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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국가보안법이 제정된 지 72년이 되는 해입니다. 보이지 않는 테두리로 말과 신념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보안법을, 이제는 역사 속에 존재하는 법으로 만들기 위한 행동이 필요한 때입니다.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프로젝트를 통해 국가보안법의 피해를 겪었던 이들의 목소리를 드러내고, 국가보안법의 과거, 현재를 짚어보며 사회적으로 환기하고자 합니다. 일상 속의 국가보안법, 나와 국가보안법을 연결하는 경험과 문제의식을 사회적으로 알리는 연속 기고를 진행합니다.[기자말]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잘 있다

변호사로서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법원 실무수습을 하면서 구속적부심사를 참관한 적이 있다. 검사 두 명이 여러 개의 여행가방을 가득 채워서 기록을 가져왔고, 검사와 변호인은 각 한 시간 남짓 구두변론을 하는 등 매우 이례적으로 장시간 격정적인 심리가 이루어졌다. 판사는 각 구두변론을 듣더니 '양측 모두 매우 전형적인 주장이다'라고 말했다.

도대체 얼마나 중대한 범죄자이길래 싶었으나, 범죄사실은 위와 같은 심리가 무색할 정도로 단순했다. 한 평범한 회사원이 인터넷 홈페이지에 노동운동 혹은 사회주의에 관한 책 몇 권을 스캔해서 올렸다는 것이었다. 정상적으로 출판된 책들이 대부분이었으나, 저작권법이 아닌 국가보안법 위반만이 문제됐다. 그리고 피고인은 구속됐다. 인터넷에 어떠한 내용의 책을 올렸다는 이유로, 국가를 위협하는 중범죄자가 됐다.

이것이 내가 국가보안법이 아직까지도 살아있는 법임을 체감했던 순간이었다.

1991년 5월 31일 개정된 국가보안법 제7조(찬양·고무 등) 제1항은 이렇다.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국가변란을 선전·선동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이 조항을 위반한 죄로 피고인은 구속된 것이다.

어떠한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죄가 되었다고, 수상한 한때에 대해 사람들은 얘기하곤 한다. 이제는 그러한 수상한 시절이 끝났고, 이제는 누구나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한, 이는 거짓이다.

당신은 여전히 무엇을 읽고 쓰는지를 검열하는 것이 좋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북한이나 사회주의, 공산주의에 대해 말을 하는 것도 조심하는 것이 좋다. 어쩌면 누군가를 '종북'이나 '빨갱이'라고 칭하면서, 나는 다른 편에 있음을 명확히 해두는게 안전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는다면, 국가는 언제든지 당신이 인터넷에 올린 글, 책장에 꽂혀있는 책, 벽에 걸려있는 그림을 이유로 당신을 구속할 수 있다. 당신의 말이나 행동이 북한이 내세우는 이념과 일치했다면, 당신은 북한에 동조하였다는 이유로 당신의 행동은 얼마든지 국가보안법 위반이 될 수도 있다.

국가보안법의 핵심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13일 당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16차 정치국 회의를 진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4일 보도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13일 당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16차 정치국 회의를 진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4일 보도했다.
ⓒ 연합뉴스=조선중앙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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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이라고 하면 누구나 '북한'을 떠올린다. '빨갱이'라거나 '종북'이라거나, 예컨대 그렇게 일컬어지는 것들을 위한 법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놀랍게도 국가보안법에는 '북한'이라는 단어, 혹은 북한을 직접적으로 지칭하는 단어가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물론 그럼에도 압도적으로 이 법은 북한에 대해서 해석되고 적용된다.

'북한'을 직접적으로 지칭하는 대신 국가보안법은 '반국가단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국가보안법 제2조는 반국가단체에 대해서 정의하는데 '정부를 참칭하거나 국가를 변란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국내외의 결사 또는 집단으로서 지휘통솔체제를 갖춘 단체'라고 한다. 그리고 나머지 조항에서는 이러한 '반국가단체'에 동조하거나 찬양, 선전하는 등의 행위에 대해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게 하고 있으므로, '반국가단체'의 의미를 규정하는 것이 국가보안법의 핵심이 된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참칭(僭稱)'이란 '분수에 넘치는 칭호를 스스로 이르는 것'이고, '변란(變亂)'이란 '사변이 일어나 세상이 어지러움'이라고 정의된다. 그렇다면 '분수에 넘치게 정부라는 칭호를 스스로 사용하면' 모두 반국가단체가 되는걸까. 1991년 북한은 남한과 동시에 유엔 회원국이 되었고, 국제사회는 한반도에 설립된 북한을 남한과 대등한 정부로 인정하고 있다. 그 이전에 우리나라는 유엔 상임이사국인 소련의 거부로 회원국 가입이 번번이 부결되다가, 이때 처음으로 '동시가입'이라는 방법으로 승인이 된 것이다. 국제사회가 북한을 국가로 인정했음에도 그것이 '참칭'일까.

그러나 북한이 반국가단체인지 여부에 관한 우리 법원의 해석은 조금 낯설다.
 
북한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대화와 협력의 동반자임과 동시에 적화통일노선을 고수하면서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고자 획책하는 반국가단체라는 성격도 아울러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하고, 남북정상회담의 성사 등으로 북한의 반국가단체성이 소멸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대법원 2002. 5. 31. 선고 2002도1006 판결, 2003. 1. 24. 선고 2002도2306 판결, 2003. 4. 8. 선고 2002도7281 판결 등 참조).
 
이는 소위 '북한의 이중지위론'이라고 불린다. 법률에 따라 북한의 성격이 통일적으로 해석되지 않는 것에 대한 법원의 답변이다. 현실적으로 남북교류협력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보안법을 실효시키지 않기 위한 해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법적지위가 이중적이라면, 법원이 그때 그때 어느 쪽으로 해석할 것인지 예상하는 것이 가능할까.

예컨대 어떤 사람이 북한의 가요를 들을 때 과연 북한은 '반국가단체'일까 '동반자'일까. 판결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아무도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가급적 그러한 위험은 감수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다. 법원이 '북한'의 법적지위를 이중적으로 해석하는 한, 이는 우리 법체계를 조화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국가보안법의 위하력만을 더욱 강력하게 할 뿐이다. 이러한 모순적인 법률을 유지하기 위해 법원의 설명은 때론 매우 길고 복잡해진다. 이는 북한이 '반국가단체'라는 해석이 우리 법체계와 계속 충돌하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때론 우리는 단순한 답을 외면한다.

국가보안법이 없으면 무엇이 달라질까

어린시절을 미국에서 보내면서 내가 '한국'에서 왔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참 많은 힘을 들였어야 했다. 당시 미국인들이 알고 있는 것은 '노스 코리아'와 '김정일'뿐이었으므로, 내가 온 국가는 그곳이 아니라는 점을 매번 해명하듯 설명해야 했다. 미국에 있던 다른 한국인들도 매번 이런 상황을 맞닥뜨리면 강한 적대감을 표시하면서 '사우스 코리아'라고 화를 내는 일이 빈번했는데, 열 살 남짓한 꼬마였던 내가 왜 '노스 코리아'라는 단어에 그렇게 반사적으로 반감을 표시했었는지 지금도 영문을 모를 일이다.

그 이후로 벌써 20년 이상이 지났다. 언젠가 국가보안법이 사라진 이후의 세상에서는, 열 살 남짓 꼬마가 '북한'이라는 단어에 불필요한 불편함이나 당혹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절대 갈 수도 없는 미지의 '적의 나라'를 어린 마음속에 품고 살지 않기를 바래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전다운님은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입니다.

이 기고는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보내기 위한 전시회의 일환으로 진행합니다. 전시회는 2020년 8월 25일(화)~9월 26일(토), 장소는 민주인권기념관(구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진행할 예정이며, 입장료는 무료입니다.

자세한 정보는 아래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NSA.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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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국가보안법,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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