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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웅 광복회장의 제75주년 광복절 기념사에 대해, 아니 원희룡 제주도지사의 제75주년 광복절 경축사에 대해 한마디 하고자 한다.

지난 8월 15일 제주 조천체육관에서 열린 광복절 경축식에서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 벌어졌다. 광복회 제주지부장이 대독한 김원웅 광복회장의 기념사에 이어, 경축사를 하러 단상에 오른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상기된 얼굴로 말을 시작했다.

"경축사에 앞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며 운을 뗀 원 지사는, 결국 준비한 경축사 대신 광복회장의 기념사에 대한 자기 생각만을 이야기하고 단상을 내려왔다. 일부 언론은 원 지사 발언을 '작심' 비판이라 보도하기도 했다. 

굳은 얼굴로 말 꺼낸 원 지사... 그의 발언도 '정치적'이었다
  
75주년 광복절 제주 경축식 축사하는 원희룡 제주도지사
 75주년 광복절 제주 경축식 축사하는 원희룡 제주도지사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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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지사는 미리 준비한 연설이 아님에도 마치 준비한 것처럼 '경축사' 분량의 말을 했다. 더욱 정확한 상황 파악을 위해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1시간 15분 분량의 경축식 동영상을 찬찬히 살펴봤다.

원 지사는 단상에서 내내 화난 얼굴과 경직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인지 원 지사의 발언 이후 이어진 제주 출신 소프라노의 축하 공연은 물론, 만세삼창까지 분위기가 죽고 말았다. 

독립유공자들을 모셔놓고 치르는 광복절 경축사에서 지방자치단체장이 '경축사'라는 이름으로 할 수 있는 말의 도를 넘었다. 원 지사는 광복절 경축식은 "특정 정치 견해의 집회가 아니다"라고 했지만 원 지사 본인이 단상에서 한 말로 인해 이날 행사가 '정치적'이 되고 말았다. 경축식을 마치고 나서 기자들에게 광복회장의 기념사에 대해 '유감'의 뜻을 밝히는 방법을 선택할 수는 없었을까? 도지사이자 3선 국회의원의 전력을 가진 그에게 그 정도 정무 감각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한 요구일까? 

아니면 원 지사가 격앙된 어조로 비판할 정도로 이날 광복회장의 기념사에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광복회장의 기념사에도 감정적 표현이 실린 단어들이 섞여 있기는 하다. '빌붙어서'라는 표현 등이 솔직히 귀에 거슬린다. 다른 표현을 썼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원 지사의 말처럼 이날 광복회장의 기념사가 "우리 국민 대다수와 제주도민들이 결코 동의할 수 없는 매우 치우친 역사관이 들어가 있는 이야기"였는지는 의문이다.

광복회장 기념사, 중점은 '친일인사'들의 묘지 이장 문제... 원 지사는 몰랐나
  
김원웅 광복회장이 15일 제75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김원웅 광복회장이 15일 제75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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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김원웅 광복회장이 이번 기념사에 가장 비중을 두고 지적한 것은 서울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친일 반민족 인사 69명"의 묘지 이장 문제였다. 광복회장은 "지난 3월 국회의원 후보 1109명 전원에게 국립묘지에서 친일 반민족 인사의 묘를 이장할 것인지, 만약 이장을 안 할 경우, 묘지에 친일행적비를 세우는 '국립묘지법 개정'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는 질문"을 했고 "지역구 당선자 총 253명 중, 3분의 2가 넘는 190명이 찬성"했으며, "금년 가을 정기국회에서 국립묘지법이 개정"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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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광복회장이 기념사에서 한 말은, 원 지사가 염려한 것처럼 "이편저편을 나눠서 하나만이 옳고 나머지는 모두 단죄받아야 한다는 그러한 시각으로 역사를 조각내고 국민을 다시 편 가르기"한 것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원 지사는 "3년의 해방 정국을 거쳐서 김일성 공산 군대가 대한민국을 공산화하려고 왔을 때, 목숨 걸고 나라를 지켰던 군인과 국민들"이 있었고 "그분들 중에는 일본 군대에 복무했던 분들도 있었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광복회장이 국립묘지법 개정을 통해 이장을 논의해야 한다고 한 묘지는, 6.25 전쟁에서 산화한 무명 용사들의 묘지가 아니다.

21대 국회 개원 이후 발의된 국립묘지법(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총 4건이다(8월 15일 기준). 이 4건 모두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친일반민족행위자'로 확정된 사람이 국립묘지에 안장된 경우 이장할 수 있는 근거 규정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위 특별법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분류될 수 있는 범위를 "일본제국주의 군대의 소위(少尉) 이상의 장교로서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로 한정하고 있다. 원 지사가 염려하고 있는 것처럼 6.25 전쟁에서 목숨 걸고 나라를 지켰던 군인들 묘지를, 단지 일본군에 복무했다는 이유로 이장하자는 법이 결코 아닌 것이다.

원 지사는 "한국전쟁에서 나라를 지킨 그 공을 우리가 보면서 역사 앞에서 공과 과를 겸허하게 보자"고 했다. 이 또한 맞는 말이다. 현재 국회에 제출된 국립묘지법 개정안은 6.25 전쟁에서 세운 '공'에 비해 친일반민족행위자로서의 '과'가 너무나 큰 인사들의 묘지 이장을 검토하기 위한 것이다. 원 지사는 전직 법률가인 만큼, 조금만 관심을 가졌다면 이런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유야 어찌 됐든 원 지사야말로 김원웅 광복회장의 기념사를 '편향된' 시각으로 바라보는 착각과 오류를 범한 셈이 아닐까. 

원희룡의 언급도 옳다, 그러나

물론 원희룡 지사의 말처럼 "태어나보니 일본 식민지였고, 거기에서 일본 식민지의 신민으로 살아가면서 선택할 수 없는 인생을 살았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비록 모두가 독립운동에 나서진 못했지만, 식민지 백성으로 살았다는 것이 죄가 아니다"라는 그의 말도 백번 옳다. 그러나 해방 후 우리 역사가 친일 반민족 세력에 대한 청산을 온전히 이뤄내지 못함으로 인해 "우리 젊은이들 앞에 펼쳐진 광활한 미래로의 길목을 가로막았다"는 광복회장의 기념사도 반드시 되새겨야 할 역사적 명제라고 본다.

원희룡 지사의 이번 발언은 바로 그가 지적한 "일본 식민지의 신민으로 살아가면서 선택할 수 없는 인생을 살았던 많은 사람"과 그 후손인 21세기 대한민국 시민들의 건전한 역사의식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원 지사는 또 말했다. 그는 "75년 과거의 역사의 아픔을 우리가 서로 보듬고 현재의 갈등을 통합하고 미래를 위해서 새로운 활력을 내야 될 광복절이 되기를 진심으로 열망"한다고. 원 지사의 위와 같이 열망이 진심이라면, 이번 발언에 대해 독립유공자들과 국민에게 정중한 사과를 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 기사를 쓴 좌세준 변호사는 대전충남인권연대 회원입니다. 이 기사는 대전충남인권연대 뉴스레터에도 실립니다.


태그:#원희룡, #김원웅, #광복절, #국립묘지 , #친일반민족인사의 묘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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