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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한류의 역사>
 강준만 <한류의 역사>
ⓒ 인물과사상사
    
드디어 나올 책이 나왔다. 강준만 교수의 <한류의 역사: 김시스터즈에서 BTS까지>(2020, 인물과사상사). 강 교수는 한국 사회의 예각적인 이슈를 선점하고 도발하는 당대의 시사 논객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기실 그는 일찍이 <우리 대중문화 길찾기>(1998), <대중문화의 겉과 속>(1999)을 비롯해 <세계문화사전>(2005), <한국대중매체사>(2007), <세계문화전쟁>(2010), <세계문화의 겉과 속>(2012), <대중문화의 겉과 속, 전면개정판)>(2013), <빠순이는 무엇을 갈망하는가?>(2016), <한국 언론사>(2019) 등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 대중문화에 대해 누구보다 웅숭깊은 축적을 해왔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그의 출발점은 언론 현장이었고(MBC, 중앙일보), 미국 유학 후 학계에 자리잡은 이후에도 늘 언론 현실과 대중문화를 주시하면서 왕성한 저작물을 생산했다. <대통령과 여론조작: 로날드 레이건의 이미지 정치>(1989), <한국 방송민주화운동사>(1990) 등 초기의 저서도 미디어와 방송문화에 천착을 하고 있는 것에서 그의 학문적 뿌리와 촉수를 가늠할 수 있다.

<한류의 역사>는 이렇듯 30여 년 이상 한국의 대중문화를 애정과 관심으로 주시해온 그가 그동안 향수하고 관찰하고 연구한 바를 집대성한 책이다. 수 년 전 <대중문화의 겉과 속>에서 나타난 '왜 한국은 대중문화 공화국인가'와 같은 문제의식을 필두로 스타 시스템의 승자독식주의, 대중문화의 세계화, 한류를 만든 10대 요인 등은 이 책에서 더욱 풍성하고 공고해졌다.

<한류의 역사>에서는 "비교적 실체가 있는 한류의 현대적 근원"을 찾기 위하여 해방 후부터 1990년대까지의 상황을 사실상 한류의 전사(前史)로 논의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미8군 쇼'가 '한국 대중문화의 모태'였고 김 시스터즈가 '최초의 한류 아이돌'이었다는 고증을 시도한다. 

그의 이와 같은 논의는 학계에서 '한류의 효시'로 거의 공인된 김수현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가 아닌 한국 최초의 트렌디 드라마 <질투>를 '한류의 기원'으로 보는 견해에 이른다. 그는 김윤정의 관련 논문을 인용하면서 장르의 인기와 지속성 면에서 <질투>가 더 큰 영향력을 미쳤다고 말한다. 현상은 인식에 선행하는 법이다. 사계의 논의에 시사점을 줄 것으로 보인다.
 
1992년 6월부터 7월까지 총 16부작으로 방영된 MBC 드라마 ‘질투’.  강준만 교수는 '질투'를 한류의 기원으로 본다.
 1992년 6월부터 7월까지 총 16부작으로 방영된 MBC 드라마 ‘질투’. 강준만 교수는 "질투"를 한류의 기원으로 본다.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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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밖에 없었던 '대중문화 공화국'

90년대 후반 한류가 본격화 하자 미디어에서 환호했다. 반면 학계에서는 예견하지 못했던 이 현상을 설명하기 곤란해서인지 비판적인 시각이 주조였다. 한류를 두고 '우연히 얻어 걸린' 혹은 '설계되지 않은 성공'이라는 일부의 평가도 나왔다.

그러나 강 교수는 '한국인의 열정과 위험 감수성'이 한류의 동인이 되었고, 그 저변에는 압축 성장, 생존 경쟁에서 오는 한국 특유의 '소용돌이 문화'가 있었다는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을 직시한다. 고단한 일상은 대중문화의 위무를 요구했고, 강한 성취 욕구로 인한 치열한 경쟁은 결과적으로 대중문화의 수준을 높였다는 것이다.

그는 또 위성방송 안테나, '오빠 신드롬', 세계화와 영어 열풍, '드라마 망국론', IMF 환란, 일본 대중문화 개방, 지상파 방송의 수직 통합구조, 장기 계약과 같은 매니지먼트 시스템 등 일견 부정적으로 보이는 현상들이 알고 보니 한류의 성공 요인이었음을 얘기한다. 그야말로 기승전한류다.

일견 결과가 좋으면 다 좋다는 얘기로도 들린다. 그보다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밖에 없었던 '대중문화 공화국' 대한민국의 서바이벌 역량을 역설적으로 지적한 것이다. 그야말로 세계 인구의 0.7%에 불과한 한국인이 만든 '0.7%의 반란'이다.

<한류의 역사>에는 '문화결정론' vs. '경제결정론', '문화제국주의' vs. '문화의 혼종화' 이론, '한류 산업론' vs. '한류 문화론' 등 한류를 둘러싼 담론들이 총망라되고 있어 '한류의 역사'인 동시에 '한류론의 역사'를 보여준다.

나아가 한류 현상과 역사를 통해 '지금 이곳'의 한국을 들여다 보는 '한국의 사회문화사'이기도 하다. 그는 한류에 대해 비판적인 자세를 견지하면서 한류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모순'을 숨기지 않는다.

또한 그는 연구자로서 한류를 예견하지 못했다고 토로한다.

"사실 찔리는 건 있죠. 한류를 예견할 자신도, 능력도 안 된 거죠. 왜 못 내다봤나 하고 생각하죠."(경향신문 2020.8.9.)

그런데 그 시절에 누군들 한류를 예견할 수 있었겠는가. <한류의 역사>는 한국의 대중문화에 대한 강준만 교수의 고백록이자 연서(戀書)다. 그가 아니면 누구도 이렇게 치열한 연서를 쓸 수는 없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정길화는 아주대 겸임교수, 언론학박사, 전 MBC PD입니다.
이글은 9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보강한 것입니다.


한류의 역사 - 김 시스터즈에서 BTS까지

강준만 (지은이), 인물과사상사(2020)


태그:#강준만, #한류의 역사, #인물과 사상사, #정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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