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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츠하시 고이치로 조선총독부 경무국장이 1939년 12월 22일~1940년 2월 14일 조선총독부와 방응모 <조선일보> 사장을 만남을 기록한 극비문서. '언문신문통제에 관한 건'이란 제목의 이 문서는 현재 민족문제연구소 주최 '일제 부역언론의 민낯' 전시회에 전시돼 있다.
 미츠하시 고이치로 조선총독부 경무국장이 1939년 12월 22일~1940년 2월 14일 조선총독부와 방응모 <조선일보> 사장을 만남을 기록한 극비문서. "언문신문통제에 관한 건"이란 제목의 이 문서는 현재 민족문제연구소 주최 "일제 부역언론의 민낯" 전시회에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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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츠하시 고이치로 조선총독부 경무국장은 방응모 <조선일보> 사장을 만난 1939년 12월 22일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당국의 통제방침을 설명하고 이에 응하면 그 희망에 대해서도 상당한 고려를 할 수 있다고 하자 그 취지에 크게 움직여 당국의 방침에 따라 순응하겠다고 답했다."

이 기록은 미츠하시 경무국장이 오노 로쿠이치로 정무총감에게 1940년 2월 15일 보고한 극비문서 '언문신문통제에 관한 건'에 담겨 있는 내용이다. 문서는 1940년 2월 14일까지 총 열 차례 조선총독부와 방 사장의 만남을 다루고 있다. 

1939~1940년이면 이미 <조선일보> <동아일보> 지면에 친일, 침략전쟁 미화 등의 내용이 담긴 이후이다. 이 문서에 담긴 내용은 일제에 의해 강제로 폐간됐다는 그동안 <조선일보>의 주장과는 사뭇 다르다. 문서에는 방응모가 써서 조선총독부에 제출한 각서와 폐간계도 담겨 있다.

한편 이 문서 중 <동아일보>와 관련된 내용에 따르면, 이때까지 <동아일보>는 명시적으로 폐간을 거부하고 있었다. 미츠하시 경무국장은 1940년 2월 6일 방 사장을 만난 자리를 "(방 사장이) 폐간에는 찬성하지만 끝까지 <동아일보>와 동시 폐간을 고집함"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두 신문은 1940년 8월 11일 함께 폐간된다. 

이 문서는 2012년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이 공개한 '조선총독부 비밀문서 해제집'에 담겨 있다. 현재 민족문제연구소가 주최한 '일제 부역언론의 민낯' 기획전(식민지역사박물관 1층 돌모루홀)에 전시돼 있다. 

김승은 민족문제연구소 학예실장은 "해당 문서는 기존 연구자들에 의해 발굴돼 일부 소개됐지만 대중에 전문이 공개되는 건 처음"이라며 "폐간의 상황에서도 대가로 청산비용까지 챙기며 총독부와 밀약을 나누는 방응모의 모습이 나와 있다.

아래는 '언문신문통제에 관한 건' 중 <조선일보>와 관련된 내용의 전문이다. 

방응모의 6가지 요청

극비
 
1940년 2월 15일 경무국장 (미츠하시 고이치로)
정무총감 (오노 로쿠이치로) 전(殿, 귀하 - 기자 주)
 
언문신문통제에 관한 건
 
1. 조선일보
 
1) 1939년 12월 22일
 
조선일보 사장 방응모를 소관 관사로 불러 경영 상황을 청취하니 "신문 사업을 경영한 지 6여 년에 그 실비가 많아서 곤란함에 빠져 오히려 교육 기타 사회사업 등의 문화 사업으로 전환하기를 희망한다"는 뜻을 말하므로,
 
당국의 통제방침을 설명하고 이에 응하면 그 희망에 대해서도 상당한 고려를 할 수 있다고 하자 그 취지에 크게 움직여 당국의 방침에 따라 순응하겠다고 답했으며,
 
단지 사원의 구제를 충분히 고려해 줄 것과 건물도 경우에 따라서는 양도에 차질이 없게 해달라는 뜻을 말하고 가까운 시일 내에 숙고 후 다시 구체적 협의에 들어갈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2) 1939년 12월 24일
 
22일 소관의 합의에 기초해 도서과장은 사장 방응모와 만나 폐간에 따른 구체적 조건에 대해 협의하고 사장은 다음과 같은 희망을 말하였다.
 
(1) 동아일보도 함께 처분할 것
(2) 본사 발행의 3종(<조광> <여성> <소년>)의 출판물은 계속 간행할 수 있게 할 것
(3) 폐간 당일까지 본 협의에 응한 사실을 외부에 극비에 부칠 것
(4) 종업원의 취직·전직의 알선 및 수당 지급에 유감이 없게 할 것
(5) 건물을 포괄하여 약 100만 원 정도로 양도하는 데 차질이 없게 할 것
(6) 장래 교육 또는 사회사업 방면에 활동하고자 희망함에 대해 원조해 줄 것
 
3) 1939년 12월 28일
 
도서과장은 방응모와 회견하고 '별지 1호 각서' 및 '별지 2호 폐간계'를 제시하여 날인 후 제출한다는 뜻을 전하였다.
 
4) 1939년 12월 29일
 
소관은 보안과장(후쿠가와 도서과장은 28일부로 보안과장으로 전임)과 함께 방응모와 회견했지만 건물 가액에 대한 합의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전의 각서와 폐간계도 제출되지 않아 다시 신년에 들어 협의할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5) 1940년 1월 12일
 
보안과장이 방응모와 회견한 결과 건물 등 인수에 관한 협의를 중단하고 폐간에 대해 사원 구제금으로 20만 원을 교부할 것을 약속하며 협의의 성립을 보게 되었다.
 
6) 1940년 1월 13일
 
방응모는 '별지 3호 각서'에 조인하고 '별지 4호 폐간계'를 제출하였다.
 
 1940년 1월 13일 방응모 당시 <조선일보> 사장이 미나미 지로 조선총독에게 제출한 폐간계 가안. 미츠하시 고이치로 조선총독부 경무국장이 오노 로쿠이치로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에게 1940년 2월 15일에 보낸 극비문서 '언문신문통제에 관한 건'에 담겨 있는 내용이다. 왼쪽은 사본이고 오른쪽은 번역본이다.
 1940년 1월 13일 방응모 당시 <조선일보> 사장이 미나미 지로 조선총독에게 제출한 폐간계 가안. 미츠하시 고이치로 조선총독부 경무국장이 오노 로쿠이치로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에게 1940년 2월 15일에 보낸 극비문서 "언문신문통제에 관한 건"에 담겨 있는 내용이다. 왼쪽은 사본이고 오른쪽은 번역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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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1940년 1월 29일
 
방응모가 중역 회의 소집 사정도 있고 정식으로 폐간 방법의 형식을 취하고 싶다는 뜻을 신청하여 소관 방에 방응모를 부르니,
 
방응모는 자신으로서는 국체에 순응하려는 뜻이 있지만 체면상 동아일보와 동시 폐간을 바란다고 말하고, 2월 1일 중역 회의를 소집해 정식 결정한 후 회답하겠다고 약속하고 물러갔다.
 
8) 1940년 2월 2일
 
방응모 사장, 보안과장, 도서과장과 회견하고 계속 진행 중인 중역 회의의 의향으로 장래 새롭게 발간될 경제신문을 조선일보가 경영할 수 있게 해주고, 또한 폐간을 3월 31일까지 연기해 줄 것을 말하였다.
 
이에 대해 전자는 원칙으로서 두 신문사와 관계없이 제3자에게 경영하도록 고려하고 있지만 사실상 기계·사원 등의 관계도 있으므로 하나의 투자자로서 참가할 수 있게 하고,
 
또 후자는 경제적으로 오히려 불리할 수 있음을 설명하고 다시 한 번 중역 회의에서 물어보도록 설득하였다.
 
9) 1940년 2월 6일
 
방응모 사장이 청사로 와서 보안과장, 도서과장과 회견하고 중역 회의의 결정으로서 폐간에는 찬성하지만 끝까지 동아일보와 동시 폐간을 고집함으로써,
 
이에 대해서 그렇게 하면 여러 가지 특전을 줄 수 없고 불리한 까닭을 설명하여 제고 후 회답하도록 지시하였다.
 
10) 1940년 2월 14일
 
방응모 사장이 국장실로 소관을 방문해 폐간에는 이의가 없지만 모든 이해관계를 무시하고 동아일보와 같은 날짜로 폐간시켜 달라는 뜻을 정식으로 회답함에 따라서 소관이 다음과 같은 점을 특히 명령하게 되었다.
 
(1) 당국의 방침은 장래에도 불변하며 반드시 단행할 것이다.
(2) 세간 일반에서 점차 협의 내용을 두루 알게 되므로 금일까지와 같은 비밀 엄수의 협정은 지키기 어렵다. 즉 당국은 사태의 추이에 따라 방침을 성명하거나 혹은 경과를 발표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로 인해 부득이 사업에 불이익을 가져올 수도 있다.
(3) 동아일보와 동시로 하게 되면 사원 구제, 기타의 점에서 받을 수 있는 이익은 당연히 감소될 것을 각오해야 한다.
(4) 폐간 기일에 대해서는 별도로 이를 협의한다.
 
[별지 1호]
 
각서
 
1. 조선일보는 국책적 견지에서 조선총독부의 통제방침에 따라 1940년 1월 ○일을 끝으로 일간신문 조선일보의 발행을 폐지할 것이며 미리 폐간계를 제출함
1. 전향의 대가로 조선일보 발행을 위해 현재 사용 중인 유체재산(토지·건물·기계·잡기·기타) 및 발행권을 매수하는 것으로 하고 매일신보사로 하여금 금 100만 원을 지불케 하는 것으로 함
1. 잡지 <조광> <여성> <소년>의 3종은 계속 발행케 함
1. 동아일보에 대해서는 조선일보 폐간 때까지 그 사이에 정리에 대한 교섭을 개시하는 것으로 함
1. 종업원에 대해서는 조선일보사에서 퇴직 및 해산 수당을 지급하는 외에 전직 희망자에 대해서는 당국에서도 할 수 있는 한 알선을 위해 유감이 없게 함
 
이것은 1939년 12월 23일 경무국장 관사 기타에 있었던 절충안에 따라 협정한 바이지만 후일을 위해 본서를 작성한 것임
 
1939년 12월 23일
 
조선일보 사장 방응모
총독부 경무국장 미츠하시 고이치로
 
[별지 2호]
 
폐간계
 
1920년 1월 6일부로 인가하신 조선일보는 이번 사정에 의해 폐간하고자 이를 제출함
 
1940년 2월 11일
 
경성부 태평통 1정목 61 조선일보 발행인 방응모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 전
 
[별지 3호]
 
각서
 
1. 조선일보는 국책적 견지에서 조선총독부 통제방침에 따라 1940년 2월 11일을 끝으로 일간신문 조선일보의 발행을 폐지할 것이며 미리 폐간계를 제출함
1. 전향의 대가로서 해산 수당으로 당국에서 금 20만 원을 지불하기로 함
1. 동아일보에 대해서는 조선일보가 폐간계 제출 직후에 그 정리에 대해 교섭을 개시하는 것으로 함
1. 잡지 <조광> <여성> <소년>은 계속 발행하게 함
1. 종업원에 대해서는 조선일보사에서 퇴직금 및 해산 수당을 지급하는 외에 전직 희망자에 대해 당국으로서 할 수 있는 데까지 알선할 것
 
1940년 1월 ○일
 
조선일보 사장 방응모
경무국장 미츠히시 고이치로
 
[별지 4호]
 
폐간계
 
1920년 1월 6일자로 인가하신 조선일보는 이번 국채에 의해 폐간하고자 이에 계를 제출함
 
1940년 ○월 ○일
 
경성부 태평통 1정목 61 조선일보 발행인 방응모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 전
 
 민족문제연구소가 <조선일보>·<동아일보> 창간 100년을 맞아 두 신문의 친일 행적을 비판하는 기획전시회 '일제 부역언론의 민낯'을 11일 식민지역사박물관 1층 돌모루홀에서 시작했다. 방응모 전 조선일보 사장이 1933년 기관총을 일제에 헌납했다는 내용이 담긴 문서.
 민족문제연구소가 <조선일보>·<동아일보> 창간 100년을 맞아 두 신문의 친일 행적을 비판하는 기획전시회 "일제 부역언론의 민낯"을 11일 식민지역사박물관 1층 돌모루홀에서 시작했다. 방응모 전 조선일보 사장이 1933년 기관총을 일제에 헌납했다는 내용이 담긴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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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의 저편을 바라봅니다. extremes8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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