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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공의 총파업 이틀째인 27일 오전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로비에 의료진이 지나가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이날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을 거부하는 의미에서 코로나19 진료마저도 자원봉사 형태로 가져가기로 했다. 특히 27일에는 희망자에 한해 사직서를 제출하는 '제5차 젊은의사 단체행동'을 벌일 계획이다.
 전공의 총파업 이틀째인 27일 오전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로비에 의료진이 지나가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이날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을 거부하는 의미에서 코로나19 진료마저도 자원봉사 형태로 가져가기로 했다. 특히 27일에는 희망자에 한해 사직서를 제출하는 "제5차 젊은의사 단체행동"을 벌일 계획이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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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 의약분업에 반대하는 의사들이 전면 파업을 벌인 지 꼭 20년 만에 전공의의 절반 이상이 가운을 벗고 병원을 떠났다. 의대 재학생의 절반 정도가 휴학계를 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지난 20여 년 동안 동결되었던 의사의 정원을 10년 동안 4천 명 가량 늘리겠다는 정부의 정책이 이 사태의 발단이다.

20년 전의 의약분업과 지금의 의사 정원 확대는 모두 보건의료 정책과 관련된 쟁점이다. 국가적으로는 국민건강에 관한 문제이고 의사의 입장에서는 이해관계의 문제이며 누구나 잠재적 환자인 시민의 입장에서는 생명이 걸린 문제다. 더구나 코로나-19의 2차 대유행이 시작되어 언제보다 의사의 손길이 절실한 시점이다.

의사들의 입장은 무척 단호하다. 휴학계를 낸 의대생이 불이익을 받을 경우 교수들이 나서겠다는 성명이 있을 정도로 거의 모든 의사가 엄청 화가 난 상태다. 그들은 왜 이렇게 화가 났을까?

적정 의사 수가 어떻고 증가율이 어떻고 따지기 전에 먼저 그들의 감정 상태를 살피는 것이 문제 해결의 출발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의사가 될 학생과 함께 20년 이상 인문학을 공부해 온 나의 소신이고 주장이다. 나는 이 방침이 아픈 사람을 대하는 의사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배웠고 가르쳤다.

첫 만남에서 감정적으로 어긋나면 아무리 좋은 치료법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여러 차례 경험하기도 했다. 지금은 정부와 시민이 무척 화가 난 의사를 상대로 진단을 하고 처방을 내야 하는 상황이다. 이제부터는 의사 전체를 하나의 인격으로 여겨 문제를 풀어보자.

피해의식

의사들이 저렇게 화가 난 첫 번째 이유는 피해의식이다.

우리나라의 의사들은 근대적 면허가 도입된 이후 의료보험으로 정부가 정한 수가 이상을 청구할 수 없게 된 1977년까지 거의 아무런 통제도 없이 자유롭게 의업에 종사했다. 보험 수가는 관행의 절반도 되지 않았고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으니 불만이 쌓이는 건 당연한 이치였다.

하지만 당시 의사들은 어떤 저항도 하지 못했다. 10월 유신으로 전권을 장악한 권위주의 정부의 정책에 의사들이 반기를 든다는 건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보험의 적용 대상이 5%도 안 되었기 때문에,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환자를 통해 그 손실을 보전할 수도 있었다. 1989년 전 국민이 의료보험의 대상이 되었을 때 불만은 더욱 높아졌지만 정부와 정면으로 맞서 싸울 엄두를 내지는 못했다.

6월항쟁으로 대통령을 직선으로 뽑기는 했지만 여전히 군부 독재를 배경으로 한 정권의 정책이었고, 의사협회는 회원의 이익을 대변하기보다는 의사 회원과 정부를 중재하는 역할에 머물렀다.

전 국민 의료보험은 의사의 생계를 위협하는 수준의 충격이었을 것이다. 보험의 확대로 환자는 많이 늘어났지만 수가가 대폭 인하되는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에 띄는 저항은 없었고 의사들은 달라진 환경에 '적응'했다.

비보험 진료 항목들이 많이 개발되었고 보험 청구를 통해 더 많은 수익을 얻는 방법을 배웠다. 많은 환자를 봐야 수익을 낼 수 있으므로 3분 진료가 일반화되었고 약과 기기를 거래하는 과정에 금품이 오고가는 관행이 만들어졌다.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 떳떳하지 못하지만 자신들이 정부 정책의 피해자라는 비뚤어진 정체성이 그런 행위의 명분이 되었다.

2000년과 2020년의 파업은 의약분업이나 의사 정원을 둘러싼 논쟁이 아니라 이런 불합리한 관행 속에서 도덕적, 사회적, 경제적 자존감을 상실해 온 것에 대한 불만과 피해의식이 폭발한 것으로 보아야 해결의 단초를 찾을 수 있다.

엘리트주의
 
최대집 의협회장 기자회견 마치고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28일 오전 서울지방경찰청 앞에서 보건복지부의 업무개시명령 위반 전공의에 대한 고발과 관련해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청장과의 면담 등을 요청하고 있다..
▲ 최대집 의협회장 기자회견 마치고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28일 오전 서울지방경찰청 앞에서 보건복지부의 업무개시명령 위반 전공의에 대한 고발과 관련해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청장과의 면담 등을 요청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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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이 화가 많이 난 두 번째 이유는 그들의 엘리트주의다.

자신들이 가장 똑똑하고 우수한 인재라는 주관적이고 객관적이기도 한 사실 인식이 그들의 피해의식을 더욱 증폭시킨다. 이런 엘리트주의는 무의식에 가까워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의사의 진료를 받아본 환자라면 대부분 느낀다.

이 엘리트주의는 사회가 인정해 준 측면이 강하다. 지금도 의사는 의사 선생님(師)이다. 영어 닥터(Doctor)라는 말도 '가르치다'란 뜻의 말(docere)에서 온 것이다. 의사는 환자와의 관계에서 우월한 지위에 있을 수밖에 없으며 그런 불균등 관계가 치유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시험 성적이 최고 수준인 학생만이 의사가 될 수 있는 현실이 이런 우월 의식을 더욱 부추긴다.

문제는 특정 영역에서의 우수함과 상대적 우월성을 바로 '옳음'과 연결시키는 단순성이다. 나는 명시적으로 "의사가 편해야 환자도 편하다"라든가 "의사만이 의료의 주체여야 한다"는 논리로 의료 정책에 접근하는 의사를 여럿 만난 경험이 있다. 뛰어난 능력과 명분으로 정부와 대중을 설득하기보다는 우월한 지위를 지켜야 할 당연한 권리로 내세우는 의사도 드물지 않다.

이런 자세는 객관적 과학에 토대를 둔 의술로 이타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가로 의사에게 자율적 통제권을 부여한다는 20세기 프로페셔널리즘의 이념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결과인 것 같다. 민주적 의사결정이 아닌 전문가의 견해를 금과옥조로 여기는 편협함은 다른 분야에서도 흔한 일이긴 하다.

하지만 그런 이념은 서양에서 형성되어 우리에게 이식된 것일 뿐이다. 우리나라의 의사가 누리는 권리와 지위는 서양의 의사들처럼 스스로 싸우고 타협해 쟁취한 것이 아니다. 서양 의학을 공부한 소수의 의료 시술자들은 1913년 일제가 발표한 의사규칙에 의해 의사 '선생님'이 되었고 지금까지 그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다른 직종과의 경쟁이나 타협도 없었고 일방적으로 주어진 지위와 권리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2000년에 파업에 참여하고 그 논거를 제시한 영향력 있는 의사 중에는 의사의 권리는 하늘이 준 것(醫權神授說)이라고 주장한 사람이 있었을 정도다.

그들은 서양에서 형성된 의사의 정체성을 기준으로 주체를 인식하지만, 정작 그 정체성의 기초가 된 역사적 경험은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화가 난 것인지도 모른다. 서양에서 형성되어 세계의 표준이 된 의사라는 직업의 정체성이 한국이라는 특별한 역사적 경험과 어긋나면서 생긴 현상이라는 것이다.

위계적 조직 문화

의사들이 화가 난 세 번째 이유는 그들의 권위적이고 위계적인 조직 문화에 있다.

의학교육은 도제 교육이라고 말하는 의대 교수가 많다. 그들의 가르침을 받는 학생은 내심 불만을 가지면서도 그런 주장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의학이 축적된 경험이기만 했던 시절에는 그럴 수 있었지만, 과학적 설명과 객관적 증거 위에 세워진 현대 의학을 도제식으로 가르친다는 건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이런 조직 문화에서는 '다른' 견해와 주장이 자랄 수 없다. 학생들의 자유로운 성장 배경과 이러한 위계적 조직문화가 충돌하면서 불만이 축적되지만 그 불만을 해소할 내부 역량은 부족하다. 괴롭힘과 폭력 등 의료의 이념과 모순되는 행위들이 그치지 않는 것도 의료계가 민주적 의사소통의 역량을 키우지 못한 결과일 것이다.

의사 면허를 가진 자는 당연히 의사협회의 회원이 되는 의료법도 문제다. 애초에 이 제도는 정치권력이 직업 조직을 통제하기 쉽게 하려고 만든 것이지만, 지금은 거꾸로 협회가 회원을 통제하여 권력에 저항하는 도구가 된 것이다.

이 제도는 의사를 하나의 사회적 인격으로 여기도록 하며, 내부적으로 불만을 해소하지 못한 구성원들은 그 불만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음으로써 정체성을 지킨다. 극우 성향의 지도자에게는 이 불만이 자신의 정치적 열정을 불태울 최상의 연료가 된다.

필요한 건 피해와 투쟁의 서사가 아니다
 
"의사는 왜 거리로 나왔나" 문재인 정부의 공공의료 등 관련 정책에 반대하는 의사들의 집단휴진(파업)이 사흘째 계속되는 가운데, 28일 부산시청 광장에서 한 전공의가 1인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 "의사는 왜 거리로 나왔나" 문재인 정부의 공공의료 등 관련 정책에 반대하는 의사들의 집단휴진(파업)이 사흘째 계속되는 가운데, 28일 부산시청 광장에서 한 전공의가 1인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 김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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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의사협회(American Medical Association)는 군수산업 다음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로비단체지만, 전체의 절반도 안 되는 의사만이 회원으로 가입된 임의 조직이다. 미국에는 이익의 수호를 목적으로 하는 의사 노동조합(Union of American Physicians and Dentists)도 있고 의료의 고귀한 이념을 지키려는 의사 단체(American College of Physicians)도 있다. 프랑스에는 대여섯 개의 의사 단체가 있으며 매년 수가 협상에 이 단체가 모두 참여한다고 한다.

얼핏 보면 혼란스러울 수 있는 다양성이 오히려 역동적 균형의 조건일 수 있다. 모든 의사가 하나의 조직에 묶여 있는 일본과 한국은 무척 예외적인 경우에 속한다. 그리고 그런 획일적 조직 문화가 현 사태의 원인 중 일부다.

화는 화를 일으킨 원인을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때 해소될 수 있다. 화가 잔뜩 난 사람을 논리적으로 설득하기는 어려우나 화가 난 이유를 듣고 다양한 맥락을 살피다 보면 자연스레 해결책을 찾을 수도 있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의사가 화가 난 이유 중에는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도 있지만 그 모순을 내면화해 스스로 그 화의 원인이 된 측면도 있다. 현 사태의 모든 책임을 정부에 돌려 스스로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태도는 옳지도 않고 설득력도 없다. 의사는 잘못된 의료제도의 피해자일 수도 있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아픈 사람을 돕는 봉사자이며 함께 공동체를 꾸려나가야 할 민주 시민이기 때문이다.

지금 의사에게 필요한 것은 피해와 투쟁의 서사가 아니라 힘을 합쳐 전대미문의 건강 문제를 함께 해결해 나가는 참여와 연대의 서사가 아니겠는가?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강신익 부산대 교수(치의학전문대학원 의료인문학교실)가 자신의 SNS에 쓴 글로, 강신익 교수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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