관계의 경우 최소한의 정보만 제공되다 보니 그가 그녀에 대해서 유독 애착을 느끼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그 결과 둘의 관계가 급작스럽게 진전된 느낌을 준다.
 
 영화 <지옥에서 온 전언> 스틸 컷

영화 <지옥에서 온 전언> 스틸 컷 ⓒ 넷플릭스


그런데도 차별과 무시에 당당히 맞서자는 이 영화의 메시지가 의미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당연 주연배우 채드윅 보스먼의 존재감 덕분이다. 특히 그가 남아프리카 공화국 경찰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결말은 그 절정이라고 볼 수 있다. 제이콥의 본래 직업에 대해서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별다른 설명을 내놓지 않는다. 대신 후줄근한 그의 외양이나 짐, 살인율이 높은 출신 국가와 지역만을 가지고서 여러 백인들이 그를 불법 이민자 내지는 갱 조직원일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는 장면들을 보여줄 뿐이다. 전체적인 영화의 톤도 이러한 짐작을 따라가게 만든다. 빈민가의 분위기나 생활상을 손쉽게 녹아들고, 폭력을 행사하는 데 전혀 거침없는 그의 모습은 누아르 영화를 연상케 하는 명암이 강한 조명을 만나 그에 대한 추측 내지는 의심을 확신으로 변하게 한다.

따라서 그가 경찰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결말은 시청자 스스로가 자신은 다른 인종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상황이 그를 범죄자 혹은 거짓말쟁이로 지목할 때 시종일관 당당하고 침착한 제이콥의 눈빛과 표정은 그를 믿을지 말지, 이 시험을 통과할지 못하지를 가르는 결정적인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상상력도 부족하고 완성도가 뛰어나지도 않지만, 채드윅 보스먼이라는 배우의 연기력과 존재감만은 와칸다의 왕, 블랙 팬서가 남긴 'Message from the King(왕이 보낸 전언)'의 결말에 힘을 불어넣는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https://brunch.co.kr/@potter1113)에 게재한 글입니다.
영화리뷰 지옥에서 온 전언 넷플릭스 채드윅 보즈먼 흑백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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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읽는 하루, KinoDAY의 공간입니다. 서울대학교에서 종교학과 정치경제철학을 공부했고, 지금은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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