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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혼자 산 지 벌써 십 년이 훌쩍 넘었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대부분 나를 얼마간 짠하게 쳐다본다. 뜬금없이 내 손목을 잡아 쥐고, 왜 이렇게 삐쩍 말랐느냐고, 밥은 해 먹고 다니는 거냐고 다그치듯 묻는 착한 사람들에게 나는 뭐라 대답을 하기가 영 곤란하다.

솔직하게, 요리에는 흥미도 재주도 없으므로 삼시 세끼 꼬박꼬박 잘 사 먹고 있다고 대답하면 틀림없이 혀를 쯧쯧 차면서 사 먹는 밥은 살로도 안 간다는 등의 잔소리가 쏟아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나 혼자서도 십수 년째 잘 먹고 잘 살고 있음을 힘겹게 증명해낸다고 해도 마지막 관문처럼 나를 기다리고 있는 질문이 하나 더 있다.

"혼자 살면 외롭지 않아?"

혼자 사는 사람은 당연히 외로울 것이라, 생각하는 당신에게 나는 오히려 묻고 싶다. 둘이 살면 정말 안 외롭나? 그럼 셋이면? 곁에 있는 그 사람 때문에 날마다 행복해서 숨만 쉬어도 흐뭇한가?

누구와 함께 살든 아니든 사람은 분명 외로울 때가 있다. 간절하게 혼자 있고 싶은 순간이 있는가 하면, 혹은 처절하게 누군가 옆에 있어 주길 바라는 때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니 촌스럽게 그런 것 좀 묻지 말자. 그리고 내가 외롭다 한들 뾰족한 수도 없지 않나? 기껏해야, 그러니까 결혼하란 소리밖에 안 할 거면서 뭘.

사실 나는 워낙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성격인 데다가 혼자서도 사부작사부작 잘 노는 편이라 꼭 누군가가 옆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물론, 나도 사람인지라 흔들릴 때는 있다. 결혼 말고, 반려동물에 관한 얘기다.

나는 동물을 무척 좋아한다. 특히 길을 걷다가 주인과 함께 산책 중인 개를 발견하면 심장이 쿵쿵 뛰면서 나도 모르게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혹 주인이 싫어할까 싶어 아는 척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느냐고 괜히 입술만 씰룩이면서 지나가곤 하지만... 아쉬운 마음에 자꾸만 뒤를 돌아본다.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오직 내가 무사히 돌아왔다는 사실만으로 기뻐서 힘차게 꼬리를 휘둘러대는 귀여운 존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나는 오랜 고민 끝에 반려동물 키우는 것을 포기했다. 혼자 사는 내가 출근하고 나면 좁은 방에서 내가 오기만을 하루종일 기다리고 있을 그 작은 생명체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피차 못 할 짓이다. 그래서 나는 반려동물 대신 '반려식물'을 키우기로 결심했다.

비혼과 반려식물
 
오자마자 좋아서 찍은 사진이네요. 지금은 잎은 솎아주고 화분은 큰 것으로 갈았어요.
▲ 내 첫번째 반려식물 오자마자 좋아서 찍은 사진이네요. 지금은 잎은 솎아주고 화분은 큰 것으로 갈았어요.
ⓒ 조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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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나는 고무나무 화분을 하나 샀다. 사실 처음에는 잘 키울 자신이 없었다. 자타공인 '똥손'인 터라 뭐든 내 손을 탔다 하면 망가지고 깨지고 부서지는 게 다반사였던 것이다. 그런데 내 반려식물은 고맙게도, 때가 되면 물을 주고 이따금 볕 좋은 날엔 창문을 활짝 열고 창틀에 올려 놓는 가벼운 수고만으로도 무럭무럭 잘 자라났다. 그래서 욕심이 생겼다.

나는 내 두 번째 반려식물로 '오렌지레몬 나무'를 골랐다. 이름 그대로 오렌지와 레몬을 교배한 품종이라 꽃이 피면 집안에 상큼한 향기가 진동한다는 소개 글에 마음이 끌린 탓이다. 게다가 잘만 키우면 곧 열매가 달리고, 그것으로 청을 담그거나 잼을 만들 수도 있다니 금상첨화가 따로 없었다.

나는 녀석을 보자마자 첫눈에 반했다. 그래서 틈만 나면 그 반들반들한 초록빛 이파리에 코를 박고 킁킁거리면서, 열매가 달리면 동네방네 내 새끼 좀 보라고 자랑해야지, 마음을 먹곤 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의 인연은 그리 길지 못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나의 '오렌지레몬 나무'는 사흘 전, 두 달간의 짧은 생을 마치고 결국 사망선고를 받았다. 녀석의 죽음 앞에서 나는 망연자실, 입맛마저 잃었다. 계속 머릿속엔 같은 질문이 맴돈다. 도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사실 낌새는 보름 전부터 있었다. 무슨 조화인 건지 자고 일어나면 하루가 다르게 시들시들해지더니, 급기야 녀석은 이파리 가장자리부터 거무스름하게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덩달아 내 속도 같이 까맣게 타들어 갔지만 달리 방도가 없었다.

그 유명한 오 헨리의 소설 '마지막 잎새' 속 주인공처럼 녀석의 이파리가 하나둘 떨어질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추위에 약하다는 주의 사항을 염두에 두고 온 집안의 문을 꽁꽁 닫고 이 더위에 선풍기조차 틀지 않고 며칠을 버텼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녀석은 보름을 시름시름 앓다가 사흘 전 하나 남았던 마지막 이파리마저 떨구고 장렬하게 숨을 거두었다. 물론 내 잘못이다. 화분 하나 제대로 키워내지 못하는 주제라니, 문득 나 자신한테 화가 치밀어 올랐다.

레몬 나무 계열은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서 키워야 한다는 사실을 알 게 된 것은 녀석이 죽어버린 그 이후다. 온도에만 신경 쓰느라 온종일 바람 한 점 안 통하게 창문을 닫아두었던 것이 아무래도 실수였나보다. 문득, 사람이든 식물이든 어떤 존재를 책임지고 사랑하는 데에는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물에게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다

내가 상대에게 줄 수 있는 게 마음뿐이라는 것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치사한 변명일지도 모르겠다. 사랑에는 상대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꼼꼼하게 기억하고, 살뜰히 살피고 아껴주어야 한다. 나는 그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마음만으로는 아무것도 못 한다. 그 사람은 나를 편하게 해주어서 좋다는 그 달콤한 말을 하기에 앞서, 나를 편하게 해주기 위해 상대가 어떤 불편함과 성가심을 견뎌내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이다. 그것이 사랑하는 방법이다. 나는 사랑하는 방법을 몰라서 나의 두 번째 반려식물을 그렇게 떠나보냈다.

이제 내 유일한 반려식물 고무나무의 이파리를 쓰다듬으면서 "너는 아프면 안 돼" 하고 거푸 중얼거렸다. 그런데 가만 보니 녀석의 집이 좀 좁은 것 같다. 화분을 바꿔줄 때가 된 것 같아서 인터넷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화분 갈이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 묻자 반려식물 키우기 고수가 너도나도 친절한 대답을 늘어놓는다. 한 수 배우는 마음으로 차근차근 필요한 내용을 옮겨 적었다. 이 녀석과는 오래오래 함께하고 싶어서다. 그러려면 나는 아무래도 공부가 좀 더 필요할 것 같다. 사랑은 마음만으로 되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태그:#반려식물 키우기, #고무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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