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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분업에 반대해 전공의들이 2000년 6월 20일 총사직하기로 선언한 가운데 6월 18일 오후 서울대병원 본관에 붙은 대자보를 한 환자가 살펴보고 있다.
 의약분업에 반대해 전공의들이 2000년 6월 20일 총사직하기로 선언한 가운데 6월 18일 오후 서울대병원 본관에 붙은 대자보를 한 환자가 살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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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20년 전이다. 한 병원 전공의로 일하던 친구를 카페에서 만났다. 우리는 '문민정부'가 들어선 1990년대 중반까지도, '민주주의'와 '노동해방'을 위해 의대에서 함께 학생운동을 한 사이였다. 내 표정이 냉소적인 것을 눈치챘는지, 친구는 열에 들떠서 말했다.

"난 전공의 파업 지지해."
  
당시 난 공중보건의사였다. 세상 근심 걱정과 오래 떨어져 있어서, 내가 상황을 잘 모르는 것일까? 난 충격을 받았고 혼란스러워졌다. 그 친구만이 아니었다. 학생운동을 함께 했던 선후배와 동기 대부분이 전공의 '파업'에 참여했다. 바로 2000년 '의약분업 사태'(의사와 약사의 업무를 분담하게 하는 제도. 의사는 진찰과 처방, 약사는 조제와 투약만을 하도록 한다) 때 일이었다.

당시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은 대한의사협회(아래 의협)와 성격이 크게 달랐다. 의협이 '의권수호'를 핵심 기치로 내세웠다면, 전공의들에게는 '의료개혁'이라는 대의가 있었다.

한 선배는 '전공의 비대위'에 들어가서 집회와 인쇄물 기획을 맡았다. 그는 의약분업 사태로 젊은 의사들이 의료개혁을 위해 나설 기회를 얻었다고 믿었다. 선배의 이글거리는 눈빛에서 사사로운 이익을 향한 탐욕은 조금도 느끼지 못했다.

당시 전공의들은  '수가를 올려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자', '행위별 수가제의 문제점 개선하자', '건강보험의 보장 범위를 넓히자', '왜곡된 의료전달체계를 바로잡자'며 의료개혁을 주장했다. '의약분업 반대'는 전공의들 주장의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했다.

그러나 2000년 '사상 초유의 의사 파업'인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을 국민은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그들은 20년 전 행동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전공의 무기한 집단 휴진을 계속 이어가기로 결정한 8월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대한전공의협의회 관계자가 정부의 의료정책에 반대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전공의 무기한 집단 휴진을 계속 이어가기로 결정한 8월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대한전공의협의회 관계자가 정부의 의료정책에 반대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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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행동은 옳지 않았다. 이유는 너무 간단하다. 의약분업이 얼마나 당연한 일인지 국민이 다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보면 기가 막힌다. 그 의약분업을 반대하겠다고 선배 의사들은 수개월 동안 휴진하고 진료거부를 했다. 전공의들이 외친 다른 요구들, 젊은 의사들이 열정적으로 꿈꾸었던 '의료개혁'의 가치는 묻혀버렸다. 어렵게 생각하면 오히려 진실을 지나치기 쉽다. 당연한 것을 반대하면서 말이 길면,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그럼 당시 전공의들의 행동은 성공했을까? 그렇지 않다. 20년 만에 전공의들이 다시 진료거부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한국 의료는 '절망적인' 상황이다. 의약분업 당시 전공의들이 의료개혁을 강조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국민과 여론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였다.

의료개혁은 한 전문가 집단의 힘만으로 이룰 수 없다. 의료 분야에는 수많은 전문가 집단이 있으며, 결정적으로 환자와 국민이 있다. 그런데 대한전공의협의회(아래 대전협)는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나 원격의료 등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인다'며 집단행동을 선언했다. 여론이 어정쩡했던 의약분업과 달리, 지금은 58%의 국민이 '의대 정원 확대'에 찬성한다. 반대는 24%뿐이다. 전공의들은 깨달았다. '의사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우리가 믿을 것은 자신뿐이다.'

안타깝게도 의사들은 20년 전 최초의 행동에서 거의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타인을 설득하고 지지를 얻는 방법 말이다. 대전협은 지난 7월 '우리가 공공이다'라는 릴레이 입장문을 발표했다. 또 한 방송에서 의협 성종호 정책이사는 강변했다.
 
공공의료라는 말 자체를 반대합니다. (중략) 대한민국의 모든 의료기관은 강제지정제로 다 지정돼 있거든요. 그러니까 환자를 보는 데 있어서 거부를 할 수도 없고, 국가의 강력한 규제를 지금 받는 상태입니다. 이것이 사실은 공공의료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노컷뉴스, 2020.7.24)

의사는 공중보건을 위해 중요한 일을 하는 소중한 존재라는 뜻이다. 그런데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지난 8월 10일 보건복지부 정책관이 '의사는 공공재'라고 발언하자, 의협은 발끈해서 들고 일어났기 때문이다. ('의사는 공공재라는 정부, 지켜만 보시겠습니까?' 의협신문, 2020.8.11)

또 대전협 박지현 회장은 말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한다는 이유로, 우리 삶이 통제받고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박지현 대전협 회장 "의료가 정치적 수단이 돼선 안 돼", 의사신문, 2020.6.15)

'공공'이란 '모두에게 속하는 것, 그래서 소중한 것'이다. 당연히 공공과 관련된 일은 특정 집단이 결정해서는 안 된다. 모두가 함께 결정해야 한다. 건강과 생명만큼 중요한 것이 또 어디 있겠나. 그런데 의사의 삶을 통제하지 말라니? 나는 묻고 싶어진다. '그래서 의사가 국민 모두에게 소중하다는 겁니까? 아니라는 겁니까?'

의사, 공공, 정부, 시장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반대하며 무기한 집단휴진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8월 31일 오후 서울 서초구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에서 전공의가 정부의 의료정책에 반대하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이날 이들은 공공의대 설립, 첩약 급여화, 의대 정원 확대, 비대면 진료 도입을 4대악 의료정책으로 규정하고 정부에 철회를 요구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반대하며 무기한 집단휴진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8월 31일 오후 서울 서초구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에서 전공의가 정부의 의료정책에 반대하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이날 이들은 공공의대 설립, 첩약 급여화, 의대 정원 확대, 비대면 진료 도입을 4대악 의료정책으로 규정하고 정부에 철회를 요구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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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의사는 공공재'라는 언명에 회의적이다. 한 지방 의원에 대진하러 갔을 때 일이다. 그 의원에는 커다란 '수액클리닉'이 있었다.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수십 가지 수액이 화려한 '메뉴판'에 적혀 있었다. 가격은 수만 원에서 수십만 원짜리도 있었다. 설명대로라면 수액만 맞아도 무병장수할 것 같았다. 그 원장님은 나에게 '수액을 환자에게 권하면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환자 대부분에게 그런 수액은 몇 시간이면 소변으로 나갈 물과 다름없다. 원장님이 그것을 모를 리 없다.

나는 감기 환자에게 거의 100% 항생제를 처방하는 원장님도 자주 만났다. 2016년 기준 우리나라 항생제 처방률은 OECD 평균(21.2DDD)보다 1.6배나 높다. 감기에 항생제가 필요 없다는 것을 모르는 의사는 없다. 그런데 왜 항생제를 처방할까? 환자를 다른 의사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다. 이번 의대 정원 사태의 발단이 된 '기피 과'나 의사 분포의 불균형 문제도 그렇다. 의사가 공공을 위해 행동했다면, 이런 문제는 애초에 발생하지 않았다.

사실 우리나라 의사들은 정치나 정권보다 더 강력한 힘으로 통제당하고 있다. 바로 시장이다. 여러 정부에서 그렇게 통제하려고 했지만, 의사들은 꿋꿋하게 불필요한 비급여 진료를 늘리고 농어촌과 '돈이 안 되는 과'를 피해 대도시에 몰렸다. 의협은 국민건강보험과 심사평가원이 의사의 양심적 진료를 옭아맨다고 늘 비판해 왔다. 의료기관 당연지정제가 선택의 자유를 박탈한다고도 주장했다. 의협의 주장을 쉽게 풀어 쓰면 이렇다.

'의료서비스 종류와 가격은 의사 마음대로 정해야 한다.'
'가난한 사람들 가는 병원 따로, 부자들 가는 병원 따로.'

진실은 때로는 너무 적나라해서 비참하다.

수가가 낮아서 과잉진료? 국민은 특권이라 부른다
   
 
8월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대학의원 본관 앞에서 정부의 의료정책에 반대하는 전공의들이 의사 가운을 탈의하고 있다.
 8월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대학의원 본관 앞에서 정부의 의료정책에 반대하는 전공의들이 의사 가운을 탈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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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의사들에게도 변명이 있다. 바로 수가다. '수가가 낮아서 과잉진료, 비급여 진료를 할 수밖에 없다', '수가가 낮아서 흉부외과나 산부인과는 피할 수밖에 없다' 등. 그런데 의사들에게 '전가의 보도'인 이 논리가 국민에게는 알다가도 모를 말이다. '그래서 의사들이 단체로 저소득계층이 되었다는 말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정확한 수치야 논란이 있지만, 의사들은 노동자들보다 몇 배 그 중 일부는 수 십배 더 번다.

그러니까 국민이 이해하기로는 이렇다. '정부에서 돈을 충분히 주지 않아서, 환자에게 더 많이 받았다.' 의사들은 일정한 소득을 유지하기 위해 알아서 길을 찾아왔다. 그런 능력을 국민은 특권이라고 부른다. 국민이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이 한 번도 자신의 특권을 내려놓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의대 정원을 늘리면 의사 수준이 떨어지고 의료비가 상승해서, 결국 국민에게 좋지 않다.' 의협과 대전협은 국민에게 호소한다. 그런데 호소의 방법이 집단휴진과 진료거부다. 이미 응급실을 찾아 헤매던 환자가 목숨을 잃었다. 코로나19가 다시 빠르게 번지고 있고, 사람들의 삶은 다시 위기에 빠졌다. 이런 상황에서 집단행동을 한다면, 그들은 대체할 수 없는 특권집단이라는 뜻이다. 의사들은 특권집단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을 하면서, '당신들을 위한 일'이라고 설득하고 있는 꼴이다. 국민은 어처구니가 없다.

전공의 후배들에게

'파업'을 감행하는 전공의들의 특권에서 '절박함'이 느껴진다. 그들도 진료거부가 최후의 카드라는 사실을 잘 알 것이다. 의사들의 주장에 귀 기울이고 지지하는 사회집단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특권은 있는데 사회적 영향력은 적은 역설이다. 나는 의사들이 자초했다고 믿는다. 아직도 많은 어르신 환자는 아들뻘 되는 나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며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의사들에게는 충분히 바꿀 힘이 있었다.

젊은 의사들이 명심할 일이 있다. 우리나라 국민은 수십 년 동안 특권과 싸워왔다. 그 싸움 끝에 대통령을 끌어내리기도 했다. 그리고 전공의들은 국민에게 지지를 호소할 만큼 아직 젊고 순수하며 열정이 넘친다. 나는 전공의 후배들이 모두에게 중요하고 소중한 존재이길 포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태그:#의사파업, #전공의 파업, #의대정원 확대, #의약분업 사태, #대한의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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